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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8화 > 1228. 광명승천도 (1,008/2,000)

< 1228화 > 1228. 광명승천도

입마소로 귀환했다.

세 번째 시험이 끝났다.

시험 성적 상위 10명에게 영단이 주어졌다. 마정단이었다. 나는 이번엔 마정단을 누구에게 주지 않고 복용했다.

이후에는 지겨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나았다. 섹스 파트너라 할 수 있는 서문소려가 있었고, 밤에는 연예하를 찾아가 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예하는 어딘가 변한 것 같았다. 뭐가 변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워낙에 무표정한 여자라서. 다만,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변했다. 내 자지를 빨 때나, 내 위에서 허리를 움직일 때 시키지도 않은 것까지 할 때가 있었다. 연예하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만.

여하튼 시간은 흐르고 흘러 네 번째 시험일에 당도했다.

입마소의 마지막 시험이기도 했다. 이 시험을 통과하면 천마신교의 부대 중 하나에 배정받아 일하게 될 것이다. 어디에 배정받을지는 성적에 따라 달라진다.

“네 번째 시험은 입마굴에 숨겨져 있는 흑목주를 찾아 오는 것이다.”

입마소장 배택주가 입소자들 앞에서 말했다.

네 번째 시험인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입소자들은 130명이었다. 교관들의 말에 따르면 평균 이상이라고 한다.

입마굴은 입마소 지하에 있는 인조 동굴을 말한다. 매년 입마소 마지막 시험 때만 개방되는 동굴이다.

“너희는 서로 떨어진 입구를 통해 입마굴에 들어가게 된다. 입마굴에 숨겨져 있는 흑목주는 총 30개. 너희 130명 중 100명은 최하점을 받는다는 말이다. 허나, 안심해라. 최하점을 받더라도 여기까지 온 너희는 퇴소당하지 않는다.”

퇴소당하지 않더라도 성적은 개판이 된다.

그 사실을 모르는 자는 이곳에 없다.

“입마굴에선 모든게 허용된다. 서로 죽여도 된다. 흑목주를 빼앗아도 된다. 동료를 모아 움직여도 상관없다. 너희가 해야 할 건 무슨 수를 써서도 흑목주를 가져오는 것이다. 입마굴에서 너희의 힘을 보여라. 잊지 마라. 우리가 너희를 지켜보고 있겠지.”

배택주는 위압적인 시선으로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뒤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한 시진 뒤, 네 번째 시험을 시작한다. 교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도록.”

교관들은 입소자들을 철저히 관리했다. 그들은 입소자들끼리 서로 대화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의미 없는 짓이었다.

입소자들은 네 번째 시험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마지막 시험은 매년 똑같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팀을 짤 놈들은 이미 팀을 짰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는 나도 해당된다. 1분대. 천유운을 중심으로 우리 5명은 입마굴에서도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123번. 여기가 네 시작 지점이다.”

교관은 바닥을 가리켰다. 백이십삼(百二十三)이라 적혀 있었다.

“시간이 되면 열릴 것이다. 열린 구멍을 통해 입마굴로 들어가면 된다.”

교관은 다른 입소자들을 데리고 떠났다.

나는 바닥을 조용히 쳐다봤다. 네 번째 시험 역시 원작과 똑같았다.

‘원작과 입장 방법이 달라. 아마 입마굴 내부도 조금씩 다르겠지. 듣자 하니 입마굴에 위험한 요괴를 넣어놨다고 하니….’

당장 입구가 개방되는 건 아니었기에 바닥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키이이이이잉.

바닥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더니 입구가 천천히 열렸다. 나는 안쪽을 들여다봤다. 계단은 없었다. 대신 보기만 해도 신나는 매끈한 미끄럼틀이 있었다.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원작과 같다면 아마 10m 이상의 깊이겠지.’

미끄럼틀 따위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망설임 없이 구덩이 속으로 몸을 넣었다. 미끄럼틀을 타고 아래로 내려간다. 처음에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 정도 미끄럼틀을 타자 빛이 나오는 출구가 보였다.

출구로 나와 멋지게 바닥에 착지한 나는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며 경계했다.

그곳은 동굴 내부였다.

천장은 4m, 폭은 5m 정도로 움직이기 편해 보였다. 앞뒤로 길이 나 있었고, 천장에선 은은한 빛이 나고 있었다. 아마 모종의 술법이리라.

‘여기 어딘가에 있는 흑목주를 찾아야하는군. …빼앗는 게 더 편하겠지.’

칼을 미리 뽑아 손에 쥐고 정면을 향해 나아간다. 솔직히 이게 정면일지는 나도 모른다. 무언가가 나오기를 바라며 그냥 걷는 것이다.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쪽과 왼쪽.

“커으으으….”

왼쪽에서 짐승의 숨소리가 들린다. 진짜 짐승은 아니고 요괴일 것이다.

나는 요괴가 있는 왼쪽 길로 향했다. 요괴 주위에 흑목주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기척을 숨기고 걸어가던 나는 공동에 도착했다. 그리고 공동 중심에 거대한 늑대가 있었다. 사람 따윈 한입에 삼킬 수 있을 정도로 큰 늑대다.

“용케도 이런 놈을 잡았군.”

눈을 감고 있던 늑대가 내 기척을 느끼고 번쩍 두 눈을 떴다.

“크르르르르!”

넌 뭐냐고 묻듯이 늑대가 으르렁거린다.

칼로 늑대를 겨눴다. 개새끼 따위에게 겁먹고 도망칠 생각은 없다.

인간을 단숨에 곤죽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거대 늑대의 앞발이 날아온다.

‘입마소장을 비롯해 천마신교에서 한자리 꿰찬 놈들이 입마굴의 현상황을 보고 있을 거다. 그러니 천마신공과 뇌천류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앞으로 달려가며 거대 늑대의 앞발을 피했다. 거대 늑대의 손톱이 바닥을 긁는다. 바닥에 길쭉한 상흔이 남았다.

“크아아아아아아!”

거대 늑대가 포효했다. 놈이 입을 벌리는 순간 내공을 끌어올려 청각을 보호했기에 큰 피해는 없었다. 다만, 다리가 주춤거리는 것까진 막지 못했다.

거대 늑대의 앞발이 다시 날아온다. 나는 뒤로 물러나며 거대 늑대의 앞발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뭔 놈의 발톱이 검기가 담긴 것처럼 날카롭냐.’

요괴의 강력함에 혀를 차면서 칼을 휘두른다.

참귀도법(斬鬼刀法) 악참(惡斬).

놈의 앞다리에 큰 상흔을 입혔다. 거대 늑대가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더니, 이내 고통을 분노로 바꿔 내게 무차별적으로 앞발을 휘두른다.

‘오히려 좋군. 분노에 완전히 몸을 맡겨서 공격이 일차원적으로 변했다. 역시 덩치만 컸지, 대가리는 짐승 수준이군.’

거대 늑대의 앞발 공격을 모조리 회피하며 코앞까지 접근했다. 거대 늑대는 바로 입을 열고 내게 달려든다.

공중제비를 돌며 놈의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오른쪽 눈에 칼을 찔러넣었다.

“크아아아아아!!”

고통이 가득 담긴 비명과 함께 거대 늑대가 발광한다. 나는 칼자루를 꽉 쥐고 발광하는 놈의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칼을 더욱 깊숙이 박아 넣으며 이리저리 움직인다.

콰앙! 쾅! 쾅!

거대 늑대의 앞발이 자기 대가리를 두들긴다. 요령 좋게 피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놈의 앞발에 등을 강타당했다. 나는 신음을 흘렸다. 여기서 몇 방 더 맞게 되면 치명적인 상태가 된다.

‘방금 공격으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 감을 잡았군. 여기선 떨어지는 게 최선이다.’

칼을 뽑고 놈의 머리에서 떨어진다.

거대 늑대는 내가 떨어진 것을 깨닫고 자기 자신의 대가리를 때리는 것을 멈췄다. 놈의 머리는 엉망이었다. 한쪽 눈은 끝났고, 주둥이에선 피가 철철 나오고, 이빨은 처참하게 부서졌다. 절반 이상은 자업자득이다. 자기 머리를 그렇게 퍽퍽 때렸는데 멀쩡하면 도리어 이상하다.

“크르르르르르….”

거대 늑대가 으르렁거리더니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방심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놈은 한쪽 눈을 잃었다. 시야 한쪽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사각을 철저하게 이용한다!’

칼을 들고 반격을 이어간다. 거대 늑대는 보이지 않는 눈을 대신해 후각과 청각을 이용했다. 그러나 반응 속도가 느리다. 놈은 사각을 노린 내 공격을 막지도, 피하지도 못했다.

급할 필요 없었다.

나는 천천히 거대 늑대를 갉아댔다. 작은 상처라 해도 그게 쌓이고 쌓이면 치명적으로 변한다. 거대 늑대가 흘린 피는 점점 웅덩이가 되었고, 거대 늑대의 움직임은 느려진다. 놈의 매서움이 사라진다.

쿠웅.

거대 늑대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기회가 왔다.’

당황한 거대 늑대가 서둘러 머리를 일으키려고 한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놈의 머리로 뛰어올랐다. 머리 위, 쫑긋 솟은 귀와 귀 사이에 떨어지며 칼을 놈의 미간에 박아 넣었다.

“크억, 크어어억…!”

거대 늑대는 일어나기 위해 몇 번 버둥거리다가 힘없이 쓰러졌다. 숨을 쉬지 않는다. 절명한 것이다.

거대 늑대. 생각 이상으로 성가신 놈이었다. 여기가 동굴이 아닌 드넓은 초원 같은 곳이었다면 상당히 고생했을 것이다.

‘놈이 죽은 이상 의미 없는 가정이지.’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내 생각대로라면 흑목주는 이곳에 있을 것이다.

몇 번 주위를 둘러본 끝에 흑목주를 발견했다. 흑목주는 거대 늑대의 시체에 있었다. 놈의 복부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칼로 놈의 배를 도려낸 뒤에야 피비린내 나는 흑목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흑목주는 그 이름대로 검은 나무로 만든 구슬이었다. 강철처럼 단단하다는 걸 제외하면 특별한 점은 없었다.

‘이걸로 돌아가기만 하면 네 번째 시험은 끝이다.’

나는 내가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천장에 구멍이 있어야 하는데 다시 보니 막혀 있었다. 천장을 공격해 강제로 열어보려고 했으나, 검기로 때려도 흠집만 나는 게 전부였다.

‘출구는 따로 있다는 거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나는 혀를 차며 출구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길에 다른 사람과 마주쳤다. 다부진 얼굴의 남자였다. 양손에 손도끼를 한 자루씩 들고 있다.

“……123번.”

“너는… 61번이군.”

입마소에서 도끼를 쓰는 놈이 저놈밖에 없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61번은 2조였다.

“…피냄새가 나는군. 요괴와 전투를 한 건가?”

“어떻게 알았지?”

“누가 봐도 인간의 것이 아닌 털이 네 어깨에 묻어 있다.”

“아.”

나는 어깨에 묻은 털들을 손바닥으로 털어냈다. 61번은 그런 나를 빤히 지켜봤다.

“123번. 흑목주를 찾았나?”

“아직 못 찾았다.”

“요괴가 가지고 있을 텐데.”

“없더군. …근데 왜 요괴가 흑목주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거지?”

61번은 씩 웃었다. 그가 품에서 흑목주를 꺼냈다. 검은색의 나무 구슬. 내 것과 똑같다.

“나도 방금 요괴를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 구렁이 요괴였다. 놈의 등에 흑목주가 묶여 있더군.”

“……그 요괴는?”

“구렁이 요괴가 잠들어 있었기에 조용히 도끼를 던져 죽였다.”

“…난 거대 늑대를 잡기 위해 개고생을 했다만….”

“그거 안 됐군. 123번. 네게 흑목주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

“너와 나는 흑목주를 가지고 있다. 싸울 이유가 없지. 같이 출구를 찾자. 너와 나라면 성공적으로 출구를 찾아 밖으로 나갈 수 있다. 88번을 제치고 우리가 1등을 할 수 있다.”

“61번, 네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군.”

“받아들이는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61번에게 다가갔다. 품에서 흑목주를 꺼내 보여주자 61번이 씨익 웃는다.

“출구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글쎄. 아직은 모르겠군. 일단 정면으로 나아갈 생각이다. 길을 숙지할 필요가… 커억?!”

61번의 가슴에 칼을 찔러넣었다. 방심하고 있던 놈은 피하지 못하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123번…! 이, 이유가 뭐냐…?! 네가 날 죽일 이유는 없을 터다…!”

“나보다 약한 주제에 나와 맞먹으려 하지 마라. 네놈은 실로 건방졌다.”

“이런… 미친놈…!”

61번이 죽었다. 나는 그의 흑목주를 빼앗아 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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