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8화 〉 1078. 신의 아틀란티스
300 마리 언데드 앞에 섰다.
죽은 자들은 어떠한 공포심도 없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내게 달려든다. 그 기세가 사뭇 살벌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놈들이 쭉정이들 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300마리 중 200마리 이상이 스켈레톤과 좀비의 하급 언데드다. 그 외에는 구울과 스켈레톤 나이트. 데스 나이트와 듀라한의 숫자는 10마리도 되지 않는다.
거기다 상대는 어떠한 전략도 없이 단순 무식하게 돌진해오고 있을 뿐이다.
‘나한테 먹이를 주는 거나 마찬가지지. 칭 궈리 놈은 아마 데스 나이트를 믿고 있겠지.’
내가 고위 언데드를 지배하지 못한다고 판단 내린 모양이다.
‘고위 언데드를 전부 지배하는 건 어려워. 고위 언데드는 코스트가 커서 지배할 수 있는 언데드 군세가 줄어드니까.’
소수 정예? 내가 볼 때 지금 필요한 건 다수의 언데드다.
황금 가면의 효과로 왕 쉬안을 지배하는 건 불가능했다. 코스트의 문제였다. 왕 쉬안의 코스트는 너무 컸다.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야지. 고위 언데드로만 채웠다가 칭 궈리에게 지배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
투탕카멘의 황금 가면을 쓰고 있긴 하나, 나는 네크로맨서가 아니었다. 언데드의 지배권을 다시 빼앗길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파직.
아스트라페를 발동하자 시퍼런 전류가 검신을 타고 흐른다.
나는 정면의 언데드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뇌전을 휘감은 검기가 언데드들을 훑고 지나간다. 스켈레톤이나 좀비는 그대로 끝이지만, 두꺼운 갑옷을 걸친 데스 나이트와 듀라한은 검기를 맞고도 견뎌냈다.
‘해치운 건 30마리 정도인가.’
다시 한번 검기를 날렸다. 이번에도 쓸려나가는 건 스켈레톤과 좀비들이었다.
손에 철퇴를 든 머리 없는 기사가 다가온다. 듀라한이다. 빠른 속도로 다가온 놈이 철퇴를 번쩍 들어 올렸다가 멈칫했다. 이어 옆에 있는 스켈레톤을 향해 철퇴를 내려찍었다. 스켈레톤의 해골이 산산조각이 난다.
보이지 않는 끈이 듀라한과 이어진 것을 느꼈다. 성공적으로 듀라한을 지배한 것이다.
‘놈들을 없애라.’
듀라한에게 명령을 내리고 달려온 데스 나이트와 검을 부딪쳤다. 데스 나이트의 검에는 시커먼 기운이 맺혀 있었다.
힘과 힘의 대결에서 밀려나는 건 내 쪽이었다. 순수한 힘만으로는 데스 나이트가 위다.
‘이놈은… 가까이서 보니 다리 갑옷이 부서져 있군. 탈락이다.’
데스 나이트와 검격을 나눴다. 쉽지 않았다. 기사의 시체로 만들어진다는 데스 나이트는 생전의 기량을 죽어서도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죽어서 더 강력해지는 경우가 허다하지. 이미 죽어서 지치지 않는 몸, 강력해진 힘과 데스 오러….’
명불허전의 데스 나이트다.
오른쪽에서 검이 날아온다. 기본적으로 데스 나이트의 기술은 매우 직선적이었다.
‘이미 죽은 놈들이라 그런지 빈틈을 대놓고 보여주는군.’
검을 피하고 한 걸음 내디뎌 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노리는 것은 팔꿈치 관절. 갑옷의 약한 부분. 관절을 베었다. 갑옷 때문에 팔을 끊어내진 못했지만, 절반 이상이 베여서 덜렁거렸다.
언데드인 데스 나이트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검은 반대 손으로 바꿔 쥐고 전투를 이어간다. 터프한 살인 기계였다.
그러나 한계는 있었다.
‘기량이 떨어졌다. 생전에 오른손잡이였나 보군.’
발로 놈의 검면을 돌려차고, 데스 나이트의 투구 속 얼굴에 검을 찔러 넣었다.
‘터져라, 아스트라페.’
파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검에 실린 전류를 단번에 방전한다. 데스 나이트의 몸이 우뚝 멈춰 섰다. 감전당한 놈의 몸이 불탔다. 이어서 놈의 몸으로부터 나온 검은 기운이 하늘로 올라갔다. 평범한 시체가 된 놈이 바닥에 쓰러졌다.
‘멋지게 죽는군.’
감성에 잠겨 있을 틈은 없었다. 나를 노리는 언데드들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으니까.
전투가 끝났다.
얻은 건 데스 나이트 셋과 듀라한 다섯. 느낌상으로는 데스 나이트를 더 지배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영 마음에 드는 데스 나이트가 없었다.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다.
욱신거리는 어깨를 주무르며 구덩이를 향해 다가갔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왕 쉬안은 여전히 구덩이 속에서 불타고 있었다. 쇠사슬에 갇힌 놈은 버둥거리고 있으나 탈출하지 못한다.
‘역시 드워프제는 믿을 만 해.’
나는 흐뭇하게 놈을 지켜봤다. 놈이 몇 번을 죽었는지, 몇 번을 더 죽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놈은 도망가지 못해. 시간 문제야.’
나는 끈기 있게 기다렸다. 아마 30분도 걸리지 않을 거다.
어느 순간부터 왕 쉬안의 움직임이 멈췄다. 영혼의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불에 타고, 창에 찔려도 멀쩡했던 몸은 점점 처참하게 변한다. 왕 쉬안의 몸이 잿더미가 될 때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 고… 맙다….”
왕 쉬안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죽었다. 그의 의지가 남아 있었다는 것에 살짝 놀랐다.
저 멀리 있는 검은 기둥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빌어먹을!!! 내가 그걸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한 줄 아나?! 용서하지 않겠다, 천마!!”
나는 피식 웃었다.
“뭘 새삼스럽게.”
「아귀 왕 쉬안을 처치했습니다. 대량의 공적을 획득합니다.」
공적.
이 단어가 나왔다는 것은 보상은 일이 끝난 뒤에 합쳐져서 지급된다는 말이다.
간단히 말해서 공략에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하면 쪽박이다.
???
스켈레톤 200, 좀비 170, 구울 55, 듀라한 15, 데스 나이트 10. 해골마 1.
내가 이끄는 언데드 군세였다.
본래는 이 정도까지 많은 언데드를 다루지 못한다.
‘추측으로는 이 구역의 영향을 나도 받은 거겠지. 생물이 없고 죽음으로 가득한 구역이라 언데드나, 네크로맨서에게 유리하니까.’
나는 최선을 다했다. 이 이상으로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반격을 시작했다.
언데드 군세를 이끌고 검은 기둥을 향해 진격했다.
칭 궈리는 길을 열었다. 일부러 나를 막지 않고 검은 기둥의 앞까지 유인했다. 함정이란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다. 내 선택지는 이것뿐이다. 검은 기둥을 없애고 칭 궈리를 죽여야 한다.
땅속에 있던 언데드들이 나타나 내 군세를 포위한다.
“결국 네가 올 줄 알았다. 허나 늦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나를 비웃는 칭궈리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거창을 소환했다.
‘아스트라페!’
스킬을 발동한다. 거창에서 시퍼런 뇌전이 번뜩였다. 나는 온 힘을 주어 거창을 투창했다. 목표는 검은 기둥 위의 붉은 눈동자다.
창은 문자 그대로 번개처럼 날아갔다. 허나 눈동자를 지키는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튕겨 나갔다. 눈동자를 꿰뚫지 못했다.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놈의 웃음소리가 성가셨다.
‘투창이 안 먹힌다면… 직접 기어 올라가서 그 눈깔을 터트려주지.’
검은 기둥을 향해 달렸다. 사방에서 언데드가 몰려온다. 내 언데드 군세가 칭 궈리의 언데드와 맞붙었다. 언데드 군세가 놈들에게 쉽게 물러서지 않고 시간을 끌어주고 있다. 그것만으로 군세를 모은 보람이 있었다.
다만,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는 수적으로, 질적으로 모두 열세였다. 고작해야 30분이 한계 일터다.
“지옥이여!!”
붉은색의 지팡이를 꺼내 바닥을 찍었다.
「붉은 가뭄
가뭄 지옥을 소환한다.
소환하는 가뭄 지옥의 크기는 마나 1당 5제곱미터.
가뭄 지옥의 지배자만이 사용할 수 있다.
랭크: SS」
지옥에서 얻은 지팡이의 능력이었다.
주변 일대가 붉은 사막으로 변한다. 덮쳐오던 언데드들이 허우적거렸다. 검은 기둥은 여전히 굳건히 서 있었다.
“천마. 네겐 감사하고 있다.”
칭 궈리의 목소리가 들린다.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코앞에 검은 기둥이 있었다. 가까이서 본 검은 기둥은 살아있는 생물 같아서 징그러웠다.
‘놈을 죽이려면 올라가야 해.’
검은 기둥의 붙잡고 위로 기어 올라간다. 기둥의 표면은 혈관 같은 것이 울긋불긋 튀어나와 꿈틀거렸다. 잡을 수 있는 표면이란 점은 좋지만, 뜨뜻하고 축축한 감촉은 최악이었다.
“지난 열흘간 네가 있어서 무료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손과 발에 마나를 담아 빠르게 기둥을 기어올랐다. 10M, 20M, 30M… 60M 정도 올라오자 검은 기둥이 내뿜는 검은색 파동이 몸에 직접 닿았다.
「죽음의 파동을 느낍니다.」
「능력치가 15% 상승합니다.」
지금 나는 언데드나 다를 바 없는 상태라 그런지 오히려 버프가 되었다. 나는 더욱 힘을 내어 탑을 기어올랐다.
“정이 쌓였다고도 할 수 있겠군. 크크. 지난 열흘간 나를 즐겁게 해준 대가로 네게 내 일부가 될 영광을 주마.”
“듣자 하니 지랄이 풍년이군. 다 왔으니 딱 기다려라. 눈깔을 파내주지”
“말했을 텐데.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두근두근.
검은 기둥이 맥박친다. 위로 기어 올라가던 나는 심상치 않은 조짐에 멈춰 섰다. 고개를 들어 올려 위를 바라봤다. 이제 50M 정도만 올라가면 되는데 기둥 위의 눈동자가 아래로 움직이더니 기둥 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이런 제길. 뭐가 일어나는 거지?!’
이대로 있다가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화련비도를 소환해 검은 기둥을 향해 휘둘렀다. 생물처럼 보였던 검은 기둥은 화련비도의 칼날을 튕겨낼 만큼 단단했다.
파지지지지직!
붉은 번개와 새파란 검강을 휘감은 칼날을 검은 기둥에 꾹 찔러 넣었다. 칼날이 기둥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기둥 속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양손으로 칼자루를 쥐고 체중을 실어 아래로 내리그었다.
표면 일부가 갈라지며 내부가 보였다. 나는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다. 이 기둥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 얼굴을 가져다 대며 기둥 내부를 들여다봤다.
기둥 속에는 거인이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거인의 몸이 움찔거린다. 푹 숙이고 있던 머리를 위로 들어 올린다. 거인은 눈이 하나밖에 없었다. 눈꺼풀이 바들바들 떨리며 위로 올라간다.
붉은색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기둥 위에 있던 그 눈동자가 확실했다.
“…씨발.”
원작의 지식이 떠오르면서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아차렸다.
이 기둥은 일종의 자궁이다. 칭 궈리는 스스로의 몸을 바쳐 발로르의 육체가 되기로 한 것이다. 놈의 목소리가 기둥에서 울린 것과 놈이 직접 움직이지 못한 것도 설명된다.
‘고트월의 목적이 신이 되는 것. 신과 합쳐지는 것도 신이 되는 것 중 한 방법이지.’
다시 말해 칭 궈리는 목적을 이룬 것이다.
발로르의 목적도 이루었다. 발로르는 위신(僞神)의 개념이 아닌 본신으로서 아틀란티스에 강림했다.
웅크렸던 거인이 몸을 일으킨다. 거인이 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나는 기겁하며 기둥 아래로 뛰었다.
“시스템!! 뭐해! 당장 저거 제재해!!”
「무거운 눈에겐 제재가 가해진 상태입니다.」
“저거 위신이 아니라 본신이잖아! 내 말 틀려?!”
「이미 제재가 가해진 상태입니다.」
바닥에 떨어지기 전, 전광석화를 발동했다. 신체를 일시적으로 뇌전으로 바꾸어 물리적인 충격을 없앤 것이다.
“일단 저건 본신이 맞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시스템은 차분했다. 이미 그들 간의 거래는 끝난 것이다. 시스템은 발로르의 본신을 아틀란티스가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 내린 것이다.
「천공의 주인이 100,000 AP를 후원합니다.
“영웅은 위기 속에서 빛나는 법이다. 영웅이 되어라.”」
「마천의 왕이 당신을 지켜봅니다.」
「달의 사냥꾼이 당신을 지켜봅니다.」
「태양의 대적자가 당신을 지켜봅니다.」
「달의 꽃이 당신을 지켜봅니다.」
「황금의 주인이 당신을 지켜봅니다.」
…….
그 외에도 수십에 달하는 신좌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위신의 육체가 아닌 본신으로 나타난 신과 인간의 대결.
‘신좌들의 흥미를 끌기 충분한 광경이지.’
검은 기둥이 꿈틀거린다. 기둥의 중심이 갈라지더니 검은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기둥에 비해 거인의 크기는 15M 정도로 작은 편이었다. 아마도 시스템의 제재를 먹은 영향이리라.
‘시발. 도망치고 싶다.’
제제를 먹었다고 해도 상대는 신. 그것도 위신이 아니라 본신이다. 기본적으로 어마어마한 존재다.
‘하지만 이 구역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 상대할 수밖에 없어.’
칼자루를 꽉 쥐었다.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놈과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