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52화 > 1252. 다크 문 (1,032/2,000)

< 1252화 > 1252. 다크 문

뻥.

병의 마개를 딴 나는 그대로 마약을 들이켰다.

쿵!

심장이 격렬히 뛰었다.

몸 안의 마나가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마법사의 정신이라 불리는 아스트랄이 강제로 개방된다. 몸 밖으로 빠져나간 마나는 일종의 두 번째 감각처럼 느껴졌다. 감각기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촉각, 냄새, 시각 등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마나의 감각은 더욱 예민해진다. 예민해지고 예민해진 끝에 감각을 초월한 무언가가 되었다.

세계가 부서지고 뒤섞이고 창조되고 다시 부서지는 듯한 감각이었다.

50개의 마나 로드가 강제로 활성화되고, 아스트랄이 확장과 수축을 반복한다. 세상이 블랙홀 속에 빠져 질척거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육체의 감각이 사라졌다.

보통 이러면 자아가 휩쓸리기 마련이다. 아스트랄이 곧 정신이고, 정신이 죽은 슬라임처럼 녹아내려 휘저어지고 있는데 자아를 유지하면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문제는 그 이상한 일이 내게 벌어지고 있었다.

수축과 팽창, 회전과 역회전을 반복하는 아스트랄 안에서 오직 내 정신만이 흔들리지 않고 멀쩡했다.

플레이로드를 복용하는 건 내게 있어 일생일대의 도박이었는데, 아무래도 도박은 내가 이긴 것 같다.

플레이로드.

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각성 마약으로 세 가지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일반인은 플레이로드를 마지막 쾌락이라 부른다. 일반인들이 희석하지 않은 원액을 복용할 경우 100% 사망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별명은 영감의 원천. 플레이 로드를 가장 많이 찾는 사람들은 예술가들이다. 플레이로드를 마시면 영감이 찾아온다. 그런 소문이 예술가들 사이에서 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별명은 5%의 희망.

벽에 가로막힌 마법사들의 희망이다. 5%의 확률로 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 라는 소문이 마법사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 실제로 5% 확률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 터무니없는 각성 마약을 잘만 이용하면 벽을 넘을 수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지금 내가 그러고 있었다.

“…크으으으….”

내가 낸 목소리인가?

감각이 엉망이라 잘 모르겠다. 지금 내게 보이는 건 부서지다 못해 먼지가 된 세상이었다. 세상은 누군가가 조합하듯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 바닥에 앉아 있는 건지, 아니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지 모르겠다. 육체의 감각이 없다. 손가락을 어떻게 움직이는 거였더라? 숨은 또 어떻게 쉬었지? 성욕이 뭐였지?

떠오르는 의문들을 모조리 지우고 아스트랄에 집중한다.

뒤죽박죽의 아스트랄은 계속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고 있다.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내가 해야 할 건 아스트랄의 정리다. 쓸모없는 것들이 자리 잡지 않도록 정리한다. 쓸데없는 정보가 너무 많으면 뇌가 전자레인지에 돌려진 꼴이 될 테니까.

쩍!

얼마나 지났을까.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던 아스트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금이 간 부분을 조용히 들여다봤다. 가느다란 금이 점점 커지더니 쨍그랑하고 일부가 부서졌다.

내 자아는 멀쩡했기에 아스트랄이 붕괴하는 일은 없었다. 아스트랄은 천천히 부서진 부분을 수복했다.

나는 깨진 부분을 통해 그 너머를 엿보였다.

거대한 술식의 총아가 보였다.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할 수는 없는 그것은 태양만큼 거대했다.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저것의 정체를 알았다. 마법의 근원, 오버 마인드다.

좀 더 이해하고 싶었으나, 아스트랄의 수복이 끝났다. 그리고 아스트랄이 안정을 되찾는다. 나는 벽을 넘은 것이다.

“…….”

눈을 떴다.

회색의 차가운 바닥이 보였다. 앉아 있었는데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그리고 악취가 느껴졌다. 토한 모양이다. 토사물 위로 섞이지 않은 피가 보였다. 코피였다. 지금도 코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엉망이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후들거렸다. 아스트랄은 5급에 도달했으나, 육체는 그대로 4급인지라 균형이 맞지 않았다. 불균형에 따른 부작용이 육체를 통해 발생하는 것이다.

“축하합니다. 5급이 되셨군요. 설마 당신이 4급이었을 줄이야…. 그 철저함도 놀랍지만, 지금은 5%의 확률을 뚫고 5급에 도달한 그 재능이 더 대단하군요. 어떤 기분입니까?”

“토하고 싶은 기분이다.”

눈을 감고 내 몸을 관조했다. 마나 로드는 50개. 4급 일 때와 똑같았다. 본래 5급이 되면 못해도 마나 로드가 80개는 되어야 한다.

즉, 내 경지는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도 아스트랄은 5급에 올랐다. 출력은 다른 5급 마법사에 비해 떨어지겠지만…. 캐스팅 속도는 찰나를 통해 커버할 수 있고, 까다로운 5급 마법을 조건 없이 사용할 수 있어.’

[워터]

[염력]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했다. 허공에 물을 만들어 염력으로 엉망이 된 얼굴을 씻는다. 입안까지 씻으니 악취가 사라지고 개운해졌다.

“…그런데 왜 가면을 벗었지?”

“당신을 향한 예우입니다. 저는 당신의 평범하지 않은 재능을 목도 했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당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군요.”

“이름이 뭐지?”

“루이스 빌슈타인입니다. 하이스트 제국의 특수 요원이었으며, 지금은 빌슈타인 코퍼레이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 예상했던 정체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농담하는 건가? 내 이름은 알고 있을 텐데.”

“그건 당신의 이름이 아니라 번호지요. 혹시 이름이 없으십니까? 괜찮으시다면, 제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줄 영광을 받아도 되겠습니까?”

“소름 끼치는 소리 좀 하지 마라. 내 이름은… 유진. 내 이름은 유진이다.”

루이스는 아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돌프라는 이름이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아쉽군요. 물론 유진이란 이름이 잘 어울립니다.”

“…….”

나는 눈을 감았다. 몸을 관조할 필요가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내 상태를 확인하고 있으니, 루이스가 심심하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몸이 정상이 아닌 것 같군요. 괜찮으십니까?”

“아스트랄과 육체의 불균형이 원인이다. 시간을 들여 맞춰가면 그만이다.”

“으흠. 그건 다행이군요. 그런데 동료는 만들었습니까?”

“동료?”

“유진 씨의 동기들 말입니다. 포섭이 많이 이루어질수록 계획은 편해집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나 혼자 한다.”

“흐음. 좋습니다. 지금의 당신이라면 잘 해내겠죠.”

212호를 비롯한 동기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 일이 성공하면 나는 테러리스트 이상의 현상금 수배자가 된다. 앞으로 평생 프리셀 왕국에 쫓기는 몸이 되는 것이다. 다른 국가로 망명하더라도 추격자가 붙을 것은 당연했다.

나는 그녀들의 꿈을 박살 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들에게 평생 쫓기는 삶을 주고 싶지 않았다.

‘비누스 교관을 죽이고, 배틀 메이지 프로젝트를 없앤다. 계획이 성공하면 그녀들은 자유를 얻겠지. …그 대가는 내가 짊어진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져오라는 건 전부 가져왔나?”

“예. 이 가방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게 왜 필요합니까?”

“쓸데가 있다. 잠깐 나갔다 오지. 넌 여기 있어라. 돌아가도 상관없다.”

“기다리겠습니다. 여기 풍경만큼은 꽤 볼만하니 지루하지는 않겠죠.”

나는 루이스를 뒤로하고 11번 폐광산으로 떠났다.

이 북쪽 마을에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온 건 아니었다. 이곳에서 얻어야 할 물건이 있기 때문이다.

‘본래 게임에선 8개의 달하는 선행 퀘스트를 끝내야만 얻을 수 있지만…. 현실은 게임이 아니니까. 퀘스트는 무시해도 상관없겠지.’

폐광산 깊숙한 곳으로 들어온 나는 주먹으로 벽을 두들기며 걸었다.

‘…찾았다.’

[에어 붐]

쾅!

벽이 무너지고 숨겨져 있는 통로가 드러났다. 폐광산과 다르게 깔끔해 보이는 통로였다. 다만,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은 듯 먼지가 가득했다.

통로 끝에 첫 번째 문이 나왔다. 손잡이가 없는 문이었다. 가방에 손을 넣어 루이스가 준비한 물건 중 하나를 꺼낸다.

적갈색의 구리 동전이다. 동전을 문에 가져다 댔다.

쿠르르르릉.

문이 순간적으로 빛나더니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생활감이 느껴지는 공간이 나왔다. 나는 구석의 서랍을 열어 붉은 포션을 꺼내 입 안에 넣었다. 아까부터 속이 안 좋았는데, 포션을 먹으니 한결 나아졌다. 빈 포션병을 바닥에 버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손잡이 없는 문이 또 나왔다. 이번에는 토파즈 조각을 꺼내 문에 갖다 댔다.

쿠르르르릉.

문이 열렸다.

문은 알맞은 광석이나 보석을 갖다 대면 열린다. 공략법을 아는 사람에겐 쉬우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겐 성가신 기믹이다.

이후로도 광석과 보석을 이용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어지럽혀져 있다. 챙길 수 있는 포션과 자료는 최대한 챙겼다. 그리고 마지막 8번째 문을 백금을 이용해 열고 들어갔다.

나는 방 끝에 있는 테이블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두꺼운 책을 발견한 내 입꼬리가 위로 올라간다.

이곳은 7급 연금술사 맥도르의 공방이었다. 두꺼운 책에는 그의 연금술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 세상에서 연금술은 마법 취급이지. 마법사인 나도 연금술을 익힐 수 있어. 연금 술식은 빌어먹을 정도로 복잡하다고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군.’

그 자리에서 책을 펼치며 연금술을 탐독하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책상 아래 서랍에서 챙겨야 할 물건을 챙겼다.

3개의 앰플.

오버로드라 불리는 도핑용 물약이다.

게임 속에서는 자주 사용하는 도핑 물약이지만, 설정상으로 부작용이 심하기에 게임처럼 자주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맥도르의 연금서를 보며 광산 밖으로 걸어 나갔다.

‘대단하군. 이렇게 정리를 잘해 놓았을 줄이야….’

기본적인 연금술부터 시작해 다수의 비전 연금술까지 기록되어 있다.

‘임무 기간은 3일. 그 정도면 암기하고도 남지.’

아우우우우우.

폐광산을 나오자마자 한기 섞인 바람이 불어오고, 가까운 곳에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 그러고 보니 5번 폐광산 근처에 웨어 울프가 자리잡고 있지. 온 김에 처리하고 가야겠군.’

눈 내리는 설원을 걷는다. 누군가는 이 풍경을 환상적이라고 표현하겠지만, 군인인 내 눈에는 쓰레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걸어가던 나는 멈칫했다. 20마리에 가까운 늑대들이 달려오더니 나를 포위하듯이 감쌌기 때문이다.

“크르르르르.”

늑대들의 중심에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는 웨어울프가 보였다. 2m 크기에 이족 보행하는 늑대인간이다.

‘원작 대로라면 웨어울프는 단순한 몬스터가 아니지. 늑대 인자가 폭주한 끝에 도달한 결과.’

웨어 울프는 본래 인간이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일렉트릭 필드]

발을 한 번 굴렀다. 내 주위 땅에서 푸른 전기 수백 줄기가 위로 솟구친다. 쌓인 눈이 녹고, 23마리의 늑대들이 감전당한다.

일렉트릭 필드가 한 차례 쓸고 지나갔음에도 늑대들은 죽지 않았다. 부들부들 떨며 몸을 일으킨다.

‘일렉트릭 필드는 4급 마법이다. 출력이 부족한 건 아니었을 텐데… 웨어 울프의 영향을 받았나.’

오른손을 들었다. 염력이 발동하며 주변의 물과 눈을 허공에 끌어올린다. 눈과 물은 제각각 뭉쳐져 23개의 검의 형태를 취한다.

[강철 연금]

2급 연금 마법을 사용한다. 물과 눈이 일시적으로 강철로 변환했다. 훌륭한 강철검 23개가 허공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오른손을 내렸다. 강철검 23개가 동시에 늑대들에게 떨어졌다. 즉사. 정확하게 목을 관통했다. 살아 있는 늑대는 없었다. 23개의 강철검은 원래의 눈과 물로 변해 바스러졌다.

이제 남은 건 웨어 울프 하나뿐이다.

[배리어]

웨어 울프의 순간 가속도는 무시할 수 없기에 배리어로 몸을 감쌌다.

내게 달려들 것으로 생각한 웨어 울프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주춤거렸다. 그리고는 등을 돌려 설원을 네발로 내달리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설마 도망칠 줄이야. 이건 예상외군.’

당황하지 않는다. 여긴 폐광산 사이에 있는 설원이다. 도망쳐도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염력으로 끌어와 주먹만 한 크기의 탄환 형태를 취한다.

[물질 변환]

눈 탄환을 알루미늄 탄환으로 변환한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이어 느려진 세계에서 술식을 계산하고 탄환을 중심으로 마법진을 그린다.

파직, 파지지직!

그려진 푸른 마법진에서 전류가 맹렬하게 튀었다.

나는 마법진과 탄환의 각도를 조정하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리볼버의 해머가 뇌관을 때리듯 주먹으로 마법진을 때렸다.

[레일건]

발사한 레일건은 쌓인 눈을 양옆으로 가르며 웨어 울프에게 명중했다. 쌓인 눈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땅에는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콰아아아아앙!

소리가 들렸을 때는 이미 발사 여파가 내 몸을 덮친 뒤였다. 단지 여파만으로 5급 배리어가 갈기갈기 찢어졌다. 다행히 배리어가 희생해준 덕분에 몸에 닿는 직접적인 충격은 없었다.

웨어 울프의 처참한 시체를 멀리서 확인한 나는 몸을 돌렸다.

‘생각보다 위력이 약했어.’

내가 스스로 고안한 레일건 마법은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하지만, 계산대로라면 탄환이 발사되는 속도는 1.5배 이상 빨라야 했다. 원인은 짐작 갔다.

‘보통의 5급 마법사들보다 마나 로드의 수가 적어서 출력이 부족한 거야. 마나 로드를 늘리는 게 급선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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