〈 969화 〉 969. 광명승천도
위유의 가옥에서 문이 열리고 위유와 남궁설이 밖으로 나왔다. 남궁설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가득했다. 반면에 위유는 여전히 차분했다. 공터에 새로 생긴 건축물을 보기 전까지는.
“이게 뭐지…?”
집이라는 것도 알아보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 세계의 문화와는 궤를 달리하는 네모 반듯한 생김새의 현대식 집이었으니까.
“집이에요! 위유 님이 저희가 지낼 집을 지으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지었죠!”
미령이 발랄한 어조로 말했다. 묘하게 자랑하는 듯한 태도였다. 드워프를 갈구느라 고생한 건 나인데 말이다.
“이게 집? 처음 보는 구조인 건 둘째치고… 이만한 구조물을 만들 시간은 되지 않을 텐데. 술법을 사용했나?”
차분하던 위유의 얼굴에 놀라움의 감정이 퍼진다.
“술법을 사용하긴 했어도 이런 걸 뚝딱 만들어내는 건 술법이라도 불가능해요. 서방님의 도움을 받았죠.”
위유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제가 좀 특별하고 유능합니다, 스승님.”
“알겠다. 지금은 대충 넘어가지. 이게 집이라는 것도 받아들이마. 내가 낙월산에 박혀 있는 동안 천하는 급진적으로 바뀐 듯하니… 이해할 수 있다.”
위유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세상의 문화는 천 년 전에 비해 변한 게 거의 없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하기를 원했다면 이미 훨씬 옛날에 변했겠지. 이 세계의 문명은 어느 수준에서 멈춰 있었다.
“하지만 2명에서 지내기엔 너무 크군. 주변의 자연과도 어울리지 않는 외형이다.”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건 어색해서 그렇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해보시죠, 스승님. 5명이 지내기에는 충분한 크기입니다.”
“…5명? 내가 모르는 손님이 오기라도 하나?”
“무슨 그리 섭섭한 소리를. 당연히 스승님을 말하는 거죠.”
“나는 내 집에서 지내면 된다만.”
“일단 한 번 구경해보시죠. 만족하실 겁니다.”
“처음 보는 집이라 궁금하긴 하군.”
위유는 그리 말하며 현대식 집으로 향했다. 남궁설도 두 눈을 반짝이며 들어왔다. 두꺼운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앞장 선건 미령이었다. 현대문물에 낯선 남궁자매와 달리 그녀는 아주 익숙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은 그녀가 폴짝 뛰며 안으로 들어갔다.
“좋네요, 이 느낌…. 인터넷만 되면 완벽할 텐데. 아, 저 방은 제 방으로 찜!”
미령은 2층에 있는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2층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이었다.
“신발을 꼭 벗어야 하나? 불편하군.”
위유가 눈을 찡그렸다. 이 세계는 기본적으로 입식 문화였다. 신발을 신고 집안에서 생활한다.
“이 집에는 이 집만의 규칙이 있습니다. 조금 낯설더라도 익숙해지면 편해질 겁니다.”
“…나는 아직 이 집에서 살 생각은 없다만, 이 집의 규칙이라고 하니 존중은 해야겠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가장 먼저 그녀의 시선을 끈 건 푹신한 소파와 TV였다.
“이건 꽤 편한 의자군. 저 검은 사각형의 물건은 모르겠고….”
“한 번 앉아보시죠. 저건 TV인데 지금은 발전기를 연결하지 않은 상태라 의미 없습니다.”
“TV? 모르겠군. …이 의자는 푹신하고 편하구나.”
드워프가 만든 소파는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한동안 소파의 감촉을 즐기던 그녀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건 뭐지? 식기 같은 게 있는 걸 보니 부엌인가…?”
“네. 부엌입니다.”
“부엌이 안쪽에 있다니 특이하군.”
냉장고와 인덕션. 모두 아직 사용이 불가능했다. 이어서 방을 하나씩 둘러봤다. 남궁린과 남궁설도 방을 배정했다.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깔끔해서 괜찮네요.”
남궁린은 나름 만족했다.
“난 가가의 아내이니 같은 방을 쓰고 싶은데.”
남궁설은 각방을 쓰게 되어 볼을 부풀렸다.
“같은 집에 살고 있으니 괜찮아.”
서로 만나려고 하면 10초 만에 만날 수 있다.
위유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이 집에 흥미가 생긴 모양이었다. 특히나 그녀가 주목하는 건 디테일 부분이었다.
“이 벽, 보면 알겠다. 뛰어난 실력의 장인이 수작업으로 조각을 새겼군. 볼수록 감탄이 나오는 실력이다.”
위유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 며칠만이라도 여기서 지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정 마음에 드시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다. 익숙하지 않아 낯설 뿐이지. 이 집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다.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니… 며칠간 머물러 볼까.”
“잘 생각하셨습니다. 스승님의 방은 가장 넓은 1층입니다. 따로 화장실도 있지요.”
화장실로 데려갔다. 미령은 이미 알고 있으나, 남궁자매와 위유는 아니었다.
변기의 물을 내리고, 수도꼭지를 열어본 위유는 감탄사를 흘렸다.
“물을 이렇게 쉽게 이용할 수 있다니… 씻을 때도 무척 편리하겠군. 어떤 원리지?”
“이건 술법을 이용했습니다.”
이런 산중에서 물을 끌어 쓸려면 보통 일이 아니다. 허나 뛰어난 술법사인 미령이 있으니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물은 거의 무제한에 가깝게 사용할 수 있고, 하수는 산속 어딘가에 대충 버려질 것이다.
“놀랍군. 그런데 슬슬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만, 설마 식사 준비하지 못한 건 아니겠지?”
“스승님이 시키신 일이니 확실하게 준비해놓았습니다. 식탁으로 가시죠.”
나는 인벤토리에서 음식들을 소환해 식탁 위에 차렸다. 식탁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양의 음식들을 본 그녀가 입을 벌렸다.
“짧은 시간 내에 집을 건축하고 이 정도의 요리를 만들어 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상식으로는 불가능하군. 특히나 닭과 계란 등 낙월산에 없는 재료들도 보이는군. 술법을 썼나?”
“술법은 만능이 아니라니까요.”
미령이 작게 투덜거렸다.
“술법은 아닙니다. 나중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식사에 집중하시죠.”
위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치킨 샐러드를 집어 입에 넣었다.
“…대단히 맛있군. 이 고기는 닭고기인가? 난 고기보다는 싱싱한 채소와 뿌려진 양념에 시선이 더 가는군. 이걸 네가 직접 만들었다고?”
“입맛에 맞으신 듯하니 다행입니다. 아, 이 요리들은 제가 만든 게 아닙니다. 일단 식사를 즐기시죠.”
“오래 살았다만, 이런 맛은 처음이다. 오랜만에 입이 즐겁구나.”
위유의 젓가락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
낙월산에서 며칠을 지냈다.
위유에게 나에 대해 적당히나마 말했다. 다른 세계에 오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듯했지만, 그뿐이었다. 내게 꼬치꼬치 캐묻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궁린과 남궁설이 내게 관심이 많았다.
위유는 현대식 집에 잘 적응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건, 일과를 끝낸 저녁에 몸을 씻은 뒤 소파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것이었다. 그녀는 맥주를 각별하다고 평했다. 사실, 그녀는 술 종류면 가리지 않고 전부 좋아했다.
현대식 집에 적응한 그녀는 본래 살던 낡은 집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낡은 집은 암묵적으로 창고가 되었다.
남궁린은 위유의 가르침을 받으며 매일 검을 휘두르며 수련했다. 물론 나는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틈이 날 때마다 그녀를 찾아가 보지에 정액을 싸질렀다. 꼰대인 위유는 내게 잔소리를 몇 번 하긴 하지만, 고작 잔소리 따위로 날 막을 수는 없었다. 최근 위유는 날 보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남궁설은 낮 시간 대부분을 위유와 보낸다. 무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를 위유가 처음부터 가르치는 것이다. 위유는 가르치는 것에 대충이 없어서 남궁설이 울먹이며 내게 달려오는 일은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었다.
미령도 놀고먹고 있을 수는 없었다. 위유는 미령에게 일을 시켰다. 미령에게 대충 물어본 결과 낙월산에 결계를 설치하고, 기존에 있던 결계를 정비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위유의 제자로서 가르침을 받는다. 남궁설에 비하면 하루에 2~3시간이 전부다.
“유진, 너는 이미 무공을 익히고 있군. 어떤 무공인지 내게 보여주겠나?”
“스승님이 원하시니 당연히 보여드려야죠.”
나는 그녀의 앞에서 무공을 선보였다.
영천류와 천마신공.
영천류는 내가 애용하는 검술이고, 천마신공은 위력적인 마공이었다. 이 세계에선 무작정 마공을 배척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둘 다 손색이 없는 무공이군. 특히나 천마신공이라 했나? 그 무공은 사람이 만들었는지 의심갈 정도로 뛰어난 무공이다.”
나는 뜨끔했다. 실제로 천마신공은 인간이 만든 무공이 아니다. 마천의 왕. 아직 그 정체를 확신할 수 없는 신이 만든 무공이다.
“영천류는 어떻습니까?”
“궤를 달리하지만 뛰어난 무공인 건 맞다. 다만 개선점이 몇 가지 보이는군. 가장 큰 문제점은 지나칠 정도로 재능을 요구하는 동작이다. 이해는 한다. 위력과 속도에 집중한 끝에 그렇게 되었겠지.”
개선점.
그 말을 듣자마자 진세영을 떠올렸다. 진세영이 원하는 게 바로 영천류의 개선이다.
“개선이 가능하겠습니까?!”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연구해보면 가능성은 있겠지. 너는 영천류나 천마신공을 버릴 생각이 없는 모양이구나.”
“없습니다. 제가 다른 무공을 배우기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맞다. 늦었다. 나의 공령신공(空靈神功)과 천애무결(天涯武結)을 배우려면 영천류와 천마신공을 완전히 포기하고 다시 익혀야 하지만, 그러기엔 시간도 오래 걸리고 효율이 없지.”
“……죄송합니다.”
“네가 사과할 필요 없다. 다 감안 하고 널 제자로 받아들였으니까. 공령신공과 천애무결은 설이가 이을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
“이제 뭘 하면 될까요?”
“검을 들어라. 네 실력과 영천류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으니.”
나는 잠자코 허리춤에서 검을 꺼냈다. 위유는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저 멀리, 집 근처 창고에 널어두었던 평범한 검 한 자루가 날아와 그녀의 손에 들렸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이기어검이었다.
그녀가 적이었다면 살아 돌아가는 걸 포기하고 다른 유희 세계를 선택했을 것이다.
“갑니다!”
찰나를 사용해 위유의 앞으로 접근했다. 검에 실린 검기가 타오르고, 뇌전이 타오른다.
영천류(影天流) 뇌광(雷光).
검날은 정확히 그녀의 목을 노렸다. 허나, 내 검이 그녀의 목을 가를 거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위유의 검은 늦게 움직였다. 번개의 검날이 목과의 거리가 한치도 안 남았을 때 움직였다. 그리고 말도 안 되게도 내 검은 튕겨 나가 있었다.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했다. 그녀의 앞에서 나는 발광하는 벌레에 가까웠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진각을 내디뎠다. 주변에 흙먼지가 일제히 위로 솟구친다. 위유의 무반응은 여전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검(天魔劍) 마풍(魔風).
그녀의 몸을 갈가리 찢어버릴 검은 바람이 불었다. 위유는 검은 바람을 향해 느긋하게 검을 휘둘렀다. 검 끝에서부터 공간이 베인다. 허공에 남은 상처는 그대로 검은 바람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렸다.
나는 입을 벌렸다. 상대는 평범하게 휘두르는 검으로 공간을 찢어버리는 괴물이었다. 내가 그녀를 이길 가능성은 0.1%도 되지 않았다.
“검이 쉬고 있군. 내게 보여줄 건 이게 전부가 아닐 텐데?”
“좀 많이 놀라서 그랬습니다…!”
나는 다시 전의를 불태우며 위유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결과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녀의 옷자락 하나 베지 못했다.
“천마신공은 그대로 완성된 있는 무공이군. 내가 함부로 건들만한 무공이 아니다.”
“그럼 영천류를 개선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겁니까?”
“네가 영천류를 버린다면 달라지겠지. 내 의견으로선 굳이 영천류를 선택할 필요 없이 천마신공에만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다만.”
“영천류는 버릴 수 없습니다!”
천마신공은 마공이었다. 다른 세계관에 따라 사용하면 귀찮아지는 일이 다수 발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천류는 유희 생활 어플에 특성으로 존재한다. 내가 버린다고 해서 영천류가 사라질 것 같진 않았다.
“당장 개선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우선은 수련을 계속해라. 아까보니 네 검은 조급하더군. 느리게, 그리고 확실하게 검을 휘두르며 수련해라.”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