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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805/2,000)

〈 1025화 〉 1025.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나는 붙잡힌 3명을 바라봤다.

기절한 테리우스를 바라봤다. 전에 봤을 때보다 덩치가 커졌다. 유리아가 내게 다가와서 속삭였다.

“테리우스. 요즘 광전사라는 위명으로 소문이 자자한 남자입니다.”

“광전사?”

나는 테리우스를 다시 한 번 살펴봤다. 예전에 봤을 때는 그냥저냥 평범한 용병이었다. 좀 어린 감이 있었고, 주제도 모르게 내 네피아를 탐하던 놈이었다.

얼굴을 보면 예전의 형태가 남아 있으나, 몸은 우락부락하게 변했다. 근육이 바위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없었던 한쪽 팔이 존재했다.

“팔에서 악마의 힘이 느껴집니다.”

유리아가 말했다. 테리우스의 팔에 감각을 집중했다. 악마의 힘이라고 하는데 다른 뭔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하급 악마를 팔로 변형하여 붙인 듯합니다. 일종의 기생충에 가깝군요.”

땅에서 나타난 그림자 칼날이 휘둘러졌다.

서걱!

검은 피와 함께 테리우스의 팔이 잘렸다. 팔의 단면에 시커먼 촉수가 나타나 꿈틀거렸다. 팔이 위로 솟구치더니 나를 향해 날아오려다가 유리아의 단검에 꿰뚫려 땅바닥에 처박혔다. 유리아는 차가운 눈으로 팔을 노려봤다. 징그러운 벌레 같았다.

“특별할 것도 없으니 소각하겠습니다.”

유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불꽃이 일어나 테리우스의 팔을 태웠다.

끼에에에에에에엑!

하급 악마의 비명은 시끄러웠다.

나는 카일에게 시선을 돌렸다. 피부가 자주색으로 변해 있다. 몸이 구속된 상태에서도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다.

“유진…! 나는 널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유리아! 넌 지금 속고 있어! 유진을 죽이고 자유를 찾아! 아니, 나를 풀어줘! 내가 직접 이 일을 끝내겠어!”

카일이 비장하게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이 지랄이라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죽일까?’

고민됐다.

‘원래 상태로 돌리면 꽤 쓸만해 질 것 같은데.’

그리고 몇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내가 헤버스이트 산맥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냐는 점과 카일의 다른 부하들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여기서 카일을 죽여버리면 내가 쌓아왔던 입지가 흔들릴 수 있었다.

‘입지가 흔들리면 해야 할 일이 늘어나. 편하게 갈 길을 굳이 돌아서 갈 필요는 없지.’

나는 카일을 무시하고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올론드 글베트 남작과 눈이 마주쳤다.

“이거 참. 이렇게 뵙게 되는 군요, 유진 프루커스 남작님. 전 올론드 글베트 남작이라 합니다. 지금은 카일 님의 가신으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글베트 남작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아나운서의 것처럼 깔끔하고 듣기가 좋았다. 가수를 하면 대박이 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다.

“네가 카일을 조종했나?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 악마회 소속의 악마 계약자?”

“그렇습니다. 악마회 소속이며, 악마 계약자입니다. 숨김없이 인정했으니 고문 같은 야만스러운 일은 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내 질문은 아직 안 끝났으니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이지. 네 목적이 뭐지? 카일을 데리고 뭘 하려고 했지?”

“제 목적은 유진 님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아,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저는 딱히 유진 님에게 사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판테움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죠.”

“판테움이 나를 노리냐?”

“짐작 가는 일이 있으실 겁니다.”

벨라 휴트리스와 베인트 휴트리스가 떠오른다. 폴랭크의 숲에서 있었던 일을 나로 인해 방해받았으니, 악마회에서 나를 노리는 것도 당연했다. 눈엣가시 같을 테니까.

참고로 베인트는 죽였고, 벨라는 내 좆집이 되어 저택에서 생활 중이다.

“그런데 설마 오러 마스터를 쉽게 가지고 노는 실력자가 곁에 있을 줄이야…. 은발의 메이드를 조심하라는 말을 듣긴 했으나 이 정도의 강자 일 줄은 몰랐군요. 카일 님은 제가 봐온 그 어떤 이들보다 강했습니다만….”

“벨라가 나한테 당한 걸 알면서도 카일 하나를 보낸다고? 나를… 아니, 유리아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군.”

“과소평가했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벨라와 베인트는 순수 무력적인 측면만 보자면 별거 아니니까요.”

하긴. 베인트의 꼭두각시 능력은 여러 조건으로 인해 사용이 한정되어 있다. 벨라의 역병을 다루는 힘은 무시무시하지만, 대량살상에 특화되어 있을 뿐 개인적인 무력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악마회에 대한 정보는 더 캐묻지 않았다. 이미 원작을 통해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고, 벨라를 통해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냈다.

그것보다 호기심이 생기는 건 카일의 현 상태였다.

“유리아! 너는 속고 있어! 내가, 내가 구해줄게!”

구속된 지금도 유리아를 향한 집착을 보인다. 유리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카일을 무시했다.

“글베트 남작. 어떻게 저 상태로 만든 거지? 네 악마의 힘은 세뇌하는 능력인가?”

“바로 제 밑천까지 털려고 하십니까….”

“말하기 싫다면 좋다. 어디까지 버티나 한 번 시험해보지. 고통은 잘 참나? 손가락부터 시작할까?”

글베트 남작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죄송합니다! 제겐 고통을 견디는 재주 따윈 없으니, 사양하겠습니다. 제 능력이 궁금하십니까? 숨기지 않고 말씀해 드리지요!”

“이 새끼…. 날 가지고 장난치는 건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칼을 들고 위협하자 글베트 남작이 고개를 획획 내저었다. 흔들리는 눈동자와 흐르는 식은땀을 보니 정말 고문을 원하지 않는 모양이다. 뭐, 원하는 사람이 이상하긴 하다만.

“제가 계약한 악마는 상급 악마인 비트솔입니다.”

“…비트솔?”

“달리 욕망의 악마라고도 불립니다. 대상의 욕망과 감정을 눈으로 보고 자극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급 악마인 주제에 쓸모없는 능력이다. 라고 하기에는 카일의 상태가 완전히 맛이 가 있었다.

“유리아…! 내가 구해주겠어. 반드시…!”

카일 놈이 시끄러웠다.

나는 유리아를 향해 손짓했다. 유리아는 어떤 의심도 없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어깨와 뺨을 잡고 입을 맞췄다.

“으응….”

유리아가 콧소리를 내며 키스를 받아들였다. 혀와 혀가 질척하게 뒤섞인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유진!!! 떨어져라!! 유리아에게서 떨어져라!!”

구속된 카일이 발작하며 외쳤다. 나는 유리아와 키스를 조금 더 즐기다가 떨어졌다. 그녀와 내 입술 사이로 이어진 은색 실이 천천히 떨어졌다.

“꼭 그럴 필요 있었나?”

엘레나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카일의 반응을 살폈다. 아직도 씩씩거리고 있다. 눈이 뒤집히기 일보 직전이다.

“글베트 남작. 욕망을 보고 자극한다는 건…. 카일의 욕망을 자극했다는 것이 되나?”

“네. 카일 님은 그 은발 메이드에 대한 집착이 있었습니다. 본래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욕망을 자극하며 감언이설을 지껄인 끝에 그렇게 되었지요.”

“유리아와 관련된 일에는 제대로 된 판단도 내리지 못하는 것 같군.”

“바로 보셨습니다. 덕분에 컨트롤 하기 쉬웠습니다.”

유리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것만으로도 발작해서 또다시 소리 지른다. 처음에는 그래도 사람 같았는데, 지금은 짐승 같았다. 카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자색 기운이 심상치 않았으나, 유리아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처음부터 카일에게 접근할 생각이었나?”

“그건 아니었습니다. 사실 유망한 제후들 중의 한 명을 택해서 아래로 들어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카일 님을 보고 말았습니다. 뛰어난 실력에 비해 짙고 어두운 욕망을 보고 말았지요. 카일 님은 유망했으니 미래를 보고 투자했습니다. 카일 님이 프루커스 백작이 된다면 여러 가지로 일이 편해질 테니까요. 하지만 유진 님은 카일 님보다 더 뛰어나신 분이었습니다.”

글베트 남작은 살아남기 위해 아부를 하고 있었다. 만약, 글베트 남작이 예쁜 미녀였으면 혹했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는 남자였다.

나는 시큰둥한 얼굴로 물었다.

“카일에게 접근한 건 치밀한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었다는 거군.”

“네. 충동적인 행위에 가깝습니다. 판테움의 지시도 아닌 제 독단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글베트 남작의 선택은 성공이라 할 수 있다. 뭐라 해도 이 세계의 주인공은 카일이다. 글베트 남작은 당첨된 복권을 얻은 것이다. 다만, 카일이 집착하는 유리아가 지나치게 강했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욕망을 볼 수 있다면… 내 욕망이 뭔지도 보이겠지. 내 욕망이 뭐지?”

“…….”

글베트 남작은 두 눈에 힘을 주고 나를 바라봤다.

“성욕. 강한 성욕이 느껴집니다. 이토록 강한 성욕을 보는 건 난생처음입니다. 색욕에 미친 귀족을 봤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혹시 성욕의 저주라도 받으셨습니까?”

정확했다.

나는 잠깐 절대 정신에 대한 의구심을 느꼈다. 절대 정신이 발동 중인데 내 욕망이 남에게 들킨다?

‘…아니지. 욕망을 보는 것 자체는 정신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 발동하지 않은 건가.’

나는 글베트 남작에게 유리아의 욕망을 물어봤다.

“…그 메이드 분은 유진 님의 충실한 메이드입니다. 메이드가 품어선 안 되는 감정… 이라 하기에는 평범한 메이드 분이 아니지요. 어떻게 보면 카일 님과 비슷한 욕망이라 할 수 있겠군요.”

“엘레나는?”

“…흐음. 욕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둘입니다. 욕망이 없거나, 자신의 욕망을 완벽히 절제하고 있거나. 전자는 인간인 이상 불가능에 가까우니 후자 쪽이겠지요. 이거 참, 평범한 분이 없군요.”

질문은 끝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검을 들었다.

올론드 글베트 남작. 미녀도 아닌 남자인 그를 굳이 살려둘 필요가 있나? 카일처럼 후에 내게 도움이 될 거라고 보기 힘들고, 지금 당장 죽여도 뒤처리가 어렵지 않았다.

“자,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카일 님을 원래대로 되돌리려면 제 힘이 필요할 겁니다!”

“네가 죽으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나?”

“제 능력은 세뇌를 거는 능력이 아닙니다! 자극하는 능력일 뿐이지요! 카일 님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겠습니다! 그리고 유진 님을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판테움에 대한 정보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글베트 남작이 고개를 푹 숙였다. 넙죽 엎드리려고 했던 모양인데 몸이 구속되어 고개만 숙였다.

“그렇게 구차하게 굴어서라도 살고 싶나?”

“구차하더라도 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앞으로 있을 일들을 전부 버리고 죽고 싶지 않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유진 님.”

“카일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고 말했지. 며칠 걸리지?”

“일주일! 최소 일주일은 걸리는 일입니다!”

“어떻게? 이미 완전히 맛이 가버렸는데.”

“반대되는 욕망을 적당히 자극하면 됩니다. 이게 또 미세한 조율이 필요한 일인지라….”

글베트 남작이 내 눈치를 봤다.

나는 엘레나를 바라봤다. 엘레나의 능력이라면 카일을 원래대로 돌릴 수 있지 않을까.

내 시선을 느낀 엘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다. 나는 그의 원래 성격이 뭔지 모른다. 섣불리 환술로 건드렸다가… 더 이상하게 변할 수도 있다. 아니면 정신을 조작해 충실한 노예로 만들어 줄까?”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단점이 있겠지?”

“천재성이 사라질 수 있다. 참고로 경험담이다. 원하는 인재가 있어서 정신을 좀 주물럭거렸더니 천재성이 사라지고 범재가 되더군. …최악의 경우 실패해서 백치가 되는 일도 있었다.”

엘레나에게 부탁하는 걸 그만뒀다. 카일에게 천재성이 없다면 굳이 카일을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글베트 남작. 허튼짓은 하지 마라.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뭔지 알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게 되실 겁니다.”

카일이 원래대로 돌아오면 글베트 남작을 바로 죽여버리기로 했다.

나는 그를 뒤로하고 드래곤 로드의 유해로 몸을 돌렸다. 드래곤 로드의 심장을 찾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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