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4화 〉 984. 광명승천도
“…….”
사방이 고요했다.
하늘은 새까맣고, 간간이 불어오던 바람은 자취를 감췄다.
오늘은 5층 시련이 시작된 지 아흐레가 되는 날의 밤이다. 마지막 밤이다. 내일 낮이 되면 5층 시련은 끝난다. 무인은 기뻐하지 않았다.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직감한 것이다.
이번만큼은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6층의 시련을 모르니까. 만약 6층이 경쟁 시련이라면… 이 새끼들은 나부터 노리겠지.’
그러니 여기서 활약해서 빚을 만들어 둘 것이다.
‘원래 마지막에 좋은 짓 해주면 그 인상이 오래 남는 편이지.’
그리고 모두가 직감했던 대로 적이 나타났다.
“빌어먹을, 어둑시니다! 어두운 곳을 조심해라!”
“오른쪽에서 쌍두요견들이 달려옵니다!!”
“하늘에서 빙수매가 나타났다!”
총 세 종류의 요괴 수백 마리가 동시에 습격해온다. 무인들은 뭉쳤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는 걸 지난 며칠간의 전투로 깨달은 것이다.
나는 고개를 위로 꺾었다. 어둑시니와 쌍두요견은 정신만 바짝 차리면 대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지금 가장 위협적인 건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빙수매다. 매처럼 생겼으나 온몸에 서리를 달고 있는 요괴. 놈에게 잡히거나, 부리에 쪼이게 되면 그 부위가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빙수매는 내가 맡는다! 너희는 어둑시니와 쌍두요견에 집중해라!”
“혼자서 빙수매를 막겠다고? 우리가 널 믿으리라 생각하나?!”
저 멀리서 하문소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보면 알게 될 거다.
‘천안(天眼) 개방.’
달도 없는 밤하늘은 지독히도 어두웠지만, 천안을 개방하자 대낮처럼 또렷하게 보였다.
‘일단 가시거리에 있는 빙수매는 총 13마리군. 저 멀리서 빙수매가 더 나타나고 있다.’
다른 구역에 있는 빙수매를 제외하면 7마리.
‘내 구역에 있는 놈들만 정리하면 그만이지.’
빙수매를 노려보며 집중력을 끌어올린다. 파직. 내 안에서 뇌전이 튀기는 소리가 들렸다. 환청이 아니다. 내 심상에서 들리는 소리다.
콰르르르르릉!
하늘에서 시퍼런 벼락 한 줄기가 빙수매에게 떨어졌다. 힘차게 날아다니던 빙수매는 겉바속촉이 되어 바닥에 힘없이 떨어진다.
콰르르릉! 쾅쾅!
커다란 천둥소리와 함께 주위가 대낮처럼 밝아진다. 그리고 다시 어두워지면 어김없이 빙수매의 시체가 아래로 떨어진다.
덤으로 부가적인 효과도 있었다.
“어둑시니가 저기에 있다!”
“어둑시니를 죽여! 이 비겁한 새끼들!”
어둠 속에 숨어 기습의 순간을 노리던 어둑시니를 손쉽게 찾아낸 것이다.
“후우.”
긴숨을 토했다. 벼락을 떨어뜨려 10마리의 빙수매를 죽였다. 그러나 빙수매는 저 멀리서 계속 나타난다.
“성지곤!”
성지곤을 불렀으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성지곤은 저 앞에 가서 쌍두요견과 생사를 넘나들고 있었다.
“…뭐, 알아서 잘하네.”
나는 직접 움직여 옆에 있는 창을 잡았다. 벼락으로만 계속 공격하기엔 내력의 소모가 극심했다.
‘아무리 나라도 내력이 무한한 건 아니야. 이 습격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니 벼락을 남발하고 있을 수는 없지.’
창을 쥐고 들어 올렸다. 다리를 벌리고 목을 들어 올려 목표물에 시선을 맞췄다. 창을 쥔 손을 뒤로 돌린다. 파지직. 창에 시퍼런 전류가 흘렸다.
‘일단 한 마리.’
투창했다.
쾅!
포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투창이 정확히 빙수매의 몸에 명중했다. 빙수매는 창에 끌려가 저 멀리 떨어졌다.
쾅!
이번에도 커다란 충격음이 터졌다. 내력으로 어깨와 팔을 강화해 던졌기 때문이다. 덤으로 창에 뇌전까지 부여했다. 혹시 몰라 창이 던지더라도 전류에 감전당해 떨어지도록.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내 투창은 백발백중. 사격과 천안의 시너지 덕분에 빗나가는 일은 결코 없었다.
‘재밌네.’
던지면 무조건 맞는다. 재미 없을 리가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창을 던졌다. 20개 정도 던졌을까. 하늘에는 빙수매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슬슬 끝이 나는군.’
하늘이 아닌 땅을 향해 창을 던졌다. 목표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쌍두요견이다.
“깨갱!”
창에 맞은 쌍두요견이 움찔거렸다. 무인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다!”
“대가리 두 개 달린 요견이라도 본질은 요견이야! 배가 약점이야! 배를 공격해!”
전투가 끝난 건 밤하늘이 밝아오고 나서였다. 무인들은 살아남았다. 내 구역에 있던 무인 중 30명이 죽어 나갔지만, 그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약간 지나자 배운 장군이 나타났다.
“5층 시련을 통과한 걸 축하한다. 5층부터 시련 통과자에겐 부상을 회복시켜주기로 했다.”
배운 장군 뒤에는 술법사들이 있었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정확한 경지는 몰라도 최소 출지 이상의 회복 전문 술법사들이리라.
“보상을 받아가라. 그리고 포기할 자들은 미리 말해라. 6층에 올라가서 말해도 상관없다.”
5층 시련 통과자들은 약 6만 명. 그들 중에 포기하는 자들은 3천 명도 되지 않았다.
물론 나와 성지곤, 철오단은 다음 층으로 올라가기를 선택했다.
???
의자에 앉은 배운은 조용히 연못을 바라봤다. 연못에는 5층 시련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연못으로 시련을 치르는 입탑자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배운 장군의 옆으로 한 노파가 다가왔다. 경장을 입은 노파는 하얀 머리에 인자한 얼굴이었다.
“배운 장군. 눈에 띄는 이가 있소?”
“네. 몇몇 있습니다. 오십 미만의 나이에 오기(五氣)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 서른다섯 명입니다. 천재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들입니다.”
배운은 손에 쥔 구슬을 꾸욱꾸욱 눌렀다. 연못에 비치는 장면이 획획 바뀐다. 한 사람, 한 사람. 오기(五氣)의 경지에 이른 무인들이다. 그중에는 성유진도 있었다. 허나 배운 장군과 노파의 안색은 변하지 않는다.
“오기의 경지에 올랐다는 건 이미 자신만의 심상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네. 그들은 내가 원하는 인재가 아니오.”
“이제야 겨우 심상의 밑그림을 그리는 정도입니다.”
“그 밑그림을 지우고, 고치는 것에도 많은 시간이 소모되네.”
“…알겠습니다. 일단은 좀 더 지켜보시죠. 이제 겨우 만무탑의 5층입니다. 아직 제대로 된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
6층은 생각보다 쉬웠다. 반나절 안에 요괴 한 마리를 처리하는 게 시련이었다. 내가 직접 나서서 철오단을 도왔다. 그들은 모두 7층으로 올라갔다.
‘다른 이와 손을 잡으면 된다는 규칙 같은 것도 없었지. 이거 거저 먹기군. 난이도만 따지면 5층 시련이 더 어려웠어.’
7층에 올라섰다.
광활한 땅 위에는 산이 우뚝 서 있었다.
“7층 시련입니다. 이번 시련을 통과하면 보상 중에 법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병사가 말을 이었다.
법기.
철오단의 단원들의 눈에 탐욕이 이글거렸다.
“7층 시련은 뭡니까?”
나는 차분한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이 땅 어딘가에 8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시련 도전자 여러분은 나흘 내로 8층에 올라오시면 됩니다.”
“다른 도전자들은? 안 보입니다만?”
“이번 층에선 도전자들의 시작 지점이 전부 다릅니다. 도전자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병사는 그대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크오오오오오오!
어느 산속에서 괴물의 울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이 산 어딘가에 요괴가 있을 것이다.
“성유진 님. 제안할 게 있습니다.”
진구언이 내게 다가왔다.
“제안? 말해봐.”
“우리는 6층에서 영약을 선택했습니다.”
철오단은 5층에서 무공을 선택하고, 6층에서는 영약을 선택했다. 6층에서 영약의 질이 갑자기 확 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약 중에는 영단이 있었다. 단원 일부는 지성단(智城丹)을 선택했다.
지성단은 출지의 경지에 오를 때 도움을 주는 영단이었다. 입식의 막바지인 10단이라 할지라도 출지의 경지로 쉽게 넘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지성단이 있으면 더욱 쉽게 출지의 경지에 올라설 확률이 커진다.
“그런데?”
“하루. 딱 하루의 시간만 주십시오. 영약을 복용하고 더 강해지겠습니다. 분명 성유진 님에게도 도움이 될 겁니다.”
진구언과 다른 이들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은 의지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나흘 중에 하루를 빼면 사흘인 거 알지?”
“저희는 성유진 님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반드시 성과를 보일 테니 하루의 시간만 주십시오.”
“그렇게까지 말하니 어쩔 수 없지. 알았어. 하루 있다가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나랑 성지곤이 호법을 설테니 빨리 영약부터 먹어.”
“감사합니다!”
철오단이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털썩 앉았다. 모두 영약을 질겅질겅 씹고 삼키더니 그대로 두 눈을 감고 운기행공에 집중했다.
나와 성지곤은 그들을 보며 영약을 질겅질겅 씹었다.
“넌 운기행공 안 해도 되냐?”
“에이. 이 정도 영약으로 뭐. 네가 준 영약에 비해서 별거도 아니잖아. 운기행공은 이따가 잠깐 하면 돼.”
영약도 많이 먹으면 익숙해진다. 성지곤은 내가 주는 영약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영기를 다루는 법은 터득했다. 저급 영약의 경우 굳이 운기행공을 하지 않더라도 영기를 손실하지 않는다. 몸이 영약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 상태로 반나절이 지났다. 도중에 요괴 몇 마리가 나왔으나 내 검 앞에서 명줄만 달아날 뿐이었다.
운기행공에 열중하던 단원들이 하나, 둘 씩 일어났다. 성취를 얻은 그들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성유진 님!”
“덕분에 출지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출지의 경지에 오른 단원만 3명이고, 진구언은 출지 5단의 경지에 올랐다. 나머지 단원도 최소 입식 7단의 경지다. 철오단의 전력이 확 올랐다.
“밤이 늦었어. 쉬고 활동할까?”
“아닙니다. 저희는 할 수 있습니다.”
“자신감이 넘치는군. 좋아. 움직이자.”
그렇게 이틀 동안 산을 뒤지고 다녔다. 영 쉽지 않았다. 1시간에 요괴 한 마리씩 나타나서 방해했으니까. 허나 내겐 방법이 있었다. 천안(天眼)을 이용해 다음으로 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문제가 있다. 그 입구를 화염두꺼비가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4M가 넘는 몸집을 가진 놈은 콧구멍으로 숨을 쉴 때마다 불꽃이 타올랐다. 놈의 등에서는 투명한 액체가 뚝뚝 떨어진다. 휘발유 냄새가 30M 이상 떨어진 여기까지 느껴진다.
“유진아. 저 두꺼비…. 뭔가 느낌이 안 좋아.”
“오기 수준은 아니지만… 나도 무시 못 할 놈이야.”
그러나 다른 계단을 찾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그리고 다른 입구에도 저놈 같은 요괴가 지키고 있다면? 괜히 시간만 버리게 된다.
“저 두꺼비를 죽이자. 우리라면 할 수 있어. 저놈 등에서 나오는 액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뒤집어쓰지 마.”
뇌전을 쓰지 않기로 했다. 놈이 사방에 휘발유를 뿌릴 것은 당연하다. 뇌전을 잘못 썼다가 불이라도 붙으면 큰 낭패를 볼 게 불 보듯 뻔하다.
짧은 계획을 나눴다. 내가 화염두꺼비의 어그로를 끌고, 나머지가 화염두꺼비의 사각을 노려 공격하는 것이다. 이놈을 정면에서 감당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시작하자.”
화염두꺼비를 향해 달렸다. 놈은 내가 10M 거리에 들어서자 두 눈을 번쩍 떴다. 지성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다. 화염두꺼비가 입을 쩌억 벌리더니 나를 향해 혀를 뻗었다. 고무처럼 늘어나는 혀에는 불이 붙어 있었다.
‘완전 불붙은 채찍이군.’
짜악.
놈의 혀를 피했다. 바닥을 때린 혀의 타격음이 살벌했다.
뚜꺼비의 혀가 변칙적으로 움직인다. 나는 찰나를 이용해 혀의 목적지를 정확히 파악했다.
서걱.
혀가 잘리고 붉은 혀가 떨어진다.
부우욱.
혀를 회수한 두꺼비의 네모난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놈은 이윽고 가슴을 부풀리더니 나를 향해 입을 벌렸다. 어느새 회복한 놈의 혀가 다시 나를 노린다. 아까보다 훨씬 빠르고, 그 끝이 갈고리처럼 뾰족했다.
‘찰나!’
두 번째로 혀를 쳐냈다. 잘린 혀에서 나온 피가 내 몸에 후두둑 떨어졌다. 놈의 피는 내 옷을 녹이고 피부를 지졌다. 나는 밀려오는 고통에 이를 악물고 외쳤다.
“지금이다! 공격해!”
성지곤이 화염두꺼비의 사각을 향해 내달렸다. 성지곤 밖에 없었다.
“지금이다!”
진구언이 외쳤다. 철오단의 단원들이 내게 달려든다. 그 중심에는 진구언이 있었다.
“기나긴 모멸과 핍박의 시간이었다…. 우린 네놈을 죽이고 완전한 철오단으로 돌아간다!!”
“씨발!”
내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8층에 올라가자마자 통수 때리고 놈들의 법기와 영약을 쓸어담으려 했는데 설마 내가 먼저 통수를 맞을 줄이야!
‘7층에 올라오자마자 죽여버릴 걸!’
아쉬움이 뚝뚝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