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0화 > 1240. 다크 문
프텔가르 남작 저택에서 나온 나는 가면을 벗고 인조 가죽으로 만든 얼굴을 썼다. 인피면구다. 내 얼굴은 지금 살짝 나이 든 남자의 얼굴이었다.
‘막막하군.’
숨어 있는 흑마법사를 쫓아야 한다. 정보라고는 그 흑마법사가 타투이스트라는 것 말고는 없다.
‘…적당히 하자. 적당히. 어차피 3일 뒤에 포기할 임무니까.’
나는 왼손 손목에 착용한 모바일 워치를 만지작거렸다. 모바일 워치는 이 세계의 스마트폰이었다. 홀로그램을 일으킬 수 있고, 인터넷에도 접속할 수 있다. 보통 스마트 렌즈와 함께 쓴다.
스마트 렌즈는 특수 콘택트렌즈다. 모바일 워치의 화면을 스마트 렌즈가 투사한다.
‘정보가 계속 들어오고 있군.’
경호원이 창녀들을 심문하며 얻은 정보를 212호가 정리해서 내게 보내주고 있었다. 대부분이 이 지역에 있는 타투이스트에 대한 정보였다.
‘폭발한 창녀의 친구에 대한 정보는 못 찾았나. 이 지역에 있는 타투이스트는 총 21명. 한 명씩 찾아가 확인해봐야겠군.’
우선 가까운 곳부터다.
나는 스마트 렌즈가 투사하는 지도를 보면서 거리를 걸었다. 회색빛이 가득한 도시였다. 공장은 돌아가고 하늘에는 시커먼 연기가 많았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 대다수가 기름에 찌든 옷을 입은 노동자들이었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라 그런지 찾아보면 있을 건 다 있다. 식당, 술집, 편의점 등등. 주위를 둘러보며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골목길 깊숙한 곳에 낡은 간판을 걸고 운영하는 타투 샵이다.
낡아 빠진 기계들이 많았는데, 의외로 손님으로 빼곡했다. 나는 대기하고 있는 손님들을 지나쳐 작업실로 향했다.
“자, 잠깐만요! 당신 뭐예요?! 여기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안 보여요?!”
직원으로 보이는 짧은 붉은 머리 여자가 튀어나와 나를 막았다. 귀와 코에 피어싱을 했고, 노출도 높은 옷을 입었는데 몸의 절반 이상이 문신이었다.
사정을 설명하기 귀찮았다. 품에서 권총을 꺼내 여자의 미간에 겨눴다.
“비켜.”
새파랗게 질린 여자가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대기하고 있던 손님들도 조용히 타투 샵을 빠져나간다. 소란에 익숙한 그들은 지금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작업실 문을 박차고 들어간다. 한 남자의 등에 타투를 그리던 비쩍 마른 남자가 나를 보고 기겁했다.
“다, 당신 뭐야! 총은 또 뭐고?!”
탕!
총알이 타투이스트의 옆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타투이스트의 두 눈이 커진다.
“허튼짓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타투이스트에게 다가갔다. 그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침대 위에 누워있던 손님은 눈치를 보다가 도망갔다.
“대, 대체 뭡니까. 이 근처에 자리 잡은 신흥 마피아 세력 출신입니까? 저희 가게는 불법 타투샵이 아닙니다. 정식으로 허락받고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저기 보시면 타투 자격증도 있습니다.”
“죽기 싫으면 허튼짓 하지 마라.”
남자의 어깨를 꽉 잡았다.
마나 로드를 타고 마나가 움직인다. 마나는 손쉽게 남자의 몸을 침범했다. 어떤 저항도 없었다. 무급. 마나를 느낄 줄도, 사용할 줄도 모르는 일반인이다.
“워, 원하는 게 뭡니까? 돈입니까?”
“타투이스트를 찾고 있다. 이 지역에 있는 타투이스트에 대한 정보를 아는 대로 말해라.”
“타, 타투이스트는 왜 찾는 겁니까?”
“……내가 너무 신사적이었군.”
탕!
총알이 그의 허벅지로 파고들었다.
“크아아악!”
“질문은 내가 한다. 살고 싶으면 내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라.”
“크으으…. 아, 알겠습니다. 타투이스트는….”
그가 알고 있는 타투이스트를 모두 말했다. 정보에 없는 타투이스트가 4명 있었다. 불법 타투이스트다.
정보를 들은 나는 타투 샵을 나갔다.
‘불법 타투이스트들을 우선순위로 두고 찾는 편이 낫겠군.’
“멈춰!”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몸을 뒤로 돌렸다. 아까 본 타투샵의 여직원이 내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이게 뭐야! 남의 영업을 방해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누구 한 명 죽은 사람 없다. 뭐가 문제지?”
“지금 그딴 걸 말이라고 해?! 잭의 허벅지에 총을 쏴놓고 뭐가 문제냐고?!”
“치료비를 원하나? 미안하지만, 가진 돈은 없다.”
그녀가 이를 빠득 갈았다.
“나는 2년 전에 맹세했어. 당하고만 살지 않겠다고…!”
여자는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이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온다. 그러나 총알이 내 몸에 닿는 일은 없었다. 미리 사용해두었던 배리어 마법이 총알을 튕겨냈다.
여자의 눈이 한순간 커진다. 그녀는 몸을 떨며 뒷걸음질 쳤다.
“마, 마법사…?! 마법사가 왜?!”
뚜벅뚜벅 걸어갔다. 여자는 이를 악물고 내게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의미 없는 짓이었다. 권총의 구경으로는 내 배리어를 뚫지 못한다. 마탄이었다면 또 모르지만, 마탄은 일반인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철컥철컥.
총알이 떨어졌다. 여자는 힘없이 팔을 내렸다. 날 보는 두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꽉 쥔 주먹에서는 꺾이지 않은 투지가 느껴진다.
나는 여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여자가 컥컥거렸다.
“네 과거 사정에는 관심 없다. 안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도 없다. 난 널 죽이지 않을 거다. 내게 총을 쐈지만, 그건 위협 수준도 안 된다. 대신 충고하나 하지. 조용히 살아라.”
목을 쥔 손을 풀었다. 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날 노려봤다.
“조용히 살라고?! 조용히 살고 있는데 쳐들어온 건 너잖아! 우리는…. 우리는 계속 너 같은 놈에게 당하고만 살라는 말이야?!”
“뭘 새삼스레. 원래 그런 세상 아닌가. 당하고 살기 싫나? 그럼 강해지던가.”
나는 여자를 뒤로하고 몸을 돌렸다. 도중에 몇 번이나 죽일까 고민했으나, 살려주기로 했다. 그녀는 꽤 미형이었다. 제대로 꾸미기만 한다면 괜찮은 미녀가 될 것이다.
???
7번째 허탕을 친 나는 한숨을 내쉬며 8번째 불법 타투이스트를 찾아 움직였다. 하늘은 이미 어두웠다. 주위에 공장이 가득해서 그런지 밤하늘에는 별은커녕 달도 잘 보이지 않았다.
‘슬슬 피곤하네. 오늘은 8번째까지만 확인하고 9번째는 내일 낮에 확인해야겠어.’
골목길을 걷는다. 찌든 기름 냄새가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반쯤 부서져 폐허가 된 다리 쪽으로 향한다. 다리 아래에는 흐르는 강물 대신 찐득하게 눌어붙은 폐기름만 가득하다.
그리고 다리 옆에. 고물 가져와 세워둔 작은 집이 있었다.
[배리어]
몸을 배리어로 감싸고 판자문을 발로 찼다. 총을 겨누고 안쪽으로 들어간다.
어두운 집안의 중심에는 한 남자가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50대로 보이는 그는 서슬 퍼렇게 빛나는 눈으로 날 봤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놈이 흑마법사다.
“애송이 마법사 하나가 휘젓고 다닌다던데…. 프텔가르 남작의 명령이냐?”
“창녀를 생체 폭탄으로 만들어 프텔가르 저택으로 보낸 게 네놈이군. 내 임무도 곧 끝날 테니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직선으로 날아가 배리어에 막혀 튕겨나갔다. 당황하지 않았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흑마법사도 마법사다. 원소 마법은 사용하기 어렵더라도, 무속성의 마법은 지금처럼 쉽게 사용한다.
“너. 클랙슨과 아무 관계 없군. 그렇지?”
“무슨 소리냐. 클랙슨이 날 고용했다.”
“클랙슨을 봤다. 생체 폭탄을 이용할 정도로 막돼먹은 놈으로는 안 보이더군.”
“인간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느냐? 멍청하긴.”
“무엇보다 클랙슨은 너 같은 흑마법사를 고용할 돈이 없다.”
흑마법사는 큭큭 웃기만 했다.
나는 입을 털면서 준비했던 마법을 발동한다.
[쇼크 웨이브]
강력한 충격파가 주변 물건들과 함께 흑마법사를 날려버린다. 나는 백스텝을 밟으며 무너지는 건물에서 벗어났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충격파에 휩쓸린 흑마법사의 몸이 검은 연기로 변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일종의 환술인가. 진짜는 어디에 있지?’
[디텍션]
마나를 퍼뜨려 숨어 있는 흑마법사를 탐색한다.
찾았다. 흑마법사는 다리 아래 가장 어두운 곳에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아이스 애로우]
내 앞에 끝이 뾰족한 얼음 말뚝이 나타나 어둠 속으로 쏘아진다. 흑마법사가 다급히 뛰어 아이스 애로우를 피했다. 바닥에 내려선 흑마법사가 히죽 웃는다.
“마법 쓰는 솜씨가 제법이군.”
“기분 나쁘게 웃지 마라.”
다음 마법을 사용하려는 찰나였다.
찍, 찍찍!
쥐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나를 향해 맹렬히 돌진해오는 쥐 한 마리가 보였다. 나는 안색을 굳혔다. 쥐의 몸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 머리는 순식간의 마법진을 파악했다. 몇 시간 전에 본 적 있는 마법 술식이었기에 이해가 빨랐다.
‘생체 폭탄…!’
의식을 가속화 시킨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술식을 형성한다. 가속한 의식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준비한 3개의 마법 술식을 연달아 발동했다.
[배리어]
[배리어]
[배리어]
쥐가 폭발했다. 그 폭발에 배리어 하나가 와장창 박살 난다.
“캐스팅 속도가 터무니없이 빠르군. 캐스팅을 보조해주는 아티팩트라도 가지고 있나?”
“이건 순수한 내 능력이다.”
“지나가는 개도 안 믿을 소리를 지껄이는군. 말하기 싫다면 됐다. 네놈을 죽이고 알아서 가져갈 테니.”
찍! 찍찍찍! 찍찍!
사방에서 쥐가 나타났다. 하나같이 생체 폭탄 흑마법이 걸려 있다.
“아티팩트가 폭발에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단단했으면 좋겠군.”
얼핏 봐도 10마리가 넘는 쥐들이 나를 향해 달려온다.
[에어 스트라이크]
땅바닥을 향해 에어 스트라이크를 사용했다. 나를 감싸던 배리어 한 장이 부서진다. 충격파는 사방으로 퍼지며 달려들던 쥐들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약간의 시간을 벌었다. 나는 품에서 탄창을 권총에 리로드했다. 다시 달려드는 쥐새끼들을 향해 권총을 갈긴다.
쾅! 퍼엉! 쾅쾅!
총알에 맞은 쥐새끼들이 터져나갔다. 주변에 널린 고철 폐기물과 낡은 가구들이 폭발에 휩쓸려 박살 나며 허공에 떠오른다.
“일발필중이라… 대단한 명사수셨구만. 근데 이걸 어쩌나. 폭탄은 얼마든지 있다.”
어디에서 나오는지 몰라도 쥐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마침내 총알도 다 떨어졌다. 나는 권총을 갖다버리고 준비한 마법을 사용한다.
[리버스 그래비티]
중력이 반전한다.
내 주위에 고철 조각과 나무 조각들이 허공에 우수수 떠올렸다. 그 수만해도 수천 개가 넘어간다.
‘공간 전체를 붙잡는 느낌으로…!’
[염력]
허공에 부유하던 조각들이 일제히 멈춘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허나 그 광경을 즐길 시간은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남은 마나와 집중력을 모조리 쥐어 짜냈다.
수천 개의 조각이 흑마법사를 향해 쏟아졌다.
“염력이라고?! 이런 미친…!”
흑마법사가 도망치려고 했으나, 이미 늦었다.
수천 개의 조각은 흑마법사의 지키던 배리어를 찢어발기고 그 몸에 깊숙이 박혔다. 흑마법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나를 향해 달려들던 쥐들이 우뚝 멈췄다. 상황을 파악하듯 주변을 둘러보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