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2화 > 1512. 광명승천도
낭인회(浪人會)였다.
낭인.
이 세계에선 세력에 소속되지 않고 떠도는 무인들을 말한다. 판타지식으로 말하면 용병에 가깝다.
이렇게 들으면 강호를 유람하는 고수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는 강호의 낭만이고 뭐고 없는 직업이다. 낭인은 대부분 삼류 무인들이다. 낭인회의 의뢰를 통해 간신히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평소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을 배월시의 낭인회는 오늘따라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물론 모인 사람들은 죄다 무기를 장비한 낭인들이다.
‘큰 일거리가 들어왔나 보네.’
그게 아니고서야 저렇게 모여 있을 리 없었다.
나는 호기심을 느끼며 낭인회로 걸어갔다. 사방에 기운을 뿌려 압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강호의 허접쓰레기들이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밀려난다. 강호의 고수는 기세만으로 인파를 가를 수 있는 기적을 행할 수 있었다.
“허억!”
“컥!”
“고, 고수다!”
두려움과 선망이 섞인 시선이 내게 모였다.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게 고수였다.
낭인들이 보고 있던 벽으로 향했다. 벽에 커다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의뢰서였다.
근처 산에 나타났다는 흑호를 토벌한다는 내용의 의뢰서.
‘흑호라면 요괴군.’
꽤 유명한 요괴 중 하나였다. 무리 지어 행동하는 검은 호랑이 요괴. 이 근처에 요괴가 나타난 모양이다.
‘흑호는 낭인이 토벌하기 쉬운 요괴가 아닌데?’
흑호 정도의 요괴라면 중형 규모의 문파가 나서야 한다. 종남파의 영향이 받는 배월시에는 중형 규모의 문파가 없다. 따라서 종남파가 직접 무인들을 파견하여 흑호를 토벌하는 게 맞다.
‘의뢰주가 종남파네.’
왜 굳이 돈을 들여가며 낭인들에게 흑호를 토벌하라 시킨 걸까?
조금 생각하자 답은 바로 나왔다. 저번에 미령에게 들었었다.
‘종남의천제를 준비하느라 바쁜 모양이군. 뭐, 50년마다 치르는 대규모의 축제이니 바쁘지 않으면 이상하지.’
보상을 확인했다.
기본 보상금은 은 5냥. 공로에 따라 추가로 돈을 지급한다고 적혀 있다.
‘심심한데 잘 됐어. 가서 내 실력을 뽐내야지.’
나는 낭인회 직원에게 다가갔다. 직원은 나를 보며 입술을 씰룩거리며 못마땅한 눈으로 날 쳐다본다.
지금의 내 기세를 견뎌냈다.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놈이란 뜻이다.
“조선제일검 무적유진이다. 흑호 토벌대에 참가하겠다.”
“…처음 들어보는 별호군요. 조선제일의 검이라…. 조선은 어디의 지명입니까? 아니면 문파의 이름입니까?”
“조선도 모르는 건가. 무식한 새끼.”
“…….”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손을 내밀었다.
“토벌대에 참가하기로 했으니 기본 보상급을 내놔라.”
“보상급은 토벌이 끝난 뒤에 지급됩니다. 그리고… 낭인회 소속의 낭인이 아니면 참가할 수 없으니 썩 꺼져!”
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내 기세를 받고서도 당당하게 나선 그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기세를 흘리지 않았다고 해도 어중이떠중이는 무서워서 피할 정도다.
“눈이 옹이구멍인가…. 강호 고수인 나를 이렇게 대한다고?”
“하…. 강호의 고수를 칭하면서 그따위로 행동하나? 대협처럼 행동하고 싶으면 대협처럼 행동해라!”
“약해 빠진 새끼가 간이 부었군. 나는 대협이다. 왜냐? 너보다 강하기 때문이지. 당장 무릎을 꿇고 잘못을 고하라. 내 자비심이 바닥나기 전에.”
칼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놈이 주춤거렸다. 그러나 내게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여긴 낭인회다! 어디서 패악질이냐! 낭인회가 두렵지 않느냐!”
“나는 조선제일검이다. 낭인회든 뭐든 굴복하지 않는다.”
허리춤에서 천천히 칼을 뽑는다.
칼집에서 칼날 일부가 드러났다.
파지지직!
칼날을 중심으로 뇌전이 튀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던 뇌전은 돌연 방향을 바꾸어 칼에 스며들어 강기(?氣)가 되었다. 완전히 칼을 뽑았을 때, 칼은 푸른 별빛처럼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경악한 놈이 도망치려고 했으나, 칼은 이미 휘둘러졌다.
서걱!
놈의 오른팔이 떨어진다. 놈은 이를 악물었다. 옆에 세워두었던 창을 향해 왼손을 뻗는다.
굴복하지 않고 반항한다.
“약자가 반항?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구나…!”
놈을 향한 자비는 이제 없다. 내 칼은 놈의 목을 베기 위해 움직였다.
까앙!
누군가의 검이 끼어들었다. 하얀 강기가 서린 검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참견인을 쳐다봤다.
검은색 무복을 입은 남자였다. 깔끔한 외형의 중년이었다. 그는 싸울 생각이 없다는 듯 검을 등 뒤로 가져가 세우며 말했다.
“우리 직원이 무적유진 대협께 무례를 범했소. 용서해주시오.”
“너는 뭐냐?”
“이곳, 배월시 낭인회 지부의 지부장이오.”
“너 정도 되는 놈이 낭인회의 지부장이라고?”
강기를 사용한다는 것에서부터 오기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란 뜻이다. 대충 오기 2~3단 경지로 보였다.
“대협. 낭인회는 약하지 않소. 낭인회는 구파일방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곳이오.”
“……뭐, 좋다. 너를 봐서 이번은 넘어가 주지.”
전투 자세를 취소했다. 지부장은 한숨을 내쉬더니 내게 포권했다.
“인사가 늦었소. 구지검 정척이라 하오.”
“조선제일검 무적유진이다. 흑호 토벌대에 참가하겠다.”
“낭인회의 의뢰는 낭인회 소속의 낭인만이 받을 수 있소이다. 낭인회에 가입하시겠소?”
“낭인이 되는 것에도 자격이 필요한가? 웃기는 일이군.”
“회주가 직접 정한 방침인지라 어쩔 수 없소. 낭인회에 가입했다고 해서 의무 같은 게 생기는 건 아니니 안심하시오.”
“그래? 가입하겠다. 조건이 뭐지?”
“은 1냥을 가입비로 내면 되오. 이번엔 우리가 실수 했으니… 가입비를 받지 않겠소.”
“이제 난 낭인회 소속인가.”
“그렇소. 흑호 토벌대는 일주일 뒤에 출발할 것이오. 그때 낭인회로 오시오.”
“알겠다.”
“대협께서 함께해주니 무척 든든하오. 이번 토벌대의 고수가 본인뿐이라 난감하던 차였는데 운이 좋구려.”
“너도 참가한다고?”
“이번 흑호는 만만한 놈이 아니오. 이곳에서 좀 떨어져 있는 소염문과 개오파가 흑호에게 멸문당했소.”
처음 들어보는 문파였다. 나는 몸을 돌려 낭인회를 떠났다. 딱히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
흑호 토벌대가 배월시에서 출발했다.
약 300명에 달하는 낭인들이 참가한 토벌대였다. 생각보다 많은 낭인들이 참가했다.
나는 토벌대 뒤편에서 미령과 함께 걸었다.
낭인들은 정면만 보고 걸었다. 처음에는 음흉한 눈길로 미령을 보았으나, 곧 내 눈치를 보더니 내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구지검 정척. 그놈이 낭인들에게 나에 대해 뭐라고 한 게 틀림없군.’
낭인회 직원의 팔을 잘랐으니 소문도 퍼졌을 것이다.
“오랜만의 나들이라 좋네요.”
미령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나들이라…. 틀린 말은 아닌가.”
요괴 흑호.
이 토벌대의 대장이라 할 수 있는 정척은 흑호를 높이 평가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아니었다. 내가 진심을 다하면 흑호 정도야 순식간에 베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문제는….’
가는 길이 지루했다.
말을 타고 가는 게 아니라 걸어서 이동하는 거라 속도도 잘 나지 않았다. 힐끗, 옆을 쳐다본다. 나와 팔짱을 끼고 있는 미령은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콧노래를 부르며 걷고 있었다.
심심한 나는 우리 주위에 기막을 펼쳐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했다.
“어, 서방님? 기막은 왜 펼친 거죠? 제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죠? 여기서 발정 나시면 좀 곤란해요.”
“나도 알아. 보는 눈이 많으니까. 여기서 대놓고 섹스할 수는 없지.”
“흐응. 그럼… 비밀 이야기를 하자는 건가요? 좋네요. 뭘 할까요? 토벌대의 뒤통수를 칠까요?”
이 세계 주민 아니랄까 봐, 자연스럽게 뒤통수칠 생각부터 한다. 나는 살짝 가만했다.
“그건 아니야. 그냥 심심해서 이야기나 하자고. 혹시 논검이라고 알아?”
“들어는 봤어요. 직접 비무를 겨누는 대신에 입으로 무를 논하는 거죠? 술법사인 저로선 잘 모르겠지만요. 혹시 그 논검을 저랑 하자는 건 아니죠? 전 무인이 나이에요. 무공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요.”
“아니, 논색(論色)을 하자는 거야.”
“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대를 내 적수로 인정하니, 지금부터 논색을 시작하겠소. 배경이 되는 곳은 배월시의 시내요. 둥근 보름달이 뜬 한밤중이지. 우리는 밤중에 마주친 것이오.”
“자, 잠시만요. 논색이라니 그게 무슨….”
“나는 먼저 그대의 상의를 벗기도록 하겠소. 달빛을 받은 하얀 젖탱이가 출렁거리는구려.”
“아니, 잠깐. 진짜 이렇게 시작한다고요?”
“당황하고 있군. 나는 그 틈을 타서 그대의 입술을 훔치겠소.”
미령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잠깐 주위를 둘러봤다. 낭인들은 우리의 말을 듣지 못하고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을 뿐이다.
“으, 으으…. 조, 좋아요. 어울려 드릴게요. 당황한 저는 서방님의 입에 혀를 집어넣었어요. 제 혀 놀림에 서방님은 혼이 빠질 정도로 기분 좋아졌죠. 이런, 발기했네요?”
“나는 그대의 옷을 벗겼소. 오, 이럴 수가. 그대의 팬티는 애액으로 젖다 못해 오줌을 싼 것 같았소. 나는 그 젖은 팬티를 벗기고 보지에 좆을 밀어 넣었소. 그대는 절정을 느끼고 실금했지.”
“아니거든요! 안 쌌어요! 아무리 그래도 자지를 넣은 것만으로 갈 리가 없잖아요!”
“저번에 자지를 넣자마자 가지 않았소?”
“큭….”
팩트를 들이미니 미령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서방님의 자지는 오래버티지 못하고 사정했어요. 제 안이 너무 기분 좋았던 거죠. 1분도 버티지 못하고 간 것이죠. 그리고 서방님은 제게 무릎 꿇고 앉아 빌었죠. 제발 다시 삽입하게 해달라고요.”
“내가 무릎 꿇은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소. 나는 그대를 넘어뜨리고 보지를 337박자로 푹푹 찔렀소. 그대는 쾌락을 버티다 못해 실금했소.”
“실금 안 했어요! 제가 넘어진 건 서방님을 속이기 위해서였어요. 서방님은 발정 나서 제 몸에 푹 빠져 버렸죠. 서방님은 제 몸에 빠져서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가 됐어요. 저는 서방님에게 당하는 척하며 서방님을 쾌락의 늪으로 밀어 넣은 거죠. 어때요, 제가 이겼죠?”
“사실 쾌락에 빠진 건 그대였소. 내 자지에 달라붙어 아양을 떨었지. 그대는 내 자지 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소.”
“아, 아니거든요!”
미령이 발작하듯 소리쳤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녀가 아무리 우겨도 소용없었다. 논색의 승자는 내가 될 수밖에 없다. 그야 실제 섹스에서도 이기는 건 항상 나니까.
“자꾸 까불면 오늘 밤에 증명해보자고. 누가 이기는지 말이야.”
“…….”
미령이 입을 다물었다. 거부하지 않는 그녀의 눈에는 묘한 기대감이 서려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