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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801/2,000)

〈 1021화 〉 1021.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헤플이 사슬을 끊기 위해 입에서 역병을 내뿜었다. 역병은 퍼지지 않고 헤플의 몸에 달라붙었다. 헤플의 몸이 점점 부풀었다.

끼이이익, 끼이익!

그림자 사슬이 비명을 질렀다. 팽팽하게 당겨지다 못해 한계까지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역병이다! 수만 명의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갈 수 있는 죽음 그 자체지!”

헤플이 고함쳤다. 사슬에 금이 갔다.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위험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리고 악마의 기세에 놀란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엘프고 인간이고 할 것 없이 바닥에 엎어졌다. 정신력이 약한 놈들은 기절하거나 오줌을 지리고 토악질을 해댔다.

“네. 당신의 격이 높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유리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담담하게 최상급 악마의 모습을 직시했다.

“하지만 여긴 당신의 세계인 마계가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의 당신보다 더 강합니다.”

쨍그랑!

헤플을 붙잡은 그림자 사슬이 뜯겨 나갔다. 헤플은 강제로 웅크려야 했던 몸을 펼쳤다. 날개가 퍼지듯이 그의 거구가 커진다. 5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 날개인지. 아니면 손인지 구분하지 못할 부위가 유리아를 노렸다.

유리아의 단검이 움직였다. 위에서 아래로. 그 간단한 행동에 공간이 베이고 헤플의 반신이 툭 떨어졌다.

“그아아아아아악!”

헤플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몸에 들어가 있던 역병이 사라지고 크기가 다시 작아진다. 놀랍게도 베인 반신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재생했다.

촤르르르륵.

그림자 사슬이 다시 나타나 헤플의 몸을 구속했다. 헤플이 발버둥 쳤으나, 아까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헤플은 방심했다. 유리아를 마주한 순간부터 전력을 다해 싸워야 했다. 그랬다면 결과는 지금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최상급 악마로서 고작 인간 따위를 경계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엘레나 님.”

“…그래. 알고 있다. 이게 이 세계의 악마인가? 처음 보는 거지만 역겹게 생겼군. 보고 있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두통이 몰려온다.”

“최상급 악마의 격이 높아서 그렇습니다. 쓰러지지 않고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정신력이 뛰어나신 겁니다.”

“별로 위로는 되지 않는 말이로군. …너는 어떻게 멀쩡하지?”

“비밀입니다.”

유리아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답을 알고 있다. 내가 유리아에게 공유한 특성은 ‘절대 정신’이다. 정신계 공격은 어떠한 것도 그녀에게 통하지 않는다. 참고로 엘레나에게 공유한 스킬은 ‘완전 회복’이다. 정신계 공격은 통해도 ‘완전 회복’을 사용하면 바로 멀쩡해질 것이다.

“뭘… 할 생각이냐.”

구속당한 헤플이 물었다.

“당장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 당신을 통해 알아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고, 당신은 최상급 악마라는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습니다.”

“허나 이대로 내버려 두면 여러 가지 불안 요소가 있지. 썩어도 준치라고. 너는 최상급 악마가 아닌가. 안전조치를 하는 거다. 성공할지는 반신반의 하다만은….”

엘레나의 주위로 푸른색 나비가 나타났다. 10마리가 넘는 나비는 팔랑거리며 허공을 날다가 헤플의 몸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감히! 감히! 인간 주제에 내 정신을 건드리는가…! 기분 나쁘다! 꺼져라!”

나비 7마리가 한순간에 바스러지며 사라졌다.

엘레나는 인상을 쓰며 입안에 차오른 피를 땅에 뱉었다.

“괜찮으십니까?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미리 말해두지. 완전히 세뇌하여 노예로 부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 불완전하게는 세뇌가 가능하다는 말이군요.”

“그래. 인식을 바꾸는 정도는 가능하다. 허나, 이것도 일시적이다. 아마 닷새도 유지되지 않겠지.”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

파란색 나비가 발악하는 헤플의 몸에 스며들었다. 헤플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몽롱해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헤플은 더 이상 발악하지 않았다.

엘레나의 눈동자가 빛을 잃고 옆으로 쓰러진다. 유리아가 재빨리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엘레나의 눈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녀는 개운한 표정으로 똑바로 섰다. 나는 엘레나가 한 번 죽었다가 완전회복으로 살아났음을 알았다.

“남은 수명까지 모조리 사용했다. 어디 잘 됐나 확인해볼까. 꿇어라.”

헤플이 바닥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옆에 있던 꼭두각시의 악마가 경악한다. 엘레나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됐군. 이 악마는 당분간 나와 유진, 그리고 널 상위 존재로 인식할 것이다. 명령이다, 악마. 엘프들의 역병을 거둬가라.”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 사슬 좀 풀어주십시오. 속박이 너무 강해서 권능을 쓰기 어렵습니다.”

수작인가.

내가 바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유리아라고 해서 모를 리가 없었다. 어쩌면 엘레나의 환술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걸린 척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

유리아는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헤플을 구속한 그림자 사슬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악마의 힘이 요동친다. 나는 헤플을 노려보다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좀비처럼 서 있던 엘프들의 안색이 점차 좋아졌다. 피부 위에 나타났던 검은 반점도 빠르게 사라졌다.

역병에 시달리며 수척해진 상태는 변하지 않았으나, 그건 편하게 휴식을 취하면 해결될 문제였다.

‘일단 엘레나의 환술에 재대로 걸렸군. 일시적이더라도 엘레나가 소환된 동안 계속해서 환술을 걸면…. 아니지. 그 이전에 유리아가 할 건 다 할 테니… 저놈에 대해선 신경 꺼도 되겠지.’

나는 벨라에게 고개를 돌렸다. 믿고 있던 역병의 악마가 저 꼴이 났으니,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벨라는 입을 벌리며 경악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보듯 헤플에게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다. 얼굴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눈동자는 시도 때도 없이 흔들린다. 데미테라는 두 눈을 빛내며 벨라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걸 어쩌나. 네가 믿는 악마는 내 충실한 개가 되었는데.”

“…….”

한껏 비아냥거렸으나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정신적인 충격으로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해해주기로 했다. 보아하니 벨라는 자신의 남동생보다 악마를 더 믿고 있었던 듯하니.

엘레나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엘프의 역병은 해결했다. 남은 건 비트라세 군대지. 어떻게 할 거지?”

나는 비트라세 군대를 바라봤다. 병사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대부분이 역병에 걸렸고 오늘이 지나면 사망할 것이다.

“나는 공적과 명성이 필요해.”

“악마를 잡은 공적인가. 이 세계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최상급 악마를 잡은 공적은 아마 대단하겠지.”

“아니. 그건 묻으려고. 그런 소문이 퍼지면 이 세상에 숨어 있는 악마 놈들이 내 영지로 쳐들어올 수도 있잖아. 비트라세 군대를 격퇴하고, 엘프들을 구원했다. 딱 그 정도의 공로면 충분해.”

눈앞의 병사들은 비트라세 왕국의 마지막 군대라 할 수 있다. 이 군대를 박살 냈다는 건, 비트라세 왕국에 치명적인 피해를 내가 입혔다는 것이 된다. 엘프라는 증거물이 있으니 누구도 내 업적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알려졌으니… 즉, 내가 이들의 기억을 조작해야 한다는 거군.”

“몇 명까지 가능해?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는 아니어도 돼.”

“…간단한 기억 조작이다. 악마가 모습을 드러낸 지 30분도 안 지났으니 오래된 기억도 아니고…. 3,000명 정도는 가능하겠군.”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비트라세 군대를 가늠했다. 땅이 터지고, 역병으로 인해 지금도 병사들이 급속도로 죽어가고 있다. 살아 있는 병사는 약 5,000명 정도다.

‘엘레나가 내일 완전 회복을 사용하면 5,000명 전원의 기억 조작이 가능하지만… 시간 적으로 비효율적이야. 그리고 3,000 명 정도가 살아남는 편이 내 업적에 더 도움이 되겠지.’

전부 죽이면 내 업적을 의심하는 놈들이 생긴다. 3,000명은 증인이었다.

“엘레나 2,000명을 더 죽이자.”

“…결론을 내렸나. 역병의 악마의 힘을 사용하면 될 거다.”

나는 유리아에게 손을 들었다. 이미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유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역병의 악마가 권능을 사용한다. 병사들 사이를 떠도는 역병이 한층 더 강해졌다. 병사들이 빠르게 죽어 나갔다.

“살려, 살려 주십시오!”

“아아악! 배가 아파! 배가…!!”

“도, 돌아가야 하는데. 이런 데서 죽을 수는… 으아아악!”

병사들이 빠른 속도로 죽었다. 수만 명의 생명을 한 번에 앗아갈 수 있다는 헤플의 말은 사실이었다. 2,000명이 죽기까지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만, 그 대가로 헤플은 바닥에 누워 헉헉 거렸다.

“…….”

뒤쪽에서 두려움이 가득한 시선이 느껴졌다. 엘프들의 시선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두려움을 사두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테니까.

엘레나는 3,000명의 기억을 조작했다. 3,000명의 병사들은 바닥에 꿇어앉았다. 그들의 몸에서 역병이 사라졌다. 유리아는 악마들을 데리고 어느 집 안으로 들어갔다. 병사 하나를 집어 심문한 결과 환술은 완벽하게 먹혔다. 병사들은 악마에 대해 몰랐다.

“이번 전쟁은 내가 이겼다. 특별히 너희 3,000명의 병사들에겐 자비를 베풀어주마. 단, 장군은 예외다.”

가장 뒤쪽에 있는 장군을 끌어와 병사들의 눈앞에서 목을 쳤다. 부관으로 보이는 자에게 그 머리를 던졌고, 부관은 공포에 덜덜 떨었다.

“숲에서 꺼져라.”

“자,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러갔다. 무기나 갑옷을 버리고 가는 자들도 속출했다. 나는 엘프들을 시켜 장비를 회수했다. 시체의 것까지 합하니 주머니가 두둑해진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강철값이 계속 오르고 있지. 완전 개이득이군.’

약간의 보너스를 얻은 기분이었다.

“유진. 엘프들의 기억은 내버려둬도 괜찮나?”

“괜찮아.”

엘프들은 내 영지로 데려가서 철저하게 관리할 것이다. 내게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니 헛짓거리도 하지 못하겠지.

“나머지 정리는 엘프놈들이 할 테니… 이걸로 이번 일은 여기서 끝이야. 엘프도 4,000명 정도 살았으니 엘노아도 기뻐하겠지. 엘레나 같이….”

“미안하지만, 몸이 좋지 않다. 휴식이 필요하다. 완전 회복을 사용하지 못하니 죽을 맛이다.”

엘레나가 품위 없게 침을 뱉었다. 붉은색의 침이었다. 나는 그녀를 붙잡는 걸 포기했다.

나는 유리아가 들어간 집을 힐끔거렸다. 악마를 데리고 갔다. 바람을 타고 악마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유리아도 바쁘다. 포기해라.”

“후우. 그래야겠네. 급한 건 악마놈들에게서 정보를 얻어내야 하니까.”

뭐, 정보는 엘레나의 환술로 인해 쉽게 빼낼 것이다. 악마의 비명은 유리아가 여러 가지로 시험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엘프들과 함께 놀아 볼까.”

나는 히죽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미녀 엘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들은 모두 내 노예다.

엘레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짜증이 차오른 듯한 그녀는 괜스레 내 머리를 꾹꾹 눌렀다. 아프지는 않았다.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오히려 애무같은 느낌이 든다.

“말리지는 않겠다. 내게 그 권리가 없음을 안다. 그러나 그냥 넘어가기에는 내 마음이 좋지 않군. …적당히 해라. 적당히.”

엘레나는 그렇게 휴식을 취하러 우리가 머물던 숙소로 떠났다. 엘노아는 엘프들을 관리하느라 발에 땀이 차도록 달리고 있었다.

벨라는 데미테라가 알아서 조교할 것이다.

“너, 그리고 너. 그쪽에 있는 여자들까지. 전부 나를 따라와라.”

나는 엘프 미녀 10명을 데리고 적당히 큰 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

미러 터널을 통해 4,000명의 엘프들을 내 영지로 데려갔다. 나중에 엘프들을 어떻게 데려왔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대충 아무도 몰래 호송해서 데려왔다고 우기면 된다. 어차피 전쟁통이라 확인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지금 내 권위는 어지간한 귀족들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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