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0화 〉 1020.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나는 베리카의 시체를 가지고 엘프 마을로 돌아갔다.
엘프들을 마을 중심에 끌어모았다. 심각한 역병 환자도 예외 없었다. 어차피 역병은 곧 해결할 생각이니까.
약 4,000명이 모여서 베리카의 시체를 바라봤다. 충격받은 엘프 중 일부는 바닥에 주저앉았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넋이 빠졌다.
나는 엘프들을 둘러보고 혀를 찼다. 원래는 6,000명이 넘었던 인구수였는데 2,000명이 역병으로 인해 죽었다. 엘프답게 모두 하나같이 뛰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죽은 엘프 여자들이 너무 아까웠다.
“들어라!”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소리쳤다. 엘프들이 나를 바라봤다. 병자들의 힘없는 시선이었다.
“베리카 장로는 죽었다. 알고 있는 자들도 있겠지. 베리카 장로는 악마 계약자들과 결탁하여 우리를 죽이려 했다! 베리카 장로에게 동조한 자들, 알면서도 무시한 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 은혜도 모르는 것들아! 너희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나는 베리카의 머리를 들어 바닥에 내던졌다. 베리카의 머리가 부서진다. 두개골 조각이 튀고, 뇌가 바닥을 더럽혔다.
“너희는 이제부터 나, 유진 프루커스의 노예다! 모두 바닥에 무릎 꿇어라! 헛짓거리는 허락하지 않는다! 약속도 모르는 더러운 엘프 놈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들! 순순히 노예의 운명을 받아들여라!”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손가락에서 뿜어져 나온 번개가 땅바닥을 할퀴었다. 기겁한 엘프들이 서로의 눈치를 봤다.
“…웃기지 마라! 장로님이 잘못을 한 건 인정한다! 장로님의 의견에 동조하고, 방관한 우리에게도 죄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네놈의 노예가 될 이유는 되지 않는다!”
한 엘프가 검을 뽑으며 호기롭게 외쳤다.
“그의 말이 맞다!”
“우린 노예가 되지 않아!”
“우릴 얕보지 마라!”
곳곳에서 엘프들이 뛰쳐나왔다. 검을 손에 쥐고 정령을 소환한다. 수호대. 이 마을에 유일한 무력부대다. 나선 이들은 총 50명에 가깝다. 하나같이 오러 익스퍼트 이상의 실력자들이다. 나 혼자서는 처리하기 힘들다.
허나 내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다. 내게는 오러 마스터 최상급이자, 아크 메이지 최상급의 경지에 이른 메이드가 있었으니까.
“유리아. 처리해.”
“네. 주인님.”
지상에 나타난 거대한 그림자의 칼날이 그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으로 50명의 절반이 죽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림자 속에서 치솟은 창을 피하지 못하고 죽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싸울 수 있는 자들이 죽었다.
“반항하고 싶은 자들은 반항해라. 하지만 경고하지. 이젠 단순히 죽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수호대장 제그너의 머리통도 바닥에 던졌다.
오러 마스터.
베리카 다음으로 강했던 자.
전의를 상실한 엘프들은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몇몇 여자 엘프들은 벌써부터 내 눈에 들어왔다. 그녀들이 내 밤시중을 들 때가 무척 기대되었다.
???
비트라세 군대는 전진을 계속했다.
군대에 역병이 퍼졌다. 군대가 신음했다. 하루가 지날수록 역병은 더더욱 퍼져갔다. 1만 2천 명으로 구성된 군대가 삐거덕거리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벌써 4,000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약 300명이 사망했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노병(老兵)들이 먼저 죽었다.
병사들은 역병이 언제 자신들의 목을 조일지 모른다는 사실에 두려움에 떨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도망치는 순간 군대의 칼날은 자신들에게 향하게 될 것이다. 군대에는 탈영병을 전문으로 쫓는 부대도 있었다. 그리고 도망치는 순간 고향에 있는 자신들의 가족이 위험해진다.
병사들은 하늘에게, 땅에게, 신에게 기도했다. 역병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역병에 걸리더라도 목숨만큼은 거둬가지 말라고.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감염자는 늘어났고, 군대를 이끄는 장군인 폴 스메시드 후작 역시 다급해졌다.
후퇴를 고민하던 그는 어느 순간 돌변하여 병사들을 향해 바락바락 소리쳤다.
“전진해라! 전진하란 말이다! 이 역병은 모두 엘프 놈들의 수작이다! 엘프 놈들이 가진 고대 유물을 얻어야 역병이 사라진다!”
장군으로부터 시작된 그 말은 군대 전체로 퍼졌다. 병사들은 장군의 말을 믿었다. 장군은 높으신 분이었고, 숲에 들어와서 역병에 걸렸기에 신빙성도 충분했다. 병사들은 증오를 풀 대상을, 분노의 대상을 찾았다.
“빌어먹을 엘프 새끼들! 감히 역병을 풀어?! 이놈들은 지켜야 할 마지막 선까지 넘었다!”
“엘프들을 죽이자!”
“여자 엘프는 강간하고 창녀로 만들어버려!”
“엘프를 죽여야 역병이 사라진다!”
“숲을 불태워라!”
병사들은 무리하게 행군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엘프들의 방해가 사라졌다. 나무에 불을 붙이면 어김없이 허공에 나타나 불을 끄던 물이 사라지고, 땅을 흔들며 방해하던 것들도 모습을 감췄다.
병사들은 엘프 마을을 향해 진격을 이어나갔다.
“윽… 아아아악…!”
“엄마…! 엄마가 보고 싶어…!”
“집에는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크억!”
병사가 픽픽 죽어 나갔다. 거의 10분마다 한 명씩 죽는 느낌이었다. 죽은 병사는 한쪽에 방치되었다. 본래 시체는 땅에 묻거나, 태우는 게 마땅하다.
“시체를 묻을 시간은 없다! 나중에 엘프 놈들을 침략하고 고대 유물을 얻은 뒤에 돌아가면서 죽은 전우들의 시체를 정리한다! 역병은 계속 퍼지고 있다! 역병을 다스리려면 엘프들을 죽여야 한다!”
장군의 명령이었다. 병사들은 엘프들을 향한 증오를 불태웠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엘프 놈들 때문이다.
“전진해라! 전진해!”
장군이 발악하듯 외쳤다.
“뭐하는 거냐! 왜 멈추는 거냐! 내 명령이 들리지 않느냐!! 전진하라고 했다!”
“나, 나무가 떨어져서 팔을 다쳤습니다! 팔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하! 이제 보니 네놈은 더러운 귀쟁이들의 첩자로구나! 저놈을 죽여라!”
분노와 증오는 광기가 되었다.
장군은 병사들을 닦달했다. 쓸모없는 병사들은 첩자로 몰아 죽이고, 너무 지나치다는 부관들의 충언은 무시했다.
폴 장군은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감행했다. 어쩔 수 없었다. 여기엔 그의 목숨이 달려 있었으니까.
“켈켈. 잘하고 있어. 아주 잘하고 있어. 켈켈켈.”
“빨리, 해라.”
폴 장군의 뒤에는 악마가 있었다.
미끌거리는 녹색 피부를 가진 악마는 역병의 악마였다. 피부에서 알 수 없는 진액이 주르륵 나온다. 머리는 파리처럼 생겼으며 입이 3개다. 등에는 박쥐 날개가 퍼덕인다. 역병의 악마답게 끔찍한 생김새였다. 역병의 악마, 헤플이다.
다른 악마는 30cm 크기의 목각 인형이었다. 양팔에는 날카로운 갈고리가 달려 있으며 입에서는 피가 끊임없이 흐른다. 사람과 시체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중급 악마, 네로트다.
푹, 푹푹!
“빨리. 더 빨리!”
네로트가 폴 장군의 등을 갈고리를 찌르며 보챘다. 피가 뚝뚝 떨어진다. 네로트는 피가 흐르는 입으로 폴 장군의 피를 빨아먹었다.
역병의 악마 헤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폴 장군의 오른팔을 가지고 놀았다. 폴 장군의 오른팔은 기괴하게 뒤틀렸다. 녹아내리기도 했으며, 곤충의 팔처럼 역겨운 형태로 변하기도 했다.
폴 장군은 등 뒤의 악마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쉬지 마라! 쉬는 순간 역병이 우리를 죽일 거다! 전진해라! 전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비트라세 군대는 벨리아크 엘프 마을에 도착했다.
“엘프를 죽이고 고대 유물을 찾아라!”
폴 장군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함쳤다.
병사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달려들었다. 고결한 척을 하던 기사들도 마을을 향해 내달렸다. 엘프들의 물건이면 충분히 돈이 될 것이고, 엘프의 미모는 남녀할 것 없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특히 여자 엘프는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들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탐욕과 음욕으로 가득했다.
“어, 없다!”
“엘프들이 없다!”
“장군님! 집들이 비어 있습니다!”
“하,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빌어먹을! 엘프들은 이미 도망친 듯합니다!”
병사들이 분개하여 외쳤다. 그들이 얻을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멍청한 것들! 저기를 봐라! 저기에 엘프들이 모여 있다!”
마을 중심에 설치된 울타리. 그 너머에 엘프들이 보였다. 역병에 시달리는 엘프들은 수척한 얼굴로 병사들을 노려봤다.
그리고 그들 중심에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한 귀족 남자가 있었다.
???
나는 벨리아크 마을로 쳐들어온 비트라세 군대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광기에 찬 병사들이 달려오지만, 울타리를 넘지 못했다. 고대 유물 땅의 보옥, 그 능력을 일부 사용한 것이다.
물론 완벽하게 차단된 건 아니었다. 정신을 차린 놈들은 이게 결계라는 걸 깨달을 테고, 무력을 이용해 결계를 부수고 들어올 테니까.
하지만 그 이전에 선수를 치는 건 나다.
나는 땅의 보옥을 쓰다듬었다.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는 대충안다. 마나를 땅의 보옥에 불어넣었다.
“네놈들이 노리는 건 이거겠지. 땅의 보옥. 그런데 어쩌나. 난 네놈들에게 넘길 생각은 전혀 없다. 크크. 너희는 지옥에 온 거야.”
땅의 보옥에 마나가 쭉쭉 빨려 들어갔다.
비트라세의 군대. 비트라세 국왕이 한계까지 짜내어 구성한 군대다. 이 군대가 전멸한다면… 비트라세 왕국은 다음을 버티지 못하고 멸망하고 다른 국가가 비트라세 왕국의 영토를 차지하겠지.
“터져라!”
쾅! 콰콰콰콰콰콰콰쾅!
땅이 터졌다. 흙먼지가 위로 솟구치고, 병사들의 몸이 나뭇가지처럼 쉽게 부서졌다. 약탈에 눈이 멀어 마을 깊숙이 들어온 병사들이 죽어 나갔다. 약 5천 명 이상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것이다.
“마법이다!”
“대마법사다!”
“히이이이익!”
병사들이 겁에 질렸다. 도망가는 놈들도 있었다. 나는 굳이 막지 않았다. 적들은 이미 전의를 반쯤 상실했다.
“야, 이 새끼야. 빨리해.”
팔다리 없이 바닥에 꿈틀거리고 있는 베인트의 머리를 짓밟았다.
“약속… 하신 겁니다. 누이는… 죽이지 마십시오.”
“안 죽여. 네가 맡은 일만 제대로 하면 말이야.”
베인트는 이를 악물며 능력을 사용했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역병 시체가 움직이며 남은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병사들은 기겁하며 역병 시체를 공격했고, 역병 시체는 폭발하며 역병을 흩뿌렸다.
역병이 퍼진다. 역병에 감염 된 병사들은 덜덜 떨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일반 병사는 농도 짙은 역병을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나는 안전한 결계에서 그 장면을 지켜봤다.
“역시 생화학 무기는 대량 살상에 특화되어있군.”
밧줄에 구속된 벨라가 소리쳤다.
“헤플! 안 돼! 뭐하는 거야! 군대에 퍼지는 역병을 거둬들여!”
계약한 악마를 부른다. 벨라는 악마와 나쁘지 않은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모양이니 악마가 그 말을 들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악마는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시체 가득한 공터 속에 유리아가 병을 들고 검은 무언가를 뿌리고 있었다.
부정한 마나.
악마의 생명력이자 힘이 되는 것.
역병의 악마 헤플과 꼭두각시의 악마 네로트는 이미 꼬여 들었다. 미끼라는 걸 알면서도 물었다. 그럴 수밖에. 유리아가 기억을 잃기 전에 특수 제작한 저 부정한 마나는 다른 것보다 순도가 더 높으니까.
그리고 오만한 악마들은 유리아를 고작 인간 따위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켈켈. 기억에 있는 인간이군….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음. 좋다. 부정한. 마나.”
악마들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유리아가 바닥에 뿌린 부정한 마나를 핥아먹기 위해서다. 혀를 내밀어 땅바닥을 핥는 모습에는 악마의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
“딱 어울리는 모습들입니다.”
유리아가 조소했다. 촤르르륵! 그림자 사슬이 악마들의 몸을 칭칭 감는다. 악마들은 여유로웠다.
“겨우 이걸로 우리를 막는다고?”
“매우. 멍청하다.”
악마들이 몸을 비틀었다. 그림자 사슬은 끊기지 않았다.
“주인님의 가장 큰 적은 악마라 판단했기에 악마들에 대해 꾸준히 연구했습니다. 악마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건, 희귀한 신의 힘…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악마들의 힘이더군요.”
절그럭절그럭.
그림자 사슬은 끊기지 않는다.
“부정한 마나를 이용할 수 있는 건 당신들, 악마뿐만이 아닙니다. 그 그림자 사슬은 부정한 마나를 이용해 강화한 사슬입니다. 당신들은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켈켈…. 대단하군. 상급 이하의 악마라면 맥도 못 추겠어. 근데 나는 역병의 악마다! 최상급의 악마지! 이깟 사슬 따윈 의미 없다!”
헤플이 사슬을 끊기 위해 입에서 역병을 내뿜었다. 역병은 퍼지지 않고 헤플의 몸에 달라붙었다. 헤플의 몸이 점점 부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