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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79 - 979. 광명승천도 (759/2,000)

〈 979화 〉 979. 광명승천도

“응애. 아주 깜찍한 짓을 해주는군. 낭인 버러지들. 너희 모두 영혼까지 쪽쪽 빨아 먹어주마.”

모비설이 일어난다. 몸에 검이 박히고, 입으로 피를 토하면서도 비명 하나 지르지 않고 담담하게 일어나는 모습은 단원들의 공포를 사기에 충분했다.

‘허세는 아닌 것 같군. 요괴로서 가진 특징인가?’

잘된 일이다. 붙잡아서 묵지련에 대해 물어보면 될 테니까.

“뭐해. 얼 타지 말고 공격해.”

단원들에게 명령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성지곤이었다. 최근에 단원들과 대련하면서 감각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성지곤의 검이 모비설의 목을 노렸다. 모비설이 손을 들어 성지곤의 검을 붙잡았다.

단원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어 모비설의 몸을 찔렀다. 푹, 푹푹. 살벌한 소리가 울린다. 그러나 모비설의 얼굴은 평온했다.

“너희의 검은 내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모비설이 몸을 회전시켰다. 단원들이 뒤로 날아간다. 몇몇은 모비설의 팔에 부딪혀 머리가 터졌다. 벽에 부딪힌 성지곤이 옅은 신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끄응…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모비설은 자신의 몸에 박힌 무기들을 천천히 빼냈다. 그의 상처는 빠른 속도로 아물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모비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가늠하자면 나와 같은 오기(五氣)의 경지다. 성지곤이나 철오단은 모비설을 감당하지 못한다.

“술법은 아닌 것 같은데, 무공이냐? 아니면 태생부터 가지고 있던 힘이냐?”

“흐흐. 불사신공(不死神功)이라 들어봤느냐? 내가 익힌 무공이 바로 그 불사신공이다. 대성하면 어떤 공격에도 죽지 않는 불사신이 되지.”

자랑스럽게 말한다. 상처를 회복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해 추가로 물었다.

“묵지련의 뒤에는 누가 있지?”

“묵지련의 뒤? 무슨 소리냐?”

“너 정도면 묵지련 안에서도 높은 자리를 꿰차고 있겠지. 시치미 떼지 말고 말해봐. 뒤에서 묵지련을 조종하는 건 누구냐? 좀 더 쉽게 말해줄까? 이 쪽지를 너한테 준 놈이 누구냐고.”

손에 든 쪽지를 흔들었다. 쪽지를 본 모비설의 얼굴이 잠깐 굳어졌다. 허나 이내 씨익 웃는다.

“아, 그 쪽지? 오다가 주운 거라 모르겠군.”

순순히 말해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나는 모비설의 팔다리를 잘라 놓고 물어보기로 정했다.

화련비도를 손에 쥐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딘다. 모비설은 씨익 웃더니 입을 크게 벌렸다.

“응! 애!”

모비설을 중심으로 충격파가 발생했다. 단원들이 동시에 사방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내 몸은 반대로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모비설에게 끌려간다.

“넌 제법 씹어먹을 맛이 있을 것 같군. 산채로 머리부터 먹어주마.”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이걸 기회로 여겼다.

‘가까이 다가가서 죽여버리자. 놈에게 붙잡히는 것보다 칼을 먼저 휘두르면 돼.’

칼을 휘두르려는 순간이었다. 놈의 손바닥이 먼저 움직였다. 놈의 손바닥에서 주황색 기운이 번쩍인다.

“이게 바로 주홍신장(朱紅神掌)이다.”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주황색 기운이 나를 덮쳤다. 복부에 정면으로 맞은 나는 뒤로 날아가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장풍(掌風)…. 장법 계열의 무공이군.’

퉷. 입에 고인 피를 바닥에 뱉어냈다. 내기로 육체를 강화했으니 장풍 몇 방 정도는 버틸 수 있다.

‘계속 두들겨 맞으면 나도 위험하다.’

두들겨 맞고 싶지도 않다.

‘가속.’

[가속을 사용합니다. 10분 동안 유지됩니다. 남은 스택: 4]

모비설을 향해 뛰었다. 모비설이 씨익 웃으며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그의 오른손에 주홍색 기운이 나타난다.

‘찰나.’

한순간에 도약해 놈의 옆의 자리를 고수했다.

영천류(影天流) 뇌광(雷光).

붉은 전류를 품은 칼이 번뜩인다.

“으, 응애!”

칼은 모비설의 몸에 닿지 못했다. 놈에게서 발생한 충격파에 내 몸이 뒤로 날아간 것이다.

“응애! 응애!”

위기에서 벗어난 모비설이 웃으며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 내 몸이 두둥실 떠오르고 모비설을 향해 빨려 들어간다.

‘저 새끼가 울 때마다 몸이 끌려가거나, 밀려난다. 척력과 인력을 사용하는 건가.’

당황스럽지는 않다. 처음부터 대충이나마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내 몸이 다른 이의 의지로 끌려다니는 게 무척 기분 나빴다.

“이번엔 내장을 뭉개고 섞어주마!”

모비설의 손바닥에서 주홍색 기운이 회전한다. 그의 손이 뻗어지려는 순간에 스킬을 발동했다.

‘천심.’

내 몸을 끌어당기던 힘이 사라진다.

‘찰나.’

놈의 장법을 피하고 칼을 휘둘렀다. 칼날에 붉은 뇌전이 격렬히 튀었다.

영천류(影天流) 뇌광(雷光).

붉은 참격이 놈의 어깨를 갈랐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칼을 쥐지 않은 왼손을 놈의 복부로 뻗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신장(天魔神掌).

“꾸에에에엑!”

모비설의 거구가 뒤로 날아갔다. 객잔의 벽을 뚫고, 흙바닥을 굴러 나무 가득한 숲속에 엎어졌다.

‘칼에 몇 번이나 찔리고도 멀쩡한 놈이야. 이 정도로 쓰러지진 않겠지.’

박살 난 벽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성지곤과 낭인들이 내 뒤를 따라와 거리를 벌리고 구경한다.

“으, 응애…. 내 내장이 곤죽이 돼버렸잖아…. 너무 아프다…. 응애….”

모비설이 땅바닥 위에 엎드리고 있었다. 공벌레처럼 몸을 말았다.

“응애… 응애… 응애애앵.”

모비설이 울었다. 낮게 깔려서 퍼지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는 섬뜩했다.

꾸득, 꾸드드득.

변화가 시작됐다. 모비설의 몸이 부풀어 오른 것이다. 단단한 근육이 사라지고 물컹한 살덩어리가 부피를 키운다. 종국에는 집채만 한 갓난아기가 되었다. 요괴 모비설의 진짜 모습이다.

“응애!! 으아아아아앙! 으앵앵!”

모비설이 울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고막이 먹먹할 정도다. 거기에 그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힘이 몰아치고 있다. 나무가 꺾이고, 나뭇잎과 돌멩이가 살벌한 기세로 날아다닌다.

‘지성이 느껴지지 않는군. 아예 정신줄을 놔버리고 본능만을 남겼나?’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요괴 대부분은 본능을 이성보다 중요하게 여기니까.

힐끗.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여긴 객잔 밖. 천장이 없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밤이었다.

‘낙뢰.’

콰르르르릉!

시퍼런 번개 한 줄기가 모비설에게 떨어졌다. 모비설의 울음소리가 뚝 멈췄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한 방으로 안 되나? 그럼 두 방, 세 방은 어떻지?’

천둥과 함께 낙뢰가 떨어졌다. 사방이 번쩍 번쩍 밝아졌다. 3초에 총 7방의 낙뢰를 떨어뜨렸으나 모비설은 멀쩡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멀쩡하잖아. 토(土)속성인가.’

토는 뇌(雷)속성에 상극이라 할 수 있었다.

‘번개가 안 통해도 나한텐 칼이 있어.’

나는 모비설을 향해 뛰쳐나갔다. 아직 천심의 효과는 지속 중이다.

‘남은 시간은 대충 10초 정도인가. 단번에 끝내주지. 천재의 시간.’

[10초 동안 천재의 시간을 발동합니다.]

감각이 확 올라간다. 모비설의 보이지 않는, 염력 비슷한 힘이 내 몸을 낚아채려고 했으나 연달아 실패한다. 천심이 발동 중인 나는 상태 이상의 면역이다. 아무리 보이지 않는 힘이라도 내 몸을 잡아 멈춰 세우는 건 불가능했다. 차라리 나무나 바위를 던져 피해는 입히는 편이 더 유효하다.

모비설의 주위는 허리케인이었다. 나무와 돌멩이가 날아다닌다.

‘돌멩이 하나까지 전부 느껴진다.’

천재의 시간의 발동으로 내 감각은 놀라울 정도로 예민해졌다. 맞을 건 맞고, 받아 쳐낼 건 받아 쳐낸 끝에 모비설의 앞에 도착했다.

모비설이 짧고 굵은 손을 내게 뻗는다. 동시에 모비설의 커다란 입이 두꺼비처럼 벌어졌다.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한 입안은 그 자체만으로도 혐오스럽다.

화르르륵.

화련비도의 푸른 검기가 화염처럼 치솟았다. 화염은 이내 칼날에 스며들어 검강(劍?)을 이룬다.

나는 칼을 휘둘렀다. 초식도, 의미도 없이 기계처럼 칼을 휘둘렀다. 그저 빠르게.

“으아아아아아아앙!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악!”

모비설이 비명을 내지른다. 놈의 피가 내 몸에 닿았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칼을 통해 느껴지는 살을 베는 감촉. 오늘따라 유독 흥겹게 느껴졌다.

“아, 아아아아…!”

정신을 차려보니 놈은 머리를 제외한 온몸이 난자당한 상태였다.

‘아, 물어볼 게 있었는데.’

전투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바람에 모비설은 머리를 제외하고 난자당했다.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따로 알아봐야… 응?’

땅바닥에 흩어진 살과 내장 조각이 애벌레처럼 꾸물꾸물거리며 천천히 모이고 있었다. 느릿하지만 확실하게 재생하고 있다. 놈은 죽지 않았다.

‘익힌 무공이 불사신공이라 했던가? 무공 뿐만이 아니라 요괴의 피도 작용했겠지.’

불사신공은 무공이 아니라 술법에 가까워 보였다.

‘안 뒤진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한데. 이렇게 내버려 두면 완전히 회복해버리잖아.’

어깨가 뻐근하다. 천심도 이미 사용했다. 모비설과 한 번 더 싸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성지곤과 철오단을 불렀다.

“야, 너희들. 보고만 있지 말고 이리 와봐!”

손을 까딱이자 철오단이 재빨리 달려온다. 나를 보는 그들의 시선에 경이의 감정이 섞여 있다.

“이놈, 재생하지 못하게 계속 공격해. 난 잠깐 어디 갔다 올게.”

“어디 가십니까?”

진구언이 물었다.

“이놈이 진짜 불사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네! 절대 재생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불에 한 번 태워봐도 되겠습니까?”

고작 불 따위로 모비설을 어떻게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던가.”

나는 타인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 공간 전이 시스템을 사용했다. 내 몸은 빛에 휩쓸리고 낙월산에 나타났다. 죽지 않는 모비설에 대한 처리법을 미령에게 물어볼 생각이다. 삼정(三頂)의 경지에 이른 술법사인 그녀라면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미령아! 서방님 오셨다!”

???

나는 새벽이 되어 오동객잔에 나타났다. 미령은 간단히 해결법을 알려주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늦게 내가 돌아온 것은 미령과 오랜만에 육체의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유진아. 방법은 찾았어?”

“당연히 찾았지.”

성지곤이 객잔에 기대어 서 있었다. 나는 미령이 준 부적 몇 장을 쥐고 있는 손을 들어 보여줬다. 성지곤이 감탄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 나와 성지곤은 모비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비릿한 피 냄새와 고기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성유진 님! 오셨습니까!”

진구언이 재빨리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내 실력을 두 눈으로 확인해서 그런지 이전보다 더 공손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고 모비설에게 시선을 돌렸다. 모비설은 몇 시간 전에 봤을 때와 비교해 그 크기가 줄어들어 있었다. 내 몸보다 컸던 머리는 평범한 인간의 머리처럼 작아져 있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

그 주위에는 모비설의 살덩어리들이 꿈틀꿈틀 거린다. 단원들은 쉬지 않고 모비설의 살덩이를 베고 뭉개고 태우고 있었다.

“문제는 없었지?”

“놈의 몸이 작아지긴 했는데… 그 외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신기한 건 살을 불로 태워도 재생하더군요.”

나는 모비설에게 다가갔다. 모비설의 머리는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이제 내 질문에 대답할 생각이 드셨나?”

“…응애…. 네가 뭘 하든… 난 말할 생각 없다.”

“왜? 너도 편해지고 싶잖아. 이러지 말고 편하게 가자.”

“나는 죽지 않는다. 몇 년, 몇십 년이 지나도 죽지 않는다. 이름이 성유진이라고 했나? 나는 언젠가 네놈을 반드시 산채로 씹어 먹을 거다.”

모비설이 증오를 담아 말했다. 내 주위에 있던 단원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이해는 간다. 몸통이 사라지고 머리가 남은 불사자가 저렇게 말하니 섬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아니었다.

“머리통을 부수면 죽을 놈이 허세는.”

“그 정도로 내가 죽을 것 같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 머리통을 부숴봐라.”

놈이 실실 웃는다. 그 도발에 넘어갈 생각은 없다. 안 죽어도 귀찮을 것 같지만, 정말 죽으면 곤란하다.

“정말 자신 있나 보네. 알았어. 내가 졌다. 안 물을게. 네가 말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지 뭐.”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내 손에 들린 부적을 본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기분 나쁜 부적을 들고 있군. 그건 뭐냐?”

“재생력을 끊어주는 부적.”

“…그딴 부적이 있을 리가…!”

“있나, 없나 확인해보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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