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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0 - 980. 광명승천도 (760/2,000)

〈 980화 〉 980. 광명승천도

나는 모비설의 목, 정확하게는 그 절단면에 부적을 치덕치덕 붙였다.

“하, 하지 마라…! 끄으으윽!”

반항은 말뿐이었다. 몸통이 없는 모비설이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근데 신기하네? 목 아래에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말하는 거냐? 요괴라서 가능한가?”

모비설의 머리를 들고 통에 집어넣었다. 사실 별로 신기하지 않았다.

“제, 젠장! 이런 답답한 곳에 내 머리를 넣어두지 마라! 당장 꺼내라! 꺼내란 말이 안 들리나!”

“거기서 얌전히 들어가 있어. 내 질문에 성실히 답할 준비가 되면 꺼내주지. 아, 말투도 공손해져야 할 거다.”

“망할! 어쩌다 내가 이렇게…! 응애애애!”

소리를 지르는 게 시끄러웠다. 보자기로 상자를 몇 번 감쌌다. 소리가 차단되어 들리지 않았다.

“성유진 님. 이것들은 어떻게 할까요?”

나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꾸물거리던 모비설의 살덩어리들은 축 늘어졌다. 재생력을 잃고 평범한 살덩이가 된 것이다.

“대충 태워. 오늘은 대충 점심 무렵에 출발하자. 그때까지 알아서 쉬어.”

“저… 성유진 님. 놈들이 가진 재물은….”

진구언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아, 맞다. 그거 분배해야지. 성지곤 네가 해.”

“알았어, 유진아. 근데 무공 비급 같은 것도 있던데? 이건 어떻게 해?”

“그딴 쓰레기 무공엔 관심 없어. 알아서 해. 단, 돈은 내 몫을 확실히 챙겨.”

다른 일들은 모두 떠넘기고 객잔의 빈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철오단은 오동객잔의 할망구와 그 아들을 데리고 만무시로 향했다.

“에구구, 에구구.”

할망구가 앓는 소리를 냈다. 무공도 익히지 않은 늙은 몸으로 먼 길을 걸으려니 부담이 컸다. 그의 아들은 할망구를 도와줄 수 없었다. 짐을 잔뜩 들고 따라오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결국, 성지곤이 움직였다.

“마요. 내가 업어 줄게.”

“…고마우이.”

어느새 할망구는 자기 아들보다 성지곤을 더 믿고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행이 잠깐 쉴 때, 성지곤과 할망구는 어딘가로 조용히 사라졌다. 나를 물론이고 단원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잠깐 사라진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더라도 알기 때문이다. 휴식에서 돌아온 할망구는 지쳐 있었고, 성지곤은 상쾌한 얼굴이었다.

‘걷기 귀찮네. 자동 진행 써야겠다.’

시간이 훅훅 지나갔다.

이 세계는 마냥 안전하지 않았다. 산적이 나타나서 싸움을 걸거나, 느닷없이 요괴가 습격해올 때도 있었다. 낭인이나 표국이 괜히 발달한 게 아니었다.

“식인 호랑이다!”

인간의 맛을 깨닫고, 요괴로 각성한 호랑이가 나타났다. 호랑이는 시뻘건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며 달려들었다.

내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철오단은 그럭저럭 실력 있다는 평가를 받는 낭인단이다. 내 도움 없이도 식인 호랑이 정도는 알아서 처리했다.

“성유진 님! 여기 호랑이 가죽입니다!”

“필요 없다.”

“네?”

“필요 없다고.”

“그, 그럼 이건….”

“알아서 해.”

나는 진구언을 무시하고 보자기에 감싸인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열자 역한 냄새와 함께 갓난아기의 얼굴을 닮은 모비설의 머리통이 드러났다.

모비설의 두 눈이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떠졌다.

“응… 애…!”

“지랄 말고. 이제 내 질문에 답할 생각이 드셨나?”

“……몇 주가 지났지?”

모비설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몇 주?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어. 대충 2주 정도 지났을걸?”

“2주밖에 안 지났다고…?”

“꼴을 보아하니 아직 부족한 것 같군. 다음은 한 달 뒤에 꺼내주지.”

머리통을 다시 상자 안에 넣으려고 할 때였다. 모비설이 입을 크게 벌렸다.

“기, 기다려라! 나는 다시는 거기 들어가고 싶지 않다! 거긴 무저갱같은 지옥이다.”

“말투가 공손하지 않잖아.”

“죄, 죄송합니다. 부디 상자 안에는 넣지 말아 주십시오! 거기에 며칠 더 들어 있었으면 정말 미쳐버렸을 겁니다!”

“네가 미친다고 할 수 있는 게 있나?”

“제, 제게 궁금한 게 많으시잖습니까. 제가 미쳐버리면 성유진 님이 곤란하실 겁니다!”

모비설의 두 눈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상자에 가둬둔 게 생각보다 효과가 컸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네 가치는 그렇게 많지 않아. 묵지련에 대한 정보는 다른 놈들에게서도 얻을 수 있어.”

“말하겠습니다! 제가 아는 걸 전부 말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풀어주십시오!”

“풀어달라? 이 건방진 새끼. 아직 정신 못 차렸구만.”

상자를 들어 올렸다. 모비설이 기겁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말하는 건 전부 말하겠습니다! 부디 상자에만 넣지 말아주십시오!”

“이제야 대화를 좀 나눌 수 있겠군. 대답이 시원찮으면 넌 상자 행이다.”

상자에 바닥에 내려뒀다. 나는 쪽지를 꺼냈다. 지구의 문자가 그려진 쪽지를 가리키며 그에게 물었다.

“이 문자. 암호 같은 거지?”

“…네. 묵지련의 암호입니다.”

“누가 개발했지?”

“모, 모릅니다. 전 묵지련의 련주로부터 암호 해독법을 받았을 뿐입니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묵지련의 련주가 빙의 천마일까? 아닐 가능성이 크다. 빙의 천마는 그 작품인 ‘깨어나 보니 천마가 되어 있었다.’의 제목처럼 현 천마가 빙의 천마일 테니까.

‘근데 이 세계에서 천마의 이름은 그리 유명하지 않아. 그리고 그놈은 묵지련의 련주같은 일은 안 할걸?’

여러 세계가 뒤섞였다고 해도 기본적인 건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 암호는 무슨 뜻이지?”

“3개월 뒤에 묵지련의 중심에 집합하라는 암호입니다! 앞으로 2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2개월…. 만무탑에 가야 하니 내가 가지는 못하겠군.”

만무탑에서 못해도 수개월 혹은 몇 년을 보내야 할 수도 있었다. 술법 등으로 모습을 모빌선으로 바꿔서 잠입하는 술수는 부리지 못한다.

“묵지련주는 어떻게 생겼지? 곱상하게 생겼나?”

“묵지련주가요? 그분은 곱상한것과 거리가 멉니다. 저보다 더 험악하게 생겼습니다.”

“이름은?”

“모릅니다. 저희는 그저 련주라고만 부릅니다.”

나는 인상을 썼다.

“이 새끼…. 아는 게 뭐이리 없어?”

“죄, 죄송합니다.”

“너 흑지련의 간부는 맞는 거지?”

“맞습니다. 제가 흑지련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듭니다!”

“근데 이렇게 아는 게 없어? 흑지련에는 어떻게 들어간 거야?”

“그게… 원래는 전 산적이었습니다. 적당한 산에서 지나가는 인간 놈들을 잡아먹으며 불사신공을 연공했습니다. 그러다 흑지련주가 찾아와 제게 제안했습니다. 영약과 주홍신장을 줄 테니 흑지련에서 함께 일하자고….”

“주홍신장에 눈이 팔려서 흑지련에 들어갔다?”

“네. 인간을 쉽게 잡아먹을 수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꿀꺽.

목밖에 없는 놈이 군침을 삼켰다.

“성유진 님. 저 배가… 배가 너무 고픕니다…. 인간 고기는 안 바라겠습니다. 다른 먹을 걸 좀 주실 수 없습니까?”

“몸도 없는 새끼가 지랄은. 헛수작 부리지 말고 내가 묻는 말에는 잘 대답해. 그럼 물 정도는 줄 테니까.”

나는 흑지련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흑지련에 대한 정보를 대충이나마 알아냈다. 흑지련은 현재 요괴와 마인을 가리지 않고 영입하며 세력을 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음. 흑지련에 대한 정보는 다 얻었어. 흑지련은 우릴 추적할 여력이 없는 것 같네.’

이미 우리는 흑지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났다. 우리를 뒤쫓기엔 이미 늦었고, 만무시는 흑지련같은 듣보 세력이 함부로 날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정보는 다 얻었으니…. 이 새낀 죽여야지.’

섬뜩하게 생긴 머리통을 데리고 다닐 생각은 없었다.

붉은 칼, 화련비도를 치켜들자 모비설의 눈이 커진다.

“아니시죠? 절 죽일 생각은 아니시죠? 아직 묵지련에 대한 전부를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됐어. 얻을 정보는 다 얻었어.”

“살려주십시오! 전 흑지련의 사업 일부도 알고 있습니다! 다 말할 테니 제발…!”

“그딴 정보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리고 나중에 흑지련주를 잡아서 족치면 돼. 아, 근데 머리를 자르면 죽긴 하나?”

“주, 죽습니다. 지금 이 이상한 부적 때문에 불사신공이 막혔습니다! 전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죽어.”

푹.

칼은 모비설의 이마를 정확히 관통했다. 모비설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절명했다. 미령의 부적은 확실하니 부활할 일은 없을 것이다.

“성유진 님. 그래도 혹시 모르니 태우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진구언이 내게 말했다. 모비설이 확실하게 죽었는데도 불안한 모양이다.

“알아서 해.”

진구언은 모비설의 머리를 모닥불 속에 집어넣었다. 모비설의 머리는 잘 타지 않았다. 5시간이 지나서야 백골이 드러났고, 진구언과 단원들은 그 백골마저 돌멩이로 내려쳐 가루로 만들었다. 가루는 바람을 타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

여정 끝에 만무탑이 있는 만무시에 도착했다.

만무탑은 도시 중심에 우뚝 솟아있었다. 못해도 100M는 넘을 듯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층으로 따지면 20층에 불과하다. 층마다 건물 하나하나가 컸다. 나는 탑을 보며 감탄하다가 뒤를 돌아봤다.

30명이 넘던 철오단은 23명으로 줄어 있었다. 나와 성지곤을 포함해 총 25명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산적이나 요괴와 맞닥뜨리며 전투를 치르다가 죽은 것이다.

참고로 오동객잔의 모녀도 일주일 전에 죽었다. 할망구는 성지곤과 섹스를 하다가 복상사로 사망했다. 심장마비였다.

“좋은 보지가 가버렸어…. 할망구, 거기에선 행복해야 해.”

할망구가 죽은 날, 성지곤이 밤하늘을 보며 아련하게 중얼거렸다.

“어, 어머니가 죽다니! 이 미친 새끼! 어머니를 그렇게나 범해야 했나?!”

할망구의 죽음에 분노한 그 아들, 신구보가 낭인에게 훔친 검을 들고 성지곤에게 달려들었다. 성지곤은 신구보의 검을 빼앗아 역으로 그 심장에 꽂아 주었다.

“신구보….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던 건 할망구 때문이었다. 할망구가 죽었으니 넌 이제 필요 없어. 저세상에서 마요 할망구에게 효도해라.”

“꺼어어억! 미친놈…!”

좆집을 잃은 성지곤은 이틀 정도 우울해했다가 다시 기운을 차리고 수련에 힘썼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만무시에 도착했다. 근처 객잔에 거처를 잡고 만무탑에 입탑 신청서를 냈다.

만무탑이 열리기 앞으로 5일이 남은 시점이었다.

???

만무탑(萬武塔)이 개문하는 날.

만무탑 앞에는 온갖 곳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무인, 상인, 술법사, 표사 등등 직업을 불문하고 사람이 모여들었다. 만무탑은 무공뿐만이 아니라 영약, 법기까지 선사하기 때문이다.

만무탑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50살 이하. 그 조건만 맞으면 10살짜리 어린아이라도 받아들였다.

‘못해도 20만 명은 될 것 같군. 어마어마하긴 해.’

나는 인파 속에서 기감을 퍼뜨렸다. 거대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이들이 몇몇 느껴진다. 나처럼 오기(五氣)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다.

‘50살 이하의 나이에 오기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역시 이 세상은 넓어. 지나칠 정도로.’

그들과 싸우게 될지, 혹은 동료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무탑의 시련은 매번 달라지기 때문이다.

철컹. 쿠우우우우우우우웅!

만무탑의 거대한 철문이 활짝 열렸다. 문안에서는 갑옷을 걸친 이들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군인이었다. 이상한 건 아니다. 이 만무탑의 주인은 황제니까. 저들은 모두 황제의 부하들이다.

그들 중심. 검은 수염을 기르고 화려한 붉은 투구를 쓰고 손에는 새하얀 창을 쥔 중년 남자가 입을 열었다.

“주목.”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나는 몸을 긴장시켰다. 그의 기세만으로 알 수 있다. 그는 삼정의 경지에 이른 강자다.

“나는 서우신장(西牛神將)을 모시는 배운 장군이다. 사람들은 나를 백설창(白雪槍)이라 부르더군. 나는 현재 만무탑의 관리를 맡고 있으며, 만무탑의 1층 시련은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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