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02화 > 1502. 버려진 세계 (1,282/2,000)

< 1502화 > 1502. 버려진 세계

‘신성 방출!’

막대한 신성력은 해일이 되어 브라마센의 추종자들을 휩쓸었다.

물론 그럼에도 브라마센의 추종자들은 우글거렸다. 보고만 있어도 토가 쏠릴 정도로 많았다.

“키에에에에에엑!”

“카아아아아아악!”

브라마센의 추종자들은 하늘을 날고 있는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손을 뻗으며 점프하기도 한다. 놈들은 날지 못했기에 곧바로 지상으로 추락했지만.

“벌레보다 못한 것들.”

파지지직.

손아귀에서 황금빛 뇌전이 모여들어 구체를 형성한다.

나는 완성된 구체를 바닥에 내던졌다.

뇌천류(雷天流) 뇌구(雷球).

황금빛 뇌구가 폭발하며 압축된 번개가 사방으로 퍼졌다. 우글대는 브라마센의 추종자들이 번개에 휩쓸려 감전당한다. 연기와 함께 고기 타는 냄새가 났다.

그때,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제단 주위에 있는 사제들이 삐죽한 손톱으로 나를 가리키며 뭐라고 지껄이고 있었다.

얼핏 들으면 중국어와 비슷하게 들린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전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중국어라면 내가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저건 발음만 비슷한 아예 다른 체계의 언어다.

“말이 안 통한다는 건가…. 썩 좋은 소식은 아니군.”

집행검을 치켜든 순간이었다.

귓가가 웅웅 울리며 놈의 말이 한국어처럼 들렸다.

-브라마센께서 말씀하신 반역자가 바로 네놈이구나! 브라마센께서 네놈의 죽음을 원한다!

“텔레파시…. 일종의 주술 같은 건가?”

오히려 잘됐다.

놈을 붙잡고 심문하기 편할 테니까.

우우우우웅.

위에서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위로 올렸다. 저 높은 상공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그 사이로 커다란 촉수가 나타나 나를 향해 떨어진다.

나는 촉수를 향해 집행검을 휘둘렀다. 황금빛 검기가 촉수에게 날아갔다. 허나 검기는 촉수를 자르지 못하고, 나는 촉수에 맞아 지상으로 처박혔다.

촉수는 곧바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나, 촉수에 맞은 데미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단순히 물리적으로만 강력한 게 아니다. 브라마센의 힘이 담겨 있었다. 사제 놈들이 또 촉수를 소환하긴 전에 제압해야 한다.’

방금 같은 촉수를 2~3번 맞으면 아무리 나라도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검은 땅에 짓눌린 나는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악!”

브라마센의 추종자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다. 휴식을 취할 여유는 없었다.

‘홀리 오라!’

성스러운 기운을 사방에 터트린다.

달려들던 추종자들이 쓸려나갔다.

‘홀리 라이트!’

왼손에서 성스러운 빛이 뿜어져 나와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빛에 닿은 추종자들의 몸이 불타올라 재가 되었다.

‘강림.’

허공이 갈라지고 천사 10명이 나타났다. 천사들이 추종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틈에 여명의 날개를 꺼내 들어 제단을 향해 날아갔다.

‘제단에 있는 사제를 생포한다. 4명 전원 있을 필요는 없겠지. 3명을 죽이고 1명을 생포한다.’

바로 제단으로 날아갈 수 없었다. 브라마센의 추종자들이 가시를 쏘아내며 나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제단에 도착해도 저놈들이 공격하며 방해하겠지. 놈들의 수를 더 줄여야 한다.’

잠깐 방법을 고민하던 나는 세크리파이스를 사용했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숨이 한 차례 끊어지고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천공의 빛.

새빨간 하늘 중심에 황금빛이 모여들더니 그대로 지상에 떨어진 것이다.

떨어진 빛은 사방으로 퍼지며 추종자들을 불태웠다.

그것은 일종의 궤도 폭격과도 같았다.

‘길이 열렸군.’

제단 위의 4명의 사제들이 모였다. 사제들은 서로의 손을 잡으며 둥글게 섰다. 그들은 강강술래를 하듯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사이한 의식을 시작한 것이다.

‘완전 회복을 사용했지만, 아직 천심은 남아 있다. 어떤 저주를 쓰더라도 바로 천심을 사용해 극복하면 된다.’

예상 밖의 사태가 일어났다.

빙글빙글 돌던 사제들이 돌연 피를 토하며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으아니이이잇?!

-네이놈…! 지금 뭐 하는 거냐!

-이 중요한 의식에 초를 치다니! 너의 신앙은 거짓이었느냐?!

그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났다.

4명의 사제 중 1명이 배신한 것이다.

뜻밖의 상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추종자 중 일부가 변이를 일으키더니 자기들끼리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나는 변이를 일으킨 추종자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이놈들은 육체적 변이를 일으켰다. 몸에서 혈관 같은 것이 튀어나오고 뭔지 모를 액체를 밖으로 줄줄 흘리고 있다. 추종자들보다 훨씬 더 끔찍한 외형으로 변한 것이다. 그러면서 추종자들을 공격하고 있고, 추종자들은 그에 맞서 변이한 괴물과 싸운다.

개판이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군. 왜 변이한 거고, 왜 자기들끼리 싸우는 거냐?’

당혹스러움은 일단 한 쪽으로 밀어두기로 했다. 지금 해야 할 건 제단을 점거하고 사제들을 생포하는 것이다.

나는 서둘러 제단을 향해 날아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늦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1명을 제외한 3명의 사제는 시체가 되어 제단 위를 뒹굴었다.

제 동료를 배신한 1명의 사제에게 집행검을 겨누었다.

“이해할 수 없군. 왜 이 시점에서 동료를 배신한 거냐? 마치… 나를 돕는 것처럼 보이는군. 나를 속일 계획이었다면 통하지 않는다.”

사제는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 손을 들었다. 그의 손에 달라붙은 살점들이 꿈틀거린다. 역겨운 모습이었다.

-이놈들과 저는 동료가 아닙니다. 브라마센을 믿지도 않습니다. 저는 창조주를 돕기 위해 놈들을 죽였습니다. 그게 더 효율적이기에.

“……창조주는 나를 말하는 건가? 넌 대체 뭐지?”

-제겐 이름 따윈 없습니다. 저는 레브르의 권속입니다.

“레브르의 권속이라고?!”

깜짝 놀라 반문했다.

-그렇습니다.

레브르.

[워메이저] 세계관의 기생 군주다.

나는 과거에 던전에서 랜덤 소환으로 레브르를 소환한 적 있었다. 내가 알기로 레브르는 던전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워낙 위험한 놈이라 붕괴하는 던전과 함께 죽으라고 명했었다. 레브르는 당연히 내 명령을 따랐고.

‘그때는 명령에 따랐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따르지 않은 건가?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을 줄이야.’

서늘해지는 분위기를 느낀 걸까. 놈이 서둘러 변명하듯 말했다.

-레브르는 창조주의 명을 이행했습니다. 던전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대신에 던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던전 깊숙한 곳?”

-정확하게는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레브르는 던전 붕괴 도중에 이어진 차원을 발견했지요. 그곳은 브라마센의 영지였습니다. 레브르는 브라마센에 스며들어 기생을 시작했고 역소환되어 사라졌습니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브라마센은 기생 군체를 지금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생 군체는 역병처럼 퍼져나가며 브라마센의 세력에 잠식했다.

이게 기생군주의 힘.

내가 필요 이상으로 레브르를 경계했던 이유였다.

“인간에게 기생하진 않았겠지?”

-굳이 인간에게 기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양분으로 따지자면… 이것들이 더 우수하니까요.

맞다. 이놈들은 무생물에도 기생하는 놈들이었다. 굳이 인간에게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기생할 수 있는 것에는 기생하는 놈들이라 믿을 수는 없다.

“브라마센의 군세에는 어디까지 기생한 거냐?”

-비율로 따지자면 아직 1%도 되지 않습니다. 기생은 계속 시도하고 있으나, 5%를 넘길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이상으로 기생했다가는 브라마센이 눈치 챌 가능성이 큽니다.

“하긴. 브라마센은 신이다. 자기 군세에 큰 이상이 생기면 알아차리겠지. 지금 브라마센은 이곳을 보고 있나?”

-안심하십시오. 브라마센은 시선은 이곳에 닿지 않습니다. 이 세계는 버려진 세계. 브라마센이 먹고 남긴 찌꺼기나 다름없는 세계입니다. 세계의 수명은 끝났으니 기껏해야 수십 년이면 이 세계는 붕괴하여 사라질 것입니다.

“…브라마센이 먹고 치웠다라…. 브라마센은 목적이 바로 그것인가?”

-그러합니다. 브라마센은 세계를 먹고 힘을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도 수십 개의 세계를 동시에 침공하여 먹고 있습니다. 지구는 그 세계 중 하나일 뿐입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더 터무니없는 놈이었군.”

-걱정마소서. 창조주에 비하면 발톱에 때만도 못한 놈입니다.

나는 눈동자를 굴려 제단 바깥쪽을 쳐다봤다. 변이를 일으켜 추종자들과 싸우고 있는 놈들. 저것들도 기생군주 레브르의 권속인 기생체들이리라.

“너희들의 목적은 뭐지?”

-저희는 그저 레브르의 의지에 따를 뿐입니다. 레브르가 우리에게 내린 명령을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브라마센의 세력에 기생하여 번식하는 것. 다른 하나는 창조주의 뜻에 따르는 것입니다.

“내가 죽으라면 죽을 수 있나?”

-기꺼이 죽겠습니다.

“…….”

이놈들은 다수이지만 하나이다. 그 본질은 레브르가 분열하여 생성된 기생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놈들은 레브르의 뜻에 절대적으로 따르며 행동한다. 레브르가 나를 배신하지 않는 이상, 그 분열체인 기생체들도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브라마센은 왜 이곳에 너희를 남겨둔 거냐?”

-브라마센의 군대가 너무 커 일부를 이곳으로 보낸 것입니다. 브라마센의 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든 다른 차원을 침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일종의 병참이라는 거군.”

-정확합니다.

버려진 세계를 병참으로 활용한다. 스케일이 너무 커서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브라마센은 내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놈이라는 거다.

브라마센의 입장에서 여기에 있는 놈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것이다.

“나는 지구로 돌아가야한다. 제단을 활성화 시킬 수 있나?”

-할 수 있습니다. 지구로 가는 차원의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제물은 보시다시피 충분히 있습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사방의 가리켰다. 브라마센의 추종자들을 제물로 쓰겠다는 뜻이다.

“지구로 가는 건 나 혼자다.”

이놈들을 지구로 데려갈 생각은 없었다.

이놈들은 지나치게 위험하다. 통제할 자신도 없었다.

-저희도 지구에 갈 생각은 없습니다. 저희가 지구로 가면 브라마센이 저희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으니까요. 제단을 활성화하겠습니다.

그는 팔을 까딱였다. 염동력이 발동되고 근처에 있는 추종자들이 끌려왔다. 그는 제단 위에서 추종자들을 찢어 죽였다. 추종자들의 피가 제단을 적신다.

우우우웅.

제단이 진동하며 차원의 틈이 벌어졌다.

-지구와 연결되었습니다. 가십시오.

“…….”

정말 이 틈으로 들어가면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가?

의심이 들었다.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 …일단 들어가 보자.’

손에 스마트폰을 들었다. 여차할 땐 바로 유희 생활 어플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차원의 틈으로 들어갔다.

풍경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푸른 하늘과 갈색의 땅. 녹음이 우거진 숲.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신호가 잡힌다.

나는 지구로 돌아왔다.

***

제단 위의 차원의 틈이 사라졌다.

성유진을 지구로 돌려보낸 기생체는 전투를 벌이는 추종자들을 둘러봤다.

-이곳에 있는 놈들은 전부 죽여야 한다.

그도 가세했다. 초능력을 이용해 브라마센의 추종자들을 죽였다.

1,000 마리가 남는 기생체들이 살아남았다.

-흔적을 남겨선 안 된다. 전부 불태워라.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그가 말하는 전부에는 기생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그 자신조차 불길에 몸을 던졌다.

-군체의 생존과 번식을 위하여!

그들은 군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다.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