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4화 > 1504. 광명승천도
“이번 신입들은 빠질 대로 빠졌군.”
2m가 넘는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짜증을 담아 말했다. 그의 머리카락은 불꽃처럼 붉었고, 얼굴과 몸은 흉터투성이였다.
그의 이름은 신가겸이고, 두 개의 별호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적란암귀(赤鸞唵鬼), 다른 하나는 적멸대주(寂滅隊主).
‘내가 적멸대에서 활동하게 됐으니… 일종의 내 상사라고 할 수 있지.’
나와 연예하는 적멸대주의 앞에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우리 주위에는 100명이 넘는 적멸대원들이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느껴지는 기세가 대단하다. 적멸대의 명성은 허명이 아니란 게 실감 된다. 특히 눈앞에 있는 적멸대주는 지금 내 수준으로는 한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왜 늦은 거지?”
적멸대주가 물었다. 나는 긴장을 풀지 않고 말했다.
“길을 잃었습니다.”
실제로는 연예하와 떡 치다가 늦어버렸다.
“천마신교가 넓긴 하지.”
적멸대주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연예하에게 향한다.
“옆에 있는 너는… 왜 늦었지?”
적멸대주의 목소리에는 약간이지만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연예하의 신분을 알기 때문이다.
천마신교의 삼장로인 검마의 딸.
아무리 적멸대주라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니었다.
“길을 잃었습니다.”
연예하의 대답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나와 연예하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이니 봐주지. 다음번에는 그딴 변명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다. 백산마녀 연예하. 너는 4조다. 4조장이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줄 거다. 당분간은 일을 배우는 것에 집중해라.”
“이야. 모셔야 할 신입이 들어왔네. 4조장인 가하란이야. 잘 부탁해, 신입님.”
검은 머리를 틀어 올린 여자가 튀어나왔다. 목에 전갈 문신이 있는 여자였다. 그녀는 연예하를 보며 빙긋 웃었다. 첫인상은 꽤 좋아 보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연예하는 가하란을 따라 4조의 무리로 걸어갔다. 4조는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조였다.
“섬전도 염구석.”
적멸대주가 나를 불렀다.
“네. 대주님.”
“너는 6조다. 마찬가지로 일을 배우는 것에 집중해라.”
6조장이 설렁설렁 걸어왔다. 거지꼴을 한 남자였다. 옷은 낡았고, 허리춤에는 도끼 4개를 장비했다.
“흐흐. 드디어 우리 조에도 막내가 들어왔구만. 이게 얼마 만이지? 20년만인가?”
“오봉. 신입 데리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걱정마십시오, 대주. 막내는 내가 잘 가르칠 테니까요.”
오봉이 내게 손짓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그를 따라갔다. 6조의 남자들이 나를 반겼다. 바로 탈주하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적멸대주는 말없이 사라졌다. 나와 연예하는 조장들에게 이끌려 적멸대원들과 인사를 나눠야 했다.
적멸대원들은 연예하에게 매우 조심스러웠다. 반면에 나를 대할 때는 거침이 없었다.
‘앞으로 피곤해질 것 같네.’
진짜 탈주해버릴까?
그때, 연예하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말 없이 뜨거운 신호를 보냈다.
‘연예하. 너 때문에 내가 버틴다.’
***
“우리 6조는 지원조다.”
오봉이 술을 마시며 말했다.
“보급 물자를 지원하는 등의 일을 합니까?”
“아니. 행정 보급은 따로 전문하는 부대가 있어. 우리는 말만 지원조지… 실제로는 잡일조에 가깝지. 좀 더 알기 쉽게 말해줄까?”
나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대답했다.
“네.”
“다른 조에서 일손이 부족해지는 경우가 있어. 그때 우리를 부르는 거지. 우린 그 조에 가서 도와주면 되고. 그 외에는 위에서 하라는 걸 하면 돼. 다른 조를 지원하는 것보다 잡일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을 거다.”
“대충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조는 무슨 일을 합니까?”
“다른 조? 1,2조는 전투 전문. 3,4조는 특수 임무. 5조는 암살 일을 하고, 7,8,9,10조는 일반 임무를 주로 수행하지. 이해됐나?”
“이해했습니다. 그럼 전 이제 뭘 하면 됩니까?”
“우선은….”
오봉이 기분 나쁜 눈으로 날 쳐다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우리 막내 실력 좀 볼까?”
나는 오봉과 함께 수련장에 섰다. 오봉은 한 손에 도끼를 쥐었고, 나는 칼을 손에 쥐었다. 수련장 주위에는 6조는 물론이고 다른 조 사람들까지 모여들었다. 그 숫자만 해도 대략 80명에 달한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단체에 들어온 신입이 신고식을 치르는 건 흔한 일이니까.
‘연예하는 없군. 아마 연예하는 이 짓거리는 안 하겠지.’
적멸대주에서부터 시작해 연예하를 대하는 태도가 신중했다. 연예하의 아버지인 검마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이 세계나, 저 세계나 확실한 뒷배가 있으면 일이 편해지네.’
실력을 어디까지 보여야 하나.
간단하다.
과해서는 안 되고, 모자라는 건 더 안 좋다. 평균 이상. 구경꾼들로부터 감탄을 끌어낼 정도가 딱 적당하겠지.
뇌천류는 당연히 쓰지 않는다. 천마신공? 당연히 안 된다. 지금 내가 써야 하는 무공은 염구석이 어렸을 때부터 익힌 참귀도법뿐이다.
“뭐하냐? 가만히 서서 시간 다 보낼 거냐?”
오봉이 하품하며 말했다.
“갑니다.”
참귀도법의 보법을 밟는다. 오로지 적과 자신의 거리를 좁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 투박한 보법이었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는 동시에 칼을 내지른다.
참귀도법(斬鬼刀法) 일풍반진(一風反眞).
오봉의 양손이 움직였다. 칼날을 사이에 두고 그의 두 손목이 원을 그린다. 칼날은 손목에 닿지 못하고 멈췄다. 칼날이 이리저리 요동친다. 쏟아내지 못한 힘이 반동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이화접목!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이화접목을 사용한다고?’
껄렁해 보였기에 얕보고 있었으나, 그 실력은 진짜였다.
나는 칼을 뒤로 뺐다.
“제법 빨랐다. 낄낄.”
오봉이 웃는다. 그 경박한 웃음소리에 기분이 확 나빠진 나는 살의를 담아 칼을 휘둘렀다.
참귀도법(斬鬼刀法) 나찰회섬(羅刹回閃).
칼날이 회전하며 검기를 발산한다. 푸른색 검기는 어지럽게 선을 그리며 오봉의 급소를 노렸다. 오봉의 양손이 허리춤의 도끼를 들었다. 그가 도끼를 휘두르며 검기를 쳐냈다.
“이게 전부면 실망스러운데.”
나나 염구석이나 도발을 참을 정도로 좋은 성격을 아니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순간 가속과 함께 쾌도가 휘둘러진다. 오봉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바뀌었다. 칼날이 그의 허름한 상의를 베고 어깨에 닿는 순간, 아래에서부터 올라온 도끼가 칼을 쳐냈다. 직후, 경공술을 이용해 선풍기처럼 뒤로 돌며 물러났다.
“이건 위험했구만. 내가 너를 너무 무시했어. 사과하마. 대신이라고 뭐랄까. 진심으로 임해주마.”
오봉이 양손에 쥔 도끼를 던졌다. 각각의 도끼는 허공에 멈춰 시계방향으로 회전했다.
주위에서 야유가 터진다.
“이제 막 들어온 막내를 진심으로 상대한다고?”
“오봉, 이 미친놈아!”
“낄낄. 막내를 상대로 어영부(馭令斧)를 사용해? 저 자식도 갈 때까지 갔군.”
두 개의 도끼가 나를 향해 날아온다. 나는 칼을 휘둘러 도끼를 쳐냈다. 도끼가 반대편으로 날아가다가 허공에 멈췄다. 그리고 다시 내게 날아온다.
‘이기어검같은 건가? 아니, 그러기엔 위력이 약해. 그리고 이기어검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6조장이 아니라 못해도 대주급은 되었겠지.’
비밀이 있다.
‘무공이 아니라면 도끼가 특별하다는 거겠지.’
법기(法器). 특별한 힘을 가진 물건.
까앙! 깡!
쉴 틈 없이 날아드는 두 개의 도끼를 계속 쳐내며 생각했다.
‘이기어검의 발끝에도 못 따라간다. 이 도끼들의 궤적은 단순해. 쳐내는 건 어렵지 않아.’
쳐내기만 해서는 제자리일 뿐이다.
뇌천류를 사용한다면 단번에 승기를 가져올 자신이 있지만, 지금의 나는 염구석이다.
‘순수하게 참귀도법만을 사용해서는 힘들겠군.’
편법을 쓰기로 했다.
사마외도들이 자주 쓰는 편법이니 문제 될 건 없으리라.
쾅!
폭발음이 귀에 들렸다. 모기보다 작은 폭발음이 내 몸에서 들린 것이다.
기혈을 타고 흐르던 내기가 순간적으로 폭발한 것이다. 나는 그 힘을 추진력 삼아 앞으로 뛰었다. 다리가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 나간다.
“내기를 터트려? 이거 미친놈이잖이구만…!”
경악한 오봉이 실실 쪼갠다.
쾅쾅쾅!
계속해서 내기를 터트리며 칼을 휘둘렀다. 오봉은 요리조리 잘도 피했다. 때로는 이화접목을 이용해 내 공격을 튕겨냈다.
손에서 피가 튀었다. 내기가 터지면서 손바닥 피부가 터진 것이다.
‘더 이상 하면 위험하겠군. 이걸 마지막으로 한다.’
기수식을 취한다. 칼자루를 양손으로 쥐고, 허리를 살짝 낮춘다.
참귀도법(斬鬼刀法) 악참(惡斬).
번개를 담은 참격이 오봉을 향해 날아간다. 오봉은 귀신같은 손놀림으로 허리춤에 남아 있는 2개의 도끼를 꺼냈다. 그리고 도끼를 교차시켜 참격을 막아냈다. 오봉의 양팔이 덜덜 떨렸다.
“그만! 여기까지! 막내야, 내가 잘못했다!”
오봉이 엄살을 떨며 외쳤다.
내게 날아오던 2개의 도끼가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나 또한 칼을 갈무리했다.
“키야. 진짜 마인 같은 놈이 들어왔구나!”
“기혈을 펑펑 터트리는 걸 보니 또라이가 확실하다.”
“관상을 보니 반골이 가득하다. 하극상도 아무렇지 않게 일으킬 놈이니 최대한 원만하게 지내야겠군.”
주위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확실하게 내 존재감을 각인시켜 둔 것 같았다.
오봉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천박한 웃음을 흘리며 내 등을 손바닥으로 퍽퍽 때렸다.
“이 자식아! 좀 살살 해라, 살살! 이건 생사결도 아니고 평범한 비무라고, 비무!”
“살살했습니다.”
“아이고, 그려서? 간만에 물건 하나 들어왔네.”
“이제 뭐 합니까?”
“뭐하긴, 합격진을 익혀야지.”
***
적멸대에 들어온 지 반년이 지났다.
신입인 나와 연예하는 적멸대에서 적멸진이라는 합격진을 익히며 간단한 심부름을 수행했다. 물론 반년을 순수하게 보낸 건 아니다. 자동 진행이 있는데 굳이 지루한 시간을 보낼 필요는 없다.
“염구석! 임무다!”
오봉이 뛰어와 나를 불렀다. 오늘도 합격진 수련을 준비하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를 쳐다봤다.
“뭡니까. 대주님 방 청소? 아니면 식당에서 간식거리를 받아오면 됩니까?”
“아니, 이번엔 진짜 임무다.”
적멸대는 의외로 임무를 자주 수행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1년에 4~5번의 임무를 수행한다. 그 외의 시간에는 자기만의 시간이 주어진다.
“무슨 임무입니까?”
“신교의 영역에 내유시(內硫市)라는 도시가 있어. 그 도시에 변이 일어났다더라. 우리 임무는 그 변을 조사하는 거다.”
“…적멸대가 그런 일도 합니까?”
“상부는 가볍게 보지 않는 일이니, 우리에게 임무를 하달한 거야. 그리고 말했잖아. 우리 적멸대 6조는 잡일조라고. 어쨌든 내유시에 갈 준비해. 너와 나, 둘이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