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08화 > 1208. 광명승천도 (988/2,000)

< 1208화 > 1208. 광명승천도

입마소의 입소자들은 교관을 따라 서쪽으로 걸었다.

행군의 연속이었다.

들판을 가로지르고, 산을 넘고, 뗏목을 만들어 강을 건넌다. 그러다 가끔 맹수나 요괴와 마주치면 물러서지 않고 싸웠다.

3주 동안 하루에 200km씩 걸은 것 같았다. 무공을 익힌 무인이 아니었다면 며칠 버티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을 것이다. 그나마 밤에는 개인 천막을 치고 잠을 잔다는 점이 좋았다. 물론 밤마다 연예하의 천막에 침입해 범했다.

어쨌든 우리는 3주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백산성이란 이름의 도시였다. 도시 뒤편에 있는 커다란 산이 백산(白山)이었다. 산의 정상 부분이 만년설로 하얗게 덮여있다.

나는 백산을 보며 생각했다.

‘지명이 바뀌긴 했어도… 하얀 산이 있는 걸 보니 원작대로 흐르고 있군.’

입마소장 배택주는 도시에 들어가기 전에 말했다.

“두 번째 시험이다. 너희는 앞으로 보름 동안 백산성에 머물며 천마신교 백산성지부를 돕는다. 어떤 방법이라도 좋다. 천마신교 백산성지부를 위해 일해라. 공적을 쌓아라. 너희가 쌓은 공적이 곧 너희의 성적이 될 것이다.”

제갈모순이 손을 들었다.

“질문 있습니다.”

“366번. 허락한다.

”공적을 쌓기 위해선 무슨 짓을 해도 됩니까?“

”상관없다. 단, 너희가 저지른 일에는 너희가 책임져야 할 거다.“

”…6명 정원인 분대를 짜라고 하셨습니다. 분대를 짠 이유가 무엇입니까?“

”분대에 임무를 하달할 것이다. 공적과는 별개다. 너희는 반드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어떤 임무입니까?“

”분대마다 다르다. 질문이 더 있나?“

”……없습니다.“

제갈모순이 손을 내렸다.

배택주는 백산을 힐끗 바라보며 우리에게 말했다.

”지금 백산성에는 3개의 세력이 존재한다. 백산성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백산금가(白山金家)는 8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무가인 동시에 상회를 운영 중이다.“

배택주는 교관을 시켜 앞에 커다란 지도를 펼쳤다. 백산성의 내부를 대충이나마 그린 지도였다. 백산금가는 백산성 북쪽에 있었다.

”천마신교 백산성지부는 동쪽에 있다. 이 위치다. 천마신교는 백산성을 완전히 지배할 생각이 없다. …336번. 손을 들었군. 질문해도 좋다.“

”백산성을 지배할 생각이 없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백산성을 지배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별로 없다. 무분별한 지배는 황제의 노여움만 살뿐이다. 설령 백산성을 지배할 수 있더라도 현재 신교에는 그럴 인력이 없다. 여유가 있다면 백산성보다 더 중요한 곳으로 파견하겠지.“

이 대륙은 황제가 지배하고 있었다. 천마신교도 결국은 황제를 대신하여 땅을 다스리는 것일 뿐이다. 이 대륙에서 황제를 거스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백산금가와 적대하는 건 아니군요. 신교가 원하는 건 영향력입니까?“

”머리가 좋군. 그렇다. 신교는 백산금가 다음가는 영향력을 가지길 원한다.“

”그 말은 신교는 아직 백산성의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는 뜻이니… 나머지 세 번째 세력이 문제인 모양이군요.“

”그렇다. 나머지 세 번째 세력은 천의맹(千意盟) 백산성지부다.“

천의맹.

그 이름을 들은 입소자들이 긴장했다.

천의맹은 중소 문파가 뭉쳐 만든 세력이다. 중소문파가 모여봤자지. 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모인 중소 문파만 천 개가 넘는다. 역사는 짧은 편이지만, 빠른 속도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단순히 덩치만 따진다면 천마신교보다 크다.

천의맹은 천마신교의 적대세력이었다. 당장 천마신교와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험악한 관계다.

”미리 말해두마. 천의맹과 싸울 생각은 하지 마라. 신교는 아직 천의맹과 싸울 생각이 없다.“

”천의맹이 기습해오면 어떻게 합니까? 싸우지말고 도망쳐야 합니까?“

배택주가 질문자에게 고개를 획 돌렸다. 그의 눈에는 분노가 서려 있다.

”195번. 지금 그딴 말을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 신교는 천의맹따위에게 도망치지 않는다. 도망칠 바엔 싸우다 죽어라. 단, 명분은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사실을 잊지 말도록.“

배택주는 이어 백산성의 삼세력의 관계에 관해 설명했다.

백산성에서 가장 중요한 키를 가지고 있는 건 중립을 유지중인 백산금가였다. 백산금가는 5년 전, 천마신교와 천의맹에게 백산성에 도움이 되는 세력과 손을 잡을 것이라고 공표했다.

그 때문에 천마신교와 천의맹이 백산성에서 경쟁을 벌인다. 칼과 주먹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백산성을 발전시키며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려 한다.

다시 말해 백산금가와 백산성 시민들은 천마신교와 천의맹을 적절히 이용하며 이득을 얻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해할 수 없군요. 백산성을 꼭 얻어야 합니까?“

제갈모순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백산성이 중요하지 않더라도 물러설 수 없다. 천의맹에게 백산성을 넘겨줄 수 없기 때문이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백산금가는 황족과 친분이 있다.“

”…….“

제갈모순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황족은 황제와 피가 이어진 자들을 말한다. 즉, 백산금가는 황족을 통해 황제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황제가 진짜로 움직일지는 둘째치고… 황족을 적대하는 것만으로도 껄끄러워진다.

‘하….’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소설 속 천마신교는 무림 최고의 세력이었는데… 이 세계의 천마신교는 황제의 눈치나 보고 있군.’

이쯤 되면 황제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궁금해진다.

”분대장들은 앞으로 나와라. 너희에게 임무를 하달하겠다.“

배택주는 분대장들에게 임무가 적힌 두루마리를 건넸다.

내가 속해 있는 1분대의 분대장은 천유운이었다. 그는 두루마리를 가지고 돌아와 분대를 모았다.

나, 천유운, 제갈모순, 연예하, 서문소려, 정소목.

290번 서문소려는 여자였다. 창을 주무기로 사용한다. 나름 미인이긴한데 옆에 연예하가 있으니 평범해 보인다. 지금 당장 그녀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기회가 되면 그녀를 따먹을 것이다.

151번 정소목은 권각술을 사용하는 남자다. 그리고 천의맹의 첩자다. 물론 그 사실을 천유운도 알고 있다. 원작의 천유운은 정소목을 설득해 이중 첩자로 만들려고 한다. 결과는 실패다. 정소목은 천유운과 싸우다 죽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떨어진 곳에서 두루마리를 펼쳤다. 임무를 확인한다.

나는 두루마리를 대충 읽었다. 이것도 원작대로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천유운과 제갈모순이 알아서 잘할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젠장, 있군. 염구석은 여기서 사고 한 번 쳐야 해.’

귀찮음에 혀를 쯧쯧 찬다.

제갈모순은 혀를 차는 나를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스윽 보고는 임무에 관해 말했다.

”여기 적혀 있듯이 우리는 신교의 신분을 숨기고 강호초출 무인으로서 백산성에 들어갑니다. 천의맹 백산성지부를 흔들 수 있는 정보를 모으는 것이 우리 1분대의 임무입니다.“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라…. 성가시군. 다른 분대는 옆 도시에 물건을 전하거나, 산적을 퇴치하는 등의 임무를 받았다더군.“

”…다른 분대의 임무를 보셨습니까?“

”귀를 기울이면 들리지 않나.“

”그 정도로 귀가 좋진 않습니다. 88번의 말대로 이번 임무는 성가십니다. 천의맹 백산성지부를 흔들 정도의 정보? 그런 건 없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있더라도 보름 만에 정보를 캐내는 건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니 임무 실패를 염두 해둬야 합니다.“

”임무가 아니라 공적에 집중하겠다는 건가.“

”네. 그게 더 합리적입니다. 제 의견에 반대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 제 의견에 모두 동의하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366번.“

”네. 88번. 다른 의견이 있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다. 나는 네 의견에 동의한다. 내가 궁금한 건 공적은 어떻게 쌓느냐는 거다. 다른 분대는 천마신교 백산성지부를 돕는 것으로 공적을 쌓을 수 있지만, 우리는 불가능하다.“

1분대는 천마신교의 신분을 숨겨야 했다. 따라서 공개적으로 백산성지부를 돕지 못한다.

”지금 백산성에서 중요한 건 천마신교와 천의맹이 아닙니다. 백산금가입니다. 허나 지금 우리에겐 백산성에 관한 정보가 없습니다. 정보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합니다. 그러니 오늘과 내일은 흩어져서 백산성에 대한 정보를 취득했으면 합니다.“

”그다음은?“

”취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계획을 세울 겁니다.“

”나는 찬성이다.“

천유운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제갈모순은 주위를 둘러봤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두 찬성이었다.

우리는 두루마리에 적혀 있는 가짜 신분을 확인하고 도시에 들어갔다. 도시 외곽에 있는 객잔에 숙소를 잡고 정보를 모으기 위해 흩어졌다.

‘천유운은 원작대로 첩자인 정소목을 감시하겠지. 나는….’

원작의 염구석처럼 움직이면 된다.

나는 도시의 번화가를 걸었다. 번화가답게 활기가 넘쳤다. 나는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번화가인데도 대낮에 사람이 몰리지 않는 곳.

그곳은 유흥가다. 밤이 되면 이곳이 북적거린다. 그리고 유흥가는 뒷세계와 이어져 있길 마련이다.

‘무협에선 흑도(黑道)라고 하지.’

말이 좋아 흑도지. 실제로는 시정잡배다. 현대로 치면 마피아에 가깝다. 매춘, 도박 같은 일들을 벌인다.

그리고 보통 흑도 뒤에는 사파 무림세력이 끼어 있는 경우가 많다. 아마 백산성 흑도 무리 뒤에는 천마신교가 있을 것이다.

나는 5층이 넘는 화려한 기루 건물은 피했다. 저런 대형 기루를 섣불리 건들었다가 귀찮아진다. 유흥가에 있는 골목길로 들어간다. 골목길에 들어갈수록 분위기가 음산해진다. 바닥을 바라보면 핏자국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골목의 끝에 달했을 무렵, 벽에 있던 작은 문이 벌컥 열리며 한 남자가 나왔다. 탈의한 상체에는 흉악한 문신이 가득했고, 한 손에는 박도를 손에 쥐고 위협적으로 흔들고 있다.

”처음 보는 얼굴이군. 이 근방에서 생활하는 놈 아니지? 어디 소속이냐?“

놈이 건들거리며 내게 물었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칼을 뽑을 필요도 없었다.

”내가 물을 말이다. 너, 어디 소속이냐?“

”하, 이놈 보소. 아주 자신만만… 하시군!“

놈이 갑자기 내게 박도를 던졌다. 나는 왼손으로 박도를 낚아챘다. 놈은 벽을 달리며 위로 올라가 나를 향해 떨어졌다. 몸무게를 이용한 공격이다. 속도가 무척 재빨랐다. 망설임 없는 주먹질에서 무공을 익힌 태가 났다.

그렇다고 위협적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나는 놈보다 뒤늦게 움직였다. 주먹을 위로 올려 어퍼컷을 날린다. 내가 놈보다 느리게 움직였으나, 내 주먹은 놈의 주먹보다 빨랐다.

”컥!“

쓰러지는 놈의 머리를 낚아채듯 붙잡았다.

뇌전을 일으키기 전에 뇌천류(雷天流)가 먼저 내 의지에 반응했다.

파지지지지직!

손바닥에서 발생한 전류가 놈의 몸을 훑었다.

”끄르르르르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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