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9화 > 1239. 다크 문
방금 까지만 해도 사람이었던 육체는 고기 조각이 되어 사방을 더럽혔다. 나는 바들바들 떠는 창녀들과 경호원에게 말했다.
“아, 아아아악! 팔이!!”
경호원이 비명을 질렀다. 폭발에 휘말렸는지 오른팔이 완전히 날아가 있고, 하반신에 뼛조각이 박혀 있다. 내 뒤에 있었던 창녀들은 무사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마법을 사용해 배리어를 중첩한다. 추가적인 습격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위를 천천히 둘러본다. 적의 기척은 없다. 가면의 옆부분을 두들겨 무전을 켰다.
“여긴 211호. 문제가 발생했어.”
바로 212호의 대답이 돌아왔다.
-폭발음이 들리던데. 그거야? 적들이 폭탄이라도 던졌어.
“폭탄은 폭탄이지. 생체 폭탄.”
-생체 폭탄…? 바이오 폭탄을 말하는 거야?
“아니. 흑마법.”
-…….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212호는 이번 임무가 간단하지 않다는 걸 직감한 모양이다.
-흑마법사가 나타났어?
31호가 물어왔다.
“흑마법사는 없어. 지금 상황은….”
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프텔가르 남작이 창녀를 불렀고, 찾아온 창녀를 검사하다 문신으로 패턴을 숨긴 생체 폭탄 마법을 발견.
“내 생각엔 누군가 폭탄을 발견하는 순간 자동으로 생체 폭탄 마법이 발동하도록 모종의 장치를 해둔 것 같아.”
-나머지 사람들은?
나는 뒤를 힐끔거렸다. 창녀들은 저들끼리 부동켜안으며 얼이 나가 있었다. 그중에는 오줌까지 지리는 여자도 있었다.
“확인해 봐야지. 212호는 남작에게 보고하고, 31호는 혹시 모를 습격을 대비해.”
저택의 문이 열리고 경호원들이 달려온다. 나는 그들에게 다친 경호원을 턱으로 가리키고 창녀들에게 다가갔다.
“다시 신체 검사를 시작한다. 옷을 벗어라. 너희도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겠지. 협조 부탁하마.”
“아, 알았어요. 협조할 테니 제발 우리 좀 살려주세요.”
“시키는 대로 해.”
그녀들이 다시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날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금발 머리를 올백으로 남긴 경호원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경호대장인 레이크막입니다. 지금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주십시오.”
그의 푸른 눈은 진지했다. 솔직히 꽤 귀찮았지만, 경호대장인만큼 어느 정도 대우는 해줘야 한다. 그래야 호위 임무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창녀 중 한 명이 폭발했다.”
“…네?”
“흑마법이다. 3급 흑마법인 생체 폭탄이다. 생물을 폭탄으로 바꾸는 흑마법이지. 그 창녀는 흑마법에 당한 거다.”
“…그 폭발한 여자가 흑마법사와 한패입니까?”
“거기까지는 아직 모른다. 폭발할 당시의 그 여자를 보면… 자기 몸에 마법이 걸려 있는지도 모르더군. 뭐,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자기 몸에 생체 폭탄 마법 같은 걸 부여할 리 없지. 아마 그 여자는 흑마법사에게 당한 피해자에 불과할 거다.”
“허나 프텔가르 남작님을 노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죽은 여자의 신원을 조사하겠습니다.”
“너는 좀 유능하군. 그 여자는 친구의 추천으로 타투이스트를 만났다고 했다. 아마 그 타투이스트가 흑마법사일 거다.”
“이 지역에 있는 타투이스트는 모두 조사하겠습니다. 다른 여자들은 어떻습니까?”
나는 대답하는 대신 알몸의 여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녀들의 몸을 만지면서 꼼꼼하게 확인한다.
“흑마법의 흔적은 없다. 몸에 숨긴 무장도 없다. 밖으로 보내도 상관없을 것 같군.”
“…다행이군요. 그래도 사건이 벌어진 이상 그냥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남작님이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그 짓을 한다고?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군.”
“제 짐작일 뿐입니다. 남작님의 지시는 아직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프텔가르 남작은 창녀들을 심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심문이 끝난 뒤에는 자신의 방으로 올려보내라는 말도 덧붙였다.
경호원들이 창녀들을 심문하는 동안, 나는 또 프텔가르 남작과 마주해야 했다.
“생체 폭탄을 발견했다지? 듣던 대로 뛰어나군. 네 덕분에 내가 살았다.”
프텔가르 남작은 말투와 달리, 내게 고마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 해야 할 일을 못 하는 것들이 천지라 문제지.”
그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의 곁에 붙어 있던 창녀가 바로 담배를 꺼내 그의 입에 물러주었다. 창녀는 손가락으로 담배 끝을 잡았다.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담배에 불이 붙었다. 창녀는 겨우 그것만으로도 지친 표정을 지었다.
‘초능력자였나. 너무 미약해서 몰랐군.’
초능력이라 불리기도 민망했다. 라이터보다 화력이 약해 보였으니까.
프텔가르 남작은 담배를 몇 번 빨고서 말했다.
“빌어먹을. 흑마법사라니…. 클랙슨…. 이 새끼가 아주 작정한 모양이야.”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분통을 터트린다.
흑마법사가 노리고 생체 폭탄을 보낸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생체 폭탄이 저택 내로 들어온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소용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미 사건은 벌어졌다. 프텔가르 남작의 입장에선 이미 공격당했다.
“클랙슨! 그 새끼를 잡아 와라! 그리고 죽여버려!”
“클랙슨은 노동자 대표입니다. 그가 최후 협상일 전에 죽는다면… 가장 먼저 의심받는 건 남작님이 됩니다. 조사를 받게 되겠지요.”
“그 새끼가 흑마법사를 고용해 날 죽이려 했다!!”
“클랙슨은 잃을 게 없습니다. 궁지에 몰린 쥐가 발광하는 건 흔히 있는 일입니다.”
프텔가르 남작은 한참을 씩씩거렸다. 곧 내정을 되찾은 그는 차가운 눈으로 내게 말했다.
“흑마법사를 찾아라.”
“…제 임무는 남작님의 호위입니다.”
“너 말고도 호위는 2명 더 있잖아. 네가 직접 나서서 흑마법사를 찾아 죽여라. 흑마법사 새끼의 대가리를 내 앞에 가져오란 말이다!!”
“임무 변경은 제 권한 밖의 일입니다.”
“꼴통 같은 군바리 놈! 네 고용주는 나다! 그것도 모르는 거냐!”
“뭐라 말씀하셔도 제겐 권한이 없습니다.”
“그래? 그럼 권한 있는 놈과 대화해야겠군.”
날 한번 쏘아본 프텔가르는 한 손으로 테이블을 때렸다. 테이블 표면에서 모니터가 올라오고 키보드가 나왔다. 그가 살찐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들겼다.
모니터에 비누스 교관의 무표정한 얼굴이 나타났다.
“프텔가르 남작님. 무슨 일이십니까?”
“비누스 상사. 네 빌어먹을 부하놈이 내 말을 안 듣는군.”
비누스 교관이 뒷짐을 쥐고 있는 나를 힐끗 본 뒤 프텔가르 남작에게 말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찢어 죽일 흑마법사 한 놈이 나를 노리고 있다. 네 부하는 흑마법사에게 쫄아서 움직이려 하지 않지.”
프텔가르 남작은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프텔가르 남작님. 전력이 나눠지면 호위 임무의 전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내겐 너희 말고도 경호원들이 있다. 내 경호원들을 무시하는 거냐?”
“…프텔가르 남작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존중하겠습니다. 212호. 흑마법사를 찾아내 죽여라.”
“알겠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비누스 교관은 프텔가르 남작과 조금 더 대화하더니 그대로 통신을 끊었다.
“크, 크흐흐. 들었나, 군바리? 네 상사가 흑마법사를 잡아 오란다.”
“…네. 흑마법사를 추격하겠습니다.”
프텔가르 남작의 의도는 뻔했다.
3일 뒤, 우리가 떠난 뒤에도 흑마법사가 공격해올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떠나기 전에 흑마법사를 찾아내 죽이려는 것이다. 프텔가르 남작에겐 이 방법으로 불안 요소를 제거하며 돈과 시간을 아낄 수 있다.
“협상일 전까지 흑마법사의 대가리를 가져와라. 하여간, 결국 이렇게 될 일을 귀찮게 하는군. 뭐해, 알아들었으면 꺼져!”
방 밖으로 나간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짜증이 치솟는다. 마음만 먹으면 10초 만에 프텔가르 남작을 죽일 수 있으나, 놈이 가진 권력과 돈이 나를 억압한다.
‘권력과 돈…. 내게 없는 거야. 군대에 처박혀 있으면 평생 얻을 수 없는 것들이기도 하지.’
아니, 군인도 권력과 돈을 얻을 수는 있다. 허나, 나는 아니다. 노예 낙인이 찍혀진 나는 일개 소모품일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위에서 떨어지는 명령을 수행하다 버러지처럼 죽겠지. 반드시 이 좆 같은 곳을 떠나고 만다.’
나는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 212호와 31호를 만났다. 그녀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어쩔 수 없지…. 비누스 교관의 명령이잖아.”
212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비누스 교관에게 부탁해서 내가 대신 할 수 있어.”
31호의 말은 정중히 거절했다. 그녀가 나서면 일은 더 귀찮아진다.
“3일이 지나면 임무를 포기하고 바로 복귀할 거야. 내 평가가 떨어져도 상관없어. 흑마법사 하나 때문에 고생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나는 내 의견을 밝혔다. 212호와 31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을 존중해줬다.
이어서 떠나기 전에 무장을 확인했다. 가방에서 작은 유리병이 나왔다. 212호가 두 눈을 반짝이며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유리병을 낚아챘다.
“이거 간식이지?”
“…맞아. 네가 좋아하는 간식.”
“나 주려고 챙겨왔어? 기쁘네.”
“네가 매일 달라고 하잖아.”
유리병 안에는 끈적한 하얀 액체가 들어있었다. 내 정액이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녀에게 내 정액을 건네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정액을 건네줄 때마다 심장이 뛴다.
212호가 유리병 뚜껑을 열었다.
어제 짜낸 정액 냄새가 공간을 확 퍼져나갔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진한 정액 냄새였다.
“흐으응. 맛있는 냄새….”
212호가 손가락으로 정액을 콕 찍어 입에 가져댔다. 손가락에 묻은 걸쭉한 정액을 맛보며 미소 짓는다.
“맛있어!”
“…그건 뭐야? 확실히 맛있는 냄새가 나네.”
31호가 관심을 보였다. 그녀에게도 정액 냄새가 맛있는 냄새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211호의 특제 간식이야. 뭐랄까. 음료수라고 하기엔 좀 많이 끈적하고… 젤리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지만, 엄청 맛있어! 한 번 먹어 볼래?”
31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었다. 212호가 그랬던 것처럼 손가락에 정액을 묻혀 입에 가져갔다.
“…맛있네. 212호. 네가 그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 정말? 이거 엄청 맛있지 않아? 거의 혁명 수준이잖아!”
“그 정도는 아니야.”
딱 잘라 말한 31호는 관심 없다는 듯 물러났다.
“엄청 맛있는데….”
212호는 31호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유리병을 품 안에 넣었다.
“나머지는 아껴먹어야지.”
212호가 생글생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