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1화 > 1501. 버려진 세계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보상이 주어집니다.]
[엔딩 업적, ‘희생’을 달성했습니다.]
[‘기적’을 획득합니다.]
[261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현실로 돌아왔다.
나는 살짝 멍한 눈빛으로 양손을 내려다봤다. 온몸이 불타는 듯한 감각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지금 그럴 때가 아니지.’
죽음. 그 자체인 듯한 검은색의 땅과 보기만 해도 섬뜩한 붉은색 하늘.
지금 나는 다른 세계에 와 있었다.
‘급하긴 해도 아예 여유가 없는 건 아니야. 팔라딘 세계에 들어가서 몇 개월의 시간을 보냈지만… 실제로는 1분도 안 지났으니까.’
나는 우선 이번에 얻은 것들을 확인했다.
[성유진
레벨: 85
근력: 110 체력: 110 민첩: 110 지능: 110 정력: 110 마나: 110]
[사용 가능 포인트: 36,540]
팔라딘 세계에 오래 있었던 덕분에 포인트가 제법 쌓였다.
‘기존에 쌓아 두었던 포인트를 제외하면 대충 2만 포인트 정도 얻었군.’
다음은 퀘스트 보상인 현신. 나는 이걸 얻기 위해 팔라딘 퀘스트를 받았다.
[현신
원하는 엔딩 세계의 자신을 불러와 재현합니다.
현신의 지속 시간과 능력 재현은 능력치 총합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격: 10,000 포인트
※주의
적용된 페널티까지 모두 재현합니다.]
현신의 힘을 이용해 제단을 뚫을 생각인다.
‘제단 주위에 있는 놈들을 쓸어버릴 수 있겠지. 현신을 사용할 대상은… 황제가 낫나? 아니면 팔라딘?’
고민하다가 엔딩 업적 보상으로 얻은 게 있음을 떠올렸다.
[기적
일어날 수 없기에 기적이라 합니다.
가격: 500,000 포인트
※주의
기적이 어떤 식으로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나는 기적의 정보를 읽어보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가격을 보면 어마어마하게 좋은 아이템인 건 맞는 것 같은데, 막상 사용하려고 하니 애매함을 감출 수 없었다.
‘기적이 어떤 식으로 발현된다는 거야? 단순히 내가 곤란한 때 쓰면 되나?’
지금 써볼까?
기적이 일어나서 모든 일이 해결될지도 모른다.
‘막상 쓰려고 하니 아깝게 느껴지네. 정 방법이 없을 때 한 번 써보자. 내가 제단을 점령했을 때 일이 틀어질 수 있으니…. 만일을 위해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으려던 나는 팔라딘의 엔딩이 궁금해졌다. 정확하게는 팔라딘 세계에 있을 성녀, 아멜리아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다.
‘확인할 수 있으려나? 그 세계의 내가 죽은 이상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을 텐데.’
[팔라딘: 악멸의 여정] 세계의 엔딩을 확인했다. 검정색 화면에서 넘어가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좀 아쉽다. 나는 괜스레 검은 화면을 툭툭 건드렸다.
[3,000 포인트를 소모해 엔딩 후의 세계를 확인하시겠습니까?]
멈칫했다.
‘엔딩 후의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고? 당연히 확인을…. 아니, 잠깐. 3,000 포인트?’
3,000 포인트는 결코 적은 포인트가 아니었다.
당장 내 능력치를 올릴 때 필요한 포인트가 600이다. 즉, 3,000 포인트면 능력치 5개를 올릴 수 있는 가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궁금한 건 못 참지!’
질렀다.
3,000 포인트가 사라졌다.
[엔딩 후의 세계를 확인합니다.]
스마트폰의 검은 화면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화면은 [팔라딘] 세계를 비추었다.
하늘에서 빛이 떨어졌다. 빛은 악멸 의식이 진행되는 광장 중심, 발렌티어의 팔라딘인 내가 죽은 곳을 비추었다.
내 시체는 없었다.
불에 탄 십자가와 땔감의 흔적만이 있었다.
교황청 시민들은 환호하며 말했다.
-여신께서 팔라딘을 데려가셨다!
-팔라딘께서 천상의 부름을 받으셨다!
-팔라딘께서 대악마의 영혼을 소멸시키고 천상의 부름을 받아 대천사로 태어나셨다!
시민들은 제들끼리 상황을 추측하며 지껄이기 시작했다. 시민들을 통제해야 할 사제와 성기사들은 감동한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린다.
나는 쯧 하고 혀를 찼다.
“내가 대천사로 다시 태어났다고? 그럼 내가 현실에 있을 리가 없지. 저건 여신이 쇼를 벌이는 거야.”
내가 보기엔 여신의 정치쇼였다. 자신의 존재를 잊지 말라고 빛을 내리는 것이다. 빛으로 내 시체를 없애버렸겠지.
“여신년. 내 업적에 숟가락 올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야.”
다른 걸 보고 싶었다.
‘화면을 어떻게 돌리는 거야? 아멜리아를 보고 싶은데.’
손가락이 화면을 툭 건드린다.
화면이 바뀌었다. 성녀, 아멜리아가 화면에 나왔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여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헤리안느 여신이시여, 부디 팔라딘께 편안한 안식을….
아멜리아의 감은 두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나는 한참 동안 그녀를 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그녀의 보지맛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간 가속 버튼이… 여기 있군.’
아멜리아를 중심으로 빨리 감기가 시작되었다. 나를 기리는 장례식은 따로 진행되지는 않았으나, 광장 중심에는 나를 표현한 거대한 조각상이 만들어졌다. 갑옷을 입고 집행검을 든 모습이 제법 멋있었기에 만족스러웠다.
아멜리아는 교단의 실세가 되었다.
교황이 죽고, 다른 팔라딘이나 성녀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신의 축복을 받아 막대한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대악마들을 처단한 나의 아내이기도 했다. 그녀를 제외하고 교단을 이끌 재목을 가진 자는 없었다.
-응애!
아멜리아는 성공적으로 출산했다.
태어난 아기는 남자아이였다. 아기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아기는 무럭무럭 자랐다.
세계는 마냥 평화롭지 않았다.
내 눈을 피해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었던 악마들이 서서히 활동을 시작했다. 악마를 토벌하기 위해 성기사들이 파견되었다.
새로운 팔라딘은 나타나지 않았다. 여신은 팔라딘이 없어도 인간끼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대악마가 없으니까. 그리고 블레아트가 죽으면서 여신도 어느 정도 타격을 받았겠지.’
악마가 없어도 타락자는 나타났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타락은 이 세계의 시스템에 가까우니까. 악마가 멸종하더라도 인간이 욕망에 패배하는 순간 타락자들은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대악마는 존재하지 않고, 악마도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 세상은 평화롭게 흐른다.
요한이 소년이 되었을 무렵, 인간 세계가 급변했다.
귀족들이 교단의 관리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작은 미미했고, 의미도 없었지만, 점점 신앙을 버리는 자들이 발생했다. 귀족들은 세력을 모으고 영토를 넓히며 전쟁을 시작했다.
‘뭐, 그럴 것 같았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원래 역사에서도 전쟁은 계속 일어났다. 고대는 물론이고 현대까지 전쟁은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아멜리아가 살아있는 동안 교단이 흔들리는 일은 없어.’
요한이 30살이 되었을 때, 아멜리아는 교황직을 승계하고 성녀의 신분으로 돌아갔다. 발렌티어의 성소에 머무르며 매일 여신에게 기도하는 일이 그녀의 일상이었다.
그녀의 성소에서 머무르며 계속 기도를 올렸다.
매일매일 기도한다. 성실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지경이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났다.
교단과 귀족이 서로에게 검을 겨누었다. 명분은 있었으나,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인간과 인간의 전쟁이 이어졌다.
아멜리아는 그저 기도했다. 수십 년이 지나도 그녀의 빛나는 외모는 그대로였다. 그녀가 품은 막대한 신성력이 그녀의 노화를 품은 것이다.
그리고 아멜리아가 죽었다.
성소에서.
여신상의 앞에서 조용히 죽었다.
여신은 그녀에게 빛을 내려 육체와 영혼을 거두어갔다. 아멜리아의 육신과 영혼은 천상으로 올라갔다.
화면이 어둡게 변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몇 번 두들겼으나 반응이 없었다.
나는 씁쓸함을 느끼며 스마트폰을 넣었다.
***
[브라마센의 제단을 찾아 활성화하여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차원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제단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제물이 필요합니다.]
나는 전지의 조각의 답변을 잊지 않았다.
제단을 점령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제단을 점령하고 제물을 바쳐야 한다. 문제는 그 제물이 무엇인지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단 근처에 있는 브라마센의 추종자를 제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모조리 죽여선 안 돼. 가장 좋은 건 역시 제단 주위에 있는 4명의 사제를 붙잡는 거겠지.’
브라마센의 추종자들을 절반 이상 죽이고 사제를 붙잡아 제단을 활성화하도록 명령한다.
‘시작하자.’
현신을 사용한다.
대상은 황제가 아니라 팔라딘으로 정했다. 무력만 따지면 황제가 더 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황제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 힘들었다. 안정성을 따지면 팔라딘 쪽이 더 낫다.
[현신을 사용합니다.]
[팔라딘: 악멸의 여정 세계의 자신을 불러옵니다.]
[페널티까지 모두 적용됩니다.]
[현신은 2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키이이이잉.
성안(聖眼)이 발동되며 브라마센의 추종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들은 영혼이 타락했다. [팔라딘: 악멸의 여정] 세계의 타락자들보다 더 심하다. 타락한 것에 더불어 미치기까지 했으니까.
“전부 쓸어버리고 싶군.”
내 안에 단단히 자리 잡은 신성력을 느끼면서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유진
출신: 성기사
레벨: 99
힘: 121 민첩: 92 체력: 97 신성력: 150
보유 스킬: 성안(Lv. Ultimate), 홀리 오라(Lv. Ultimate), 신성검(Lv. Ultimate), 질주(Lv. Master), 홀리 라이트(Lv. Master), 신성 강화(Lv. Master) 부활(Lv. Master), 강림(Lv. Master), 세크리파이스(Lv. Ultimate), 완전한 육체(Lv. Master), 여명의 날개(Lv. Master). 성화(Lv. Master), 빛의 속박(Lv.Master)]
[팔라딘] 세계의 상태창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 상태창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팔라딘] 세계의 나보다 약하다. 유희 생활 어플 능력치의 영향이겠지.’
스톰브레이커를 소환한다. 스톰브레이커는 갑옷이 되어 내 몸에 달라붙었다. 또한 인벤토리에서 집행검을 소환했다.
팔라딘만이 사용할 수 있는 집행검의 검신이 내 의지에 반응하여 황금빛으로 빛났다.
‘여명의 날개.’
등 뒤로 빛의 날개 한 쌍이 나타났다. 빛의 날개가 움직이고 내 몸이 허공에 떠오른다.
내 존재감을 느낀 브라마센의 추종자들의 주의가 일제히 내게 향한다. 브라마센의 추종자들은 먹이를 발견한 짐승처럼 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인사 대신 검을 휘둘렀다.
‘신성 방출!’
막대한 신성력은 해일이 되어 브라마센의 추종자들을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