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1화 > 1391. 신의 아틀란티스
천마귀환.
5,146 구역, 전갈사막에 발을 디뎠다.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사막이 나를 반겼다.
정면을 바라봤다. 5,146 구역, 전갈사막의 중심인 대도시가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렐티아는 오아시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 오아시스가 렐티아의 성장 동력이다. 이 메마른 사막에서 렐티아는 안정적으로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앞으로 걸어가면서 힐끗 뒤를 바라봤다. 카샤, 아마르, 용길공주, 옥정, 에르시아가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제각각 표정과 분위기가 달랐다.
카샤는 서늘한 미소를 짓고 있다. 호선을 그리는 입꼬리에서 살의가 느껴진다.
아마르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사막을 관리하지 못했기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용길공주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하다. 피라미드에 틀어박혀 있는 그녀를 내가 억지로 데려왔기 때문이다.
옥정은 긴장하고 있다. 그녀는 똑똑하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예상하고 있다.
에르시아의 두 눈은 반짝거린다. 에르시아는 피라미드를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나간다 하더라도 카샤와 함께 안전한 곳만 돌아다녔다. 그녀에게 대도시는 처음이다.
“카샤. 천마신교가 반란자들의 손에 넘어가기 직전이라 하지 않았나?”
“여긴 렐티아야. 천마신교가 아니잖아.”
“…….”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천마신교는 도시 이름이 아니라 단체 이름이니까.
“반란자들 대부분은 렐티아 외부 지역에 있어. 우리의 눈을 피해 힘을 모으고 있는 거지. 실제로 우린 2개월 전까지 놈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어.”
“죄송합니다, 천마님. 제가 미흡한 탓입니다.”
“아, 오빠.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니까. 아무리 우리라도 이 더럽게 넓은 사막 전체를 감시할 수 없잖아.”
“…그 이전에 조짐이 있었다. 내가 좀 더 신경 썼더라면… 조기에 진압할 수 있었을 거다.”
“다시 말하지만, 오빠 탓이 아니야. 카록! 그 개새끼가 존나 치밀했던 거지!”
나는 남매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하고 렐티아의 상황이나 설명해라. 누가 더 잘 알고 있지?”
“저는 렐티아의 외부를 돌아다니며 주로 카록을 추적했습니다. 지금 렐티아의 내부 상황을 잘 아는 건 카샤입니다.”
카샤는 잠깐 렐티아를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개판이야. 자기가 사라지고, 카록이 오빠를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키면서 온갖 잡놈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날뛰기 시작했어. 특히 부호들. 그놈들은 오아시스를 노리고 이런저런 수작을 부리는 중이야.”
“수작이라면?”
“시민들을 선동했어. 천마는 렐티아를 버렸다. 천마는 죽었다. 천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렐티아에는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 지도자에 어울리는 자는… 같은 소문이 렐티아에 나돌았어. 반란자들도 그 선동을 이용했지.”
“선동은 성공적이었나 보군. 그런 것치곤 렐티아는 멀쩡해 보인다만.”
“천마신교의 무력은 건재한 편이니까. 어떻게든 궁전과 오아시스만큼은 지키고 있어. 오아시스의 물을 베풀면서 시민들을 달래고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찾아왔었지. 서로 손을 맞잡았던 부호들은 분열했어. 부족 간의 불화와 부호들의 탐욕이 반란자들의 발목을 잡은 거야. 우리에겐 행운이었어.”
“지금 내부 상황은?”
“아슬아슬해. 폭탄이 터지기 직전인 상황이야. 무력을 갖춘 반란자들이 쳐들어오면 바로 함락할 거야. 뭐, 자기가 없을 때의 이야기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마음에 안 드는 놈, 감히 내게 반항하는 놈들을 모조리 죽인다.
렐티아의 입구를 본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카샤. 저것들은 뭐지?”
입구에 4명의 남자가 허리에 칼을 차고 서 있었다. 병사다.
내가 알기로 렐티아의 병사는 모두 천마신교 소속이다. 헌데 저 병사들은 천마신교 소속으로 보이지 않는다. 천마신교인들은 기본적으로 검은색 옷을 입기 때문이다.
카샤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자경단이야.”
“자경단? 마교인들은 어디에 가고 저놈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거지?”
“저번 반란 때 교인들이 많이 전사했어. 그래서 전투 병력이 부족한 상태야. 카록을 추적하는 임무를 맡은 부대도 있어서… 렐티아를 지킬 인력이 부족해. 시민들은 그걸 이유로 자경단을 꾸렸어.”
“지금 렐티아의 상황을 보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자경단이 아니겠군. 뒤에 누가 있지?”
“반란자와 부호들이 있을 거라고 짐작 중이야.”
“짐작?”
“아직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어. 그럴 인력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이겠지만.”
“그냥 치워버리지 그랬냐.”
“도시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칼을 들고 반란자들과 싸우겠다는데…. 자경단을 막을 명분이 없어.”
“과연, 명분인가.”
“자기도 성질 죽여. 자경단을 건들면 시민들이 일어날 거야. 안 그래도 흉흉한 민심에 불을 지를 필요는 없잖아.”
“카샤. 나는 천마다.”
“어, 응. 자기가 천마지.”
“그리고 천마는 명분 따위 안 챙긴다.”
입구로 다가갔다. 자경단 병사가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나를 보고 경악했다.
“처, 천마!”
그들의 손이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걸린 칼로 향했으나, 칼을 잡진 않았다. 그들은 바로 양옆으로 갈라지며 길을 비켰다.
“도, 돌아오셨군요, 천마님! 저희는 천마님의 귀환을 환영… 커억?!”
허락 없이 말을 지껄이는 병사의 목을 붙잡았다. 당황한 병사는 반사적으로 칼을 뽑았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비조(天魔飛爪).
손톱에서 검은 검기가 나타나 병사의 팔다리를 잘라냈다. 잘린 팔다리에서 피가 쏟아진다.
“나는 천마다. 나를 봤으면 무릎 꿇고 대가리부터 땅에 박아라. 개돼지 주제에 나불대지 마라. 내 눈을 보지 마라. 내 그림자도 밟지 마라.”
목을 쥔 손에 힘을 풀었다. 남자의 몸이 바닥에 떨어져 꿈틀거린다.
“살려, 살려주십시오! 천마시여!”
“학습기능이 없는 건가? 방금 나불대지 말라고 했을 텐데.”
나는 울부짖는 놈의 얼굴에 발을 올렸다.
“죽어서 나를 경배하라.”
콰직.
놈의 머리가 터졌다. 두개골과 뇌 파편이 사방에 흩뿌려졌다.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자경단 병사들은 새파랗게 질려서 바닥에 무릎 꿇고 이마를 바닥에 묻었다.
천마기를 움직였다. 시커먼 기운이 손톱 끝에 맺힌다.
“자경단? 나는 자경단을 허락한 적 없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비조(天魔飛爪).
검기가 날아가 부복한 자경단 병사들을 베어 가른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와 피비린내를 사방으로 퍼뜨린다.
“꺄아아아아아악!”
입구 안쪽에서 비명이 울렸다.
내 시선이 입구 안쪽으로 향했다. 수십 명의 사람이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 도망친다.
“돌아온 주인을 맞이하는 자세가 전혀 안 되어 있군.”
양팔을 확 벌렸다. 10개의 손톱에 검은 기운이 맺힌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비조(天魔飛爪).
검기가 사방을 휩쓸며 인간을 베었다. 사람이 줄면서 점차 주위가 조용해지고 있다. 나는 비명을 지르는 놈, 도망가는 놈을 중점으로 죽였다. 70명 정도 죽였을까. 그 누구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눈치 빠른 놈들은 바닥에 오체투지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오체투지한 놈들은 건들지 않았다.
“…….”
그리고 사방이 조용해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바닥에 부복하며 입을 닫았다. 어린아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포가 본능을 이기는 순간이었다.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본다. 도시 중심에 있는 궁전까지 이어진 대로가 있었다. 감히 대로를 움직이는 사람은 없다. 대로의 양옆에는 사람들이 부복한 채로 내가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사랑하는 시민들아.”
피 묻은 손을 털며 그들에게 말했다. 이 도시의 지배자로서 그냥 지나치면 아쉽지 않은가.
“내가 돌아왔다.”
“…….”
고요했다.
모래 구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큭큭 웃으며 대로를 걸었다. 내 뒤로 굳은 표정의 일행들이 나를 따라왔다. 슬쩍, 에르시아의 상태를 확인한다. 에르시아는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리며 옥정의 뒤를 걸어오고 있었다. 에르시아의 두 눈은 풀려 있었다.
‘좀 많이 자극적이긴 하지.’
에르시아를 배려할 생각은 없다.
이 아틀란티스는 평화롭지 않다. 나약한 자는 죽거나 착취당할 뿐이다.
침묵의 대로를 걷는데, 저 앞에서 무장한 병사들이 달려온다. 자경단이었다. 근처에 있는 자경단원들을 전부 긁어모았는지 200명이 넘어 보였다.
“천마시여! 저희는 렐티아의 자경단입니다! 저희가 천마님을 모시겠습니다!”
생각할 가치도 없었다.
주먹을 쥐고 천마기를 끌어모았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정면으로 뻗어 나간 천마기는 용이 되어 자경단 병사들을 휩쓸었다. 피와 내장, 살덩어리와 뼈가 분쇄되어 사방으로 휩쓸었다. 깨끗하던 길은 피로 얼룩졌다. 그 주위에 부복해 있던 시민들은 오줌을 지리며 덜덜 떨었다. 아이를 가진 어미들은 필사적으로 아이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피가 흐르는 길을 걸으며 앞으로 나아갈 때였다. 부복해 있는 시민이 내 눈길을 끌었다. 남들 보다 덩치가 2배는 컸고, 옷은 화려했으며 목과 팔에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내 시민들은 선동했다는 돼지 새끼로군. 앞으로 나와봐라, 돼지.”
돼지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내 말에 거부하지 못했다. 그의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천마님. 무언가 오해하고 계시는 게 틀림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선동하지 않았습니다.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적극적으로 천마신교를 후원하겠습니다.”
“카샤. 내가 오해하는 중이야?”
“천마가 죽었다고 말하고 다니던 놈이야.”
“아, 아닙니다! 천마님! 카샤 님의 말은 믿지 마십시오! 저는 그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모함입니다! 증거도 없습니다!”
카샤는 한숨을 내쉬었다.
“…분하지만, 증거가 없긴 해.”
“난 내 여자의 말을 믿는다.”
“끄아아아아악!”
천마기를 맺은 손을 가로로 휘둘렀다. 검기가 날아가며 돼지의 허리를 잘랐다. 놈이 몸이 바닥에 떨어지고, 잘린 부위에서 피와 내장이 쏟아진다. 나는 돼지의 몸에 점혈을 짚었다.
“네놈은 본보기다. 그러니 10분 정도는 살아 있어라.”
돼지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돼지는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그리고 나는 궁전 앞의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5,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궁전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