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9화 > 1249. 다크 문
나는 제 이름을 밝히지 않은 가면남에게 흑마법사의 몸에서 척출한 다크홀 3개를 맡겼다. 다크홀을 가지고 667부대에 귀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감추려고 일부러 흑마법사의 시체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테러리스트 3명을 죽인 공로를 인정받아 하급 훈장을 받았다. 손바닥 위에 놓인 훈장은 은빛으로 반짝거렸다.
“…….”
훈장을 보는 내 얼굴은 무표정했다. 본래 하급 훈장과 함께 소정의 상금도 주어진다. 그러나 내 손에 주어진 것은 훈장이 전부였다. 상금은 소리 없이 사라진 것이다. 아마 비누스가 내 상금을 채갔거나, 더 높으신 분들이 가져갔을 확률이 높다.
따질 수는 없었다.
나는 군인인 동시에 실험체였으며 노예였다. 내 어깨에 새겨진 노예 인장이 나를 군인보다 못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따져봤자 돌아오는 건 비웃음뿐이다.
‘…짜증 나는군.’
상금을 빼앗긴 것도 그렇지만, 겨우 테러범 셋을 잡은 일로 훈장이 내려진 점이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나는 수십 번의 임무를 수행했다. 테러범을 잡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고 중요한 임무도 몇 번이나 수행했고 성공시켰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보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훈장을 받은 이유는 딱 하나다. 국왕이 이번 사건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지.’
약 반년 뒤에 배틀 메이지 프로젝트 1기의 성공을 알리고, 나는 정식으로 부대 배치를 받는다. 내 처지가 변할까? 그럴 리가. 상층부는 노예 인장을 유지할 것이다. 겉으로는 군인으로 대우해주는 척하면서 최대한 뽑아 먹으려 하겠지.
그러다 한계가 찾아오면 쓰레기처럼 버려질 뿐이다. 물론 고급 인력인 만큼 대우는 받겠지.
‘놈들이 선심 쓰듯 던져주는 사료 따위에 관심 없어.’
눈을 감았다.
마나 진액이 투여되는 감각과 함께 환통이 몸을 덮쳐왔다. 나는 환통을 음미하며 치솟는 복수심을 가꾸었다.
‘배틀 메이지 프로젝트에 관련된 놈들은 반드시 죽인다. 특히 비누스 교관…!’
비누스 교관은 배틀 메이지 프로젝트의 현장 책임자였다. 놈은 자기 권한을 이용해 나를 비롯한 인력을 부려 먹었다. 근엄한 척하고 있으나 구린 구석이 지나칠 정도로 많다.
“백합 훈장이네.”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렉시가 훈장을 보며 말했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생각에 잠겨 있어서 그녀가 오는 것도 몰랐다.
“렉시 누나….”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더라. 훈장을 받아서 감회가 새로워?”
나와 마주친 렉시는 싱긋 웃으며 사무실 벽에 코트를 걸었다. 그리고 자기 의자에 앉으며 컴퓨터의 전원을 누른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하긴 하급 훈장은 큰 혜택이 없긴 하지. 기껏해야 PX 물건 3% 할인 정도일까나.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나아. 아무리 별 혜택 없는 훈장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인사고과에 좋은 영향을 끼치거든.”
“누나는 훈장을 몇 개 가지고 있어.”
“4개. 군인 중에서 상당히 많은 편인데… 이 누나가 사고 친 게 좀 많아서 진급을 못 하고 있었어요.”
익살스럽게 말한 렉시는 책상 위에 프린트한 서류 한 장을 올렸다. 무심코 서류를 읽은 나는 두 눈을 치떴다.
서류는 발령서였다. 다음 달까지 2사단으로 오라는 명령서였다. 2사단은 수도권에 위치한 군부대다.
“아마 특수부대원으로서 활동하게 될 것 같아. 그리고… 짠!”
렉시는 다른 서류를 자랑하듯 보여주었다. 진급 명령서였다. 그녀는 다음 달에 부대를 이동하는 동시에 소령으로 진급한다.
“…중사에서 소령으로 진급한다고요?”
“아, 말 안 했던가? 내 원래 계급은 대위였어. 사고 쳐서 중사 계급으로 강등당해 667부대에 배치받은 거고. 뭐, 여기 있는 교관들 대부분이 비슷할걸.”
“비누스 교관도 마찬가지입니까?”
“그 양반은 꽤 거물이야. 원래 대령이었다고 들었는데… 군납 관련 비리로 강등당했다나 봐. 해먹은 크레딧만 3억에 달한다더라.”
“…군납 관련이면 옷을 벗어야 하는 수준 아닙니까?”
3억 크레딧.
이 세계 평균 월급이 10만 크레딧이라는 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비누스 교관은 유능하니까. 거기에 5급 배틀 메이지야. 소규모 전투를 말 그대로 지배할 수 있는 5급. 비누스 교관이 그동안 해온 것도 있으니 사령부도 그를 쉽게 버릴 수 없었다는 거지. 뭐, 내가 보기에는 사령부의 누군가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 같지만.”
“…….”
나는 조용히 렉시를 지켜봤다. 렉시는 바쁘게 움직였다. 평소와 달리 활기찼다.
“…누나는 전역할 생각이 없어?”
“전역? 이전에는 가끔 생각했지. 하지만 이제 겨우 위로 올라갈 길이 생겼어. 아무리 좆같아도 악착같이 버텨야지.”
“…….”
나는 입을 다물었다.
원래 오늘 그녀를 설득하려 했었다. 나와 함께 반란을 일으키고 군을 나가자고. 그러나 눈을 반짝이며 키보드를 두들기는 그녀를 보니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
그동안 렉시와 너무 가까워졌던 것 같았다.
‘렉시와 나는 입장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텐데….’
렉시는 군대를 바탕으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했다. 군인은 그녀의 직업이었고, 프리셀 왕국은 그녀의 고향이었다.
그녀를 내게 끌어들인다는 것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버리라는 말과 같았다.
렉시를 끌어들일 수 없다. 그녀가 내 계획에 동참할지도 미지수다.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으음. 미안. 오늘은 일이 바빠서 섹스 못 하겠어. 그동안 너무 대충한 것들이 많아서… 정리해야 하거든.”
“아니. 괜찮아. 근데 이대로 렉시 누나랑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뭔가 많이 아쉽네.”
“뭐, 알고 지낸지 몇 년이나 됐으니까. 나한테는 익숙한 일이지만… 너한테는 아니겠네. 그래도 걱정하지 마. 나중에 만날 거야. 군대라는 게 의외로 좁거든. 그리고 누나 번호 기억하지? 너도 부대 배치받으면 연락해. 이 누나가 한 잔 찐하게 사줄 테니까!”
“……기대할게.”
???
렉시를 만난 뒤로 동기들이 다르게 보였다.
동기들은 나와 다르게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202호는 반년 뒤에 있을 부대 배치를 기대하며 군인과 관련된 정보를 알아보고 있다.
화력 덕후인 88호는 전차 부대에 배치받을 방법을 모색 중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52호는 자기 단련에 한창이었다.
분홍색 땋은 머리의 166호는 일기를 쓰고 있었다.
동기 중 가장 가슴이 큰 99호는 화장품으로 외모를 관리하고 있다.
이들은 나와 달랐다. 틈만 나면 마법을 연구하고 힘을 쌓으려는 나와 달리 현재를 즐기며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 그들에겐 나와 같은 복수심이 없었다.
무엇이 차이일까.
‘…내가 현대인으로서 게임 속에 들어온 이물질이기 때문일까?’
복도에 멍하니 서 있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긴 갈색 머리의 212호였다. 그녀가 싱긋 웃더니 복도를 걷는다. 이건 일종의 신호였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라 목욕탕으로 향했다.
여자 탈의실에서 옷을 벗는다. 목욕탕에서 여자 동기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익숙해졌다. 나는 옷을 벗으며 212호를 불렀다.
“212호.”
“응?”
“만약, 부대에서 성공적으로 탈영할 수 있다면… 탈영할 거야?”
“탈영이라니 무슨 소리야. 농담으로도 그런 말 하지 마. 애초에 탈영할 수 없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그녀는 노예 인장이 그려진 어깨와 추적기가 박힌 목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만약이잖아. 성공적으로 탈영할 수 있다면… 할 거야?”
“으음. 아니. 나는 거의 팔려 오듯이 끌려오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 생활은 나쁘지 않아. 만약, 내가 여기에 오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됐을 거라 생각해?”
“…글쎄. 너라면 잘살고 있지 않을까.”
212호가 브래지어를 풀었다. 풍만한 젖가슴이 출렁였다. 내 시선을 느낀 것일까. 말랑해 보이는 유두가 점점 커지며 단단해졌다.
“우리 엄마는 창녀야.”
“…….”
“이 부대에 오지 않았다면, 아마 창녀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 여긴 조금 갑갑하긴 하지만, 먹을 것도 잘 나오고, 옷과 재울 곳도 줘. 무엇보다 강간당할 위험에 대비할 필요도 없어. 무엇보다 마법도 가르쳐주잖아.”
그녀가 팬티를 벗었다. 크고 하얀 엉덩이를 보니 아랫도리에 피가 쏠렸다.
“……마나 진액을 투여받는 건 괜찮고?”
“그건 죽을 만큼 싫어. 하지만 그것도 지나가는 일이잖아. 부대 배치를 받으면 마나 진액을 투여받을 일도 없어. 뭐… 우리 다음 기수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건 걔들 문제고.”
“…다른 애들도 너처럼 생각할까?”
“탈영 말이지? 아마 안 그럴걸. 이거 비밀인데 52호는 거지들에게 맞아 죽을 뻔했고, 99호는 아버지에게 범해질 뻔했대. 166호는 흑마법사에게 납치당해 실험체가 될 뻔했어. 하지만 지금 우리는 멀쩡해. 마법이라는 힘도 가지고 있지. 그러니까.”
알몸의 212호가 내게 달려들었다. 그녀가 양팔로 내 몸을 끌어안는다. 그녀의 체온에 긴장이 풀어지고, 따뜻한 숨결에 몸이 흥분된다.
“이상한 생각하지 마. 211호. 너는 뛰어나. 아마 장교도 노려볼 수 있을걸? 군대가 싫으면 10년 정도 복무하다가 전역하는 거야.”
212호의 입술이 다가왔다. 나는 피하지 않고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혀가 뒤섞인다. 그녀의 타액에서 오렌지 맛이 희미하게 느껴진다.
복잡한 머릿속과 달리 내 육체는 그녀를 탐하고 있었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주무르고, 엉덩이를 만진다. 발기한 자지는 그녀의 아랫배를 누른다.
“211호. 난 장교가 될 거야.”
“…장교?”
“응. 사람을 부리는 게 꽤 멋지잖아. 넌 장래에 뭘 하고 싶어?”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사업.”
무력. 재력. 권력.
그 모든 걸 손에 넣고 싶다. 역시 가장 편한 건 장교가 되는 것이지만, 군인은 쓸데없이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족쇄 같은 군인의 의무도 지긋지긋하다.
“사업을 하고 싶어. 아직 사업 상품 같은 건 없지만.”
이 세계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였다. 많은 돈을 가진다면, 권력 또한 자연스레 가지게 될 것이다.
“음. 뭐랄까. 너 답네.”
212호는 웃으며 나를 목욕탕으로 이끌었다.
그녀는 목욕탕에 들어가자마자 벽을 붙잡더니 엉덩이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오늘은 뒤로하고 싶어. 괜찮지?”
한 손으로 자기 엉덩이를 잡아당긴다. 엉덩이 사이가 벌어지며 옅은 분홍색 보지와 항문이 고스란히 보였다. 일자로 앙다문 보지는 애액에 젖어 반질거렸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그녀의 엉덩이를 잡고 허리를 힘차게 밀어 넣었다.
푸욱!
자지가 단숨에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다.
“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