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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3화 〉 (813/2,000)

〈 1033화 〉 1033.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저택으로 돌아온 나는 메이드들의 두 눈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는 걸 알아차렸다. 특히나 나와 유리아를 번갈아 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심상 세계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이 세계에서 떠난 엘레나가 메이드들에게 떠벌린 것이 틀림없다.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주인님.”

메이드들이 치맛자락을 잡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저택 입구에서부터 양옆으로 도열하여 일제히 인사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특히 그녀들은 하나같이 미모가 뛰어난 미녀들이라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뽕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이래서 대기업 회장들이 직원들의 인사를 받는 건가 싶을 정도다.

“그래. 별일 없었지?”

“북쪽으로 떠났던 군대가 승전 후 귀환 중입니다. 그리고… 엘레나 님이 떠나셨습니다.”

메이드장 대리인 네피아가 대표로 말했다.

군대의 승전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기에 놀랍지 않았다.

‘이걸로 라펠리 왕국의 승리는 확실시되었군. 전쟁이 완전히 끝나면 라펠리 왕국은 제국을 칭해도 될 정도로 커지겠지.’

라펠리 왕국은 곧 몸살을 앓을 것이다. 공주와 왕자가 후계자 위를 두고 다툴 것이다. 원작과 다르게 그 시기가 좀 늦어지고 있으나, 결국은 일어날 것이다. 왕좌에 앉을 수 있는 인물은 오직 한 명뿐이니까.

“주인님. 엘레나 님께서 선물을 남기고 가셨어요!”

네피아가 살짝 흥분한 기색으로 말했다.

“선물?”

“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주인님도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엘레나가 뭘 남기고 갔는지 궁금했기에 순순히 네피아의 뒤를 따라갔다. 네피아가 안내한 곳은 1층 홀이었다. 홀의 중심의 벽에 커다란 액자가 하나 걸려있었다.

턱시도를 입은 나와 웨딩드레스를 입은 유리아의 사진이었다. 심상 세계에 있었던 결혼식의 한 장면을 커다란 사진으로 남긴 것이다. 물론 사진 같은 건 찍지 않았지만, 엘레나의 능력이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정말 아름다운 사진이에요! 심상 세계에서 결혼식을 올리셨다죠? 두 분, 결혼 축하해요.”

“결혼 축하합니다!”

네피아를 필두로 메이드들이 소리쳤다. 나는 어쩐지 부끄러워서 머리를 긁적였고, 유리아도 뺨을 살짝 붉혔다. 그녀의 시선이 사진에 머물러 있는 걸 보니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다.

“미안한데 결혼식은 또 할 거야. 두 번 정도?”

한 번은 저택 내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결혼식이다.

다른 한 번은 저택 밖. 프루커스 백작은 물론이고 온갖 귀족들을 초대해서 올리는 결혼식이다.

따로 결혼식을 두 번이나 하는 이유는 저택 내의 메이드들을 홀대하지 않겠다는 내 의지이기도 했다. 애초에 저택 밖에 있는 놈들은 아무래도 좋지만… 사회적인 직위라는 것도 있다.

‘결론적으로 유리아와 3번이나 결혼식을 하게 되는군.’

유리아는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 기뻐하는 눈치였다.

나는 이 계획을 네피아에게 알렸다. 두 번째 결혼식은 이주 후에 올릴 예정이었다. 좀 촉박한 스케줄이긴 한데 내 저택의 메이드들이면 가능하다. 유리아가 메이드들을 전두지휘 할 테니 마음만 먹으면 일주일 내로도 준비가 끝나지 않을까 싶다.

“알겠어요, 주인님!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결혼식을 준비할게요!”

네피아는 자기 일도 아닌데도 의욕에 불탔다. 네피아가 허례허식을 좋아하는 편이라는 걸 깨닫는다.

“아 참, 엘레나 님의 선물은 이게 끝이 아니에요.”

“남기고 간 게 더 있었나?”

“네. 그건 특별해서 지하에 따로 공간을 만들었어요.”

지하에 따로 공간을 만들 정도의 선물이라.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네피아의 안내를 받아 지하에 간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하 공간. 그건 와인 저장고였다. 마법으로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곳. 약 10,000개에 달하는 와인이 이곳에 저장되어 있었다. 나는 저장된 와인병 하나를 들었다. 마개로 막혀 있는 와인병 내부가 출렁인다.

“엘레나 님이 손짓하니 허공에서 갑자기 와인들이 나타나서 정말 놀랐어요. 직후에 엘레나 님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셨지만요….”

병 표면에 붙어 있는 라벨을 확인했다. [신의 아틀란티스] 세계 내에서도 최고급에 속하는 와인이다.

“그리고 엘레나 님이 떠나시기 전에 특별히 조심히 다뤄야 한다고 몇 번이나 당부하신 와인이 있습니다.”

저장고의 중심에 있었다.

총 100병.

나는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디오니소스의 포도주.

마시는 순간 마나가 상승하는 특별한 와인이다. 그리고 맛도 향도 완벽에 가까운 와인.

나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파악했다.

‘엘레나는 떠나기 전에 한계 돌파를 사용했어. 그리고 자신의 수명을 전부 불태웠겠지.’

한계 돌파를 사용해서 패널티 없는 힘으로 환접술을 사용해 수명을 전부 불태우고, 다시 완전 회복을 사용한 후에 다시 환접술을 이용해 와인을 만들었으리라.

그게 아니면 이 어마어마한 양의 포도주는 말이 되지 않는다. 특히나 디오니소스의 포도주가 무려 100병이다.

‘나중에 엘레나에게 감사해야겠군.’

디오니소스의 포도주는 보다 건설적인 일에 사용하기로 했다. 일 잘하는 메이드나, 재능있는 메이드에게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하사하면 좋아하겠지.

“이 와인들은 이주 뒤에 있을 결혼식에서 사용하자.”

“네. 주인님. 그렇게 할게요.”

최고급 와인이라 해서 아끼면 똥 된다. 사용해야 할 때 사용해야 한다.

나는 디오니소스의 포도주 한 병을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몇 병 정도는 내가 마셔도 상관없겠지.

???

메이드들이 결혼식을 준비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그동안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사로잡은 카일 일행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유리아는 욕망의 악마인 비트솔을 고문한 끝에 카일을 원래대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글베트 남작은 강한 욕망을 자극하는 것에 그쳤지만, 악마인 비트솔은 작은 욕망을 자극하거나, 부풀어 오르는 욕망을 반대로 작게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비트솔은 카일의 욕망을 진정시키는 것으로 카일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감옥의 중심에 멍하니 앉아 있던 카일은 내가 들어오자마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유진아. 면목없어. 악마에게 농락당해 온갖 추태를 벌이다니…. 난 형 실격이야.”

카일이 감옥 바닥에 앉아 우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물론 동정심은 일어나지 않았다.

“반성하고 있는 건 맞아?”

“…네가 날 죽이더라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 네가 내게 어떤 처분을 내리든 담담하게 받아들이겠어.”

“내가 형을 죽인다고 해도 말이지?”

“상관없어. 나는 널 죽이려고 했으니까…. 뭣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게.”

카일이 고개를 푹 숙였다.

연기는 아니다. 이곳에 오기 전 비트솔을 이용해 카일이 가진 감정인 후회와 슬픔을 자극했으니까. 그렇다고 너무 자극하진 않았다.

‘욕망과 감정을 너무 자극하면 극단적으로 변해버리지. 예를 들어 심상 세계의 유리아처럼. 카일을 너무 자극하면 자살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비트솔의 권능을 잘만 이용하면 카일을 내 손아귀에 넣고 이용할 수 있다. 글베트 남작이 카일의 유리아에 대한 욕망을 이용해 조종했듯이 말이다.

물론 꽤 힘들긴 했다. 카일은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그러나 감옥에 갇히면서 약해진 정신력과 내게 존재하는 부정할 수 없는 명분이 카일을 조종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건 안 되지. 속죄가 너무 쉽잖아.”

“…유진. 너는 내가 살아서 고통받기를 원하는구나.”

“당연하지. 죽는 건 너무 쉽잖아.”

“내가 뭘 했으면 좋겠어?”

카일이 힘없이 말했다.

“우선 후계자 지위를 사퇴해. 그리고 날 지지할 것.”

“…알았어. 어차피 판세는 네게 기울었으니까. 다만… 젠트 형이 쉽게 납득 하지 않을 거야.”

그건 안다. 젠트의 성격이라면 끝까지 날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젠트라면 마지막까지 비열한 수까지 쓸 것이라 예상한다.

‘당해줄 생각은 전혀 없지.’

내겐 그랜드 마스터인 유리아가 있다. 설령 유리아가 없더라도 젠트 따위에게 당할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두 번째. 형은 기사가 되어 줘야겠어. 가문이 아니라 내게 충성을 바쳐.”

후계자 싸움에서 패배한 귀족이 기사가 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다만, 프루커스 같은 대영지는 조금 다르다. 영주 일부는 떼서 준다. 내가 테브라 항구 도시를 받은 것처럼.

“네게 충성을…?”

“왜 동생을 섬기려는 마음에 안 들어?”

“그게 아니야. 유진, 넌 내 동생이지만, 나보다 훨씬 대단해. 충성을 바치고 섬기는 것에는 불만 없어. 다른 사람들도 인정할 거야. 다만… 내겐 꿈이 있어.”

“유리아?”

“아, 아니야!”

카일이 당황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유리아에 대한 마음은 포기했어. 유리아는 이미… 너를 확고하게 사랑하고 있으니까. 내가 너희 사이에 들어갈 자격은 없어.”

“그걸 이제야 알았다고?”

“……하아.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카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카일의 꿈이라고 한다면 그거일 것이다.

“화산파?”

“맞아. 화산파. 예전에 네게 말했었지. 너는 날 도와준다고 했지만… 우리 사이가 이렇게 돼버렸으니…. 그래도 나는 아직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어.”

“도와줄게. 단, 내게 충성을 바쳐.”

오히려 잘 됐다.

화산파가 내 손아귀에 있으면 더 좋다.

화산파는 무력집단이니 기사단처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도와준다면… 화산파는 무사하겠지. 알았어. 네게 충성을 바치겠어.”

드디어 카일이 손에 들어왔다. 나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내렸다.

내겐 유리아가 있지만, 유리아의 몸은 하나고, 대부분 내 옆에 있어야 한다. 유리아를 제외하고 사용할 수 있는 패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카일 프루커스. 내게 충성을 증거로서 고개 숙이고 무릎 꿇어라.”

근엄하게 명령했다.

카일은 군말 없이 내 말대로 따랐다. 그는 무릎 꿇고 이마를 땅에 박았다.

“카일 프루커스. 앞으로 주군의 검이 되겠습니다. 제 충성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입니다.”

카일의 안색이 밝아졌다. 나를 향한 죄의식이 약간이지만 희미해진 것이다.

“카일 형. 근데 이걸로는 부족해. 형은 나를 죽이고 유리아를 빼앗으려고 했어. 그런데 고작 충성 맹세만으로 끝내기엔 좀 그렇잖아. 글베트 남작에게 조종당했다고? 형이 제대로 대처했다면 조종당하지도 않았겠지.”

“…유진. 네 말이 맞아. 나는 품어선 안 될 감정을 품은 거야. 욕망하나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다니…. 나는 화산파의 무인으로서도, 도인으로서도 실격이야.”

카일이 자책했다.

“형.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왼팔을 잘라.”

“…왼팔을….”

“오른팔은 검을 쥐어야 하니 봐줄게.”

카일의 두 눈이 흔들린다. 그러나 곧 내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유진. 나는 못난 형이었다. 그리고 겨우 왼팔 하나로 용서해줘서 고맙다.”

나는 감옥 속에 검을 밀어 넣었다.

카일은 검을 쥐고는 그대로 왼팔을 잘랐다.

“크으으윽!”

툭.

피와 함께 그의 왼팔이 떨어졌다. 점혈로 지혈한 카일은 식은땀을 잔뜩 흘리며 검을 감옥 밖으로 내밀었다. 팔은 철창에 막혀서 불가능했다. 나는 철창을 열어 팔을 회수했다. 카일은 얌전했다.

“카일 형. 당장 형을 여기서 풀어줄 수 없어.”

“이해해. 그리고 난 괜찮아. 여기서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해야겠어.”

“참고로 다음 주에 유리아랑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어.”

“…결혼식을 또? 아니, 그렇구나. 그때는 심상 세계였지.”

카일이 필사적으로 표정 관리를 하는 게 보였다. 역시 아직 유리아에 대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래 봤자 유리아가 카일을 바라볼 일은 없겠지만.

“총 두 번을 더 할 거야. 이번 결혼식은 저택 내에서 단출하게 진행될 거고, 두 번째 결혼식은 공식으로 화려하게 진행될 거야. 형은 미안하지만, 첫 번째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감옥에 있어 줘. 이 결혼식은 어디까지나 저택 내의 사용인들을 위한 이벤트에 가깝거든.”

“…그래. 알았어. 결혼 축하한다. 유진.”

나는 뒤로 돌아 떠났고, 카일은 두 눈을 감아 운기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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