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9화 〉 989. 광명승천도
열흘이 지나고 9층 시련이 끝났다.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다른 4개의 조와 동맹하여 한데 똘똘 뭉쳤으니 다른 조의 입장에선 굳이 우리를 노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병사들이 다가와 우리를 10층으로 이끌었다. 이번에도 한 달의 여유가 주어졌다. 나와 성지곤은 영약을 선택했다.
“땡중. 왜 우릴 졸졸 따라오는 거냐?”
“소승은 새롭고 뛰어난 음식을 찾아 강호를 떠다니고 있소. 그리고 소협은 새로움의 덩어리지. 소승을 노예처럼 부려도 좋소. 부디 소승에게 새로운 맛을 알려주시오!”
“너한테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냐? 넌 냄새나는 땡중이잖아.”
“물론, 소협이 가진 음식들에 비하면 소승이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이오. 그래도 소승은 포기할 수 없소. 이번 층에서 얻은… 150년 산삼을 소협에게 드리겠소. 소협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구려.”
“그래도 경우가 아예 없는 놈은 아니군.”
나는 150년 산삼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정도 영약은 지금 내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소 500년 이상의 영기를 품어야 내게 도움이 된다.
‘광명승천도로 강화해서 성지곤에게 먹이는 게 낫겠군. 땡중의 경지는 오기 3단…. 나보다 2단계 아래지만, 소림의 무공을 익혔지. 나와 성지곤의 수련 상대로 딱이야.’
돈을 줘도 쉽게 부릴 수 없는 게 고수다. 그런 고수를 음식 몇 개로 부려 먹을 수 있다. 행운이 굴러들어온 격이다. 이 기회를 걷어찰 수 없다.
“땡중. 넌 대체 무슨 목적으로 만무탑에 도전한 거냐?”
소림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하고, 영약에 대한 집착도 없어 보였다. 법기도 마찬가지다. 파계승이지만, 중은 중이라는 듯이 다른 것에 대한 욕심이 없다. 만무탑에만 주어지는 음식이라도 있나? 그럴 리가. 병사들이 주는 밥은 말 그대로 짬밥이다. 맛은 하나도 없다. 시련 도중에는 그 짬밥도 주지 않는다.
“소승은 미식을 찾아 떠도는 몸…. 만무탑 또한 미식을 위한 여정에 지나지 않소.”
“이 새끼, 혀도 이상한 새끼였네. 짬밥이 그리 맛있든?”
“유진아. 이 스님은 좀 많이 이상한 것 같아.”
“…네가 할 말은 아니지. 후우. 어째 이 중에 정상은 나밖에 없냐.”
성지곤과 정빈의 날 보는 눈빛이 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일단 무시했다.
“만무탑에서만 맛볼 수 있는 미식이 있소. 바로 공청석유지요. 소승은 공청석유를 맛보기 위해 만무탑에 입탑 했소이다.”
“…과연.”
공청석유. 영약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영약이다. 그 효과도 효과지만, 무엇보다 맛이 뛰어나다는 말이 자자하다.
“그 정도면 최소 17층까지는 올라야겠네?”
“그렇소. 어쩌면 만무탑 전체를 정복해야만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오. 소승은 공청석유를 맛보기 전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삶의 목표가 명확한 놈이군.”
정빈에 대한 걱정은 접어 뒀다. 통수가 비일비재한 세계지만, 이놈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다. 치킨을 먹고 사정하는 놈이니 음식만 제때 주면 된다.
10층 구석에 대충 자리 잡고 수련을 시작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이 뜸하다. 10만이 넘던 참가자들은 이제 1만도 남지 않았다. 10층 시련이 끝난 뒤에는 더 줄어들겠지.
“성 대협.”
황보가혜가 찾아왔다. 그녀의 빛나는 미모에 침을 꿀꺽 삼켰다.
“황보 소저. 여기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민폐인가요?”
“아닙니다! 좀 갑작스러워서 그랬습니다!”
황보가혜가 웃는다. 미녀가 웃으니 봄이 찾아온 것 같았다.
“성 대협. 감사해요. 꼭 이 말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성 대협이 없었다면 9층 시련을 쉽게 통과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녀와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황보가혜가 내 손을 꽉 잡았다. 향긋한 냄새가 났다. 시선이 살짝 내려가고 그녀의 하얀 목덜미가 보인다. 핥고 싶은 목덜미였다.
“하하…. 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소저의 지휘가 아니었다면 시련은 쉽지 않았겠죠.”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습니다. 성 대협, 전 10층에서도… 아니, 이 만무탑에서 성 대협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저희가 힘을 합치면 만무탑의 정복도 어렵지 않을 겁니다.”
“원하는 바입니다. 소저의 지혜와 제가 가진 힘…. 함께하면 분명 엄청날 겁니다. 황보 소저, 수련을 함께하시지 않겠습니까?”
“…저도 그러고 싶은데… 사정이 있어요.”
“사정이요?”
황보가혜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떨어진 곳에서 십여명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 중심에 있는 뺀질뺀질한 남자는 낯이 익었다.
만무탑에 가장 먼저 입탑한 남자. 분명 이름이 오지무였던가?
“가혜.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오 소협. 성 대협에게 감사 인사를 나눴습니다.”
“성 대협?”
오지무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오만한 시선이었다. 재능과 실력, 배경까지 모두 갖춘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눈이다.
그가 노골적으로 기세를 흘렸다. 기세로 내보이는 건 자신의 경지가 이러하니 알아서 기어라는 뜻이었다. 대충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나이인데 출지 중반의 경지다. 천재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경지다.
그러나 내 앞에서는 같잖다.
“건방지군.”
내력을 끌어올리고 사방에 기세를 퍼트렸다.
“크흠….”
“컥.”
“으윽.”
주위에 있던 이들이 하나같이 침음을 삼켰다. 안색도 점점 창백하게 변한다. 내 기세를 정면으로 받는 오지무는 다리를 덜덜 떨었다.
출지와 오기.
한 단계 차이다. 허나 그 한 단계는 태산이다. 나는 태산 정상에서 내려다보고, 오지무는 평지에서 태산을 올려다본다.
“크으윽, 죄,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선배님을 몰라 뵙습니다! 부디 용서를…!”
오지무가 고개를 숙였다. 나는 웃음이 지어지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이거다. 이 순간을 위해 기세를 숨겼다. 건방진 놈을 확 눌러주기 위해.
‘힘숨찐 놀이는 못 참지.’
그리고 할 때는 제대로 해야 한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포스(天魔 Force).
내게서 기어 나온 마기가 사방으로 퍼진다. 오지무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쿵.
오지무는 결국 무릎까지 꿇었다.
부족하다. 무릎을 땅에 닿게 한 거로는 만족할 수 없다. 못해도 대가리는 박아야지.
“목이 뻣뻣하군. 내가 그렇게 좆밥처럼 보였나?”
오지무가 이를 악물었다.
“…전 산동성의 삼절문 출신입니다. 삼절문의 소문주가 접니다.”
삼절문을 적으로 돌리기 싫으면 이쯤하고 물러나라는 말이었다.
“난 남궁세가의 데릴사위인 성유진이다.”
“…….”
오지무의 두 눈이 커진다. 듣도 보도 못한 삼절문보다 남궁세가의 명성이 더 높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실력과 배경에서도 내가 앞서니 오지무의 선택지는 이제 대가리를 박는 것 뿐이다.
오지무는 대가리를 박지 않았다. 대신 목을 더 올리고 황보가혜에게 시선을 줬다.
“하아.”
황보가혜의 한숨을 깊었다. 이어 그녀는 내 앞에 나섰다. 기세를 흩트리자 그녀의 안색이 좋아 졌다.
“성 대협! 제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부디 그를 용서해주세요. 성대협을 몰라봤을 뿐이지, 다른 의도는 없었을 거예요.”
“잘못한 건 저놈인데, 왜 황보 소저가 대신 사과하는 겁니까?”
“…저와 그는 비공식적으로 약혼한 사이입니다.”
“……!”
정수리에 망치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정신적 충격이 얼얼하다. 저딴 놈이 황보가혜의 약혼자?
황보가혜가 뭐라 뭐라 말하지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는 보이지 않는데?’
눈도 잘 마주치지 않고, 서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연인이라 하기엔 사이가 멀다. 뭔가 사정이 있는 듯하다.
‘조사해볼 필요가 있겠어.’
황보가혜를 바라봤다. 진땀을 흘리며 오지무를 변호하고 있다.
“황보 소저. 그만 됐습니다. 소저의 얼굴을 봐서 저놈을 용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 대협. 이 은혜는 반드시 갚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은혜라뇨. 전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오지무가 사과를 했다.
“앞으로 처신 잘하라고.”
상황은 끝났으나 냉각된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황보가혜와 오지무 일행은 내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나는 그들의 등을 바라봤다. 황보가혜와 오지무는 2M 이상 떨어져 있었다.
‘황보가혜는 내가 점 찍었다. 저놈을 죽이는 한이 있어도 따먹을 거야.’
황보가혜의 매력적인 엉덩이를 보며 입술을 핥았다.
???
황보세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화월루의 공비를 찾아갔다. 공비는 나를 반기지 않았다. 껄끄러운 눈으로 날 바라봤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녀의 목에는 미령의 금제가 걸려 있다.
어디에 있든 간에 원할 때 죽일 수 있는 강력한 금제. 목줄이 찬 그녀는 순수한 암캐였다.
“…성 공자, 원하는 게 뭐예요?”
“우선… 오랜만에 네 보지 맛 좀 볼까. 보지 딱 대.”
“크읏….”
치욕을 느낀 공비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날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옷을 벗고 다리를 벌렸다. 죽고 싶지 않으니 내 명령에 따라야 한다. 그리고 나와 섹스를 하는 게 처음도 아니니 꺼릴 게 별로 없다.
3시간 동안 공비의 보지를 찌른 나는 침대맡에 앉아 그녀의 가슴을 주물렀다. E컵. 큰 가슴이다.
“황보세가에 대해 알고 있지? 황보가혜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만무탑에 입탑했다고 하더니… 산동보옥(山東寶玉)을 노리시나 보군요.”
황보가혜의 별호였다.
“내가 너한테 만무탑에 들어갔다고 말했던가? 혹시 뒷조사 했어?”
“저희 일족의 정보력을 무시하지 마세요. 딱히 움직이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정보예요. 특히 당신에 대한 정보는 제게 직접 오도록 지시를 내려놨죠. 유감스럽게도 내 목줄을 쥐고 있는 건 당신이니까요.”
탁.
공비는 가슴을 주무르는 내 손을 쳐내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옆에 둔 깨끗한 천으로 알몸을 닦는다. 그녀의 등 뒤에 그려진 주작 문신에 잠시 시선이 팔렸다. 새끈한 등과 엉덩이다. 뚜욱, 뚝. 사타구니 사이의 보지구멍에서 하얀 정액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다시금 자지가 벌떡 선다.
‘정보를 듣고 난 뒤에 또 박아버리자.’
나는 발기한 자지를 만지작거리며 공비의 말을 기다렸다.
“…산동성의 황보세가는 현재 기울어진 상태예요. 가문의 전통과 명성은 여전히 뛰어난 편이긴 하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중소문파 수준으로 전락했죠.”
“아무리 그래도 중소문파 수준은 좀 그렇지 않아?”
“50년 전의 황보세가 가주는 황실에 실수를 저질렀어요. 그 대가로 황보의 이름을 쓰는 무인 300명이 처형당했죠.”
“실수? 어떤 실수인데?”
“황족 여인을 건들였죠. 그 당시의 황보 가주는 여인을 상당히 밝히는 사람이었거든요. 다만 강간까지는 가지 않았어요. 추파를 던진 것에 불과하죠.”
“엉덩이라도 만졌나?”
“아니요. 손을 잡았어요.”
“……그게 전부야?”
“네. 강간이라도 했으면 황보세가는 물론이고, 관련된 이들의 시체로 산을 이뤘을 거예요.”
손 한 번 잡는데 친족 무인 300명의 목이 날아갔다.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로 황보세가가 성주의 자격을 잃었다는 거죠. 산동성의 다른 문파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황보세가의 사업들을 하나씩 빼앗기 시작했죠. 황보세가는 당연히 저항했고요.”
“황실의 칼질 한 번에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거군.”
“결정적인 건 2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에요. 다섯 명의 마인이 뭉쳐 만든 문파인 오마문(五魔門)을 토벌하려다가, 가문의 주전력 4할을 잃어버렸죠. 그 시점을 기점으로 황보세가는 명성만 뛰어난 가문이 됐어요. 무공이 실전되거나, 가문의 명성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니 회복은 가능해요. 몇백 년은 걸리겠지만요.”
“그래도 세가(世家)라고 불리고는 있군.”
“황보세가에는 근본이 존재하니까요. 단지 지금 위기를 겪고 있을 뿐이지요.”
“황보가혜가 삼절문의 소문주 오지무와 약혼한 내막은 뭐야?”
“이 정도면 짐작 가지 않나요? 황보가혜는 팔려 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