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977 - 977. 광명승천도 (757/2,000)

〈 977화 〉 977. 광명승천도

“어머니가 그놈을 마음에 드셨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놈, 보기에도 성격 좋은 놈 같은데 저희랑 같이 일하겠습니까? 그냥 깔끔히 처리하죠.”

“이놈!”

할망구가 화를 냈다. 중년 남자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다 늙어빠진 할망구를 두려워하는 느낌은 아니다. 오래된 습관처럼,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몸에 새겨진 반응이었다.

“이이가 날 보는 눈은 보통이 아니야.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지. 네 새아버지가 될 테니 예의는 갖추거라!”

“…네. 어머니.”

중년인은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대충 대꾸하며 쓰러진 단원들을 한 명씩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새 새빨간 피가 담긴 그릇을 들고 단원들의 얼굴에 上中下를 매기고 있었다.

“이놈은 몸집이 크고 온몸이 근육질이라… 상등품이고…. 이놈은 허우대는 멀쩡한데 느껴지는 내공은 별 볼 일 없으니 중등품…. 흐흐. 중등품 이상이 많네요.”

상품을 감정하고 분류하는 것이다.

“오늘 저녁에 손님 오기로 한 거 알지? 하등품 중에 적당한 걸 골라서 요리할 준비를 해놓거라.”

“어머니도 도와주시죠. 다른 건 몰라도 뇌 요리는 잘 못 하겠다니까요.”

“쯧쯧. 이놈아. 뇌야말로 별미 중의 별미야. 너도 슬슬 혼자서 요리할 줄 알아야지. 언제까지 이 어미가 도와줘야겠느냐. 이 어미는 이제 얼마 안 남았어.”

흑점.

지나가는 손님을 잡아 죽이고, 인육을 파는 곳. 끔찍한 곳이었다.

“에이. 마음에도 없는 말씀을 하시긴. 새아버지도 찾으신 분이 그러십니까?”

“난 알 수 있어…. 얼마 안 남았어. 기껏해야 3년 정도겠지.”

“어머니. 그런 말씀하지 마시지요. 어떻게 절 버려두고 먼저 가시려 합니까?”

“에휴. 넌 언제 장가 갈 테냐?”

“장가는 이미 갔지요. 평범한 여자는 우리 일을 못 견뎌서 문제고. 도망치는 마누라를 잡는 일도 지겹고….”

“찾아보면 네게 맞는 여자도 있을 거다. 그리고 아들아. 만일 내가 죽는다면… 네 새아버지도 같이 묻어다오. 이승에서 같이 보낸 시간이 적으니 저승에서라도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

“…어머니가 바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중년 남자는 대화를 하면서도 해야 할 일은 하고 있었다. 그는 이어 내 앞까지 다가왔다.

“이 버릇 없는 놈은 그럭저럭 괜찮은 외모에 낭인단을 이끄는 걸 보니 실력도 갖춘 것 같으니 최상으로….”

놈의 손가락이 내 얼굴에 닿으려고 했다. 피비린내 나는 남자 새끼의 손가락이 내 몸에 닿는다고 생각하니 구역질이 치밀었다.

두 눈을 번쩍 뜬 나는 술병을 역수로 쥐고 남자의 머리를 후려쳤다.

“크아아악!”

술병이 부서지고, 남아 있던 술이 그의 머리를 흠뻑 적셨다. 남자의 무릎이 무너진다.

“아들아!”

깜짝 놀란 할망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어, 어떻게. 실혼약(失魂藥)을 먹고도 멀쩡한 거냐!”

“실혼약? 거창한 이름이군. 그래도 그런 이름이 붙을 만 해.”

오기(五氣)에 경지에 이른 나도 당해서 잠에 빠져들 뻔했다. 천심이 없었다면 상황은 최악이 되어 한 번 죽었을 것이다.

“이익!”

할망구의 손이 허리춤으로 움직였다. 암기가 날아온다. 일반인치고는 제법 숙련된 손놀림이다. 나는 고개만 까딱여 날아오는 암기를 피했다. 가느다란 바늘은 뒤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 바늘 끝에는 끈적한 독이 묻어있었다.

“어, 어머니! 도망가십쇼! 이 자식은 내가 맡겠습니다!”

중년인이 내 다리를 붙잡았다. 다소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공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인 주제에 나를 막겠다니.

파지지직.

내 몸에서 튄 뇌전이 중년인을 감전시켰다. 죽이지는 않고 기절만 시켰다. 그냥 죽이기엔 그들에게 약간의 호기심이 들었다.

노파는 식은땀을 줄줄 흘렀다. 그녀는 도망가는 대신에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양손을 빌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대협.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돈이라면 드리겠습니다!”

“날 죽이려 해놓고 이제 와서 살려달라고? 나 참,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대협… 제발…! 저희도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 그래. 먹고 살기 위해 음식에 수면제를 타고, 잠든 사람을 죽이고 인육을 팔고…. 어쩔 수 없었을 거야.”

“으으… 살려만 주십시오….”

노파는 내가 다가오자 바들바들 떨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 일은 노파와 중년인이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방심한 탓이 컸다. 물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일단 노파를 무시하고 옆에 쓰러진 성지곤의 어깨를 잡았다. 세상 모르고 잠에 빠져 있었다.

짜악! 짝!

손바닥에 힘을 주고 성지곤의 뺨을 때렸다. 성지곤의 뺨에 손바닥 자국이 올라왔다. 그럼에도 성지곤은 일어나지 않았다.

‘때려서 일으켜 세우는 건 불가능한가? 아마 죽어도 안 일어나겠지.’

방법을 바꿨다.

파지직.

뇌기(雷氣)를 일으켜 성지곤의 몸에 흘려보냈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포기하고 성지곤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응?’

특이한 게 느껴졌다. 끈적끈적한 무언가의 이질적인 기운이다. 나는 그게 수면제의 기운임을 알아차렸다.

‘이거… 뇌기로 태울 수 있겠는데?’

바로 행동에 나섰다. 아니다 싶으면 손을 떼면 그만이었다. 내 통제하에 있는 뇌기가 성지곤의 몸속의 약의 기운을 없애기 시작했다. 3분 정도 지났을까. 성지곤의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성지곤! 정신 차려!”

“으, 으으… 유진아…?”

성지곤이 깨어났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몽사몽 한 표정이 경악으로 바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 맞아. 갑자기 졸임이 밀려와서… 젠장! 수면제에 당한 거구나! 혹시 여기가 정말 흑점이었어?!”

“극독이 아닌 수면제를 썼으니 빼박이지. 극독을 쓰면 인육을 못 팔잖아.”

“아오…. 이렇게 어이없이 당하다니…. 유진이 너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네.”

“알면 앞으로 조심해라.”

“알았어. 조심할게. 마을 밖에 있는 객잔에는 함부로 들어가지 말아야겠다….”

성지곤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낭인단은 모두 엎어져서 잠들어 있었다. 얼굴에 上中下 등급이 핏물로 매겨져 있는 모습이 섬뜩하게 느껴졌는지 성지곤이 부르르 떨었다.

“유진아. 혹시 내 얼굴에도 저 등급이 매겨져 있어?”

“아니.”

“후우. 다행이다. 그런데….”

성지곤은 노파의 앞으로 다가갔다. 노파가 간절함을 담아 성지곤을 올려다봤다.

“나, 난 자네를 해칠 생각이 없었어. 자네는 나를 정말 존중해주었으니까…. 자네와 나는 정말 가족이 될 수 있다네…! 살려주게! 자네가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하겠네!”

눈물을 줄줄 흘리며 목숨을 구걸한다. 추한 모습이었다. 보고 있는 내가 도리어 짜증이 나서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 목숨 구걸이 통하는 대상이 있었다. 성지곤이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동시에 그의 사타구니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마요…. 아니, 할망구. 나와 유진이를 죽이려 했으면서 그런 말이 나와? 용서 못 해.”

성지곤이 할망구에게 달려들었다.

“아아아악!”

목이 찢어지라 크게 비명을 지르던 할망구는 폭력을 대비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허나 폭력이 찾아오지 않자 이상함을 느끼고 두 눈을 떴다.

성지곤이 섬뜩하게 웃고 있었다. 성욕으로 번들거리는 눈은 할망구의 몸을 훑어본다.

“죽이지는 않아. 그건 너무 쉬우니까….”

군침을 삼킨 성지곤의 손이 움직였다.

“에구머니나!”

찌이이익! 할망구의 옷을 찢어발기며 단숨에 알몸으로 만들어 버린다. 할망구의 축 늘어진 젖가슴과 때 묻은 피부….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바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야, 성지곤. 여기서 해야하냐? 방에 가서 할 수도 있잖아.”

“미안, 유진아. 못 참겠어!”

“단원들이 일어나면 어쩌려고?”

“그 새끼들이 보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하긴. 상관없긴 하지.”

나는 주방 쪽으로 향했다. 성지곤과 할망구의 섹스 장면은 눈 뜨고 봐주기 힘들었다.

“오매! 오매매매!”

“할망구! 보지가 아주 말라비틀어졌어! 마른 고목에서 나오는 수액 한 방울이 나오는 모습이란…! 좋다고, 할망구!!”

“흐미…. 죽어…. 나 죽어…!!”

“난 협객으로서 할망구를 대했는데… 할망구는 그런 날 죽이려 했어! 죽어! 할망구!”

“오매매매매!”

등뒤에서 광기가 느껴졌다. 목이 뻐근했다.

‘봐서는 안 돼. 한 번 보게 되면 나도 광기에 전염될지도 몰라. 내 눈은 소중하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의외로 주방은 깨끗했다.

‘안쪽에 다른 문이 있군.’

문을 열고 들어갔다. 피 냄새가 확 끼쳐 왔다. 동시에 서늘한 공기가 느껴진다.

‘냉장고? …이 세계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지. 술법을 이용해 냉장고처럼 만들었나.’

목이 잘린 나체의 인간이 천장에 걸려 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졌다. 옆에 있는 통 안에는 머리 가죽과 뼈가 들어가 있었다. 한쪽에는 인간의 내장이 늘어져 있다.

‘정육점을 연상케하는군. 그 외에는 특별한 건 없군.’

도움이 될만한 건 없어 보였다.

밖으로 나온 나는 다른 곳을 뒤지고 다녔다. 할망구의 방으로 보이는 곳에서 금 5냥을 발견했다.

다시 객잔으로 들어온 나는 멍해지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았다.

“으으, 할망구, 보지 하나… 끝내주네…!”

“어흐, 어흐…! 죽어부린당께!”

탁자 위에서 광란의 섹스가 벌어지고 있었다. 성지곤이 할망구를 깔아뭉개고 허리를 움직이고, 할망구는 두 팔을 퍼덕이며 신음을 흘렸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기절해 있는 중년 남자의 머리를 손으로 잡았다. 뇌기를 흘려 놈의 정신을 일깨운다.

“크허엇!”

“일어났나? 내가 물어볼 게 있어.”

“크으읏…. 어머니… 어머니는…?!”

“네 애미는 저기에 있고.”

남자의 몸을 할망구가 있는 쪽으로 돌렸다. 성지곤의 밑에 깔려 신음을 흘리는 제 어미를 본 남자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다.

“어, 어머니?! 어머니!!!”

“구보야! 구보야, 흐미이익! 어미 죽는다… 죽어… 흐미이익!”

“어머니를 범하다니…! 이 잔혹한 놈들! 어머니를 놔줘라!”

“시끄러. 일단 좀 맞자.”

주먹이 남자의 얼굴과 몸을 구타했다. 낭인들을 워낙 많이 때리다 보니 때리는 것에도 요령이 붙었다.

“끄악! 악! 그, 그만! 자, 잘못했습니다! 악!”

구타소리가 끝나자 남자는 조용해졌다. 바닥에 무릎 꿇고 예의를 차렸다. 나는 그의 앞에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쿵덕쿵덕쿵더더덕!

뒤에서 울리는 떡치는 소리는 무시했다.

“내가 궁금한 게 있어. 너희랑 거래하는 대상이 누구야? 무공도 익히지 않은 너희끼리 이런 흑점을 운영하는 건 그만한 뒷배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겠지.”

놈과 할망구가 음식에 탄 수면제, 실혼약은 결코 평범한 물건이 아니다. 그 정도의 물건을 이들에게 건네줄 정도의 세력이라면 얻어낼 수 있는 게 몇 개 있을 것이다.

“말해. 너희는 누구랑 거래하고 있는 거지?”

“그, 그게….”

그가 입술을 덜덜 떨었다.

두려움이다.

허나 나를 향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나는 손에 화련비도를 소환했다. 붉은 칼날은 요사스러운 기운을 흘렸다. 칼끝은 그의 오른손목을 부드럽게 베었다. 툭. 떨어지는 손을 본 그의 입이 한껏 벌어졌다.

“아아아아아아악!”

“다음은 왼손이다. 그다음은 양발이고. 그리고 그다음은… 눈으로 할까. 몸을 보존하고 싶으면 묻는 말에 성실히 대답해. 손이나 발이 멀쩡해야 어머니를 모시고 살 거 아니야?”

“대, 대답하면 살려주실 겁니까?”

“살려줄게.”

내 말이 거짓말일 수 있다. 남자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말의 희망이 되기엔 충분한 말이었다.

“저희는… 묵지련(墨地聯) 소속입니다. 비록 말단에 불과하지만요.”

“거래하는 대상은 묵지련이고?”

“네. 보름마다 거래합니다.”

“수면제도 묵지련이란 곳에서 줬나?”

“네. 저희는 묵지련에서 알려준 방법으로 일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희도 사실 이런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게 다 묵지련이 시켜서 한 일입니다.”

“누가 뭐래?”

놈의 변명에는 관심도 없었다.

“묵지련에서 언제 오는데?”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대가리 굴리지 말고 말해라.”

“원래는 다음 주에 오기로 했는데… 아까 전서구를 보내서 오늘 저녁에 올 겁니다.”

“아하. 30개가 넘는 상품이 와서 불렀구만. 크크.”

“아, 아닙니다!”

“아니기는.”

나는 놈의 머리를 한 대 쳤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