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8화 〉 1058. 신위
회귀한 뒤, 내가 가장 고민한 것은 다른 것도 아닌 수월 길드였다.
광원교에 대해선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이미 증거도 있고, 무력적인 측면에서 수월 길드처럼 대단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광원교는 시작부터 비호감이다. 증거가 있으니 협회를 설득하기도 쉽다.
반면에 수월 길드는 사회적 지위, 가지고 있는 무력 등등. 광원교에 비해 건들기 어렵다. 함부로 적대했다가 당하는 건 내가 될 것이다.
‘수월 길드는 내가 자신들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걸 몰라. 내가 적인지 모른다는 거지. 그 이점을 살려야 해.’
수월 길드 모르게 수작을 부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내게는 그 카드가 있었다.
아마츠카 코요리. 나를 풍신이라 철썩같이 믿고 있는 일본의 S급 헌터.
‘현재 내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회귀로 인한 미래의 정보야. 대놓고 나설 수는 없지만… 예언이라는 형태로 신탁을 내리면….’
코요리의 입지를 늘릴 수 있다.
일본의 정치인들도 코요리에게 매달리게 될 것이다. 일본 멸망이라는 단어를 언급함으로써 겁을 줬으니 믿을 수밖에 없다.
‘일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풍신으로서 천벌을 내려야지.’
전염병이라는 무시무시한 천벌을 말이다.
[전염병 제조 카드
원하는 전염병을 제조할 수 있습니다.
제조된 전염병은 30일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가격: 600,000 포인트
※주의
30일이 지나더라도 전염병에 걸린 상태는 해제되지 않습니다.]
이 아이템이 있는 이상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일단 일본이 어떻게 나오는가는 지켜봐야겠지.’
코요리가 잘할 거라고 믿는다.
‘그 다음은 일본을 이용해 수월 길드에 퍼주는 거지.’
목적은 수월 길드가 비리를 저지르게 하는 것. 수월 길드는 자존심 높고 탐욕스러운 놈들이다. 이미 남들 모르게 일본과 거래를 하고 있으니 별다른 의심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배불리 먹여준 다음에 까발리는 거지.’
수월 길드를 씹어 죽일 매국노로 만드는 것!
수월 길드는 한국 길드다. 일본에 좋지 않은 감정과 역사를 가진 한국! 일본과 관련된 매국 행위에 민심은 단숨에 땅으로 추락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 업적이 있더라도 일본을 향한 매국은 선을 넘어도 수십 번을 넘은 짓이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어.’
???
나는 박수호와 함께 부산으로 내려왔다. 광원교 한국 지부는 부산에 있었다.
대놓고 광원교에 잠입하는 건 좋지 않은 방법이다. 광원교의 지부들은 모두 교주와 연락이 닿아 있으니까. 박수호의 존재는 둘째치고 내 존재를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형. 여신님께서 광원교를 조심하라고 당부하셨어요.”
“알아. 조심하고 있어. 그래서 이렇게 복면까지 썼잖아.”
우리는 자동차 내에서 복면을 썼다. 누가 보면 은행강도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수상한 차림새였다.
부산에 있는 광원교의 건물은 두 개였다.
하나는 수련회장. 회귀 전에 갔던 그곳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였다. 무려 4층짜리 빌딩 전체가 광원교 교회다.
“형. 근데 왜 수련회장으로 가요? 교회로 가는 게 맞지 않아요?”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건 어려우니까. 그리고 내가 봤을 땐 대놓고 있는 건물인 교회보다 숨겨져 있는 수련회장이 진짜일 가능성이 커.”
“하긴. 도시 거리에 있는 건물보다는 숨겨진 건물에서 사람을 세뇌하기 더 편하겠네요.”
우리는 수련회장 건물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렸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들키니 여기서부턴 걸어서 움직이자.”
“형은 뭔가 익숙해 보이시네요. 길도 잘 아시고.”
“철저하게 조사했으니까.”
“절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주다니…. 고마워요, 형.”
박수호가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씩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줬다.
“내가 아끼는 동생이 고생하는 데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지금부터는 진짜 조심해. 조사해보니 광원교는 엄청 수상한 곳이니까. 위험한 냄새가 풀풀 나더라고.”
“여신님의 경고도 있으니 조심히 움직일게요.”
수련회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은밀하게 움직였다.
우리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박수호의 원본 섹스 파티 영상을 찾아 없애는 것. 두 번째는 광원교의 미친 짓에 대한 증거를 가져가 광원교를 사회적으로 말살하는 것.
‘여긴 현실이라 죄다 학살할 수는 없어. 그리고 광원교의 진짜는 여기가 아니니 큰 의미도 없고.’
창문으로 수련회장 건물에 침입한 우리를 반기는 것은 이상한 무늬가 그려진 벽이었다. 사람을 세뇌하기 위한 무늬.
나는 재빨리 박수호를 쳐다봤다. 박수호는 눈을 찡그리며 벽을 노려봤다.
“기분 나쁜 무늬네요. 머리가 아픈 걸 보니 정신 공격? 비슷한 효과를 유발하는 것 같아요.”
“내가 볼 땐 아마 이게 세뇌일 거야. 보는 것만으로도 세뇌에 당하는 거지.”
“…영지에 신전을 건설하지 않았다면 진짜 위험할 뻔했네요.”
박수호는 혀를 찼다.
우리는 카메라로 벽을 찍고는 다시 은밀하게 움직였다.
강당으로 갔다. 강당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나는 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느끼며 씨익 웃었다.
‘역시 강당을 이용하고 있군. 수련회는 아닌 것 같긴 한데… 여기 만큼 기도를 올리기에 좋은 곳은 없지.’
아주 살짝. 들키지 않을 정도로만 문을 열고 강당 안을 살펴봤다.
알몸의 신도들이 강당 앞에 걸린 그림을 향해 조아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알몸이다. 단상 위에는 일곱 번째 인도자, 강지우가 있었다. 그녀 또한 알몸이었다.
‘자지에 피가 쏠리네. 쯧. 아는 보지 맛이라 더 괴로워. 강지우의 보지맛은 나쁘지 않았는데….’
그러나 지금 나는 강지우와 연관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는 멍하니 강당을 훔쳐보고 있는 박수호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에게 전음을 보낸다.
-증거 찍고 일단 물러나자.
화들짝 놀란 박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은 잔뜩 붉어져 있었다. 회귀 전과 달리 그는 동정이었다.
수련회장 근처 숲에 숨어 강당을 지켜봤다. 몇 시간이 지나자 수련회장에서 인파가 빠져나갔다. 광원교 신도들은 저마다 얘기를 나누며 숙소로 향한다.
“저들이 진짜 광신도일까요?”
“평범해 보여도 세뇌당했어. 건물 곳곳에 있는 세뇌용 물건들을 봤잖아. 방심하지 마. 평소에는 평범하게 생활하다가 광원교와 관련되면 갑자기 확 바뀔 테니까.”
“…엇, 저기 저 세 사람. 혹시 영상 속에 나온 그 여자들 아니에요?”
“석상 3개. 맞네. 저기 네 여친 지나간다.”
“아, 형! 놀리지 마요! 제가 저런 여자를 좋아할 리 없잖아요!”
강지우까지 강당에서 떠나는 것을 확인한 나는 박수호와 함께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내 촉으로는 말이야.?광신도들은 이 강당을 또 사용할 거야. 그러니 그때까지 강당에 숨어 있자.”
“다른 곳을 조사하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요?”
“조사할 곳은 이미 충분히 조사했어.”
숙소와 식당은 평범한 곳이다. 뒤져도 이상한 건 없다.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사무실을 뒤지는 건 밤에 하면 돼. 그러니 일단 여기서 차분히 기다리자. 강당은 숨기 딱 좋은 곳이니까.”
강당은 넓었다. 동시에 숨을 공간이 여러 곳 있었다. 구체적으로 강당 구석에 있는 창고라던가, 단상 위에 있는 커튼 뒤쪽이라던가.
“어디에 숨을 거예요?”
나는 고개를 까닥여 천장을 가리켰다. 커튼이 걸린 천장. 일반인이라면 올라가기도 힘들지만, 나와 박수호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그렇게 저녁이 지나고 밤이 되었을 때. 신도들이 들어왔다. 신도들은 알몸이 되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관리자들이 주위를 돌아다니며 촛불을 켜고 분위기를 만든다.
‘의식을 시작하는군.’
강지우가 걸어왔다. 나와 박수호는 침을 꼴깍 삼켰다. 망한 아이돌 출신인 그녀의 외모는 무척 아름다웠다. 그런 여자가 알몸으로 당당하게 걷는다. 남자로서 시선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강지우는 칼을 들고 춤을 추었다. 그녀의 춤을 멍하니 보던 박수호는 곧 나타난 가축과 고블린에 얼굴을 굳혔다.
“형. 저기 고블린이에요…!”
“알아. 잠자코 지켜봐.”
나와 박수호의 손에는 카메라가 상황을 녹화 중이었다. 화려한 춤을 추던 그녀의 칼이 가축과 고블린의 머리를 베어냈다.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광신이시여! 저희를 구원하소서!!”
“구원하소서!!”
의식을 끝낸 신도들이 옷을 입고 사라졌다. 나와 박수호는 그들이 사라진 뒤에 숨겼던 몸을 드러냈다.
“…가축과 고블린은 제물이겠죠? 광원교는 진짜 위험한 곳이에요. 여기가 지부라고 했죠? 광원교의 본교에서도… 이런 의식을 할까요?”
“당연히 하겠지. 아마 이거보다 더 심할걸.”
지금도 하고 있을 거다.
전 세계에서 납치한 인간을 2시간마다 죽이면서.
우리는 2시간 정도 강당에서 기다렸다. 신도들이 잠들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늦은 밤이 되어서 아무도 없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컴퓨터를 비롯한 자료들을 뒤졌다.
“찾았다! 형! 영상 원본이에요! 이 새끼들! 날 가지고 이딴 영상을 합성해? 대체 왜 날?!”
“네가… 그 뭐냐. 셀브레티나 여신의 선택을 받아서 아니야? 셀브레티나 여신이 광원교는 위험하다고 말했잖아. 그들도 너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
“…브라마센. 그 악신이 뒤에 있는 게 틀림없겠죠.”
여신이 브라마센에 대해서도 박수호에게 말해준 모양이다.
박수호는 별 의심 없이 영상을 지웠다. 저 원본 영상은 내가 해킹 스킬로 보내 놓은 것이지만.
“수호야. 이제 돌아가자. 아, 돌아가기 전에… 이 건물들은 박살 내야지.”
“네. 세뇌하는 힘은 너무 위험해요. 그리고 여긴 너무 불쾌해요.”
박수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나는 건물에 불을 질렀고, 박수호는 망치를 들고 건물을 부수기 시작했다.
소란이 일어나자 숙소에서 잠을 자던 신도들이 일어나 이쪽으로 달려왔다.
“이단이다!!”
“불부터 꺼!!”
“저놈들이다! 저놈들을 잡아!!”
“광신이시여! 저들에게 벌을 내리소서!!”
멀쩡해 보이던 신도들은 두 눈을 회까닥 뒤집으며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이지는 마.”
“기절만 시킬게요.”
우리는 신도들을 때려서 기절시켰다. 각성자는 없었기에 편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렸다. 강지우였다. 그녀는 불타는 건물을 보며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발광하고 있었다. 그녀의 충혈된 두 눈에 광기가 차오른다.
“이단 놈들이…!!!”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강지우는 어딘가로 뛰어가더니 칼을 손에 들고나왔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미친 듯이 뛰어온다.
그 속도는 일반인의 것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나도 위험할 정도로 빠른 속도다.
“형! 도망가요! 저 여자한테서 악신의 힘이 느껴져요!”
“그래. 할 건 다 했으니 도망가자!”
숲 속으로 도망갔다. 어두운 밤. 그리고 숲. 강지우를 따돌리기는 건 쉬운 일이었다.
주차해놓은 차를 타고 부산역으로 향했다.
“형. 다음은 어쩌죠?”
“인터넷에 영상 올리고 협회에 신고해야지. 영상은 내가 올릴게. 신고는 네가 해. 아, 영상 올린 것도 너라고 말해.”
“제가요?”
“신고하면 포상금 나와. 세뇌와 관련된 일이잖아.”
억대 빚이 있는 박수호의 얼굴이 솔깃해졌다.
“포상금…. 그거 제가 받아도 돼요? 형도 고생했잖아요.”
“난 돈 많아. 넌 빚도 있잖아. 돈 갚아야지.”
“…고마워요, 형.”
“뭘. 이 정도로. 아, 내가 연관되어 있다는 건 비밀이다. 알았지? 난 귀찮아지는 건 딱 질색이야.”
“네. 형. 안 귀찮아지게 해드릴게요.”
이걸로 이 일은 나와 관련이 없는 거다.
그리고 다음 날.
대한민국이 난리 났다.
가축과 몬스터를 제물로 의식을 진행하는 영상이 퍼지고, 세뇌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21세기에 제물 의식과 신도들을 세뇌하는 사이비 종교는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기에 충분했다.
나는 TV에 나오는 강지우를 발견했다. 놀랍게도 모자이크도 없었다. 그녀는 부산 광원교 교회에서 경찰과 협회 직원들을 상대로 농성을 펼쳤다.
“이, 이 천벌 받을 것들아! 광신님께서 너희를 모두 죽일 것이다! 아아! 광신이시여! 저 이단들을 모조리 죽여주십시오!”
눈이 돌아간 그녀는 광신도들과 함께 칼을 휘둘렀다. 협회 직원의 팔이 베였다. 피가 튀었다. 그 영상이 고스란히 송출되었다.
“강제로 진압해!!”
“저 여자! 각성자다! 힘이 보통이 아니야!”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오면 죽어! 나 죽는다고!”
“기름 뿌렸다! 내 몸에 기름 뿌렸다고!”
“광신이시여! 저 죽습니다!”
하이라이트는 강지우였다.
“히히히히! 히히히! 셀브레티나!!! 이 창녀년아!!! 광신께서 네년을 찢어 죽이실 거다!!!”
완전히 돌아버린 그녀는 침을 흘리며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렀다. 어설픈 칼질이었지만 속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몇몇 협회 직원이 그대로 즉사했다.
허나 강지우는 곧 붙잡혔다. A급 헌터 2명이 나서서 그녀를 제압한 것이다.
“종말이! 종말이 찾아올 것이다! 이 버러지들아! 종말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오직 광신님 뿐이다! 잊지 말지어다!!!”
강지우의 눈동자가 회까닥 돌아갔다. 광신의 힘인지, 아니면 독약이라도 먹었는지 몰라도 강지우는 죽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