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1화 〉 981. 광명승천도
“나는 서우신장(西牛神將)을 모시는 배운 장군이다. 사람들은 나를 백설창(白雪槍)이라 부르더군. 나는 현재 만무탑의 관리를 맡고 있으며, 만무탑의 1층 시련은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서우신장(西牛神將)은 진 제국의 사대신장(四大神將) 중 한 명이다. 서우신장은 이름 그대로 서쪽을 맡은 장군이다. 참고로 사대신장은 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권력자다.
“거두절미하고… 1층의 시련은 금 1냥이다. 금 1냥을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 내게 지불 해라. 그럼 2층으로 올려보내 주지.”
금 1냥은 절대로 적지 않다. 일반 평민의 한 달 수입이 은 5냥 정도다. 단순하게 계산해서 금 1냥은 평민의 2년 수익이다.
그리고 만무탑을 찾은 무인 대부분은 낭인이다. 낭인은 기본적으로 가난하다는 인식이 많다. 실제로도 그렇다. 낭인은 돈을 벌면 모으기보다는 곧바로 사용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후회 없이 돈을 펑펑 쓰다가 죽는다. 그게 낭인의 마인드였다.
따라서 여기저기서 원성이 튀어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만무탑에 들어가고 싶으면 돈을 내라? 만무탑이 언제부터 돈을 밝히기 시작한 것이오?!”
“우리는 실력으로 만무탑의 시련을 돌파하러 왔지! 돈을 쓰러온 게 아니오!”
“내가 알기론 지난 만무탑 1층 시련은 비무라고 들었소! 그런데 올해는 왜 그러시오? 난 이번 만무탑이 마지막 기회요!”
도떼기시장처럼 시끄러워졌다. 배운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발을 굴렀다. 쾅! 그 커다란 소리는 위협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위협을 느낀 낭인들이 입을 다물었다.
“돈은 가치를 대변한다. 가치의 가장 합리적인 기준이 돈이지. 금 1냥도 못 버는 무인은 삼류 무인의 가치도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상관없다. 돈을 빌리든, 돈을 빼앗든, 가진 물건을 팔든, 금 1냥을 만들어라. 너희의 최소한의 가치를 증명해라.”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다는 말. 그 말 진심이시오?”
“단, 민간인을 건들지 마라. 만무시의 시민들을 건든다면 처형하겠다. 목을 잘라 만무시의 광장에 전시해주마.”
“…….”
배운의 말은 살벌했다. 그리고 그에겐 그럴만한 힘이 있었다.
그때, 일련의 무리가 배운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 숫자는 총 50명이 넘었다. 입고 있는 옷은 통일되어 있고, 중심에 있는 젊은 남자를 호위하듯 서 있다.
“삼절문의 소문주인 오지무라 합니다. 여기 금 55냥을 드리겠습니다. 만무탑 2층으로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배운은 부하에게 금자가 든 주머니를 건넸다. 부하는 금자를 세고 배운에게 보고했다.
“…통과다. 들어가라.”
“만무탑 2층의 시련이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2층에 올라가면 알게 된다. 그리고 1층 시련을 통과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보상이라… 금 1냥 보다 못한 보상이겠지요? 별 기대도 되지 않는군요.”
“말이 많군. 그렇게나 내 심기를 거스르고 싶은 건가?”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를 몰랐습니다.”
오지무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만무탑의 관리와 싸워봤자 이득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어서 오지무와 삼절문의 문파원들이 만무탑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그러다 한 사람, 중년 무인이 보이지 않는 벽에 얼굴이 부딪쳤다. 그는 만무탑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겨, 결계? 갑자기 이게 무슨?!”
“너는 나이가 50살 이상이군.”
“아닙니다! 전 올해로 49살 입니다!”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겠지. 이 결계는 50살 이상이면 넘어가지 못한다.”
“전 49살입니다!”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라. 더 이상의 소란은 용서하지 않겠다.”
“그, 그럼 금 1냥이라도 돌려주십시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이미 나한테 지불한 돈이다. 꺼져라.”
“아, 아아….”
무인은 고개를 푹 숙이고 뒤로 물러갔다.
나는 그 일련의 과정을 보다가 뒤로 돌아봤다. 철오단의 단원들이 모두 주머니를 뒤지고 있었다.
“유진아. 돈이라면 충분해. 저번에 흑지련을 턴 보람이 있어.”
성지곤이 금 1냥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주위에 있던 다른 낭인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날카로운 기세가 여기저기서 느껴지고 낭인들이 일제히 성지곤에게 달려들었다. 돈을 빼앗아도 된다. 배운 장군은 그렇게 말했다.
“어딜.”
성지곤이 어림도 없다는 듯이 공중으로 점프했다.
“하늘로 뛰어?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멍청한 놈!”
낭인들의 무기가 위로 향한다. 성지곤이 허리에서 검을 뽑았다. 그가 큰 원을 그리듯 검을 휘둘렀다. 챙챙챙챙. 성지곤을 노리던 검들이 튕겨 나갔다. 성지곤은 바닥에 착지하면서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이번엔 낭인들의 몸이 베이고 피 분수가 뿜어졌다.
낭인들은 주춤거리며 성지곤과 거리를 벌렸다. 자신들의 상대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멍청하긴. 지금 성지곤의 경지는 출지야. 어중이떠중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놈이 아니야.’
이 주위에는 출지의 경지는커녕 입식 5단에도 이르지 못한 놈들이 수두룩하다.
“젠장. 저놈은 진짜다.”
“다른 놈을 노려!”
낭인들은 저들끼리 치고받기 시작했다. 철오단은 진구언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덤벼드는 낭인들을 제지했다.
‘돈을 뺏으려고 마구잡이로 싸우는 놈들은 다 거기서 거기다.’
실력과 재력은 비례한다. 실력이 높을수록 돈을 잘 버는 것이다. 진짜 실력 있는 놈들은 금 1냥 정도는 이미 가지고 있다.
“유진아. 어떻게 할까. 바로 만무탑에 들어가?”
“아니. 1층 기한은 해가 질 때까지잖아. 급하게 들어갈 필요는 없어. 밥 먹고 가자. 안에서 밥을 안 줄 수도 있으니 비상식량도 한 번 알아보고.”
나는 일련의 무리들이 짐을 한 가득 들고 만무탑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만무탑은 한 번 들어가면 포기하지 않는 이상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한텐 인벤토리가 있지만… 철오단한테 먹일 식량은 없어.’
철오단의 단원들은 나를 신뢰하고 있다. 나는 지난 2개월 동안 철오단을 건들지 않았다. 오히려 챙겨 줬다. 산적을 털어서 돈을 공동 분배했다.
‘그리고 내 실력도 알지. 내게 빌붙으려 할 거야. 이놈들도 시련을 통과하면 영약을 받을 테니… 죽이고 빼앗자.’
그러면 영약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이 얼마나 멋진 계획인가. 스스로 세운 계획에 감탄이 나온다.
우리는 식사를 하고 준비물을 챙겨 만무탑 앞으로 걸어갔다. 만무탑 앞은 조용했다. 싸우는 이가 없었으나 시체가 가득했다. 바닥에선 피가 끊임없이 흐르고, 구석에는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모두 발가벗겨진 채다. 까마귀와 독수리들이 신이 나서 시체를 쪼아댔다.
“못 해도 3만은 뒈졌겠군.”
“우와… 장난 아니네.”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나마 깨끗한 공간에는 상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삽니다! 물건 삽니다!”
돈을 얻는 방법 중에는 빼앗는 길만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우리는 이미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었기에 상인들을 지나쳐 만무탑에 올라갔다.
배운 장군은 무뚝뚝한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그의 부하에게 금 1냥을 건넸다.
“통과.”
그의 부하가 말했다.
배운의 눈동자가 움직여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눈동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이어서 성지곤과 단원들이 각자 금 1냥을 부하들에게 건넸다.
“통과.”
우리는 만무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결계갸 설치되어 있기 때문일까. 들어가자마자 공기 자체가 변하는 느낌이었다. 서늘하면서도 답답했다.
1층 내부에 있던 병사가 우리를 보고 오른쪽을 가리켰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저쪽입니다. 아, 그전에 여기서 보상을 받아 가시지요.”
“보상은 어떤 겁니까?”
내가 병사에게 물었다. 병사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이 병사의 소속도 소속이지만, 가진 실력이 성지곤과 비슷하다.
“여기 그 목록입니다. 법기는 7층부터 지원합니다.”
그가 내미는 두루마리를 확인했다. 1층에서 제공하는 무공과 영약은 죄다 삼류 쓰레기 것들이었다.
무공은 낭인들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로 심각했다. 여기서 선택해야 할 건 영약밖에 없었다.
‘5년 하수오, 3년 황기…. 이거 뭐, 영기가 새끼손가락 때만큼 들어간 약초들뿐이잖아.’
영약이라 부르기도 뭣한 약초들이었다. 구하려고 한다면 은 50냥 정도면 쉽게 구할 수 있다. 효과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무공 증진에 큰 효과는 안 된다.
모두가 실망스러뤄 한숨을 내쉴 때, 병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만무탑의 터와 결계는 특별합니다. 만무탑 내에서 영초를 복용하면 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만무탑의 터는 세간에 알려진 영산과 비견될 만 합니다. 그러니 영약을 선택하셨으면 당장 복용하는 걸 추천드립니다.”
“과연 만무탑. 대단하군.”
나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만무탑에 대해 조사하면서 대충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다. 효과가 좋아봤자 1할? 그 정도도 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도 아예 효과가 없는 것보단 낫지.’
질겅질겅.
5년 하수오를 입 안에 넣고 씹었다.
‘천강성 시스템이 일주일마다 주는 영초들 보다 못하네…. 가끔씩 백년하수오도 나오는데…. 하. 이걸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
이딴 약초는 광명승천도에 넣을 필요도 없다. 시간만 아깝다. 다른 영초를 넣어 강화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
약초를 씹어 먹고 2층으로 올라갔다.
퍽! 퍼퍼퍽! 퍽!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박 터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렸다. 나는 조용히 주위를 살펴봤다. 수많은 사람이 허수아비를 때리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검을 휘두르는 사람이 많았는데 신기하게도 허수아비는 베이지 않았다.
병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2층 시련은 허수아비 파괴입니다. 허수아비를 파괴하면 시련 통과로 보상을 받고 3층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제한 시간은 없습니까?”
“저기 있는 모래시계가 다 내려갈 때까지입니다.”
병사가 벽 한쪽을 가리켰다. 거대한 모래시계가 있었다.
‘저 정도면 여유 시간이 3일 정도인가?’
우리는 각자 허수아비 앞에 섰다. 나는 허수아비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퍼억!
허수아비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힘 좀 빼고 치긴 했어도 사람 하나 기절시키기엔 충분한 힘으로 때렸는데 흔들리는 게 전부라고? 평범한 허수아비는 아니군.’
특별한 재질의 허수아비거나, 술법이 걸려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이리라. 나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재질이라면 고작 허수아비 따위를 만들지 않을 테니까.
파직.
엄지와 검지 사이로 번갯불이 튀었다. 나는 번갯불로 허수아비를 태웠다. 화르륵. 불길이 일어나려고 하더니 그대로 픽하고 꺼졌다.
‘편법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뜻인가?’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아까보다 몇 배나 더 세게 허수아비를 후려쳤다. 허수아비가 크게 흔들리고 표면에 균열이 일어났다. 균열은 저절로 수복되었다.
‘게임식으로 말하면 일정한 데미지 이상 입혀야 하는 거군.’
대충 파악한 나는 시시해졌다.
주먹에 내력을 잔뜩 집어넣고 허수아비를 향해 어퍼를 날렸다.
콰아아앙!
소리부터가 남달랐다. 허수아비는 뿌리까지 뽑히더니 그대로 천장에 처박혀서 떨어지지 않았다. 주위의 시선이 내게 모여든다.
“뭘 봐, 좆밥들아.”
주먹을 치켜들고 으르렁거렸다. 그들은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 허수아비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려 성지곤을 확인했다. 성지곤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라면 쉽게 2층 시련을 통과할 것이다.
성지곤은 허수아비를 노려보며 양 주먹을 치켜들었다.
“후우….”
낮게 숨을 내뱉은 성지곤은 허수아비의 품으로 파고들어 주먹을 날렸다.
파파파파파파팍!
쉬지 않고 주먹을 날린다. 허수아비의 몸에 균열이 갔다. 균열이 수복되기도 전에 주먹이 작렬하고, 허수아비가 점점 부서지기 시작했다.
성지곤은 허수아비가 완전히 부서지기 직전 멈췄다.
“유진아. 이거 꽤 재밌어. 수련도 될 것 같아. 여기서 좀 놀아도 되지?”
“적당히 해.”
성지곤은 통과가 확실하다. 비슷한 실력인 진구언도 문제없다. 다만 일반 단원들은 좀 시간이 걸릴 것 같긴 하다.
‘이 정도도 못 하면 그냥 버리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