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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6화 > 1496. 팔라딘 : 악멸의 여정 (1,276/2,000)

< 1496화 > 1496. 팔라딘 : 악멸의 여정

콰앙!

전신 갑옷을 입어 무거운 육체가 천장을 뚫고 바닥에 착지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이전과는 좀 다른 곳이었다. 바닥은 축축했고, 벽에는 얇은 막이 펼쳐져 있었다. 막 안쪽에는 갓난아기와 애벌레를 합쳐 놓은 듯한 생물이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인간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놈들의 먹이였다.

‘배양소에 성공적으로 도착했다.’

내가 땅을 딛고 서 있는 이 바닥 아래에 콜러서스의 심장이 있다는 뜻이었다.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나는 찝찝함을 느꼈다.

‘악마 배양소를 관리하는 악마들이 왜 없는 거지? 위에 있는 팔라딘들이 악마들의 시선을 끈다고 해도… 이건 너무 비어있는데.’

지금의 나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꽤 강력한 놈들이다. 그런데 지금 배양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뭔가 일이 틀어진 것 같군….’

문제는 어디서부터 틀어졌는지 알 수 없다는 것과, 틀어진 걸 알아도 멈출 수 없다는 점이다.

집행검을 들고 벽을 향해 휘둘렀다. 벽이 쩍 갈라진다. 주황색 액체와 함께 악마 종자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갓난아기의 얼굴과 애벌레 몸을 가진 악마들. 나는 그것들을 모조리 밟아 죽인 뒤에 바닥에 집행검을 꽂았다.

‘신성 방출!’

콰앙!

바닥이 무너지고 몸이 떨어진다.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착지한 나는 조용히 정면을 노려봤다.

쿠웅! 쿠웅! 쿠웅!

거대한 보라색 심장이 뛰고 있었다.

콜로서스의 심장이다. 거대한 심장이 고동칠 때마다 거대한 마력 파장이 느껴진다.

심장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마력 파장이 나를 밀어냈다. 나는 몸에 힘을 주며 심장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죽어라, 콜로서스.’

심장에 집행검을 밀어 넣는다.

워낙 날카로운 검이기에 두부에 칼을 집어넣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거대한 심장에서 새까만 피가 쏟아진다. 대악마 콜로서스의 마력이 응축된 피다. 그 자체만으로 저주 덩어리라 할 수 있었다. 나는 신성력으로 몸을 감쌌다. 콜러서스의 피는 감히 내 육체를 침식하지 못했다.

집행검을 아래로 내리긋는다. 심장에서 대량의 피가 빠져나왔다. 심장이 약간 쪼그라들었다.

키이이이이잉.

성안(聖眼)으로 심장 내부를 살펴봤다.

심장 속에 심장이 있었다. 그 심장은 한손에 들어올 만큼 작았다.

외부의 커다란 심장은 콜러서스의 거대한 육체를 유지하기 위한 심장이라면, 심장 속의 작은 심장은 콜로서스의 영혼이 위치한 심장이다.

놈을 죽이려면 당연히 이 작은 심장을 베어야 한다.

‘그리고 이 작은 심장으로 마스터 스킬을 강화할 수 있지.’

작은 심장을 손으로 잡아 뜯어내어 집행검으로 베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콜로서스가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직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폭음까지 들린다. 나는 콜로서스의 거대한 육체가 무너졌음을 깨달았다.

콜로서스의 영혼이 내 몸에 달라붙는다. 타락의 기운이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훑는다. 허나 나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타락의 기운을 견뎠다. 지금 와서 이 정도 타락의 기운으로 나를 어찌하지 못한다.

‘콜로서스는 죽었다. 이제 남은 건 탈출이군.’

천장을 바라봤다. 위로 올라가야 했다.

‘여명의 날개.’

등 뒤로 황금빛의 날개가 나타났다. 본능적으로 날개를 사용했다. 내 몸이 천장으로 솟구친다.

부서진 천장 구멍을 통해 다섯 갈림길로 돌아왔다. 빛의 날개를 거두고 통로를 뛰어다녔다. 여명의 날개는 다 좋은데 신성력의 소모가 너무 컸다. 필요할 때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저기 있군.’

출구를 발견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출구 밖으로 나왔다.

신선한 공기를 만끽할 틈은 없었다.

“끄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팔라딘의 육체가 허공에서 토막 났다. 팔다리가 떨어져 바닥을 구르고, 몸통에서 피와 내장이 흘렸다. 팔라딘의 머리는 로켓처럼 하늘 위로 올라가더니, 독수리를 닮은 악마의 입에 씹혔다.

“이게 무슨….”

악마가 넘쳐났다. 여기가 콜로서스라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많았다.

콜로서스 아래에서는 수만 마리에 달하는 악마가 끝도 없이 밀려오고 있고, 위에는 날개 달린 악마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어 푸른 하늘을 가리고 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악마들을 보니 짜증과 분노가 치솟았다. 하늘을 향해 집행검을 휘둘렀다. 신성검이 발현되어 황금빛 검기가 악마 대여섯마리를 단숨에 쓸어버린다.

“발렌티어의 팔라딘!!”

다시 한 번 집행검을 휘두르려던 찰나에,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악마의 피로 온몸이 젖어있는 지골라스의 팔라딘이었다. 그는 왼팔이 없었고, 그의 주위에는 팔라딘 3명이 악마들과 항전하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팔라딘 2명의 시체가 뒹굴고 있었다.

“지골라스의 팔라딘! 어떻게 된 거냐?!”

“대악마다! 대악마가 악마의 군세를 이끌고 나타났다!”

“대악마라고…?!”

나는 냉정을 되찾았다. 그러자 그 어느 악마보다 강렬한 기척이 느껴졌다. 내 시선이 하늘로 향한다.

그것은 감히 악마 주제에 태양을 등지고 서 있었다. 태양이 마치 후광처럼 엿보였다.

악마는 여자의 몸을 하고 있었다.

박쥐 날개를 달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심연처럼 새까맣다. 풍만한 젖가슴과 성기는 아슬아슬하게 가려져 있다. 무릎과 종아리는 염소의 것이었고, 머리 주위에는 6개의 뿔이 돋아나 있었다.

대악마 블레아트.

헤리안느 여신과 무척 닮은 얼굴을 한 악마가 하늘에서 웃고 있었다.

‘저 악마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블레아트가 내게 시선을 주더니 눈웃음을 짓는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신성 모독이다.’

헤리안느 여신과 닮은 외형으로 악을 뿌린다.

블레아트는 존재 자체가 신성 모독이다.

집행검의 검자루를 꽉 쥐었다.

‘죽인다.’

악마가 눈앞에 있다. 팔라딘으로서 해야할 일은 명확했다.

‘신성검.’

황금빛 신성이 집행검에 모여들어 검신을 이루었다. 나는 블레아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찬란히 빛나는 황금빛 검기가 허공을 찢으며 날아간다. 그러나 검기가 대악마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하늘을 날던 수많은 악마가 날아와 방패가 되어 검기를 막아낸 것이다.

30마리가 넘는 악마가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블레아트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상황이 매우 즐겁다는 듯이 소리 높여 웃었다.

“깔깔깔깔깔! 겨우 그 정도로 날 죽이게? 현실을 깨달으렴. 너희 인간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너희가 잘나서가 아니야. 헤리안느. 그 빌어먹을 년이 잘나서도 아니고. 너희는 가축일 뿐이야. 우리의 먹이. 영양 공급원. 너희가 지금껏 살아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우리가 너희를 살려둬서지.”

대악마 블레아트의 목소리는 헤리안느 여신의 목소리와 판박이였다. 때문에 그 같잖은 개소리에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망할 년이…. 지금 당장 죽여주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한방으로 쓸어버린다.

‘세크리파이스!’

목숨을 버린다.

괜찮다.

한 번의 부활과 완전 회복이 있으니까.

전신의 세포가 터지는 감각을 맛봤다. 직후, 세크리파이스에 의한 기적이 일어났다.

하늘에 신성한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구름이 밀려나고 황금빛 빛이 그 자리를 잡았다.

대악마 블레아트의 표정이 싹 굳었다. 블레아트는 하늘을 죽일 듯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망할 년. 수를 쓰네?”

천공의 빛이 떨어졌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악마들이 일제히 비명을 내지른다. 하늘을 날던 악마들은 빛을 맞아 지상으로 떨어졌고, 지상에 있던 악마들은 몸이 불타올랐다. 수천 마리의 악마가 일시에 소거되었다. 놈들이 있던 장소에는 커다란 크레이터 하나만이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대악마 블레아트는 멀쩡했다.

팔짱을 낀 상태로 여전히 하늘을 날고 있다. 그녀는 기분 나쁘다는 듯이 하늘을 보다가 고개를 내려 나를 봤다.

나는 부활했다. 자세를 잡고 집행검으로 블레아트를 겨눈다.

“너 같은 인간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지만… 놀이는 여기까지야. 넌 가축 주제에 너무 지나쳤어.”

따악.

블레아트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녀의 지시에 악마들이 해일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수천 마리의 악마를 없애도, 아직 수만 마리의 악마들이 남아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세크리파이스를 쓰려다가 멈칫했다.

‘…안 된다. 또 천공의 빛을 써서 수천 마리를 죽이더라도… 내가 버티지 못한다.’

수천 마리의 악마 영혼이 내게 달라붙으며 타락의 기운을 일으켰다. 타락의 기운이 내 몸을 휘감고 있었다. 지금의 나로선 버티기 힘들었다.

‘성수를…!’

성수를 소환해 몸에 뿌린다. 타락의 기운이 줄어들었으나, 그뿐이다.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자, 악마들아. 가라. 가서 죽으렴.”

블레아트는 악마들을 버리는 것으로 나를 타락시키려고 한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이면서도 사악한 계략인가.

“발렌티어의 팔라딘! 지금 우리에겐 승산이 없다! 도망쳐야 한다!”

지골라스의 팔라딘이 내 어깨를 건들었다. 인정하기 싫으나, 그 말이 맞았다.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사방에 악마가 깔려 있다.”

“우리가 길을 열겠다. 너는 도망치는 것에 집중해라.”

“……희생하겠다는 말로밖에 안 들리는군.”

“네가 죽으면 발렌티어의 성녀도 죽는다. 대악마의 영혼이 풀려난다는 뜻이지. 우리가 모두가 죽더라도, 너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 빌어먹을 대악마들을 죽일 수 있을 테니까!”

“지골라스의 팔라딘의 말이 맞다!”

“우리가 다 죽더라도, 너만큼은 살아야 한다!”

“발렌티어의 팔라딘이여! 살아남아라! 그리고 저년을 죽이고 악마를 멸절하라!”

팔라딘들이 소리친다.

한계에 달한 그들은 길을 열기 위해 비교적 약해 보이는 군세를 향해 몸을 던졌다.

“발렌티어의 팔라딘! 날개를 꺼내라! 내가 앞장서겠다!”

지골라스의 팔라딘이 여명의 날개를 발현했다.

‘…여기선 도망치는 게 최선이다.’

나 또한 여명의 날개를 꺼냈다. 빛의 날개가 펄럭이며 어느 한 곳으로 날아간다.

“쫓아.”

블레아트가 악마들에게 명령했다. 악마들이 미친 듯이 쫓아왔으나, 남은 3명의 팔라딘들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블레아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못하는 거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천공의 빛이 떨어질 때 피해를 입었다.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

날아가는 와중에 날개달린 악마들이 덤벼들었다. 3명의 팔라딘들이 흘린 악마들이었다. 그 악마들은 내가 나서기도 전에 지골라스의 팔라딘이 말했다.

“네가 한계인 건 알고 있다. 악마들은 내가 처리한다. 혹시라도 네가 타락한다면… 모든 게 끝장이다.”

30분간의 추격전.

지친 나와 지골라스의 팔라딘은 어느 조용한 숲속에 내려섰다. 지골라스의 팔라딘은 한손으로 내 어깨를 잡았다.

“발렌티어의 팔라딘. 잘 들어라. 블레아트는 대대적인 침공을 시작할 거다. 교단은 최대한 맞서겠지만… 버티는 것이 고작이겠지. 발렌티어의 성녀와 함께 일단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라. 그리고… 최상의 상태에서 블레아트를 처리해라. 블레아트가 죽으면 악마들의 군세는 자연히 흩어질 것이다. 원래 그런 놈들이니까.”

“죽을 것처럼 말하는군. 일단 귀환석을 꺼내서 성소로 돌아가라. 대책은 그 이후다.”

주위에 악마도 없으니 바로 성소로 귀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난 못 돌아간다. 이미 한계치를 넘었다.”

키이이잉.

성안을 사용했다.

지골라스의 팔라딘은 이미 타락을 시작했다. 타락의 기운이 그의 내부를 변이시키고 있다. 이미 타락을 시작했으니 귀환석은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집행검을 들어 팔라딘의 가슴을 찔렀다.

팔라딘이 피를 토하며 웃었다.

“신속하군. 과연 피도 눈물도 없는 발렌티어의 팔라딘이다.”

“…전할 말은?”

“없다. 내겐 가족도 없다. 아니, 한 명 있지만… 곧 죽겠지. 그녀에겐 미안할 뿐이다. 발렌티어의 팔라딘이여! 대악마 블레아트를 죽이고, 모든 악을 멸할 것을 맹세해라!”

“나의 이름과 나의 신앙을 걸고 맹세하지. 나는 모든 악을 멸할 것이다.”

“…믿겠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골라스의 팔라딘의 고개가 뚝 떨어진다.

직후, 팔라딘의 떨어진 고개가 들어 올려졌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붉어진 얼굴, 길어진 송곳니. 팔라딘의 얼굴이 아니었다.

서걱.

나는 타락자의 목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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