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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광명승천도 (783/2,000)

〈 1003화 〉 1003. 광명승천도

“별의 힘을 가진 죄인이여. 여기서 죽거라.”

음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놈이 내게 명부를 돌려 보여주었다.

成儒眞.

내 이름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쿵!

심장이 활동을 멈췄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알림창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었다.

죽었다고?

이름 세 글자 적혀서 죽었다고? 이렇게 죽게 될 줄은 몰랐다.

‘저 데스노트는 뭐야.’

눈살을 찌푸린다. 짐작 가는 게 있었다. 아까 배운의 목소리가 공간에 울렸다. 그는 저놈을 차사(差使)라 했다.

‘명계의 차사라면 딱 그거지. 저승사자. 서양으로 치면 사신이니 데스노트를 가지고 있는 게 이해가 되는군.’

완전 회복으로 부활은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저 명부에 내 이름이 적힌 이상 바로 다시 죽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놈이 다시 내 이름을 적기 전에 놈을 죽여야 한다.

[죽음 저항의 남은 시간: 8초]

스르르륵.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날 주시하던 놈의 몸이 희미해져 간다. 이곳에서 사라지려고 한다. 이대로 사라지는 놈을 보내고 아슬아슬하게 완전 회복을 사용하면 무사히 지금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아니지, 시발. 날 죽였으면 저 새끼도 죽어야지.’

이대로 끝내기에는 내 성질이 용납하지 못한다.

[죽음 저항의 남은 시간: 3초]

놈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완전 회복을 사용했다.

두근.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뛴다. 죽은 척을 위해 쓰러져 있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뭣이?!”

깜짝 놀란 차사의 몸이 다시 선명해졌다. 그는 황급히 명부와 붓을 쥐었다. 명부를 펼치고 붓으로 다시 내 이름을 적으려 한다. 또 내 이름이 적히면 또 죽겠지.

‘가속, 찰나.’

놈을 향해 뛰었다. 순식간에 앞으로 다가가 화련비도를 휘둘렀다. 차사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칼날이 그의 어깨를 갈랐다. 검은 피가 아래로 떨어진다. 차사의 파란 얼굴이 굳어졌다.

“이노옴! 어찌 순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하는가! 네 죄업이 쌓이고 있노라! 무간지에 처박히고 싶지 않으면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거라!”

“순리? 지랄 마라! 난 천년만년을 살 거다!”

몸이 아래로 떨어진다. 나는 놈과 다르게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는 능력이 없었다.

‘뇌전.’

그러나 번개를 다루는 능력은 있다.

파지지지지직.

사방에서 시퍼런 번개가 나타나 차사에게 향했다. 차사는 이를 악물고 번개를 버텼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붓을 놀린다.

成儒.

내 이름 두 글자가 적혔다. 그 글씨체는 굉장히 삐뚤삐뚤했다.

“막아라! 명부에 이름이 적히는 걸 막아!!”

배운의 목소리가 울린다. 나는 짜증이 났다. 훈수를 놓을 거면 좀 도움이 되는 훈수를 지껄일 것이지, 다 알고 있는 훈수는 짜증만 돋군다.

‘저놈이 꾸역꾸역 글쓰는 걸 어떡하라고.’

찰나를 쓰고 다시 위로 점프했다.

영천류(影天流) 뇌광(雷光).

차사의 머리를 노렸다. 차사의 목이 뒤로 확 꺾이며 칼을 피한다. 인간에겐 불가능한 꺾임 각도다.

‘젠장…! 찰나!’

이를 악물고 칼의 궤도를 강제로 비틀어 바꾼다. 뿌드드득. 오른팔의 근육이 끊어지고 뼈가 비틀린다. 그 대가로 차사의 붓을 쥔 팔을 베었다. 붓을 쥔 팔이 아래로 떨어진다.

‘이걸로 내 이름은 못 쓰겠지.’

내 몸이 다시 아래로 떨어진다. 만족스러웠다. 어차피 놈에게는 붓이 없으니.

차사가 돌연 입을 콱 깨물었다. 그리고 혀를 쭉 내밀어 명부에 가져다 댄다. 차사는 혀끝을 잘라 그 검은 피로 내 이름을 완성시키려는 것이다.

‘시발!’

화련비도를 던졌다. 화련비도는 정확히 명부를 꿰뚫고 차사의 가슴팍에 꽂혔다. 차사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으며 묵묵히 혀로 내 이름을 적는다.

‘아, 안 돼!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천심!’

[천심(天心)을 발동합니다. 1분 동안 지속됩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천심을 발동했다.

“어떻게 살아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요행이겠지. 네 얼굴을 보니 두 번 일어날 요행은 아닌 모양이로구나. 내 직접 널 지옥으로 안내해줄 테니 얌전히 죽거라.”

혀끝이 잘린 놈은 잘도 말했다. 이어 그가 명부를 돌려 내게 보여줬다. 成儒眞. 굳이 내 이름을 보여주는 건 아마도 저 명부의 발동 조건인 모양이다.

‘…끝인가?’

1초가 지났다.

조금 전에는 내 이름을 보자마자 심장이 멈추고 죽었지만, 지금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심장은 멀쩡히 뛴다.

차사가 당황하며 주춤거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건 네놈이 견딜 수 있는 격이 아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짓을 했냐고? 천심(天心)을 사용했다. 1분 동안 능력치가 상승하고 상태 이상의 면역 상태가 되는 효과!

‘놈의 공격이 상태 이상으로 취급됐나? 어쩌면 저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군.’

아무튼, 중요한 건 나는 무사하다는 거다.

차사는 다시 명부에 혀를 갖다 댄다. 또 내 이름을 적으려 하는 거다. 그러나 나는 조바심을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천심의 지속 시간이 40초 이상 남았기 때문이다.

“죽어, 이 씹새끼야!”

차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일부러 놈의 다리를 베어냈다. 서걱. 철퍼덕. 차사가 바닥에 떨어졌다.

“크으으으….”

차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바닥에 명부를 펼치고 내 이름 석자를 적는다.

成儒眞.

“이 새끼 혀로도 글 존나 잘 쓰네.”

차사의 뒤통수를 발로 밟아 누르며 명부를 빼앗았다. 이놈은 신체능력이 형편없었다. 뛰어난 술법사인지는 몰라도 무인은 결코 아니다.

“그 더러운 손으로 명부를 만지지 마라! 내놔라, 내놔…!!”

“닥쳐.”

퍽, 퍽퍽.

차사의 머리통을 몇 번 더 밟았다. 나는 명부를 훑어 봤다. 이 짓거리를 한 것도 처음이 아닌지 수백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죄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이 데스노트를 현대로 가져가서 신세계의 신이 되겠어. 내 데스노트에 적힐 첫 번째 이름은 너다. 너 이 새끼, 이름이 뭐야.”

“내 이름 말이냐? 거기 적혀 있지 않느냐.”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명부를 살펴봤다. 표지의 하단 부분에 작게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설중고(雪中顧).

“데스노트에 자기 이름을 적는다고? …표지라서 안 죽는 건가.”

나는 바닥에 떨어진 차사의 붓을 들고 놈의 검은 피를 찍어 명부에 이름을 적었다. 차사는 죽지 않았다.

“어, 왜 안 죽어?”

“멍청한 놈. 명부의 주인은 네가 아니라 나다. 그리고 설령 명부의 주인이 내가 아니더라도… 너는 명부로 나를 죽이지 못한다.”

“왜?”

“나는 순리에서 벗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단 널 죽이고 소유권부터 얻어볼까.”

“알아 둬라. 내가 죽는다고 해서… 이게 끝이 아님을. 명계는 너를 주시하고 있다.”

“어우야. 무섭다, 야.”

콰직!

차사의 머리를 밟아 터트렸다. 차사는 그대로 죽었는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앗, 뜨거!”

명부에서 검은 불길이 치솟았다. 화들짝 놀란 나는 명부를 떨어뜨렸다. 명부는 차사의 시체와 함께 활활 타올랐다.

“성유진!”

배운 장군이 병사들과 함께 들어왔다. 차사가 죽으면서 결계도 사라진 모양이다. 그는 죽은 차사의 시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위험한 놈이 찾아올 줄이야….”

“찾아왔다고요?”

“보면 모르나. 원래 네 시련 상대는 이놈이 아니라 그 물고기 같은 놈이었다. 차사는 널 죽이기 위해 직접 찾아온 것이다.”

“별의 기운 어쩌고 하던데. 그거 때문입니까?”

“자세히는 모른다. 다만, 차사가 직접 널 죽이려 했다는 건 명계의 일에 네가 방해된다고 판단한 거겠지.”

“앞으로도 계속 이런 놈들이 절 죽이려고 합니까?”

“이번 일은 드물다. 놈들도 아무 제약 없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건 아니다.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20층 시련은 통과 맞죠?”

“만무탑을 정복한 걸 축하한다.”

배운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20층에서 3명이 죽고 총 6명만이 끝까지 살아남았다.

나는 입을 열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사고가 벌어졌으니 보상을 해달라. 라고 요구하기에는 지난 만무탑 시련의 기억이 떠오른다. 만무탑에서 죽은 놈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시련 도중에 일어난 사고도 책임지지 않는다. 시련 중에 일어난 사고에 책임지는 것은 오직 만무탑을 오르는 입탑자 뿐이다.

만무탑의 정복자들은 모두 배운의 앞에 섰다.

“만무탑의 정복을 축하한다. 그대들은 만무탑의 정복자로서 명성을 누릴 것이다. 물론 보상도 철저하게 제공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앞서 우리는 그대들에게 하나의 기회를 주겠다.”

“어떤 기회입니까?”

내가 물었다.

배운이 대답하기 전에 그의 옆에 서 있던 노파, 구월선자(九月仙子) 능소려가 앞으로 나왔다.

“본인이 대답하겠소. 본인의 제자가 될 기회를 여러분에게 드리겠소.”

제자가 될 기회를 준다.

다른 이가 말했다면 오만하게 들렸을 것이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오기경에 이른 강자들. 적당한 곳에 문파를 세우고 운영하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춘 자들이다. 누군가의 제자가 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가 구월선자면 이야기는 다르다. 그녀는 조화경의 고수이며, 황제와 인연이 있는 자다.

“단, 조건이 있소. 황제 폐하께 충성을 맹세하며 군부에 몸을 담아야 하오. 본인의 가르침을 받아 더 높은 경지에 이르고, 장군이 되어 호령하고 싶은 자는 본인의 제자가 되시오.”

능소려는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내가 자신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해한다. 입탑자 중에서 내가 가장 강하니까. 거기에 난 별의 기운까지 타고났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내게는 능소려 이상의 실력을 가진 스승이 존재했다. 군대에 들어갈 생각도 없었다. 구월선자의 무공에도 흥미 없다.

“어, 제가 구월선자님의 제자가 되어도 될까요?”

성지곤이 손을 들며 말했다. 성지곤의 두 눈이 반짝인다. 나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성지곤의 목적은 뻔했다. 능소려를 자빠뜨려 어떻게 한 번 따먹어 보려는 것이다.

능소려는 성지곤을 빤히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성지곤이었던가? 내 제자가 된 것을 환영하마.”

능소려의 제자가 되기를 희망한 자는 6명 중에 오직 한 명, 성지곤 뿐이었다.

성지곤은 그 자리에서 구배지례를 올리고 능소려의 제자가 되었다.

“열과 성을 다해 배우겠습니다, 스승님!”

능소려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에 보상 시간이었다.

6명 중에서 구월선자의 무공을 선택한 이는 없었다. 모두 스스로가 가진 무공에 자신 있는 것이다. 참고로 6명 중의 한 명은 개방의 거지인 방랑걸(放浪乞) 장춘몽이다.

성지곤은 이미 능소려의 제자이니 무공을 배울 필요가 없었다. 그는 능소려의 조언에 따라 천년설삼을 선택했다.

정빈은 본래 목적대로 영약을 선택하여 공청석유를 얻었다. 단 한 방울에 불과했다. 정빈은 공청석유를 받자마자 입안에 털어 넣었다. 정빈은 그 즉시 무발기 사정을 연달아 2번이나 해댔다. 직후에는 바로 가부좌를 틀고 운기행공에 빠졌다.

황보가혜도 영약을 택했다. 태극신단(太極神丹). 무당파의 그 유명한 영단이다. 황보가혜는 만족스러워했다.

나는 영약이 아닌 무공을 찾아봤다. 뇌기와 관련된 무공을 찾아볼 생각이다.

‘20층에 없으면… 차라리 영약을 선택하고 밖에서 찾아보는 게 낫겠지.’

다행히도 딱 하나. 뇌기와 관련된 무공이 있었다.

천단뢰결(天斷雷結).

2,000년 전에 강호에 출몰했던 대마두 뇌성마(雷星魔)의 무공이다. 뇌성마가 뭐하는 놈인지는 몰라도 강호를 한 번 뒤집어 놓았던 존재라고 하니 강력한 무공일 것이다.

‘…사실 무공이라하기엔 뭔가 좀 이상하긴 한데. 대단한 건 틀림 없으니 상관없겠지.’

일단 천단뢰결의 구결을 한번 훑어봤다.

‘전혀 모르겠다.’

이건 위유에게 떠넘기도록 하자. 그녀라면 알아서 연구하고 내게 쉽게 가르쳐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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