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3화 〉 973. 광명승천도
허공에 은은하게 빛나는 돌멩이가 나타났다. 손으로 만져본 돌멩이는 평범한 돌멩이보다 훨씬 단단했다. 은은하게 빛나기 때문일까. 밝은 느낌이 확 드는 물건이었다.
‘이게 별의 조각인가. 뭐 하는 물건인지 모르겠군.’
『별의 조각
별의 기운을 품었습니다.』
별의 기운을 품었다. 확실히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긴 했다. 다만 그리 대단한 물건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기왕이면 좀 더 폭발적이고, 위력적인 기운을 원했다.
‘어디에 써야 되는 지 감이 안 잡히네. 뭐,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답을 알려줄 사람은 마침, 내 앞에 있었다. 지난 시간 동안 미령과 함께 지내며 알게 된 사실은 미령이 매우 박학다식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웬만한 약초의 지식까지 전부 알고 있었다.
미령을 바라봤다. 미령은 입을 벌린 채 무언가에 홀린 듯이 별의 조각을 바라봤다.
“미령아.”
“네, 네?”
“이게 뭔지 알아? 별의 조각이라고 하는데.”
“저, 정말 모르세요? 별의 조각이잖아요!”
“이름이 별의 조각인 건 알겠는데 어디에 쓰는 물건이야? 먹으면 되나?”
별의 조각을 입에 넣는 시늉을 하자 그녀가 경악하며 내 어깨를 잡았다.
“안 돼요, 서방님! 별의 조각은 영약이 아니에요!”
“그럼 뭐야?”
“별의 조각이잖아요! 하늘에서 떨어진 별의 조각! 저도 듣기만 했지, 보는 건 처음이지만요…. 별의 조각은 여러 곳에 사용할 수 있어요. 특수한 술법을 사용할 때, 법보를 만들 때…. 혹은 기존의 법기를 법보를 강화할 때 사용하죠.”
“이게 법보를 사용할 때 필요하다고?”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별의 조각이 있으면 법보 제작 성공할 확률이 올라가죠. 성능도 더 좋아지고요. 가격으로 따지면 최소 천옥 500개 이상이에요.”
법보(法寶).
법기가 특별한 힘을 가진 물건이라면, 법보는 법기의 윗단계의 특별한 힘을 가진 보물이다.
“이게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라고?!”
천옥 500개의 가치.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아, 서방님. 지금 별의 조각을 팔려고 생각했죠?”
“별의 조각을 당장 쓸 방법은 없잖아. 하지만 팔면 이득을 볼 수 있어. VIP 레벨을 더 올릴 수 있다고. 그리고 혹시 모르지. VIP 레벨 3이 되었을 때 지금처럼 별의 조각을 줄 수도!”
“안 줄 수도 있잖아요! 별의 조각을 팔기엔 너무 아깝다고요! 지금 당장 쓸 일은 없더라도 언젠간 쓸 날이 올 거예요! 그리고 별의 조각을 파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팔기 어렵다고? 희귀한 물건이니 잘 팔리는 거 아니야?”
“천옥 500개가 적어 보여요? 그 정도 재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마어마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을 거예요. 재력과 무력은 비례하니 가진 무력도 엄청나겠죠. 그런 놈들이 꼭 돈을 지불하려 할까요?”
“…과연. 수작을 부려서 억지로 빼앗으려 들겠군.”
“100% 그럴 거요? 이 세상은 서방님의 세계가 아니에요. 약육강식. 힘이 없으면 당해야 하고, 속은 놈이 잘못이라는 말이 간단히 나오는 세상이에요. 그들과 정당히 거래하려면 그들과 같은 위치에 서야 해요.”
“…스승님에게 부탁해보는 건 어떨까? 스승님은 엄청 강하잖아.”
“그 인간이 강한 건 맞아요. 하지만 그 인간이 서방님의 부탁을 받고 낙월산 밖으로 나갈까요?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낙월산 밖으로 나간 적 없는데?”
나는 머릿속으로 위유에게 부탁하는 상상을 해 봤다. 평범한 부탁이라면 들어준다. 좀 꼰스럽긴 하지만 인성은 모난 곳이 없으니까.
‘…저번에 산 아래의 마을로 놀러 가자고 했을 때 칼같이 거절했었지. 위유는 낙월산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해.’
수백 년간 낙월산 꼭대기에 앉아있던 그녀가 고작 내 부탁만으로 낙워산을 내려가려 하겠는가? 당연히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네. 별의 조각은 당분간 구석에 처박아 둬야겠어.”
“서방님! 저한테 주시는 것도 한 방법인데요? 제가 서방님에게 천옥 800개나 줬잖아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아아! 그러지 말고요! 천옥 800개가 어디 한두 푼이에요? 전재산을 전부 서방님에게 바쳤는데…! 이렇게 절 버리시는 거예요?!”
미령이 울먹이며 내 몸을 끌어안았다. 연기라는 걸 안다. 흔히 말하는 여우짓이다. 그러나 나는 미령을 밀쳐 낼 수 없었다. 그녀의 미모가 뛰어나기도 했고 솔직히 나를 위해 천옥 800개를 망설이지 않고 내준 그녀의 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천옥 800개. 그 정도면 도시 하나를 사고 남을 정도다.
그리고 미령은 날 너무 잘 알았다. 풍만한 가슴을 들이밀고 은근슬쩍 내 자지를 손으로 더듬는다. 별의 조각에 대한 아까움이 싹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누가 널 버려. 이거 너 가져.”
게눈 감추듯 별의 조각을 받아든 미령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서방님!”
미령이 입을 맞춰왔다. 우리는 곧 알몸이 되어 침대 위에서 뒹굴었다.
???
별의 조각과 미령과의 섹스에 정신이 팔려 잠깐 잊어먹었는데, VIP2가 되면서 새로운 시스템이 열렸다. 어떻게 보면 내겐 별의 조각보다 이게 더 좋은 능력이었다.
바로 공간 전이 시스템.
『공간 전이 시스템 준비 완료.』
『전투 상태일 때 공간 전이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루에 한 번 사용 가능합니다.』
『특수한 결계가 공간 전이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장된 공간 정이 지점: 낙월산.』
『남은 공간 전이 지점은 2개입니다.』
공간 전이 시스템. 지점을 선택하면 공짜로 텔레포트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전이 지점은 자신이 있는 곳을 선택 가능하다. 남궁세가를 전이 지점으로 선택하려면 내가 남궁세가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좀 실망했다. 제약과 조건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래도 공간 이동 주문서를 아낄 수 있어.’
그러니 나름대로 만족했다. 특수한 결계로 인해 공간 이동을 못 하는 건 공간 이동 주문서에도 통용되는 단점이기도 하고.
나는 위유와 독대를 했다. 탁자를 중간에 두고 서로를 마주 봤다. 위유는 찻잔을 조용히 입가에 가져다 댔다. 그녀가 마시는 건 녹차가 아니라 커피였다. 커피의 향기가 그녀의 마음에 쏙 든 모양이었다.
‘미령이 보던 드라마를 같이 보더니… 어느새 커피에 빠졌군.’
조만간 미령이처럼 현대 문물을 내게 요구할지도 모른다. 이미 남궁린과 남궁설은 그러고 있으니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다.
“그래서 만무탑(萬武塔)이란 곳에 입탑하고 싶다는 말이냐?”
위유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눈동자에 어떠한 흔들림도 없기에 도리어 압박이 되었다.
“네. 만무탑에서 영약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전 경험까지 쌓을 수 있으니 얻을 것이 많습니다.”
“경험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굳이 지금 이 시기에 나갈 필요가 있나? 지금은 설이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다. 네 아내가 구음절맥에 시달리게 계속 내버려 둘 생각이냐?”
“스승님. 저도 생각이 다 있습니다. 제겐 능력이 있어요.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귀환할 수 있습니다.”
“그 전이 주문서 인가 뭔가 하는 거 말이냐? 결계의 방해를 받으면 제대로 발동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전이술은 편리하고 유명한 만큼 그 대처법도 이미 널리 알려졌다. 만무탑이란 곳이 전이술의 대처를 하지 않았을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군.”
“설이의 상태는 저도 압니다. 그래서 방법을 생각해뒀습니다.”
남궁설은 내 여자다. 내가 없으면 구음절맥의 치료는 둘째치고 생명까지 위험할 수 있다. 만무탑에서 얻을 것이 많다고 해도 그게 남궁설의 생명만 할까.
“방법?”
“제겐 방해받지 않을 전이 방법이 있습니다. 이미 미령이를 통해 시험도 끝냈습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미러 터널을 꺼냈다. 거울에 뜨거운 물을 뿌리고 활성화 시킨다. 거울을 통해 연결된 반대쪽 장소가 보였다.
“…과연. 이런 신비한 물건은 또 처음이군. 법보인가?”
“다른 세계의 물건입니다.”
“…그래. 방법이 있군. 하지만 이것만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네가 정해진 시간에 오지 못할 수도 있지 않느냐. 그때가 되면 설이는 죽을 수밖에 없다.”
나는 엘릭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엘릭서입니다. 어떤 상처를 입더라도, 어떤 병이나 저주에 걸렸더라도 이 엘릭서만 있다면 한번에 나을 수 있습니다.”
“꿈에나 나올법한 약이로군. 다른 세계에는 이런 대단한 물건도 존재하는가.”
“거짓은 아닙니다.”
“안다. 거짓과 진실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거기에 너는 설이의 생명을 두고 기만할 놈이 아니지.”
“만일을 대비해 엘릭서를 두고 가겠습니다.”
“……너는 이 약으로 구음절맥을 치료 가능하리라 확신하는 모양이다만, 그렇기에 의문이 드는군. 왜 엘릭서를 사용하지 않았지?
“구음절맥의 장점도 같이 사라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구음절맥의 음기인가.”
“네. 구음절맥의 음기는 설이의 성장에 반드시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
침묵이 흘렸다.
위유의 찻잔이 비어졌다. 그녀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돌아와라. 음양조요대법은 꾸준히 해야 효과가 있는 법이다.”
“물론입니다. 제가 없으면 외로워할 여자가 한 둘이 아니니까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찾아오겠습니다.”
“너는 믿는다만, 솔직히 이 약에는 신뢰가 가지 않는군.”
“믿으셔도 좋습니다. 제 목숨을 걸겠습니다. 그리고 설령….”
나는 뒷말은 뱉지 않았다. 위유는 내 스승이긴 하나, 내가 공략해야 할 여자이기도 하다. 내 패를 전부 까발릴 순 없지.
설령 남궁설이 죽더라도 다시 살려낼 것이다.
내겐 그 방법이 있었다.
???
위유의 허락을 받은 나는 그 다음 날 공간이동 주문서를 찢었다.
별오시(別旿市).
성지곤과 내가 만나서 활동하는 곳이다. 남궁세가가 있는 안휘성과 성지곤의 외가가 있는 하양시(河陽市)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나름 편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
나는 별오시 외곽, 성지곤과 함께 준비해둔 일종의 안가(安家)에 나타났다. 나와 성지곤이 밤놀이를 즐길 때 사용하는 곳이기도 했다.
“유진이, 어서 오고.”
“그래. 안색은 좋아 보인다?”
“나야 평소랑 똑같지.”
먼저 와있던 성지곤이 실실 웃으며 나를 반겼다. 성지곤은 이번에 나와 만무탑으로 도전하면서 가문에서 독립했다. 가문에 독립하며 힘을 쉽게 빌릴 수 없게 되는데도 성지곤은 태연했다.
“독립은 너무 이른 결정 아니냐?”
“또 그 얘기야? 유진아, 난 후회 안 해. 엄마랑 할머니 보지를 못 쑤시는 건 좀 아쉽긴 한데, 아예 연이 끊어진 것도 아니니 괜찮아.”
“…할머니 보지? 설마 친할머니도 따먹었냐?”
“어? 응. 아무도 없을 때 찾아가서 덮쳤어. 솔직히 좀 걱정되긴 했는데, 좀 생각해보니 할머니의 위치상 가문의 치부를 밝힐 순 없으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겠더라고. 그리고 할머니도 마냥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았어.”
“와… 이 대단한 놈.”
그 찐따 같던 성지곤이 맞나? 진짜 성지곤은 전설이다….
“내가 대단하긴 무슨. 전부 너한테 배운 건데.”
“…나한테 배웠다고?”
“네가 가르쳐준 대로 약점을 잡고 굴복시켰어. 그리고 늙은 여자들이 좀 쉬운 감이 있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어서 그런지 강간도 쉽게 받아들이더라고. 너도 한 번 해봐.”
“…아니. 난 할망구 취향이 아니야.”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성지곤은 아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본인도 알고 있다. 자신의 취향이 남다르다는 걸.
“네 누나, 성소정은 어떻게 지내?”
“누나? 널 그리워하며 지내고 있어. 다른 지주로부터 혼담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전부 거절하고 수행 중이야.”
성소정.
유성검문이 멸망하기 전에 유성제일미라 불렸던 여인이다. 그런 그녀가 날 그리워하고 있다니. 나는 입맛을 다셨다. 마음 같아선 당장 가서 육체의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여유가 없었다.
만무탑이 개문할 때까지 앞으로 2달. 그 안에 만무탑의 도시, 만무시(萬武市)에 도착해야 한다. 그래야 탑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유진아. 자.”
성지곤이 인피면구를 건넸다. 나는 새로운 인피면구를 받아 얼굴에 썼다.
“알지? 내일은 만무시로 가야 해.”
“알아.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고 오늘은 오늘을 즐기자. 좋은 곳을 봐뒀어.”
“어딘데?”
“빙자객잔이라고, 내 취향의 여자와 네 취향의 여자가 있는 곳이야. 이미 가서 보고 왔어. 만족할 거야. 거기 딸은 근처 마을까지 예쁘다고 소문난 처녀니까.”
“처녀? 좋지.”
나와 성지곤은 신나게 빙자객잔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