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5화 > 1365. 신의 아틀란티스
잭슨은 6,700 구역 출신의 대륙인이다. 여덟 번째 아틀란티스의 시작과 함께 6,700 구역에서 살아왔다는 뜻이었다.
6,700 구역은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안쪽을 살펴보면 치가 떨릴 정도로 더럽다.
잭슨은 이와 비슷한 상황을 몇 번 겪어본 적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먼저 자료는 서버에 백업하고….’
잭슨은 기계를 두들기면서 창밖을 바라봤다. 검은 차들이 작업실 앞에 멈추고, 정장을 빼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내린다. 그 중심에는 데이비드 실장이 있었다.
회색 머리카락을 깔끔히 뒤로 넘긴 헤어 스타일, 새하얀 피부, 홀쭉 들어간 광대뼈, 우묵한 눈. 입고 있는 옷은 당연하게도 검은색 정장이다. 사신을 떠올리게 하는 인상.
‘젠장. 깡패 새끼들까지 데려왔군….’
6,700 구역은 다른 구역보다 안전하다. 적어도 6,700 구역의 대부분 사람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도 틀린 말이었다. 6,700 구역에서 온갖 방식으로 범죄가 일어난다. 단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연예의 왕국은 인기도에 따라 매달 AP를 얻는다.
AP.
아틀란티스 포인트.
아틀란티스의 공용 화폐인 페니보다 더 상위에 있는 화폐.
6,700 구역에선 인기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매달 AP를 얻을 수 있다. 대형 기획사 같은 경우에는 한 달에 기본 수십만 이상의 AP를 얻는다. 어지간한 구역의 지배자급이다.
연예 활동만으로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는 AP.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 파리들이 꼬이는 이유였다.
‘망할 깡패 새끼들….’
깡패들 대부분은 밖에서 온 추방자들이다. 보통 인간보다 강한 신체 능력을 가진 놈들이 운 좋게 6,700 구역 입장권을 얻어 정착한 케이스. 깡패들을 상대할 수 있는 건 같은 깡패거나, 6,700 구역의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들뿐이었다.
‘경찰 놈들도 개 같은 놈들이라 문제지.’
그래도 희미한 희망을 가지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역시나였다. 신호음이 2번 울리기도 전에 끊겼다. 경찰이 일부러 전화를 끊은 것이다.
쿵쿵쿵!
“잭슨 감독님. 데이비드입니다. 안에 계신 거 알고 있습니다. 잭슨 감독님을 위해 선물도 가져왔으니… 문 좀 열어주십시오.”
“……!”
잭슨은 숨을 들이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데이비드 실장이라면, 자신을 오늘 담글지도 모른다. 차라리 데이비드에게 모든 것을 알릴까?
‘…아니야. 그랬다간 그 미친놈이….’
로버트 AD를 잔인하게 고문하고 죽이던 성유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광기에 찬 모습에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잭슨은 데이비드 실장보다 성유진이 더 무서웠다.
“잭슨 감독님. 혹시 위험한 상황입니까? 10초 내로 대답하지 않으시면…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가겠습니다! 10. 9. 8….”
“그만! 지금 문 열 테니 아무것도 하지 마!”
“아,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잭슨은 스마트폰을 보며 현관문으로 향했다. 성유진은 메시지를 읽었으나, 답장이 없었다. 일부러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읽고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온다면 최소 10분은 걸릴 테지.
잭슨은 문고리를 잡으며 표정을 관리했다. 데이비드 실장은 생각보다 평화롭게 나왔다. 즉, 대화할 생각이 있다는 것이다. 성유진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 수 있을 것이다.
현관문을 열었다. 데이비드 실장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감독님, 늦은 밤에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미안한 마음에 빈손으로 올 수 없어, 선물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한 번 봐주시지요.”
“선물?”
잭슨의 시선이 데이비드의 뒤쪽으로 향한다. 정장을 입은 깡패들의 손에 박스가 들려 있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다.
“뭘 가져온 거야?”
“이번에 나온 최신 전자제품들과 제철 과일들입니다.”
선물.
평소의 잭슨이었다면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했다.
???
나르 엔터테인먼트의 실장인 데이비드는 본래 바깥 구역에서 용병 일을 하던 추방자다.
그는 아틀란티스에 오고 기뻐했다. 자신의 수완과 머리라면 아틀란티스에서 마음껏 활개 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허나 현실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
아틀란티스는 야만의 세계였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웃기는 소리. 법보다 칼이 더 가까웠다. 권력, 돈. 그런 것보다 무력이 최고인 세계였다.
머리가 좋다? 그래봤자 힘센 놈에겐 안 된다. 힘센 놈의 한마디에 머리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었다.
데이비드가 6,700 구역에 온 이유는 6,700 구역에 힘센 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제약이 많은 구역이다 보니 강자들은 6,700 구역의 안전함에 매력보다는 답답함을 느낀다.
‘용의 꼬리가 될 바에는 뱀의 머리가 된다. 그게 내 좌우명이다.’
데이비드는 정면에 앉은 잭슨을 바라봤다. 잭슨은 자신을 향해 거만한 태도를 하고 있으나, 두 눈에는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보였다.
데이비드는 히죽 웃으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고유 특성을 사용했다.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합니다.」
「거짓말 탐지기
거짓말을 판별할 수 있다.
종류: 고유 특성
랭크: A 」
“제가 부탁드린 일은….”
“잘하고 있어. 간섭하지 마.”
「거짓말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잭슨의 까칠한 대꾸에도 데이비드의 안색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머리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잭슨에게 부탁한 일은 포비츠의 뮤직비디오를 대충 만드는 간단한 일이다. 말 그대로 대충하면 되니까.
그런데 이게 잘 안 되고 있다? 무언가가 있었다.
데이비드는 일단 다른 이야기부터 꺼냈다.
“로버트 AD가 지금 어디에 계신지 아십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놈, 일하는 도중에 말도 없이 사라졌어. 집에서 잠이나 자고 있겠지.”
「거짓말입니다.」
잭슨의 목소리가 떨렸다.
짙은 두려움.
자신을 향한 두려움인 줄 알았으나…, 정말 자신을 두려워했다면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을 것이다. 잭슨은 다른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잭슨 감독님. 사소한 거라도 좋습니다. 로버트 AD에 관한 정보를 주십시오. 혹시 감독님께서 로버트 AD를 숨겨주고 계십니까?”
“내가 그놈을? 뭐하러?”
거짓이 아니었다.
잭슨이 로버트를 숨겨주고 있는 건 아니다.
“…사실 로버트 AD에게 따로 부탁한 일이 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모르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로버트에 대해서 묻지 마.”
「거짓말입니다.」
“알고 계시는군요. 저는 로버트 AD에게 포비츠의 탈의 영상을 몰래 찍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더러운 짓을 시켰군. 데이비드. 이 일은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 거야.”
“잭슨 감독님은 아까부터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계시는군요.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 혹시 로버트 AD는 죽었습니까?”
“…….”
잭슨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아니라면 아니라고 대답해 주십시오.”
“모, 몰라. 로버트가 그쪽 돈 먹고 잠적한 거겠지. 그놈은 그럴만한 놈이야.”
「거짓말입니다.」
“죽었군요.”
“모른다고 했잖아.”
「거짓말입니다.」
“릴리트 엔터의 짓입니까? 이번에 꽤 세게 나오는군요. 원래 릴리트 엔터가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만, 설마 살인까지 할 줄이야….”
“씨발. 난 모른다고! 지레짐작할 거면 당장 나가!”
「거짓말입니다.」
“릴리트 엔터에 협박받으셨습니까? 감독님, 저와 손을 잡으시죠. 감독님은 제가 살려드리겠습니다. 저를 믿고, 제 지시에 따라주시면 됩니다. 릴리트 엔터가 감독님에게 손을 뻗칠 일은 없을 겁니다. 제 이름을 걸고 약속하죠.”
잭슨에게 고개 숙인 데이비드는 잭슨에게 목줄을 채울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릴리트 엔터의 파격적인 대응?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기에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바라고 있던 일이었다. 릴리트 엔터는 이 일로 조금이나마 휘청이게 될 것이다.
‘릴리트 엔터는 섣부르게 손을 썼어. 그게 실수지. 더러운 곳에서 싸워주겠다면… 환영이다. 우선 잭슨을 구슬려 자초지종을….’
퍽.
뒤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데이비드가 고래를 들었을 때, 위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잘린 사람 머리였다. 그 얼굴은 그가 잘 알고 있는 경호원의 것이다.
그의 시야에 잭슨의 얼굴이 들어왔다. 창백하게 질린 잭슨의 표정은 두려움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경호원들은 비명을 지르는 것보다 먼저 몸을 움직였다.
퍽, 철퍼덕, 쿵.
전투 소리는 없었다.
대신 시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 머리가 떨어지고, 피가 바닥을 채운다. 그의 경호원은 모두 절명했다. 저벅저벅. 누군가가 피 웅덩이를 밟으며 데이비드에게 다가갔다.
데이비드의 목덜미에 식은땀이 흘렸다. 날카로운 칼이 전신을 감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야.”
“…….”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붉은 칼을 손에 쥔 남자가 시체 사이에 서 있었다.
“네가 데이비드냐?”
“…네. 나르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고 있는 데이비드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죽여줄까? 내 여자를 건드렸으니… 쉽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라.”
“……저는 근래에 여자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어떤 오해가….”
“포비츠. 몰카 찍으려 했잖아, 십새끼야. 로버츠인가 뭔가 하는 새끼가 다 불었어.”
성유진이 짜증 내며 화련비도를 휘둘렀다. 근처에 널브러져 있던 경호원의 세차가 깔끔하게 양단되며 피와 내장을 쏟아냈다.
데이비드는 덜덜 떨리는 손을 붙잡았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저건 말이 통하지 않는 미친놈이다. 용병 생활을 하며 2번 정도 맞닥뜨린 적 있는 미친놈들의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1명은 남자아이만 죽이는 놈이었고, 다른 1명은 식인을 즐기는 놈이었다. 그리고 그 미친놈들은 모두 데이비드보다 강했었다.
“…살려, 살려주십시오. 뭐든지… 뭐든지 하겠습니다.”
데이비드는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 꿇었다.
“오. 바로 고개 숙이네? 너 좀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구나. 말이 통하면 좋지. 살려줄게.”
「거짓말입니다.」
죽는다.
상대는 자신을 살려줄 생각이 전혀 없다.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는 미친놈들을 마주하고도 살아남은 전적이 2번이나 있었다. 이번에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뭐든지 하겠습니다. 제가 가진 재산을 모두 바치겠습니다. 살려만… 살려만 주십시오.”
“살려준다니까. 고개 들어봐. 얼굴 좀 보자.”
「거짓말입니다.」
데이비드가 고개를 들었다.
그가 만난 미친놈들은 2번 말하는 걸 끔찍이도 싫어했다.
“이렇게 빡치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아마 당분간은 네 얼굴을 잊지 못할 거야. 오른팔과 왼팔. 어디부터 자를까? 응?”
“제 고유 특성은 거짓말 탐지기입니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육성으로 듣고 거짓말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오. 재밌네. 그런데?”
“당신만의 거짓말 탐지기가 되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준다니까?”
「거짓말입니다.」
“짖으라면 짖고, 꿇으라면 꿇겠습니다. 나르 엔터테인먼트의 비리도 전부 알려드리겠습니다. 저는 분명 쓸모 있을 겁니다.”
“나르 엔터의 비밀이라…. 갑자기 흥미가 돋네. 거기에 있는 연예인들…. 성 상납 할 수 있어?”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바로 부르겠습니다.”
“마침 쓸만한 개가 필요하긴 했는데…. 마음에 드네. 살려줄게.”
「거짓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