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2화 〉 1002. 광명승천도
배운은 흑의인 중에서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시체를 들어 올렸다. 머리통만 달랑 남아 있었다. 머리카락이 없고 피부는 울퉁불퉁하고 입, 코, 눈, 귀가 없다. 인간과 비슷하다는 건 두상뿐이다.
“…요괴 입니까?”
질문을 던진 건 우습게도 남은 9명 중에 유일한 요괴였다. 그는 인간인 척하고 있지만 여기서 그의 정체가 요괴란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명인(冥人)이다. 명계에 영혼을 팔고 윤회에서 벗어난 자들이지. 요괴와 비슷해 보여도 엄연히 다른 자들이다.”
배운이 머리통을 허공에 던졌다. 이어 그의 하얀 창이 머리통을 반으로 쪼갰다. 시커먼 뇌가 바닥에 철푸덕 떨어졌다. 그 단면에 시커먼 뇌가 보였다.
“명인 3명은 탈락이다. 따라서 나머지 9명만이 20층 시련에 도전할 권리를 갖는다. 포기할 자는 있나?”
“…….”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만무탑의 정복이 코앞이다.
그때,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아까 질문을 던진 요괴 낭인이다.
“명인이라고 했지요. 왜 지금에서야 그들을 죽인 겁니까?”
“이들은 열흘 전까지만 해도 명인은 아니었다. 명계의 힘을 일부 사용하는 술법사에 불과했지. 허나, 결국 명계에 영혼을 팔고 명인이 되었다.”
“…왜 명계와 계약하는 겁니까?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겁니까?”
“그건 명인마다 다르다. 명인이 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 몇 가지를 꼽자면 수명의 제한이 사라지고, 더욱 높은 격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이것들은 단순한 잔챙이에 불과하다.”
“수명이 없어진다니… 그건….”
“그만. 나중에 따로 알아봐라. 지금 너희가 해야 할 건 20층 시련이다. 포기자는 없겠지? 날 따라오도록.”
우리는 배운을 따라 걸었다. 그곳은 네모난 공간이었다.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다. 넓이는 학교 강당 수준이다.
‘평범한 벽이 아니군. 술법으로 강화했나?’
전투를 벌이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20층 시련은 여기서 벌어진다. 한 명씩 시작하지. 나머지는 밖에서 대기한다. 밖에서 이 안의 상황을 지켜볼 수 있다. 첫 번째 시련 도전자는….”
배운이 손가락을 들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자는 정빈이었다.
“아미타불….”
정빈이 조용히 뇌까렸다.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배운이 명계와 명인에 대해 말할 때도 그는 차분했다.
“소림사의 파계승, 정빈. 너는 이미 명계와 명계의 존재들을 알고 있었을 거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용납해선 안 되는 존재라 배웠습니다.”
당연하다. 불교의 기본이 되는 윤회 사상을 거부하는 것들이 명계의 존재들이니까.
“본래 명계는 윤회를 지지하고 이끄는 자들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변하기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나도 자세한 건 모른다. 내가 아는 건 그것들이 황제 폐하의 뜻을 반한다는 거지.”
배운과 우리는 정빈 한 명을 남겨두고 밖으로 나갔다.
배운이 한쪽 벽을 쳐다봤다. 한쪽 벽에서 영상이 나와 저 안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정빈은 침착하게 합장을 한 채로 염불을 외우고 있었다.
팔짱을 낀 배운이 입을 열었다.
“시작해라.”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곳.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에게 명령을 내렸다.
정빈이 있는 공간의 바닥에 괴상한 술법진이 그려지고, 정면이 일그러지며 어떠한 존재가 나타났다.
두 개의 머리와 네 개의 팔을 가진 무승이었다. 무승의 얼굴은 요괴처럼 흉악했다.
“…수라(修羅)로군. 미식승의 영향을 받아 소환되었군. 예상한 일이다.”
우리는 집중해서 영상을 지켜봤다.
정빈은 수라의 등장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정빈이 자세를 잡았다. 그의 피부에서 금광이 뿜어져 나오고, 그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나무아미타불…. 수라여! 이곳에서 잠들라!”
정빈의 장법이 수라의 복부를 때렸다. 수라가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나다 씨익 웃는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공간이지만… 빌어먹을 중놈을 죽일 수 있다는 것만큼은 마음에 드는군.”
수라와 정빈이 격돌한다.
모두가 숨을 지키며 전투를 지켜봤다. 정빈과 수라의 실력은 비등비등했다. 그리고 약간의 실수만으로도 누군가의 목숨이 달아날 정도로 치열했다.
그러다 시간이 약간 지나자 수라가 밀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소림의 무공 때문이란 걸 바로 알아차렸다. 정빈의 무공이 수라에게서 상성 상 우위를 점하고 있다.
“끝났꾼.”
배운이 중얼거렸다.
정빈의 금강장(金剛掌)이 수라의 머리를 후려쳤다. 수라의 머리통 하나가 날아간다. 아직 머리통 하나가 남았다. 정빈은 멈추지 않고 금강장으로 수라의 몸을 난타했다. 수라는 버티지 못하고 몸이 터져 죽었다.
“미식승 정빈. 합격이다.”
배운의 말을 들은 것일까. 정빈은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
배운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호명했다. 2번째에 들어간 무인은 명계의 존재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3번째는 간신히 이겼다. 4번째는 황보가혜의 차례였다.
황보가혜의 상대는 웬 헐벗은 여자 괴물이었다. 젖이 6개 달린 여자다. 젖꼭지 새까맣다. 황보가혜는 여자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왜 나한테는 이런 더러운 괴물 년이 소환된 거지?”
“히히히히. 네가 더러운 년이라 그렇지!!”
여자 괴물은 검은 모유를 흩뿌리며 황보가혜에게 달려들었다. 모유에 닿은 황보가혜의 옷자락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황보가혜는 이를 악물고 붉게 타오르는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배운과 정빈을 제외한 남자들이 입을 헤벌리며 괴물 여자를 바라보고 있다. 색에 빠진 얼굴이다. 그들의 사타구니를 보면 꼿꼿이 서 있는 무언가를 볼 수 있다.
‘정신계열인가? 바깥에 있는데도 영향을 받는군.’
다행히 여자인 황보가혜에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황보가혜는 여자 괴물을 때려죽이고 20층 시련에 통과했다.
성지곤은 6번째에 도전했다.
그의 앞에 나타난 괴물은 익숙한 얼굴의 존재였다.
“어, 아버지?”
성고단.
이 세계의 나와 성지곤의 아버지. 유성검문주. 내가 죽인 놈.
“이 못난 놈. 네놈이 성유진을 말렸으면 난 죽지 않았을 거다. 이 불효막심한 놈!”
“지, 진짜 아버지세요?”
성지곤이 두 눈을 끔뻑였다. 성지곤의 얼굴에는 혼란으로 가득했다.
“이젠 제 아비도 못 알아보느냐? 넌 내 아들 중에서도 재능은 뛰어났으나 머리가 멍청한 편이었지. 너 같은 아들은 필요 없다.”
“아버지인 척하는 괴물이 아니라 진짜 아버지라고요?!”
“아직도 모르겠느냐, 이 멍청한 것. 난 네놈이 내 아내들과 빌어먹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성고단이 증오를 담아 외치며 검을 휘두른다.
유성검법.
유성검문의 검법이 그의 검에서 펼쳐진다.
“미친. 진짜 성고단이라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배운의 눈동자가 힐끗 나를 쳐다봤다.
“명계는 다른 말로 지옥이다. 지옥은 죽은 자들의 세계지. 이미 죽은 자가 윤회를 거부하고 명계의 존재가 되는 건 흔한 일이다.”
그러니까 저건 진짜 성고단이라는 것이다.
“허나 알아둬라. 저것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일 뿐이다. …네 형제는 이미 저놈을 제 아비로 인식한 모양이군. 지겠군.”
배운은 성지곤의 패배를 거의 확정했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아뇨. 성지곤은 이길 겁니다.”
“…저 멍청해 보이는 얼굴을 보면 모르나? 가망이 없다.”
“제가 배운 장군님보다 성지곤에 대해 잘 압니다. 확실히 몇 년 전이었다면 성지곤이 졌겠지요. 하지만.”
성지곤은 성장했다. 협객을 동경하면서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어리숙하고 어리바리한 태도? 옛날에는 정말 어리바리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저거 다 연기지.’
아마 지금 머리는 팽팽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할망구를 꼬시려고 하는 연기. 할망구들은 조금 어리숙해야 빨리 가까워진다나 뭐라나.’
그러니 저 어리숙한 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
성지곤은 성고단의 공격에 주춤거렸다. 성고단은 성지곤을 압도하는 실력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가 네 애비다! 어허! 아비에게 검을 겨눌 셈이냐? 넌 불효막심한 성유진이 아니다! 성지곤! 나의 착한 아들아!”
“아, 아버지…!”
“그래! 내가 네 아비다! 지곤아, 이리 오너라! 아비와 함께하자! 함께 명인이 되어 윤회에서 벗어나 영원한 삶을 누리는 거다! 함께하자꾸나, 아들아!”
“아버지… 저는….”
성지곤의 힘이 빠진다. 성고단이 기뻐하며 웃었다. 그가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성고단의 목이 달아났다.
성지곤이 놈이 방심한 순간을 노려 단숨에 목을 친 것이다.
데구르르르.
성고단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놀랍게도 성고단은 죽지 않고 역정을 냈다.
“이노오오옴! 감히 하늘 같은 아비를 속인 것이냐!”
“아버지. 저는 이 세상이 더 좋아요. 지옥의 여자는 아까 봤는데 더럽게 못생겼었어요. 젖이 6개면 뭐해. 꼴리지도 않는데.”
“죽여, 죽여버리겠다!! 성지곤!!”
머리 없이 몸만 남은 성고단의 육체가 꾸지직, 빠지직 소리와 함께 끔찍한 생김새로 변한다.
촤르르르르륵!
성지곤의 소매에서 날아간 사슬이 5개로 늘어나더니 성고단의 몸을 붙들었다.
“아버지. 마침 잘 됐어요. 아버지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요.”
성지곤이 품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 속에서 꺼낸 것들을 성고단에게 뿌렸다. 털이었다. 짧은 털이 성고단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뭐, 뭐냐?!”
“보지털이요. 아버지의 부인들…. 우리 어머니들의 보지털이요. 아버지의 부인들은 정말 맛있었어요. 아, 지금도 가끔씩 찾아가서 어머니들의 보지를 따먹고 있어요. 어머니들도 아버지 보다 제 좆이 더 맛있대요.”
“이, 이, 성지곤!! 이 천하의 패륜아아아아아!! 죽어라!! 죽어어어어!!”
성고단이 혀를 내밀었다. 개구리의 그것처럼 쭈욱 늘어나 성지곤의 목을 노린다. 성지곤은 방심하지 않았다. 성고단의 혀를 베어내고, 그 머리통을 짓밟아 터트렸다.
“너나 죽어. 네 부인들은 내가 정성스레 따먹어 줄 테니까!”
성지곤이 검을 휘둘러 사슬에 묶인 성고단의 몸을 난도질했다. 끝이었다. 성고단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배운이 놀란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잠시 후, 내 시선을 느낀 그가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되잡았다.
“큼, 크음. 멀쩡한 놈인 줄 알았더니 미친놈이었군. …아무튼. 그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은 칭찬해줄 만 하다. 성지곤, 합격이다.”
???
마지막 9번째 차례는 나였다. 내 차례에 오기전까지 3명이나 죽었지만, 겨우 이런 시련에 내가 통과하지 못할 리 없다.
구구구궁.
바닥에 이해못 할 술법진이 그려지고 정면의 공간이 뒤틀린다.
공간에서 나온 건 오지무였다.
양팔과 양다리 없이 바다속을 유영하듯 허공을 떠 있는 오지무. 놈은 나를 보자마자 입을 찢어 웃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입을 찢어서 웃음을 지었다.
“반갑다, 성유진! 난 네놈을 죽이기 위해 영혼을 팔았다!”
“영혼을 판 대가가 그 꼴이냐? 싸구려 영혼이었나보군.”
오지무의 양팔과 양다리에는 물고기 머리가 있었다. 피라냐처럼 생긴 물고기는 이빨이 무척 날카로웠다. 오지무의 등에는 지느러미가 있었다. 지느러미가 꾸물거릴 때마다 놈이 허공을 날았다.
“네놈을 죽이고 황보가혜를 명계로 데려…”
콰콰콰콰쾅!
천장에서 벼락이 오지무에게 떨어졌다. 오지무가 인상을 찌푸린다. 고통에 몸을 떨지만 멀쩡히 허공을 움직인다. 나는 놈에게 달려갔다.
‘가속, 찰나.’
영천류(影天流) 뇌광(雷光).
이미 죽은 놈. 이야기를 나누기도 귀찮았다.
“황보가혜는 이미 내 여자야.”
검격이 그의 몸에 선을 그린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오지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고깃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이거 너무 쉬운… 윽?!’
갑자기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나는 천장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느꼈다.
“차사(差使)다! 빌어먹을! 왜 문이 안 열리는 거지?! 결계가 역으로 쳐졌다고?”
놈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쓴 파란 피부의 남자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놈은 핏기없는 시선으로 나를 보며 손에든 명부에 무언가를 적는다.
“별의 힘을 가진 죄인이여. 여기서 죽거라.”
음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놈이 내게 명부를 돌려 보여주었다.
成儒眞.
내 이름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쿵!
심장이 활동을 멈췄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