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1화 〉 1031.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유리아가 식장에 들어선 순간,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이곳의 주인공은 그녀이고, 그녀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으니까. 발광하던 카일마저 멍하니 유리아를 쳐다봤다.
유리아가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온다. 버진로드를 밟는 그녀의 발걸음은 가볍고 여유로웠다.
나는 단상 앞으로 나가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유리아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마주 잡는다. 그렇게 함께 단상 위로 올라갔다.
주례사인 엘레나는 심통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봤다. 그러나 결혼식을 망치거나 하진 않는다. 하기 싫은 일이라도 맡은 일은 확실히 하는 게 엘레나다.
“결혼을 축하한다. 결혼 생활은… 미혼인 내가 뭐라 말할 수 없군. 뭐, 너희면 알아서 잘하겠지.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지. 신부, 유리아 그레이스는 신랑인 유진 프루커스를 사랑하고 존중할 것을 맹세하나?”
“맹세합니다.”
유리아의 대답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튀어나왔다. 거짓을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평소의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더 없을 정도로 존중해주고 있으니까.
“신랑, 유진 프루커스는 신부인 유리아 그레이스를 사랑하고 존중할 것을 맹세하나?”
“맹세합니다.”
이 대답 이외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나 결혼의 과정. 형식적인 일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들뜨는 걸 느꼈다.
“그런가. 그럼 이제 키스라도 해라. 몇 번이나 했으니 익숙하겠지?”
시큰둥한 엘레나의 목소리에 웃음이 나올 뻔했다. 힐끗, 유리아의 안색을 살폈다. 유리아는 엘레나의 태도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유리아와 마주하고 키스했다. 입술이 천천히 부딪힌다. 물론 혀를 섞었다. 다만, 결혼식인 만큼 얌전하게 섞었다. 유리아의 촉촉한 입술을 바라보던 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읍! 으으으읍! 읍!”
거슬리는 소음에 고개를 돌렸다. 구속된 카일이 다시 발광하고 있었다. 나는 이참에 유리아를 꽉 끌어안았다.
“아….”
유리아의 작은 반응과 함께 주변의 하객으로부터 놀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카일이 크게 발작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떨어져라. 신성한 결혼식에 무슨 짓이냐. 거기 신랑, 은근슬쩍 신부 엉덩이 만지지 마라.”
“안 만졌어.”
나는 투덜거리며 엉덩이에서 손을 뗐다. 엘레나의 환접술로 욕망을 억제하지 않았다면, 여기서 유리아를 덮쳤을지도 모른다.
이후에는 평범한 결혼식처럼 진행되었다. 메이드들의 축가가 있고, 어린 메이드들이 꽃가루를 뿌렸다.
그리고 엘레나가 나를 향해 작고 고급스러운 상자를 건넸다.
반지는 아니었다. 반지는 이미 유리아가 착용하고 있었다. 예전에, 내가 그녀에게 건네주었던 반지다. 나는 지금껏 한 번도 저 반지가 유리아의 손가락에서 빠져나간 걸 본 적이 없다.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상자 속에는 푸른색 작은 보석이 고풍스럽게 놓여 있었다.
“그건….”
“드래곤 로드의 심장이야. 유리아. 지금 이 결혼식은 예행연습에 불과해. 진짜 결혼식은… 밖에 나가서 해야지?”
“…….”
나는 긴장했다. 여기서 유리아가 내 의도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면 큰일이었다. 그녀가 다시 광기의 유리아로 변하는 건 사양이다.
“네. 주인님. 밖으로 나가야죠.”
유리아가 웃는다. 드래곤로드의 심장을 거부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주인님이라 부르지 않아도 되는데.”
“신랑님이라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하지만… 역시 전 주인님을 주인님이라 부르는 게 가장 편해요. 다른 호칭은 나중에….”
드래곤 로드의 심장을 집었다. 파란색 보석처럼 생겨서는 질감도 보석처럼 딱딱했다.
나는 보석을 유리아의 입에 가져갔다. 유리아의 앵두 같은 입술이 벌어지고 그 안으로 파란색 보석을 넣었다. 혀 위에 안착한 보석이 스르르 녹아내려 그녀의 몸으로 흡수된다.
끝났다.
심장의 힘은 그녀가 흡수하게 될 것이다.
‘…뭐지? 왜 심상 세계 밖으로 나가지 않는 거지? 원작에선 바로 나가지 않았던가?’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엘레나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저 하늘을 봐라. 끝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1시간? 그 정도면 이 심상 세계도 완전히 무너질 테지.”
엘레나의 말대로였다. 하늘의 끝에서부터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무너진 하늘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로 무너지지 않는 건 아마도 이 심상 세계가 유리아 한 명으로만 이루어진게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외의 원인으로 짐작 가는 게 없다.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 글베트 남작이 말한 악마 새끼. 비트솔이라 했던가? 그 새끼는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군. 글베트 남작이 말한 대로의 성향이라면 납득 되기는 한데….’
혹시 모른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나타나 초를 칠지도. 악마를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으니. 나는 마지막까지 경계를 풀지 않았다.
이후에는 결혼식의 뒤풀이, 식사였다. 결혼식 식사하면 당연히 뷔페였다. 그러나 나와 유리아는 식사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여러 사람이 우리에게 찾아와 인사를 건넸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가짜이고, 이 결혼식도 덧없이 끝날 테지만, 나와 유리아는 그들을 무시하지 않고 상대했다.
“결혼 축하하네.”
“잘 어울리는 한 쌍이군.”
“세리온 여신의 축복이 자네들에게 내리기를 기도하지.”
마지막으로는 나와 유리아는 카일에게 다가갔다. 구속은 그대로 두고 입만을 풀어줬다.
“유진!!! 네가 있는 그 자리! 그 자리는 내 것이다! 유리아는 내 옆에 있어야 한다!!”
“그건 네 바람에 불과하고. 유리아는 내 옆에 있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유리아가 내 왼팔을 잡고 팔짱을 꼈다. 구속된 카일이 우리를 올려다본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니다! 이건 아니야! 전부 가짜다! 저기 봐라! 하늘이 무너지고 있어! 이 세계는 모두 가짜다!”
“이 세계나 저 사람들은 가짜일지 몰라도 우린 진짜야. 네가 아무리 부정하더라도 변하지 않아.”
“으응…. 주인님….”
나와 유리아는 카일의 앞에서 입을 맞추었다. 혀와 침이 뒤섞이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날 정도로 진한 키스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카일이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지른다.
“현실에서도 결혼할 거니까 잘 부탁한다고, 카일 형.”
“잘 부탁합니다. 아주버님.”
“아니야!! 아니야!!!! 유리아!! 너는…!”
세상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유리아가 있었다. 이미 엘레나나 글베트 남작, 테리우스는 사라졌다. 나는 이 심상 세계가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유리아와 키스했다.
???
현실로 돌아왔다.
나는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모양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카일이 또 발광한다. 그러나 구속되어 있어서 소리 지르는 것이 전부였다.
“죽인다! 죽인다! 죽여버리겠다, 유진 프루커스!!”
테리우스였다. 카일과 마찬가지로 구속되어 있다. 팔 없는 병신인 주제에 내게 증오를 불태운다. 광전사로 유명하다지? 웃기지도 않는다. 이딴 놈이 무슨.
테리우스의 대가리를 발로 찰 생각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몸에 있던 힘이 평소보다 더 넘쳐나는 걸 느끼고 멈칫했다.
뱃속에서 기운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건. 드래곤 로드의 심장을 봤을 때 느꼈던 기운과 비슷하군. 설마, 드래곤 로드의 심장을 내가 흡수한 건가?!’
내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겨우겨우 유리아에게 심장을 먹였다. 그런데 마지막에 발생한 변수 때문에 유리아가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다? 최악이었다.
나는 몸을 획 돌려 유리아를 찾았다. 유리아는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두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그녀의 주위로 시커먼 그림자가 조용히 회전한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드래곤 로드의 심장의 기운이다. 내가 가진 것보다 못해도 30배는 많은 기운.
‘…그런가. 내가 가진 건 일부일 뿐이었나. 다행히 유리아에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닌 모양이야.’
계획은 진행되고 있었다.
드래곤 로드의 심장의 기운이 내 몸속에 들어온 이유는 아마도 심상 세계에서 유리아와 했던 키스가 원인일 것이다.
내게는 기연이 찾아온 것이다. 지금 나는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잡는다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 있으리라.
나는 배를 문질렀다. 드래곤 로드의 심장의 기운이 느껴진다. 유리아처럼 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흡수해야 한다.
“엘레나. 미안한데 뒤처리 좀 부탁할 수 있을까?”
“흐음. 어렵지 않은 일이지. 헌데 이놈은 어떻게 할 거지?”
엘레나가 바닥을 보며 말했다. 엘레나의 발아래에 특이한 쥐가 있었다. 50cm도 되지 않는 크기에 몸과 머리는 생쥐이며, 등에는 파리 날개 두 쌍이 돋아 있고, 검은색 꼬리는 십자가 형태다.
저런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으니 그 정체는 악마일 것이다. 이 근처에 있는 악마라고는 하나밖에 없다. 욕망의 악마, 비트솔.
“찍, 찍찍…. 이봐, 엘레나라고 했던가? 나와 계약하지 않겠나? 보아하니 환술사인 것 같은데… 내 권능과 무척 잘 어울리겠군. 나는 사람의 욕망과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 대상의 욕망을 보는 것도 가능하지. 그 권능을 너도 사용할 수 있는 거다.”
확실히 욕망의 권능은 엘레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정작 엘레나는 악마의 권능에 눈곱만큼도 관심 없어 보인다. 아니, 그걸 넘어 엘레나는 분노하고 있었다. 악마의 제안 그 자체가 그녀에겐 모욕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있다. 악마, 신, 정령…. 나는 너 같은 놈들이 싫고, 너의 힘 따윈 조금도 바라지 않는다.”
엘레나가 발에 힘을 주었다.
“끄아아아악….”
비트솔이 고통에 몸부림친다.
“으아아아아아아!! 유리아!!!!!”
“유진!! 널 죽이고 네피아를 구하겠다!! 죽인다, 유진!!”
“으흐흐흐…. 다 의미 없어. 의미 없다고…. 죽고 싶다…. 누군가 날 죽여줬으면….”
카일과 테리우스, 글베트 남작이 폭주했다. 비트솔이 권능을 사용한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점에서 성가신 권능이다.
‘아무렇지 않군. 들끓는 성욕도 없고…. 심상 세계에서랑은 달리 절대 정신이 제대로 발휘하고 있어.’
내가 괜찮으니 유리아도 괜찮을 것이다.
걱정되는 건 엘레나인데,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완벽히 절제하고 있어서 그런지 동요가 전혀 없다. 다만, 그녀의 발에 실린 힘이 점점 강해진다. 이대로는 악마가 밟혀 죽을 것이다.
“엘레나! 멈춰!”
“멈췄다.”
그 말하기 전에 악마의 날개 두 장이 뽑혀 나간 뒤였다. 죽지 않았으니 됐다.
“일단 악마는 죽이지 말아봐. 따로 악마를 가둬놓고 고문하는 곳이 있거든. 거기에 집어넣을 생각이야.”
“아. 거기 말인가? 끔찍한 곳이긴 하더군. 알았다. 이 악마는 거기에 넣어두지. 나머지도 감옥에 하옥하겠다.”
“그렇게 해줘, 고마워.”
“너는 여기에 있을 셈인가 보군.”
“유리아가 이러니 지켜봐야지. 그리고 나도 시간이 좀 필요하고.”
내가 없더라도 누군가가 유리아를 건들 일은 없을 것이다. 여기 근처에 사람은 없었고, 몬스터나 괴물은 이미 한 차례 소탕해놨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유리아의 주위에 있는 그림자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내 남은 소환 시간은 3일 정도군. 그 나머지 시간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하겠다. 상관없겠지?”
“원하는 대로 해. 너무 큰 사고는 치지 말고.”
“내가 너인 줄 아나. 그저 조용히 쉬다 갈 생각이니 걱정 말도록.”
엘레나 주위로 파란색 나비가 팔랑였다. 엘레나가 손가락을 튕기자 카일과 테리우스, 글베트 남작과 비트솔이 전부 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엘레나도 사라졌다.
이곳에는 이제 나와 유리아만이 남았다.
나는 유리아에게서 약간 떨어진 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오러 마스터의 경지를 넘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