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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7화 > 1497. 팔라딘 : 악멸의 여정 (1,277/2,000)

< 1497화 > 1497. 팔라딘 : 악멸의 여정

귀환석을 사용해 발렌티어 성소로 돌아왔다.

성소에는 언제나처럼 성녀가 있었다. 그러나 성소의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항상 차분함을 유지하던 그녀는 바쁘게 움직이며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성스러운 연못 주의에는 낯선 물건들이 있었다. 조각상이나 보석 같은 것들인데 신성력을 품고 있었다. 즉, 성물이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아멜리아. 일이 틀어졌다. 콜로서스를 죽였으나, 대악마 블레아트가 수 만의 악마를 이끌고 나타났다. 나를 제외한 모든 팔라딘이 죽었다. 이곳도 위험하다. 블레아트는 대악마들의 부활을 노리고 있다. 즉, 너와 나를 죽이기 위해 악마의 군세를 이끌고 진격할 것이다.”

성녀는 차분했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여신께 제게 계시를 내리셨습니다. 정화 의식의 준비는 거의 완료되었습니다. 성스러운 연못으로 들어가시지요.”

“성스러운 연못 주위에 놓인 것들은 뭐지?”

“시간이 없으니 이번 정화 의식에 성물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빠르게 옷을 벗고 성스러운 연못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걱정이 되었다.

원작 게임과 달리 정화 의식은 순식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나는 대악마의 영혼은 물론이고 수천 마리의 악마 영혼에 시달리고 있었다. 평범하게 정화 의식을 진행했다간 최소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 있었다.

“정화 의식은 몇 시간이 걸리지?”

“최대한 시간을 줄이기 위해 성물을 가져왔습니다. 하루 내로 정화 의식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성녀가 각오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스러운 연못에 몸을 눕혔다. 몸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 몸을 좀먹던 타락의 기운의 기세가 약해졌다.

투명한 물 위로 헤리안느 여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성녀가 보였다. 그녀가 가진 막대한 신성력이 성수와 맞닿았다.

나는 억지로 눈을 감았다. 여기서 조급하게 움직여 봐야 할 수 있는 건 없다. 급할수록 차근차근해야 한다. 그 첫 번째는 정화 의식이다.

‘다행히 대악마 콜로서스가 있던 곳에서 여기 발렌티어는 멀리 떨어져 있다. 악마놈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진격하더라도 도착하기까지 며칠은 걸리겠지.’

아직 여유는 있었다.

***

정화 의식은 하루 만에 끝났다.

나는 성스러운 연못에서 몸을 일으켰다. 성스러운 연못 주위로 박살 난 성물들과 쓰러진 아멜리아가 보였다.

기진맥진하여 잠든 아멜리아를 품에 안았다. 그녀의 등에는 대악마 콜로서스의 영혼을 뜻하는 도마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블레아트는 나와 아멜리아를 집요하게 노릴 것이다. 그중에서도 아멜리아를 노리겠지.’

나와 달리 아멜리아는 전투력이 없었다. 대악마 블레아트가 작정하고 노리면 버티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항상 그녀에게 붙어 있을 수도 없다. 가장 좋은 건 지골라스의 팔라딘이 말했던 것처럼 블레아트의 눈을 피해 숨는 것이다.

‘도망칠 장소는… 성소와 최대한 비슷한 곳이 좋다.’

다른 팔라딘이었다면 무척 곤란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원작 게임의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블레아트도 모르는 특별한 장소 몇 곳을 알고 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발렌티어에 악마놈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발렌티어의 시민들은 악마들에게 학살당할 것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도망쳐야 하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마음에 안 든다고 위험한 선택을 하기에는 걸린 것이 너무 많았다.

‘악마들은 인간을 몰살하지 못한다. 인간은 그들의 먹이니까.’

인간의 영혼과 육체. 모두 악마의 먹잇감이었다. 악마도 머리가 있다. 인간을 멸종시켜봤자 악마가 얻는 이득은 거의 없다. 블레아트의 최우선 목표는 나와 성녀를 죽이고 대악마들의 영혼을 해방하는 것이겠지. 부차적으로는 인간들의 기세를 죽이는 것일 테고.

‘네 뜻대로는 안 될 거다. 블레아트.’

[이름: 유진

출신: 성기사

레벨: 94

힘: 85 민첩: 50 체력: 50 신성력: 75

보유 스킬: 성안(Lv. Ultimate), 홀리 오라(Lv. Master), 신성검(Lv. Ultimate), 질주(Lv.3), 홀리 라이트(Lv.7), 신성 강화(Lv. Master) 부활(Lv. Master), 강림(Lv. 1), 세크리파이스(Lv. 1), 완전한 육체(Lv. 5), 여명의 날개(Lv. 3).]

나는 내 능력치를 확인했다.

레벨과 능력치만 따졌을 때 최고의 스펙이라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 원작 게임에서는 무난하게 게임을 클리어하고도 남았을 스펙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 정도 스펙이어도 블레아트를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

‘블레아트는 방심하고 있지 않다. 악마들을 모은 게 그 증거지. 혼자 다니지도 않을 테고….’

대악마 콜로서스의 심장과 축복의 기운을 사용해 스킬을 강화했다. 축복의 기운은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다.

[이름: 유진

출신: 성기사

레벨: 94

힘: 95 민첩: 70 체력: 67 신성력: 82

보유 스킬: 성안(Lv. Ultimate), 홀리 오라(Lv. Ultimate), 신성검(Lv. Ultimate), 질주(Lv.5), 홀리 라이트(Lv.7), 신성 강화(Lv. Master) 부활(Lv. Master), 강림(Lv. 7), 세크리파이스(Lv. 5), 완전한 육체(Lv. Master), 여명의 날개(Lv. Master). 성화(Lv. 5), 빛의 속박(Lv.3)]

전부 사용해서 완성된 스펙이었다. 완전한 육체가 마스터 레벨에 오르면서 추가로 능력치가 올랐다.

대악마의 심장은 홀리 오라를 강화하는 데 사용했다.

‘홀리 오라는 광역기이자, 버프 스킬이다. 범용성이 좋지. 잡것들을 쓸어버리는 데 효과적이고.’

준비는 끝났다.

다음은 이곳에서 벗어나 숨는 것이다.

나는 성소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성소 밖에는 성기사와 사제, 이단심문관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나를 막지 않았다.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길을 비켜주었다.

“팔라딘이시여, 악에게 굴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는 팔라딘께서 대악마를 처단할 것임을 믿고 있나이다.”

“여신께서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자들의 눈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섣부르게 내뱉는 말은 그들에 대한 모독이 될 것이다.

“팔라딘이시여.”

발렌티어의 대주교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의 양손에는 하얀 망토가 있었다. 망토 테두리는 금실로 장식되어 있어 고급스러움이 느껴졌다.

“…대주교. 그건?”

“성인(聖印)의 망토입니다. 망토를 쓴 자의 기척을 숨기는 효과가 있습니다. 악마의 추적을 피하는데 용이하게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망토를 받아들였다. 어깨 위에 망토를 덮고, 망토 속에 아멜리아를 숨겼다.

“밖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있습니다. 빠르게 도시 밖으로 빠져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식량을 준비했습니다. 일주일은 버틸 수 있으실 겁니다.”

“발렌티어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발렌티어는 결코 악마들에게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떠나기 전에 말했다.

“그대들의 헌신에 감사한다. 내가 그대들에게 약속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대악마 블레아트를 처단하고, 이 세계에서 모든 악마를 멸할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팔라딘이시여.”

***

발렌티어에서 벗어난 나는 아멜리아를 품에 안고 숲길을 내달렸다. 그 속도는 말을 타고 달리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내 신체 능력이 인간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숲길을 달리는 도중에 타락수가 보였다.

타락한 짐승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나는 살짝 방향을 틀어 타락한 짐승의 몸을 발로 차고, 넘어진 놈의 머리를 짓밟아 터트렸다.

‘당하는 직전에서야 공격당하는 걸 깨달았군. 망토의 효과가 뛰어나군.’

키이이이이잉.

성안이 발동하며 근처에 있는 타락수의 존재를 깨닫는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마음 같아선 전부 찾아내 죽여버리고 싶으나, 지금 중요한 건 아멜리아를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것이다. 일의 우선순위를 착각해선 안 된다.

이틀을 쉬지 않고 달린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산.

그것도 화산 활동이 진행 중인 활화산이었다.

이곳에 악마는 없다. 악마라 해도 활화산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는 견디기 힘들었다. 거기에 이 근처에는 악마의 노리개이자, 식량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이 없었다. 무엇보다 여긴 악마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의 영역이었다.

‘지하에는 성소를 대체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아주 먼 옛날.

화산이 활동하기 전까지 이곳은 헤리안느 교단의 성역 중 하나였다.

나는 천천히 화산을 돌아다니며 동굴을 찾았다. 동굴을 찾자마자 안으로 들어간다. 동굴 가장 깊숙한 곳에서 집행검으로 땅을 팠다. 아니, 암석을 베어 가른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이곳의 땅은 단단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땅을 검으로 베고 부순 끝에 구멍이 나왔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성녀를 안아 든 상태로 지하로 내려갔다.

10m 정도 떨어져 바닥에 착지했다.

본래라면 기온이 뜨거워야 정상이다. 이곳은 활화산의 내부니까. 하지만 내부의 온도는 신기하게도 외부보다 더 쾌적했다.

“크르르르르르….”

짐승의 하울링 소리가 공간을 울린다. 나는 왼손으로 성녀를 몸을 단단히 끌어안고, 오른손으로는 집행검을 들어 전투를 준비했다.

성녀를 함부로 바닥에 내려두었다가 최악의 경우 죽을지도 모른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녀를 안고 싸우는 편이 훨씬 나았다.

‘성화.’

내 앞에 황금색 불꽃이 화르륵 일어났다.

어두컴컴한 공간이 밝혀지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붉은 짐승이 있었다. 5m가 넘는 그 거대한 짐승은 사자와 닮아 있었다.

한때, 헤리안느의 신수로 추앙받았던 짐승은 군침을 뚝뚝 흘리며 나와 아멜리아를 보고 있었다.

타락한 신수, 테기아스.

‘신수든 뭐든 타락했으면 죽어야지.’

살의를 느낀 테기아스가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 육중한 몸이 나를 향해 떨어진다.

‘질주.’

앞으로 뛰었다. 내가 있던 곳에 테기아스가 떨어졌다. 뒤를 돌아봤다. 테기아스가 붉은 갈기를 휘날리며 내게 달려온다.

‘빛의 속박.’

빛이 나타나 테기아스의 몸을 칭칭 휘감는다. 속박된 테기아스가 그 자리에서 움찔거렸다. 빛의 속박은 오래가지 않는다. 평범한 악마라면 모를까. 테기아스는 웬만한 악마도 씹어 먹는 괴물 같은 놈이다.

‘한순간 잡은 것만으로 충분하다. 여명의 날개. 찰나. 홀리 오라. 신성검.’

빛의 날개를 펼쳐 테기아스를 향해 도약했다. 찰나로 내 몸이 빨라졌고 나는 순식간에 놈의 머리 위에 섰다. 직후, 홀리 오라를 터트려 능력을 강화하며 신성검으로 집행검을 강화하며 놈의 정수리에 집행검을 찔러 넣었다.

‘신성 방출.’

콰아아앙!

테기아스의 머리가 폭발했다.

타락한 신수는 그렇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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