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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6 - 986. 광명승천도 (766/2,000)

〈 986화 〉 986. 광명승천도

바로 8층에 올라가지 못했다. 일주일 뒤에 8층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앞으로 시련을 통과할 때마다 약간의 시간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 시간을 잘 이용하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새로운 무공을 익히고, 영약을 흡수하고, 법기의 숙련도를 높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8층 끝에 적당한 곳에서 자리를 잡고 천막을 펼쳤다. 다른 입탑자들과 마주치긴 했으나, 5층 때의 긴장감은 없었다. 만무탑의 병사들이 식량과 식수를 무료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나는 쉬는 동안 낙월산으로 돌아갔다. 공간 이동 주문서와 공간 전이 시스템은 만무탑의 결계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으나, 미러 터널은 달랐다.

“성지곤. 이 거울은 반드시 지켜야 해.”

“알고 있으니 편하게 갔다 와. 난 수련이나 하고 있을게.”

낙월산으로 돌아간 나는 남궁 자매와 미령과 섹스를 하고 위유로부터 수련을 받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고 8층 시련에 도전할 때가 왔다.

병사는 나와 성지곤에게 철패를 건넸다. 철패 정면에는 만무(萬武)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만무 철패를 잘 간수하십시오. 8층 시련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입니다.”

병사가 당부했다.

“이 철패는 평범해 보입니다만?”

“8층 시련은 일주일 내로 만무 철패 5개를 모아야 합니다.”

“……만무 철패를 우리에게만 나눠준 게 아니군요. 다른 입탑자들도 철패를 받았습니까?”

“그렇습니다. 다른 입탑자들의 철패를 어떻게든 빼앗아서 5개를 만들어 저희에게 가져오시면 됩니다. 저희는 8층의 중앙에 있을 겁니다. 빼앗는 방식에 제한은 없습니다. 정정당당한 비무를 통해서 가져도 되고, 습격해서 빼앗아도 됩니다. 훔치는 것도 인정입니다. 중요한 건 철패 5개를 모아 저희에게 오셔야 한다는 겁니다.”

나는 만무탑의 노림수를 알아차렸다.

만무탑은 8층에서 입타자 절반 이상을 떨어뜨릴 셈이다. 나쁜 일은 아니었다. 나와 성지곤은 8층 시련도 통과할 자신 있었다.

땡. 땡. 땡. 때앵!

8층 곳곳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시련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다.

“여러분은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병사가 한 통로를 가리켰다. 나와 성지곤은 망설임 없이 통로로 향했다. 통로 밖으로 나오자, 그곳은 황량한 대지였다. 탁 트인 대지에는 바위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막 8층 시련장에 입장한 자들과 마주쳤다. 저들도 우리를 발견했다.

“30명 정도 되는군. 낭인단인가?”

“분위기가 딱 낭인단이야. 그게 아니면 8층에서 임시로 새로 만들었거나. 유진아, 어떡할래?”

8층 시련은 철패를 모으는 것이 목적이지, 최후의 1인이 살아남는 배틀 로얄이 아니었다. 제각각의 이익을 위해 함께 할 수 있었다. 반칙도 아니다.

“어떡하긴. 다 죽이고 철패를 빼앗아야지.”

“어, 그래? 철오단처럼 부하로 삼지 않고?”

“부하로 삼을 메리트가 없어. 일주일 전에 병사가 말했잖아. 꼼수는 안 통한다고.”

“그래도 있으면 편하잖아. 여러 가지 귀찮은 일도 떠넘길 수 있고.”

“힘으로 지배해봤자 틈만 보이면 통수치려고 할걸. 관리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야.”

저쪽에서 검을 뽑고 흉흉한 기세를 뽐내며 이쪽으로 달려온다. 나와 성지곤은 여유롭게 무기를 들었다. 저쪽은 수만 많을 뿐인 어중이떠중이들이다.

“성지곤. 저들은 몰살이다.”

“으음. 어려워 보이지는 않네.”

콰르르릉.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졌다.

그리고 10분 뒤, 우리는 시체 사이에 서 있었다. 나와 성지곤의 손에는 만무 철패가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우리는 중앙으로 걸어갔다. 8층 시련이 시작된 지 3시간도 안 되어 통과한 것이다.

8층 시련 통과 보상으로 영약을 선택했다. 법기의 수준을 별로였고, 무공도 별로 탐나지 않았다.

“빠르게 8층을 통과하셨군요. 9층 시련은 한 달 후에 열립니다.”

“한 달? 생각보다 여유 시간이 길 군요.”

“만무탑도 이런저런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영약을 흡수하고 새로운 무공을 익힐 시간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평범한 민초들에겐 한 달은 긴 시간이나, 저희 같은 무인들에겐 한 달은 짧은 시간입니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이 세계의 무인들은 경지에 오를수록 수명이 늘어난다. 출지의 경지에만 올라도 수명이 150년이다. 한 달 정도는 긴 시간이 아니다.

나는 성지곤이 영약을 먹고 운기행공을 하는 걸 보고 낙월산으로 이동했다.

위유와 마주했다. 그녀와 만난 지도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해 달라진 점이 거의 없었다.

“유진. 영천류의 식(式)을 개선하는 건 어렵지 않다. 시행착오까지 계산해서 1년 정도면 괜찮을 거다.”

“그렇게 짧게요?”

“아주 약간, 좀 더 편하게 식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이다.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생각보다 훨씬 빠르네요.”

“문제가 되는 건 심법 쪽이다. 이건 못해도 최소 10년은 걸리겠지.”

“영천기공(影天氣功)이요? 영천기공 정도면 신공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지 않나요?”

“네 말대로다. 음양도를 기본으로 깔려 있는 영천기공은 완성도가 무척 높다. 그러나 네겐 현재의 영천기공은 어울리지 않는다. 영천기공은 천재를 위한 심법이며, 기공이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은… 아무리 스승님의 말이라도 동의하기 힘든데요. 저는 실제로 잘하고 있어요.”

영천기공의 근간은 혼원태극결이다. 이건 진세영에게 직접 들은 말이니 확실하다.

천재를 위한 기공이란 것도 인정한다. 허나 내게는 와닿지 않는 말이다. 영천류는 유희 생활 어플의 특성으로서 존재하니까. 나는 포인트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영천류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나는 손바닥을 들었다. 파지직. 시퍼런 전류가 모습을 드러낸다. [뇌전] 특성이 아닌 영천기공을 이용해 만들어낸 전류다.

“영천기공의 다른 힘은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영천기공에는 두 가지 힘이 있다.

하나는 뇌광(雷光). 쾌를 번개를 다루는 힘.

다른 하나는 암영(暗影). 어둠을 다루는 힘.

유리아는 둘 다 어렵지 않게 다뤘다. 그 두 가지의 힘이 합쳐진 검은 번개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다.

영천류의 11대 종주(宗主)이자, 영천검관의 관장인 진우성도 유리아 정도는 아니지만 암영을 사용할 수 있었다.

진세영은 암영에 대한 소질이 거의 없었지만, 점점 성장하면서 암영을 조금씩이나마 다루었다.

반면에 나는 암영에 대해 전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언젠가는, 영천류의 특성 레벨이 오르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저, 저도 하려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그럼 한번 해 봐라.”

“…지금 말입니까?”

“너는 오기(五氣)에 이른 무인이다. 다섯 가지의 기운을 다룬다고 하여 오기(五氣). 이미 뇌기를 잘 다루고 있지 않느냐. 암기를 다루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나는 내 몸속의 내단을 자극했다. 빠직. 뇌기가 몸을 타고 흐른다. 손바닥을 뻗었다. 검은 기운이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낸다.

“그건 암기가 아니다. 마기지.”

“…….”

반박할 수 없었다.

내 내단은 뇌기를 베이스로 하여 마기로 살을 붙였다. 어두운 것을 생각하면 마기가 흘러나온다.

‘영천류 특성을 더 올리면 암영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뇌광이나 암영은 기본적으로 소질의 차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유리아를 떠올려보자. 유리아는 어렵지 않게 뇌광과 암영을 사용했어. 세계관 제일의 천재니까 당연하다 생각했지. 내 재능이 유리아와 같아진다면… 나도 암영을 사용할 수 있을 거야.’

[10초 동안 천재의 시간을 발동합니다.]

천재의 시간을 발동했다.

단 10초. 나는 유리아와 똑같은 천재가 되었다. 아니지, 이 세계의 나에겐 천강성 시스템이 있으니 재능만 따지면 유리아보다 더 좋을 것이다.

[천재의 시간을 종료합니다.]

“…….”

표정이 좋지 않았다.

천재의 시간을 이용했음에도 암영을 사용하지 못했다. 이유를 깨달았다. 소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표정을 보니 깨달은 모양이군.”

“…네. 전 지나치게 뇌광 쪽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특성 [뇌전]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그 말대로다. 네겐 암영은 어울리지 않는다. 암영을 갖고 싶다면… 뇌광을 한 차례 버릴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다시 쌓는 거다.”

힘든 말이었다. 당분간은 뇌전을 버려야 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까지 해서 암영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나?’

암영은 강력하다기보다는 활용도가 많다. 그리고 뇌광과 합쳐지면 더 강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순수한 뇌광이 약하다는 건 아니잖아. 힘이 부족하면 더 강한 뇌전으로 찍어누르면 돼.’

그리고 암영이 없어도 내겐 천마신공이 있다.

나는 결정을 내리고 위유를 바라봤다. 천재의 시간이 발동되는 동안 위유의 뜻은 이미 파악했다.

“스승님이 어떤 뜻을 품고 계시는지 알겠습니다. 스승님의 뜻대로 암영을 포기하겠습니다.”

선택과 집중.

나는 암영을 버리고 뇌광에 집중하기로 했다.

위유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좋은 선택을 했다. 네 영천기공을 오직 뇌광만을 위한 신공으로 바꾼다. 그게 우리의 목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준비물이 필요하다.”

“준비물이요?”

“마침 너는 만무탑에 있지 않나. 운이 좋구나.”

“…어떤 준비물입니까? 혹시 영약같은 겁니까?”

“무공을 뜯어고치려면 당연히 참고용의 무공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스승님은 수많은 무공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 경우에는 검술에 한정되어 있다. 다른 무공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러니 뇌기와 관련된 심법을 가져오거라. 뛰어난 무공일수록 더 도움이 될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유가 원하는 수준의 엄청난 무공이면 최소 15층까지는 가야 할 것이다.

“그럼 이제 검술수련부터 해야겠군. 어딜 가나 기초가 중요하다. 오늘 안으로 검을 십만 번 휘둘러라.”

“…네? 아, 아뇨. 전 이미 기초를 수련할 시기는 아니잖아요.”

“기초는 평생을 수련해도 끝이 없는 법이다. 옆에서 지켜볼 테니 도망갈 생각은 말거라.”

“…….”

???

지난 한 달 간 수련의 효과가 있었다. 나는 오기 5단, 성지곤은 출지 6단에 들어섰다.

대망의 9층에 올랐다. 만무탑 9층. 10층이 코앞이다.

우리는 병사를 따라 시련장에 들어섰다.

좁은 실내에 30명에 가까운 무인들이 들어서 있었다. 한 병사가 단상위에 올라 입을 열었다.

“주목해주십시오. 9층 시련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 30명은 55조입니다. 이 깃발이 여러분의 심장입니다.”

병사가 2M가 넘는 깃발을 가져왔다. 하얀 바탕에 五十五 붉은 글자가 적혀진 심플한 디자인이다.

“앞으로 열흘. 여러분의 심장을 지키고, 다른 조의 심장 2개를 빼앗으십시오.”

주위가 웅성거린다. 조는 랜덤으로 편성된 듯했다. 성지곤과 떨어지지 않은 걸 보면 아주 대충 편성했을 것이다.

“그럼 전할 말은 전부 전했고…. 여러분의 건투를 빌겠습니다.”

병사들은 깃발을 남기고 철수했다.

그때 3명이 단상위로 올라섰다. 셋 모두 검은 옷을 입었으며 삿갓을 뒤집어써서 모습을 감췄다. 놀랍게도 중심에 있는 무인은 여자였다. 튀어나온 가슴과 잘록한 허리, 탐스럽게 부푼 골반이 보인다.

그녀는 삿갓을 벗었다. 검은색 면사가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여러분. 이번 시련을 통과하기 위해선 모두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황보가혜. 황보세가 출신의 무인입니다.”

자르르르르르르. 자르르르르르르르르.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울렸다. 나는 인상을 팍 쓰며 주위를 노려봤다.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이 단상 위에 서 있는 여무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르르르르르르. 자르르르르르르르르.

‘아우, 시끄러. 이게 뭔 소리야. 대체 어디서 나는….’

두리번 거리던 목이 우뚝 멈추고는 아래로 향했다.

자르르르르르! 자르르르르르르르르!

범인은 나였다.

이건 좆침반 돌아가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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