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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2 - 982. 광명승천도 (762/2,000)

〈 982화 〉 982. 광명승천도

퍼억!

철오단의 마지막 단원의 검이 허수아비의 몸을 갈랐다. 한 시진 만에 이루어진 쾌거였다.

바닥에 앉아 있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끝났군. 이대로 보상받고 3층으로 올라간다.”

“네! 성유진 님!”

2층의 보상은 1층보다 더 나은 정도였다. 나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영약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영약을 씹어 먹었다.

다른 단원들도 영약을 선택하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무공을 선택하는 놈들이 있었다.

“이 섬진각(閃進脚)을 봐. 이건 잘 사용하면 구명절초가 될 수 있어.”

“난 사어검결(沙魚劍訣)을 선택했어. 저번에 사용하는 낭인을 봤는데 꽤 좋은 검술이더라.”

“야. 돈 줄 테니 나도 좀 보게 해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1층에서 제공하는 무공보다는 낫지만, 2층의 무공도 쓰레기라 불려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진구언. 단원들이 왜 무공을 선택한 거지?”

“성유진 님. 저희는 낭인입니다. 삼류 무공이라도 손에 넣을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 중에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힌 놈은 얼마 없습니다. 무공을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단 무공을 선택한 거로 보입니다. 거기에 무공은 약초와 달리 일회성이 아니라 단원들끼리 돌려볼 수 있습니다.”

무공은 비급으로 준다. 즉, 단원들과 공유하거나, 밖에 나가서 판매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저런 무공이 팔리긴 팔려?”

“팔립니다. 못해도 은 30냥 정도에 팔 수 있겠지요. 책 자체가 귀하니까요.”

“그렇군.”

만무탑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에 들어서자마자 피 냄새가 맡아졌다.

‘이건….’

3층은 옛날 예능 프로그램인 ‘출발! 드림팀’을 생각나게 하는 공간이었다. 기관진식을 이용했는지 움직이는 땅바닥, 공중을 획획 날아다니는 화살과 날카로운 창, 쿵쿵 떨어지는 천장.

예능 프로그램과는 비교도 안 되게 살벌했다. 시체는 치웠지만, 벽에 묻어 있는 피는 방금 흘린 것처럼 여전하다.

3층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병사는 우리를 힐끗 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 끝에 보이시오? 3층의 시련은 저 끝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끝이오. 참으로 간단하지 않소?”

“…….”

단원들은 긴장하여 마른침을 삼켰다. 간단하다? 말만 간단하지 직접 함정투성이인 길을 달려야 하는 입장에서는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두려움을 느낀 자들은 포기하시오. 여기서 죽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소. 4층도 3층과 비슷하오. 다만 더 험한 기관진식이 설치되어 있지.”

몇몇 단원은 포기를 생각하는지 갈팡질팡한 표정이다.

진구언이 나섰다.

“겨우 3층에서 포기할 거냐? 우리가 왜 만무탑에 입탑했는지 잊은 거냐?”

“단장…. 하지만….”

“하지만이고 자시고. 겨우 이딴 거에 쫄지 마라. 저 앞을 잘 봐라. 규칙이 있다. 피할 방법은 이미 알려주고 있다. 그냥 점프하고, 달려서 피하면 된다. 나는…. 아니, 우리는 죽을 각오를 하고 여기에 왔다. 목적지는 10층이고, 못해도 5층은 통과해야 한다. 5층부터 진짜 무공과 진짜 영약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두렵다면 도망가라. 단, 도망치는 패배자는 새끼는 철오단에서 활동했다고 말하지 마라. 철오단의 명예를 더럽히는 순간 내가 찾아가서 죽여버릴 테니까.”

“…….”

도망치는 단원은 없었다.

진구언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성유진 님. 이번 층은 제가 먼저 해봐도 되겠습니까?”

“해 봐.”

진구언이 기관진식 앞에 섰다. 움직이는 바닥과 날아다니는 화살과 창의 위치를 확인한 그는 내력을 끌어올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경신법? 경신법을 쓰기엔 함정이 지나치게 많다. 오히려 발이 꼬일 수 있었다. 진구언은 경신법을 사용하지 않고 내달렸다. 날아오는 화살과 창은 커다란 칼로 쳐냈다.

진구언은 템포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그 빠른 템포를 유지하며 끝에 도달했다.

“오오오오!!”

단원들이 소리쳤다. 사기가 오른다. 진구언이 위기 없이 쉽게 해내는 걸 보고 자신들도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가진 것이다.

“다음은 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나는 진구언과 달리 칼도 휘두르지 않았다. 함정을 전부 피하고 달려서 시련을 끝냈다.

‘300M밖에 안 되잖아. 완전 껌이지.’

내 뒤로 성지곤이 달렸다. 성지곤도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단원들도 한둘씩 달리기 시작했다. 전부 통과… 하지는 못했다. 2명이 죽었다. 한 명은 발이 꼬여 구덩이에 떨어져 창에 몸이 꿰뚫려 죽었다. 다른 한 명은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철오단의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병사는 무덤덤하게 자신이 해야할 말을 했다.

“통과 축하합니다. 보상을 선택하시고, 4층으로 올라가십시오. 4층에 올라가지 않고 포기하실 분은 저기에서 기다려주십시오.”

그리고 4층에서 철오단 3명이 추가로 죽었다.

???

5층에 들어섰다.

5층은 기이하게도 자연이 조성되어 있었다. 밝은 하늘과 조용히 흐르는 구름, 빼곡한 나무와 보기만 해도 시원한 초원까지. 엄청난 실력의 술법사가 공간을 만든 게 분명했다.

초원에는 천막들이 가득했다. 이미 5층에 자리 잡은 사람들의 수만 해도 최소 10만은 넘어갔다.

병사는 말했다.

“5층의 시련은 나흘 뒤에 시작합니다. 그때까지 무엇을 하든 자유입니다. 무공수련을 해도 좋고, 휴식을 취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립니다. 저희는 여러분의 보모가 아닙니다. 분쟁이 발생해도 참여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알아서 해결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병사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와 철오단은 주위를 둘러봤다. 이미 괜찮은 자리는 모두 자리 잡은 뒤였다.

“성유진 님. 어떻게 합니까? 만일을 대비해서 나무가 있는 곳에 자리 잡는 게 어떻습니까?”

“이미 자리 있잖아.”

“뺏으면 됩니다.”

거참 대단한 계획이다.

그러나 그 계획은 진구언만 떠올린 게 아니다. 5층은 이미 자리 선점이 끝나 있었다. 나무를 끼고 있는 놈들은 천막부터가 귀티가 느껴졌다. 당연히 그 주인들도 보통이 아니다.

“고작 자리 뺏겠다고 시작부터 지랄하기는 좀 그렇지. 적당히 빈 장소에 천막 쳐. 어차피 여기에 오래 머물 것도 아니니 괜히 힘 뺄 필요는 없어.”

“음. 그렇긴 하지요. 너희들. 저기에 가서 천막부터 쳐라. 성유진 님과 성지곤 님이 사용할 천막부터!”

당연히 개인 천막이었다. 별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남자 둘이서 한 천막을 같이 쓸 이유는 없었다.

나는 간이 나무 의자에 앉아 단원들이 조뺑이 치는 걸 지켜봤다.

‘남들이 조뺑이 칠 때 의자에 가만히 앉아 구경하는 것…. 이게 권력이고 이게 플렉스지.’

천막이 다 완성되기 전이었다. 낭인 50명이 우르르 몰려와 주위를 포위했다.

“안녕하신가. 그쪽들도 낭인단으로 보이는데 이름이 뭐지?”

진구언이 앞으로 나서려는 걸 만류하고 내가 몸을 일으켰다.

“철오단이다. 너희는 뭐지?”

머리카락 대신 발톱 자국이 나 있는 그가 씨익 웃었다.

“철오단? 들어본 적 없는 낭인단이군. 우린 괴성단이다.”

진구언과 철오단 단원들은 괴성단이란 이름을 듣자마자 굳어졌다. 낭인들의 세계에서 제법 유명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 잘난 괴성단이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지?”

괴성단장이 애쓴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날 얕잡아 보는 그 눈빛에 기분이 확 나빠지기 시작했다. 기세를 드러낼까?

‘…아니지. 무슨 말을 지껄이는 지 한 번 들어보자.’

괴성단장은 커다란 손으로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우리가 인원이 좀 많지? 많을 뿐만이 아니라 많이도 먹어. 그런데 만무탑은 여기서 나흘을 보내라네? 어이쿠야, 실수로 식량을 많이 안 가져왔네? 굶어 뒤지겠네? 근데 내가 뇌성단장이네? 단장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네?”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내게 방법이 있다. 잘 찾아왔군.”

“하하. 말이 잘 통해서 다행이야. 우리 괴성단과 철오단은 친구가 될 수 있겠어.”

“쉬운 방법이다. 식량이 필요한 이유가 뭐지? 바로 너희다! 너희가 살아 있기 때문이지! 너희가 죽으면 식량은 더 이상 필요해지지 않지! 어때? 완벽한 해결법이 아닌가?”

“……뭐?”

파지지직.

오른 주먹에 뇌전이 튀었다.

‘찰나.’

놈이 피하기 전에 전력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은 정확히 놈의 안면에 꽂혔다. 퍼억! 놈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이 새끼가!”

“단장이 죽었다!”

“죽여버려!”

순식간에 주위가 달아오르며 살기로 가득 채워진다. 이 살벌한 곳에서 성지곤이 나 다음으로 기민하게 움직였다. 검을 뽑아들고 근처에 있는 뇌성단원 2명을 단숨에 베어낸다.

진구언은 적에게 섣불리 달려드는 대신 남아 있는 단원들을 챙겼다.

“뭉쳐라! 그리고 최대한 버텨라! 저놈들은 성유진 님과 성지곤 님이 정리해주실 거다! 우린 버티기만 하면 된다!”

나는 화련비도를 뽑아서 보이는 적들을 썰어댔다.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우리와 떨어진 곳에서 다른 낭인들은 조용히 구경했고, 병사들도 끼어들기는커녕 팔짱을 끼고 구경하기 바빴다.

만무탑에서 살인은 합법이었다. 그 상대가 만무탑 소속 병사가 아니라면.

“놈들이 도망친다!”

“이제 됐다! 뭐하냐, 새끼들아! 저 새끼들을 쫓아가서 죽여! 철오단의 이름을 알리란 말이다!”

진구언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 근처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낭인이다. 그리고 낭인은 한 번 얕보이면 끝장이다. 명성이 있는 편이 좋다. 그래야 주변에서 시비 걸지 않는다. 그게 설사 악명이라도.

나는 도망치는 놈들을 끝까지 추격해 모조리 참살했다. 덤으로 괴성단이 가진 짐들은 우리의 것이 되었다. 짐이 상당히 많았다. 식량이 조금 부족하긴 했지만 금 12냥과 무공과 영초를 얻었다.

나는 영초를 성지곤과 나누고, 무공은 철오단에게 주었다.

“감사합니다, 성유진 님!”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역시 성유진 님입니다. 배포가 어마어마하십니다!”

앞으로 나흘. 철오단은 새로운 무공을 익히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낼 것이다.

“유진아. 여기 좀 이상해.”

“뭐가?”

“주위를 돌아다니며 산책했는데 여기 5층엔 물이 없어.”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이 없다.

그건 꽤 심각한 문제였다. 여기 기온은 묘하게 높고, 무척 건조했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지만, 내일쯤 되면 시원한 냉수 한 잔이 간절히 생각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식량과 물을 가지고 있다.

‘나흘 동안 여기에 두는 이유가 있군. 순수하게 주는 휴식이 아니야. 이건 일종의 만무탑의 시련인 거야.’

공식적으로 만무탑의 5층 시련은 시작도 안 했다.

‘만무탑은 5층부터 입탑자 절반 이상을 떨어뜨릴 목적이겠지.’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새삼스럽게 무수히 많은 시선이 느껴진다. 아까전에 있었던 전투로 인해 철오단은 저들의 경계 대상이 되었다.

“지곤. 진구언을 시켜서 불침번을 세워. 헛짓거리하는 놈들이 있을 거야. 그리고 식량…. 특히 식수를 반드시 챙기고.”

“어. 알았어. 근데 꼭 식량을 집중해서 지킬 필요 있어? 너라면….”

나는 손을 들었다. 성지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인벤토리에서 식량을 무한에 가깝게 꺼낼 수 있다는 건 비밀이다.

‘만약 5층 시련이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나한테는 좋은 기회가 될 거야.’

???

시간이 지났다.

소란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식량을 빼앗으려는 자, 식량을 지키려는 자. 유혈 사태가 일어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1시간 전에는 없었던 시체가 생겨나고, 1시간이 더 지나면 그 시체가 2배로 늘어났다. 만무탑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간 놈들은 차라리 현명한 거였다. 그들은 자기 주제를 아는 놈들이었으니까.

내가 있는 철오단에게 시비를 거는 놈들도 적지만 있었다. 나는 놈들을 죽여 효수했다. 효과는 뛰어났다. 철오단은 강하고 잔혹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렇게 나흘이 지났다. 병사들과 함께 1층의 시련을 담당했던 배운 장군이 나타났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배운을 쳐다봤다.

“딱 생각했던 대로군.”

배운이 조롱하듯 말했다.

“…….”

사방은 조용했다. 허나 남아 있는 자들의 두 눈만큼은 형형하게 빛났다.

“지금부터 한 시진 뒤에 5층 시련을 시작한다. 시련은 생존. 열흘간 살아남는 것. 5층의 시련은 중도 포기가 불가능하다. 포기할 놈들은 앞으로 한 시진 내에 포기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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