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5화 〉 1005.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의 세계는 전쟁이 한창이었다.
북쪽에서부터 시작되어 대륙 전체로 번진 대전쟁.
원작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원작대로 흐르지는 않았다.
본래 라펠리 왕국의 공주인 아일린이 위기 속에서 기회를 잡아 내전을 일으킨다. 쓸모없는 귀족, 불필요한 귀족, 무능한 귀족을 일부 정리하고 여왕이 되어 라펠리 왕국을 다스린다.
에이든 왕자의 몰락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그의 뒤에 없었다면 말이다.
‘에이든 왕자의 뒤에는 헬브리트 공작가가 있었지.’
아마 원작에서 이 시기에 헬브리트 공작가는 암제(暗帝)에게 몰살당한다. 암제는 유리아의 별명이었다. 그녀는 공작가 하나를 몰살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금의 유리아를 암제라고 부르는 모양이지만… 그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적지.’
유리아는 현재 내 메이드였다. 그것도 유물의 시련에 의해 기억을 잃은 메이드. 그녀는 기억을 되찾기 위해 마스터의 경지에 다시 한 번 오를 필요가 있었고, 지금도 열심히 수련 중이다.
잠깐 생각에 빠졌던 나는 고개를 들어 집무실 한 편에 걸어 놓은 지도로 시선을 옮겼다. 대륙 전체 지도다. 지도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선과 기호가 표시되어 있었다. 내 주위에는 2명의 여인이 함께 앉아 있었다.
한 명은 스칼렛 번클로. 짧은 진홍색 머리카락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여인이다. 진홍색 눈동자는 잘 벼려진 칼날과도 같다. 본래 카일의 휘하에 있었던 그녀는 장교복을 입고 지도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 휘하의 병사들을 이끄는 장군이다.
다른 한 명은 메이드인 멜리사다. AM 부대의 리더이기도 하다. 그녀는 검푸른 색의 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지도를 바라봤다. 평소의 장난스러운 태도 없이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멜리사와 스칼렛. 유리아를 제외하면 저택 내에서 전술적으로 가장 능력이 뛰어난 여인들이다.
“라펠리 왕국은 이기고 있습니다. 영토를 착실히 늘려가고 있습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나, 전쟁이 끝난 후에 라펠리 왕국의 영토는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스칼렛이 말했다. 원작보다 상황이 좋았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라펠리 왕국에는 주인공인 카일이 있고, 내가 있다.
거기다 카일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원작보다 더 큰 활약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나서서 적들을 베어내며 영토를 확장한다. 카일은 이미 라펠리 왕국의 영웅으로 불리고 있다. 아마도 아일린 공주가 뒤에서 손을 썼겠지.
“그래서 우리는 뭘 하면 되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군은 돈으로서 여러 귀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 공로를 모르는 이가 없으니 이대로 전쟁이 끝나도 뒷말이 나오거나, 문책을 받을 일은 없습니다.”
스칼렛이 말했다. 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주인님이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하지만 주인님의 목적은 프루커스 백작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백작가의 주인 자격은 카일 프루커스에게 빼앗길 거다.”
카일은 미친 듯이 공을 쌓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면 그의 새로운 승전보가 들릴 정도다. 아마 지금 프루커스 백작에 가장 가까운 건 카일이리라.
“주군. 주군께서 굳이 프루커스 백작위를 노릴 필요는 없습니다. 주군께서 원하신다면 백작 이상의 후작 작위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 주군이 가진 영향력을 생각하면 공작이라 할지라도 주군을 무시하지 못합니다.”
스칼렛의 말이 맞았다.
나는 예전부터 라펠리 왕국에 영향력을 끼쳐왔다. 코리아 상단을 통해 돈을 끌어들이고, 유리아가 그 돈을 여러 군데 재투자했다. 거기에 전쟁이 터지기 직전 유리아의 조언에 따라 여러 귀족과 기사들에게 투자했다. 그리고 8할 이상이 대박이 터졌다. 흔히 말하는 떡상이다.
‘유리아는 원작의 지식을 이용해 투자했다고 말하지만… 나는 지금도 뭐가 뭔지 모르겠단 말이지.’
아무튼, 그 덕분에 나는 대귀족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더 이상 프루커스 가문의 작위가 탐나지 않을 정도로 판이 커져 버린 것이다.
“이건 내 자존심이 걸린 문제야. 카일 따위한테 후계자 싸움에서 밀려난다? 상상만 해도 기분 더럽네.”
“그럴 거라 생각했다. 우리 주인님의 인성은 더러우니 말이다.”
멜리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건방진 메이드다. 설마 주인님의 면전에서 대놓고 인성이 더럽다고 할 줄이야. 괘씸한지고. 나는 멜리사의 치마를 들쳐 손을 집어넣었다.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손을 푹 찌른다.
“히익!”
멜리사가 새된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저택 내에선 대부분 노팬티로 활동하는 여자였다.
손가락으로 보지를 몇 번 쑤셔준 뒤에 손을 뺐다. 멜리사는 숨을 거칠게 쉬며 책상 위에 엎드렸고, 내 손에는 투명한 액체가 가득 묻어 있었다.
“주군.”
스칼렛이 날 불렀다. 그녀는 일련의 행동을 보고서도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주군의 목적이 프루커스 작위의 계승이라면… 더 커다란 공적이 필요합니다.”
스칼렛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로 다가갔다. 그녀는 라펠리 왕국의 위쪽, 북쪽에 위치한 왕국 중 하나를 콕 집었다.
“우리는 북쪽을 노려야 합니다. 북쪽의 비슐 왕국을 주군의 이름으로 정벌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세계는 북쪽으로 갈수록 척박해지고, 남쪽으로 갈수록 풍요로워진다.
“남쪽의 왕국을 정벌하는 게 더 좋지 않나? 그쪽이 더 얻을 게 많잖아.”
카일도 남쪽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거기다 보급을 생각하면 북진보다 남진이 더 편할 것이다.
“카일 프루커스는 지금 승승장구하고 있으나 곧 막힐 것입니다.”
“…코발트 왕국이군.”
멜리사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지도를 노려봤다. 대륙 중부에 있는 코발트 왕국은 라펠리 왕국처럼 연승을 거머쥐고 있는 나라였다. 그리고 코발트 왕국은 멜리사의 고향이다. 그녀의 아르헨 가문은 코발트 왕국에서도 유서 깊은 공작가다.
“주인님. 코발트 왕국은 변했다. 왕세자였던 둘리바드가 돌아와 왕위를 계승하고 승리를 거듭하며 북쪽으로 진격 중이다. 아마도 목적은 라펠리 왕국이겠지.”
“널 노리는 건가?”
“……모르겠군. 둘리바드가 그 정도로 내게 집착할 정도인가?”
“네가 아니라 내가 목적일 수도 있지.”
나는 둘리바드의 앞에서 그 약혼녀인 멜리사와 섹스를 했다. 그 당시의 둘리바드의 절망에 찬 얼굴을 보면 지금도 짜릿해진다. 둘리바드에겐 나를 죽일 동기가 충분하다.
“주군. 결정은 빠르게 해야 합니다. 승기가 있는 지금 비슐 왕국을 몰아쳐야 합니다.”
스칼렛이 진중하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진격을 허락하지.”
“3만의 병력과 골든 로즈 기사단의 힘이 필요합니다.”
현재 내가 가진 대부분의 전력이었다. 특히 골든 로즈 기사단은 오러 마스터인 플로이가 이끄는 여성 기사단으로 현재 왕국 최고의 기사단 중 하나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것도 허락하지. 출병은 언제 할 거지?”
“준비가 갖춰지는 대로 바로 출병하겠습니다. 사흘을 보고 있습니다만, 늦어도 일주일 내로 준비가 끝날 것입니다.”
“근데 보급은 어떻게 하려고?”
이 세계는 게임이 아니었다. 게임의 유닛처럼 병사를 만들어두고 방치할 수 없다. 제대로 된 병사로 활용하려면 장비를 갖추고 음식을 먹여야 한다. 군대는 돈 먹는 하마다.
“주군이 있지 않습니까? 주군께서 직접 움직여주시면 보급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허 참. 주군을 너무 부려 먹는 거 아니야?”
“필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가끔 전장에 나서서 모습을 비춰주십시오. 사기를 올리고, 명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뭐, 알았어.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내게는 편리한 공간 이동 주문서가 있었다.
“예산이 많이 필요하겠군.”
조용히 중얼거렸다. 걱정되지는 않는다. 지금 내 재산이면 감당하고도 남는다. 전쟁 특수를 누릴 대로 누렸다. 지금도 다른 국가에 몰래 전쟁물자를 팔며 돈을 쓸어담고 있다. 그리고 내 병사 절반 이상이 노예병이다. 인건비가 소모되지 않는다.
“주인님. 예산에 대해서 말이다만, 저택에 사용되는 예산을 늘릴 필요가 있다.”
“저택의 관리 예산이라면 2주 전쯤에 20% 늘리지 않았나?”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사람이 부족해?”
“그 반대다. 메이드가 너무 많다. 요 일주일 사이에 늘어난 메이드가 몇 명인 줄 아나?”
“…….”
나는 입을 다물었다. 모르기 때문이다.
“94명. 매주 메이드가 100명씩 늘어나고 있다. 이게 얼마나 미친 일인지 설명해줘야 하나? 간단히 말하자면 1층 복도를 청소하는 데 20명의 메이드가 달라붙어 청소한다. 1층 복도를 청소하는 데 15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걸로 메이드의 일과는 끝. 지금 이 저택의 메이드만 1,751명이다.”
그 정도로 많을 줄 몰랐다. 물론 1,751 명 모두 미녀들이다. 내 저택에서 일하는 메이드는 전원 어느 기준을 넘긴 미녀다. 미녀가 아니면 메이드가 될 수 없다.
‘그렇게 많았나? 하긴 요즘 매일 밤 30명씩 처녀를 뚫고 있긴 했지.’
이것도 전쟁의 효과였다.
전쟁의 폐해로 노예로 팔려가는 여자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귀족 출신도 있었다. 나는 원래 계획대로 노예로 나온 미녀들을 모조리 사들였다.
‘미녀가 있다는 마을을 정복해서 노예로 삼은 것도 적지 않지.’
현재 내가 가진 노예 마을은 총 8개. 여기서도 미녀를 선별해 저택의 메이드로 삼고 있다.
“알았어. 예산을 30% 더 줄게.”
“예산이 30%가 늘어났군.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게 본질적인 해결법이 아니란 건 주인님도 알고 있겠지?”
“음….”
“식량 문제야 주인님의 능력도 있고, 헤빌의 촉진제 같이 단번에 수확할 수 있는 신비한 물건도 있으니 상관없다. 가장 심각한 건 거주 문제다. 지금 저택에 빈방이 없다. 신입 메이드들은 천막생활을 하고 있지. 워낙 대우가 좋으니 불만은 없다만…. 언젠간 불만은 나올 거다.”
“내 소중한 메이드들이 천막생활을 한다고? 바로 드워프 노예 자식들을 시켜 저택을 중축해야겠군.”
“이미 내가 시켰다. 그러나 그것도 해결 방법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메이드를 뽑는 걸 그만두는 게 최선이지만….”
나는 엄격하고 근엄하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불가.”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내 제안이다만. 수많은 메이드들을 관리하기 위해선 더 튼튼하고 확실한 체계가 필요하다. 신입 메이드의 교육도 필수지. 그래서 말이다만, 메이드 아카데미를 창립하는 게 어떤가?”
“메이드 아카데미? 듣기만 해도 자지가 불끈불끈거리네. 오케이. 만들자.”
“…아무리 그래도 고민 정도는 해봐야 하지 않나?”
“좋은 게 좋은 거지. 메이드 아카데미는 어디에 만들까? 저택 뒤에?”
“아니, 아카데미는 배움의 장소다. 저택과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이 좋다. 그래서 말이다만, 주인님이 가진 섬 중에 하나를 선택해 메이드 아카데미를 건설하고 싶다.”
해적 연합을 털어버리고 얻은 것 중에 섬이 있었다. 대부분은 방치 중이다.
“라이라세 섬이 좋겠군.”
라이라세 섬은 내 별장이 있는 섬이다. 내가 가진 섬 중에서 몰디브를 닮아 가장 아름다운 섬. 지금도 간간이 이용하고 있다.
“…라이라세 섬은 섬 중에서도 큰 편이니 적당하다만, 거긴 주인님의 별장이 있는 곳이 아닌가.”
“별장 겸 메이드 아카데미로 이용하면 되지.”
“알겠다.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하지. 드워프들과 노예들을 시키면… 한 달 내로 아카데미 건물을 완성할 수 있겠지. 메이드 아카데미의 학장은… 파티마가 좋겠군.”
“파티마는 인정이지.”
파티마는 노예 시장에서 구입한 메이드 중 하나다. 고참 중의 고참이다. 당시에 유부녀였고 어린 메이드들을 가르치는 역을 맡고 있다. 그녀의 교육 실력은 믿을 수 있다.
‘슬슬 은퇴를 바라보는 나이지.’
파티마는 관리를 잘해서 젊어 보이긴 하지만, 얼굴에 나타나는 주름은 숨길 수 없었다. 나는 성지곤이 아니므로 늙은 여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 메이드를 놓아주기에는 아깝고. 그녀가 아카데미의 학장이 되면 은퇴 문제도 해결된다.
‘이제 메이드들의 은퇴도 생각해야겠군.’
물론 내 저택에서의 은퇴다. 한 번 메이드가 된 그녀들은 죽을 때까지 내 메이드다.
‘메이드 아카데미뿐만이 아니라 메이드 병원, 메이드 육아 동 등등을 만들면 내 저택에서 은퇴하고도 편하게 살겠지.’
생각을 대충 정리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회의는 이걸로 끝. 일하자. 일.”
스칼렛과 멜리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칼렛은 인사하고 바로 떠났고, 멜리사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주인님은 일하지도 않으면서 잘도 그런 말을 하는군.”
“이렇게 건방질 수가!”
짜악!
엉덩이를 맞은 멜리사가 한숨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나는 밖으로 나가기 전에 지도를 쳐다봤다.
몇몇 국가는 예상보다 약했고, 몇몇 국가는 예상보다 강했다.
‘악마회가 개입하고 있는 거겠지.’
대전쟁은 원작보다 더 길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