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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2화 > 1402. 아카데미의 구원자 (1,182/2,000)

< 1402화 > 1402. 아카데미의 구원자

“…성유진은 강하다.”

“나도 알아. 내 아들이니까.”

성하리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유진이보다 강한 사람도 많지.”

성하리의 표정은 진지했다.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겨우 아카데미 한일 교류전에 성하리가 참가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일본이라면 성하리가 입국하는 순간부터 언론이 들썩일 것이다. 어떤 기사를 쓸지는 뻔했다. 성하리를 깎아내리면서 일본을 치켜세울 것이다.

물론 강지영이 우려하는 건 일본의 반응이 아니라, 일본의 행태에 흥분할 성하리였다. 그녀는 툭하면 사고치는 성하리가 불안했다.

“강지영 학장.”

가만히 있던 최정화가 입을 열었다. 파란색 벨벳 원피스를 입고, 오만하게 다리를 꼰 그녀는 강지영을 앞에 두고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우린 이미 일본에 가기로 정했어. 학장이 거부한다면, 개인적으로 일본에 갈 거야. 일본에 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했을 거다. 정부와 히어로 협회가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쟤가 그런 걸 신경 쓸 것 같아?”

최정화가 턱짓으로 성하리를 가리켰다.

“…….”

강지영은 반박할 수 없었다. 성하리는 한다면 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머리를 굴렸다. 이대로 성하리와 최정화의 제안을 거절하고 내보내면… 그녀들은 사비를 들여서 일본 아카데미로 따라올 것이다. 거의 100% 확신한다.

‘그럴 바엔 차라리….’

교류전 참가 학생들과 함께 보내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알겠다. 너희 제안은 긍정적으로 검토하지. 단, 내가 물러선 만큼 너희도 어느 정도 내 부탁을 들어줘야 할 거다.”

성하리의 분위기가 아까보다 풀어졌다.

“너무 무리한 부탁만 아니면 들어줄게.”

“일단은….”

콰아앙!

천둥소리와 함께 학장실 내부가 번쩍거렸다. 그녀들의 시선이 창문 쪽으로 향한다. 경기장이 있는 쪽이다.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개방되는 곳으로 지금은 1학년들이 실기 시험을 치르고 있다.

콰아아아아아앙!

또 번개가 내려쳤다.

강지영은 하늘에서 내려치는 번개를 보다가 성하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왜 날 봐? 난 아무것도 안 했어.”

“네가 안 했다는 건 안다. 대신, 네가 관련된 녀석이 했겠지. 그리고 딱히 탓하는 것도 아니다.”

“유진이가? 마법사가 벼락을 떨어뜨린 거 아니야?”

“1학년 중에 저 정도 벼락을 떨어뜨릴 수 있는 마법사는 없다.”

“우리 유진이가 대단하긴 하지.”

성하리가 헤실헤실 웃었다. 그녀는 아들이 조금만 칭찬받아도 기분이 좋아졌다. 본인 스스로도 아들에게 너무 약하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들 칭찬은 듣기만 해도 척추 반사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쾅쾅쾅쾅쾅콰콰쾅!

벼락이 연달아 떨어졌다.

창문 밖이 번쩍거린다.

강지영은 가늘게 뜬 눈으로 성하리에게 물었다.

“규격 외라도 정도가 있지…. 네 아들을 어떻게 교육 한 거냐? 교육자로서 꼭 알고 싶군.”

“교육…? 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 유진이가 생각보다 강하긴 하네. 그새 성장했나…?”

성하리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

쾅쾅쾅쾅쾅콰콰쾅!

연달아 벼락을 맞은 마진배가 앞으로 쓰러진다.

1대1 대련 시작 10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처음에는 벼락 한 번에 끝낼 생각이었는데… 몸 하나 만큼은 튼튼한 놈이다 보니 벼락을 쉽게 버텼다. 2번째 벼락도 버티길래 아예 7번 연속 벼락을 내려쳤다.

“그만!”

감독관이 끼어들었다. 그는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에게 빠르게 손짓했다. 그들은 기절한 마진배를 의료실로 데려갔다. 기절했어도 부상은 없을 것이다. 이 경기장에는 오로라 시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으니까.

“성유진. 대기실로 돌아가라.”

“네.”

내 다음 경기는 1시간 뒤에 있다. 대기실로 돌아간 나는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다음 경기를 지켜봤다.

이시은 VS 배서나

배서나는 1학년 4반 소속의 마법사다. 주로 사용하는 마법은 화염 계열이고, 입학 순위는 54위다.

배서나는 이시은을 상대로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이시은에 대해 사전에 조사한 게 틀림없었다. 일반적으로 에너지 제어 능력은 마법사의 하위호환이라 취급받으니 내심 승리를 장담하고 있겠지.

‘평범한 에너지 제어 능력자라면 그렇지.’

감독관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대련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였다.

배서나는 정석으로 움직였다. 우선 거리를 벌리면서 마법을 캐스팅한다. 캐스팅이 끝나면 망설이지 않고 바로 공격한다. 공격을 끝으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다음 마법을 이어서 캐스팅한다.

이시은은 날아오는 화염구를 향해 손짓했다. 화염구의 방향이 반대로 꺾여 배서나에게 날아간다. 당황한 배서나는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그게 실착이었다. 자신이 날린 화염구에 당하고, 이어서 이시은의 전격이 배서나에게 꽂혔다.

전투는 시시할 정도로 간단히 끝났다.

‘배서나가 방심한 것도 컸어. 뭐, 방심하지 않았더라도 이시은이 이겼겠지만.’

마법사인 배서나는 이시은을 이기지 못한다. 그녀가 경험 많은 마법사였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이걸 보니 이시은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

내 다음 상대는 김천우였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경기장에는 1학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가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입학 순위 2위와 5위의 대결. 쉽게 볼 수 없는 빅 매치였다.

김천우는 대검을 양손에 쥐고 내게 겨누었다.

“내가 널 이기지 못할 거라는 건 알아. 그래도 최선을 다할 거야. 전력을 다해 이 대련에 임하겠어. 그러니 너도 최선을 다해 줘.”

“그러지 뭐.”

삐이이이이익!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RPG-7 김천우를 겨누고 트리거를 당겼다. 로켓이 불을 뿜으며 김천우에게 날아간다. 김천우는 대검을 옆으로 세우고 돌진해 왔다.

콰아아아앙!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 연기를 뚫고 나온 김천우가 나를 향해 대검을 휘두른다. 검기가 서린 대검은 부웅하고 허공을 가른다. 큰 동작에 의해 발생한 빈틈. 나는 그 빈틈에 파고들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대련을 빨리 끝낼수록 내가 돋보이고 점수도 올라가지.’

그러니 오래 끌 생각은 없었다. 손에 쥔 창은 김천우의 명치를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간다. 그러다 갑자기 김천우의 몸이 회전한다. 회전이 너무 빨랐다. 이대로 있으면 되레 내가 대검에 썰린다. 나는 급히 뒤로 빠졌다.

‘갑자기 회전한 게 아니야. 내가 안쪽으로 올 거라는 걸 대비하고… 처음부터 몸을 회전시켰던 거야.’

혀를 찼다. 김천우는 ‘찰나’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해 온 것이다.

‘내가 찰나를 자주 쓴다는 걸 알고 있었군. 뭐, 놀라운 일은 아니지. 찰나는 실습을 하며 자주 썼으니까.’

근접거리에서 찰나는 피하기 힘들다. 실력차이가 나면 더욱 불가능하다. 하지만 찰나를 쓸 걸 알고 대비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김천우의 찰나 대응은 아주 잘했다. 칭찬받아 마땅하다.

‘근데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어쩔 건데?’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벌어진 거리를 찰나로 다시 좁힌다. 느려진 세상 속에서 김천우의 눈이 흔들렸다. 찰나에 반응한 것이다. 그의 대검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내 쪽으로 향한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한끗 차이로 대검을 피하고 김천우의 목에 창을 찔러 넣었다. 김천우가 충격에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전력을 다할 시간도 안 주는구나.”

“그래서 승복 못 하겠다?”

“그 반대야. 내가 졌어. 지금의 나로선 널 쉽게 이기지 못하겠다는 걸 인정할게. 하지만 다음번에는 다를 거야.”

김천우의 두 눈은 활활 타오른다. 솔직히 말해서 진짜 귀찮았다. 남자 새끼가 엉기면 짜증까지 난다. 김천우가 대악마용 병기로서 가치가 없었다면 철저히 짓밟았을 것이다.

“…열심히 해라.”

***

마지막 3번째 대련 상대는 입학 순위 1위인 류하나였다.

예상한 일이었기에 놀랍지도 않았다.

‘2위인 김천우가 손쉽게 당했으니, 당연히 1위인 류하나가 나와야지.’

류하나는 대련이 시작하기 전부터 양손에 검을 쥐고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건 그녀가 이 전투에 시작부터 전력을 다하겠다는 뜻이었다.

‘찰나로 파고드는 짓은 안 한다.’

김천우가 그랬듯이, 류하나 또한 찰나에 대한 대비를 했을 것이다. 상대가 원하는 방식대로 움직여 줄 이유는 없었다.

경기장의 긴장된 공기는 바람이 되어 흘렸다. 류하나의 연보라색 머리카락이 나부끼고, 경기장 흙바닥에서 모래 먼지가 일어난다.

“칼을 들어. 네 진짜 무기는 로켓런쳐나, 창이 아니라 칼이란 걸 알아.”

“글쎄. 칼을 안 들어도 너 정도는 이길 것 같은데?”

“너…. 그 말, 후회하게 해주겠어.”

삐이이이이이이익!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나와 류하나는 서로 반대로 행동했다. 나는 뒤로 달아났고, 류하나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찰나를 대비하고 있었군.’

류하나는 당황하며 뒤늦게 나를 쫓아 움직였다.

나는 도망가면서 류하나를 향해 투창했다.

까앙!

류하나는 쌍검으로 창을 쳐내고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다리가 멈칫거린다. 창에 담긴 뇌기가 그녀의 몸을 타고 흐른 것이다.

‘뇌기에 근육이 깜짝 놀랐겠지.’

그녀는 이를 악물고 내 뒤를 바짝 쫓았다.

나는 도망치면서 계속 투창했다. 류하나는 창을 쳐내지 않고 옆으로 피했다.

‘판단은 빠르군.’

못 피하게 창을 2~3개씩 연속으로 던지면 그만이었다.

뇌기에 당할수록 류하나의 움직임은 느려졌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있는 창도 전부 사라졌다.

“칼을 뽑아.”

류하나가 말했다.

“칼을 안 들어도 이긴다니까.”

“…넌 날 무시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내가 널 무시한게 아니라, 네가 날 무시한 거겠지.”

딱!

손가락을 튕겼다. 한순간 뇌광이 번뜩였다가 사라진다. 직후, 경기장 사방에 흩어져 있던 투창들이 자기력에 의해 부상하며 일제히 류하나에게 날아갔다.

“뭣?!”

류하나가 당황하며 춤을 춘다. 아슬아슬하게 날아오는 창들을 피하거나 쳐낸다.

나는 춤추는 그녀에게 박자를 깔아주듯 손가락을 계속 튕겼다.

딱! 딱딱! 딱딱딱!

소리와 함께 뇌광이 번뜩이고 12자루 창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류하나를 공격한다.

‘이게 되네.’

스스로 하고 서도 놀랐다. 예전에는 자기력을 다루는데 꽤 힘들었으니까.

‘마나가 많아서? 아니면 단순히 내가 성장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류하나는 방어를 포기하고 나를 향해 돌진했다.

“힘의 주체는 너야! 너만 쓰러뜨린다면…!”

“뇌기에 당해서 느려진 다리로 날 빠르게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아? 절대 못하지.”

따악!

창 5자루가 날아와 류하나의 등을 가격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류하나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다.

승부가 났다고 판단한 감독관이 끼어들었다.

바닥에 넘어진 류하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나를 올려다봤다.

“내가 이렇게 지다니… 말도 안 돼…!”

“크큭. 다음에 더 열심히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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