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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76 - 976. 광명승천도 (756/2,000)

〈 976화 〉 976. 광명승천도

철오단을 장악했다. 철오단의 모두가 나와 성지곤의 눈치를 봤다. 특히 성지곤의 눈치를 더 살폈다.

성지곤은 그동안 쌓인 만큼 철오단의 단원들을 괴롭혔다. 심심하다는 이유로 단원을 폭행하는 건 일상이 되었다. 그게 제법 살벌했다. 성지곤은 아마도 우영태에게 두 번 배신 당한 순간에 변했다. 다르게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영태. 불침번의 시작과 끝은 네가 서.”

성지곤이 삐딱하게 말했다. 우영태는 다 죽어가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성지곤 님.”

그날 이후, 우영태는 고립되었다. 누구도 우영태를 돕거나, 대화를 나누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성지곤에게 같이 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영태. 오늘 저녁의 밥맛이 이게 뭐야? 장난해?”

“죄, 죄송합니다. 오늘 식재료가 없어서….”

“누가 변명하래? 식재료가 없으면 구해와야 할 것 아니야? 개념이 없네. 진짜.”

짜악, 짝, 짝!

따귀 세례가 우영태의 뺨에 내려앉았다. 성지곤은 집요했다. 반쯤은 내 탓도 있었다. 성지곤에게 사람 말리는 법을 가르쳐준 게 나니까.

나는 따로 단원 몇을 불러 우영태에게 사람을 붙였다.

“우영태를 감시해라.”

“…예. 우영태가 도망가지 못하게 철저하게 감시하겠습니다.”

“우영태가 반란을 일으킬 일은 없을 겁니다.”

“그게 아니야. 자살하지 못하게 감시하라고.”

그들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실제로 우영태가 자살할 가능성은 작다. 저래 보여도 거친 일을 해온 낭인이고, 입식 7단의 경지를 이룩한 무인이니까. 내가 이러는 건 조심해서 나쁠 것 없기 때문이다.

‘성지곤은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어. 우영태가 분노를 느끼고 있지. 이참에 성지곤이 좀 더 악독해졌으면 좋겠군.’

성지곤은 멍청한 건 아닌데 경험이 부족했다. 내가 평생 데리고 있을 것도 아니고, 이 험난한 세상에서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악독함을 가져야 한다.

내 시선은 성지곤을 쫓았다. 성지곤은 단원 한 명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귀에 내력을 실어 청력을 강화했다. 그들의 대화가 들린다.

“야, 네 고향이 어디라고 했지?”

“안휘성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안휘성 근처에 있는 마을이라고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정확한 위치와 마을 이름을 말하라고.”

“……안휘성 동쪽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마을 이름은 재경촌이라 하고…. 옆에 작은 호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네 가족이 살고 있다? 가족의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데? 어머니는 살아계셔?”

“저, 저희 어머니는 늙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발 건들지 말아 주십시오. 부탁하겠습니다! 돈도 바치겠습니다! 제발, 성지곤 님!”

“늙었다고? 그럼 더 좋고. 니 애미의 이름을 말해. 어서!”

철오단의 단원들의 애미를 따먹겠다. 그 말은 홧김에 내뱉은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성지곤에게 개입하지 않았다. 내 개입도 원하지 않을 거다.

다만, 다른 것에 개입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성지곤이 소리를 지르며 철오단 단장 진구언에게 달려들었다. 진구언은 검을 들고 침착하게 성지곤의 검에 대처했다.

전투.

성지곤은 그 실력에 비해 실전 경험이 부족했다. 내가 상대해주는 것에도 상대가 있다. 그래서 진구언을 비롯한 단원들을 성지곤과 싸우게 했다. 단원의 경우 2~3명이 함께 성지곤을 상대했고, 진구언은 성지곤과 1대1 전투에서 전적이 앞서고 있다. 11승 3패.

‘성지곤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군.’

???

걷는다.

목적지는 만무탑이 있는 만무시.

내가 철오단을 장악했지만,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유진아. 저기에 객잔이 있는데?”

성지곤이 손을 뻗어 정면을 가리켰다. 길의 한중간에 낡은 객잔이 있었다. 여기 오기 전에 마을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딱히 놀랍지는 않다. 마을 사람이 아닌 지나가는 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는 객잔은 종종 있으니까.

“그러네. 좀 쉬었다 갈까.”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진구언이 뒤에서 나오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낭인들은 길에 있는 객잔을 함부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유명하지 않은 객잔. 특히 사람이 없는 객잔은 더욱더 조심합니다.”

“뭐, 왜? 길을 가다 객잔을 만나면 좋아해야 하지 않나?”

“흑점이라고 아십니까?”

“들어는 봤지. 암상인이잖아. 마약 같은 걸 파는 곳.”

“마약뿐만이 아닙니다. 인육도 파는 곳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인육을 마련하는 곳입니다. 찾아오는 낭인을 잡아 팔아 버리는 흑점에 대한 이야기는 낭인들 사이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저기가 흑점이다?”

“그건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 낭인들은 의심스러운 곳엔 들어가지 않습니다. 오래 살려면 필수입니다.”

“뭐, 딱히 별 볼 일 없는 것 같으니 지나칠까.”

해가 지기까지 몇 시간은 더 걸린다. 노숙은 이미 익숙하니 굳이 객잔에서 잠을 청해야 할 이유도 없고, 음식은 현대나 [백환] 세계에서 가져온 거로 해결하면 된다. 객잔을 들릴 이유가 없었다.

“네. 조금이라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만무시에 하루라도 일찍 도착하지 않겠습니까.”

진구언이 기꺼워했다.

우리가 객잔을 지나가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성지곤이 내 어깨를 잡았다. 내가 멈추자 철오단의 낭인들도 멈췄다.

“성지곤, 뭐야.”

“유진아. 짜증 내지 말고 저기 좀 봐.”

성지곤이 객잔을 가리켰다. 활짝 열린 객잔 창문을 통해 안에 있는 직원이 보였다. 의자에 앉은 중년 남자와 입구에서 졸고 있는 노파.

성지곤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가 노리는 건 노파였다. 나이는 80세 정도로 보였다. 등이 굽었고 얼굴과 손에는 주름이 자글 했다. 하얀 마리카락은 낡은 나무 비녀로 고정했다.

“저 노파… 범상치 않아.”

“범상치 않기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할망구잖아.”

“아니야…! 내 직감이 말하고 있어. 저 여자는 평범한 노파가 아니야. 그리고 유진아…. 나 못 참겠어. 이미 발기해버렸어….”

성지곤이 수줍은 듯이 말했다. 나는 그의 높게 솟은 그의 사타구니를 보며 혀를 찼다. 물론 내 자지보다 그 크기가 작았다.

진구언을 비롯한 철오단의 단원들은 기겁하며 성지곤과 거리를 벌렸다.

나는 성지곤의 얼굴을 확인했다. 호흡이 거칠고 두 눈은 충혈되었다.

‘아까 마을에서 회포를 풀었는데도 이런다고? 저 노파에게 단단히 꽂혔군.’

성지곤의 입장에선 길을 가다가 우연히 절세미녀를 만난 꼴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성지곤의 심정이 이해 가기도 했다. 물론, 그 취향은 전혀 이해 가지 않는다.

“유진아. 내가 반 시진 내로 저 노파를 꼬셔볼게.”

한 시간 내로 꼬셔보겠다는 포부를 들은 나는 피식 웃었다.

“여기서 쉬었다가 간다!”

철오단에게 말했다. 불만은 없었다.

우르르 몰려가서 객잔을 가득 채웠다. 앉아 있던 중년 남성은 주방 안으로 들어갔고, 졸고 있던 노파는 신이 나사 다가왔다.

“어서 오시게! 우리 오동객잔에선 소면과 죽엽창을 팔고 있다네!”

“할망구. 그것밖에 안 파나? 다른 건?”

노파가 나를 쳐다봤다. 내 말이 버릇없었기 때문이다. 노파는 잠시 나를 보다가 말했다.

“…유감스럽네만, 다른 건 없네.”

“죽엽청과 소면. 인원수대로 전부 내와.”

“알겠네. 그리고… 우리 객잔은 선불이네.”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를 따라 낭인들이 우르르 일어난다.

“이 미친 할망구가. 지금 우리가 무전취식이라도 할 거라 생각했나? 감히 철오단을 이렇게 무시해?”

당황한 노파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오! 그런 의미가 아니오! 우리 객잔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불을 받는다오. 미, 믿어 주시오!”

“성유진, 이 객잔의 규칙이 그렇다잖아. 우릴 무시하는 것도 아닐 거야.”

성지곤이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는 다부진 표정으로 노파의 앞을 막아섰다.

“끄응…. 성지곤, 네가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지.”

내가 다시 자리에 앉자, 다른 단원들도 우르르 다시 앉았다.

“죄송합니다. 제 친구들이 좀 거칠어서요. 괜찮으세요?”

“괜찮고… 괜찮고말고….”

노파가 감동한 표정을 짓는다. 작전이 먹혀들었다.

“전 성지곤이라 합니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마요라 하네. 도와줘서 고맙네, 성 소협!”

“하하. 아닙니다. 아름다우신 여인을 돕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아, 아름다운 여인…? 내가 말인가?”

“물론 마요 님을 말합니다.”

“그, 그런 말을 듣는 건 근 50년 만에 처음이네…!”

노파가 두 뺨을 발그레 붉혔다. 성지곤은 그런 노파가 좋다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노파를 존중하면서 노파의 외모를 칭찬한다. 진심이 100% 담긴 외모 칭찬은 노파를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늙어도 여자는 여자라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획 돌렸다. 계속 지켜보기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이윽고 주방 쪽에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성지곤은 노파가 옮기는 걸 가로막고 자기가 직접 음식을 서빙 했다. 몇몇 눈치 빠른 단원이 벌떡 일어나 성지곤을 도왔다.

단원들은 식사를 시작했다. 몇몇 소면을 싫어하는 단원들은 소면 대신에 죽엽청으로 손을 뻗었다. 그들 중에 술 싫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소면은 먹다가 뱉었다. 혀에 닿자마자 맛없음이 올라와서다. 지독히도 맛없었다. 쿰쿰하면서도 짰다. 맛있다는 듯이 소면을 먹는 놈들이 이상할 정도였다.

“캬아! 죽엽청 맛이 끝내주는군!”

“소면은 쓰레기 같던데. 죽엽청은 제대로네.”

“캬아아아!”

죽엽청에 대한 호평이 가득했다. 나는 죽엽청을 마시면서 성지곤을 지켜봤다. 성지곤이 직접 할망구를 꼬시는 건 처음 보는데, 의외로 입담이 대단했다. 성지곤의 모습에서 간간이 내 모습도 보이는 듯했다.

‘나를 보고 배웠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군.’

그런데 갑자기 졸음이 확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 몸은 평범한 인간의 몸이 아니다. 도수가 높은 술을 먹었다고 해서 강렬한 수면 욕구 따윈 느끼지 않는다. 나는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술기운 때문이 아니야. 다른 문제다.’

정신계 술법은 아니다. 절대정신이 있는 한 내 정신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

‘…약이군. 수면제를 넣었어. 여기가 흑점이었나?’

쿵. 쿵. 쿠쿵. 쿵.

여기저기서 식탁에 고개를 처박는 소리가 들린다. 모두 약에 당한 것이다. 죽엽청을 들이키던 진구언도 예외가 아니다.

‘이 미친 새끼는 흑점에 대해 지껄여놓고서 술을 들이켜?’

자신보다 더 강한 나를 믿고 방심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기(五氣)의 경지인 나니 어떤 일이 있더라도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하지만 이 수면제는 보통이 아니었다. 슬슬 버티는 게 힘들어 지경이다.

성지곤도 잠들었다. 대화하고 있단 할망구의 품속에 쓰러진다. 그 과정에서 할망구의 가슴을 주무르는 걸 보고 마음속으로 감탄했다.

‘…천심(天心).’

졸음이 확 사라졌다. 그러나 내 머리는 탁자 위로 쿵하고 떨어졌다. 놈들이 어떤 목적으로 수면제를 탔는지 알아낼 생각이다.

모두가 수면제에 당해 뻗어버리자, 주방에서 중년 남자가 걸어 나왔다. 남자는 싱글벙글 미소 지었다.

“어머니! 대박입니다! 오늘 대박이 터졌어요! 30명이 넘게 들어왔어요! 딱 봐도 낭인단 같으니 전부 팔아버리면… 흐흐. 15년은 놀고먹어도 될 돈을 한 번에 벌었습니다!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흐흐흐…. 괜히 웃음만 나오네요. 흐흐.”

“일단 약해 보이는 놈들은 죽이거라. 심장과 뇌는 따로 저장 창고에 넣어두고, 다른 내장은 버리거라. 알지?”

“잔소리는…. 제가 이런 일을 한두 번 해봅니까? 싱싱한 무인들이 많으니 마인들이 비싸게 사줄 겁니다. 아, 이 버릇 없는 새끼는 죽여도 됩니까?”

중년 남자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 할망구를 막대해서 그런지 나를 향한 목소리가 사납다.

“그놈이 낭인단의 단장이다. 가장 비싸게 팔릴 거야. 살려 두거라. 깨어날 것 같으면 약을 더 먹이고.”

“어머니. 그놈은 어떻게 할 겁니까?”

그는 할망구가 끌어안은 성지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놈은…. 묶어 두고 대화 좀 나눠봐야겠구나.”

“예?”

“이놈은 내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어. 우리의 가족이 될지도 몰라.”

할망구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대로 남자는 당황했다.

“어머니?”

“네 새아버지가 될지도 모르겠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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