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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7화 > 1517. 광명승천도 (1,297/2,000)

< 1517화 > 1517. 광명승천도

나는 묵지련 지부장 마호벌과 만나서 나눴던 이야기를 미령에게 말했다. 조금 걸리는 것이 있어서였다.

‘정답을 내기 어려우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면 되지.’

좀 얼간이 같아 보이는 미령이지만, 미령은 머리가 좋았다. 만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다재다능하다.

“소천마…. 그러니까 천유운이었나요? 서방님을 이용해 그 사람을 견제하려는 거네요. 이건 확신할 근거는 없는데 어쩌면 견제 이상으로 이용하려는 걸지도 모르고요.”

“견제 이상이라….”

그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수련에 들어갔다. 자동 진행이 아닌 직접 하는 수련이었다.

숲 안에 있는 결계였다.

좋은 곳은 아니었다. 이 근처에는 수련하기 좋은 땅이 없다. 예를 들면 기운이 좔좔 흐르는 땅 말이다.

‘그런 곳들은 이미 이름 있는 문파들이 죄다 선점했지.’

어쩔 수 없었다.

수련 좀 하자고 종남파에 쳐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그나마 미령이 곁에 있는 것에 감사한다. 그녀는 수련에 도움이 되는 감각술을 내게 걸어주었으니까. 감각술은 감각을 좀 더 예민하게 만들어주는 술법이다.

잡념을 털어내고 호흡에 집중한다.

감각이 한층 더 예민해진다.

살갗에 닿는 바람의 부드러운 감촉이 단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바람에 실려 떨어지는 나뭇잎이 느릿하게 떨어진다. 찰나가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집중력으로 인해 사고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었다.

이 세계에선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고수 간의 전투는 찰나에 끝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고수들의 전투는 찰나이고, 고수들의 관점에선 그 찰나가 일다경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니까.

‘경지가 너무 차이나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지. 고수와 하수는 사는 세계가 다르니까.’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

섬전도(閃電刀)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칼은 느릿했다. 내 사고가 가속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일반인의 시선으로도 아주 느릿하게, 굼벵이가 기어가는 것보다 느리게 뽑히는 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위유의 말로는 쾌(快)와 둔(鈍)은 하나라고 한다. 쾌를 깨달으면 둔을 알 수 있었고, 둔을 깨달으면 쾌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둘을 모두 깨달아야 진정한 쾌의 경지에 오른다고 한다.

‘전혀 모르겠군.’

나 정도 경지에 오르면 당연히 깨달아야 하는 무의 이치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몇 번을 고심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빠르면 빠른 거지. 왜 느려질 필요가 있는데?’

쾌는 빠르면 된다.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빠르게 칼을 휘둘러, 빠르게 적을 죽인다.

나는 그저 내 칼이 번개와 같기를 원했다.

‘그렇다고 초고수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지.’

위유는 고수 중의 고수였다.

이 세계에서 그녀에게 견줄 수 있는 자는 한 손가락에 꼽을 것이다.

‘그런 초고수가 내 스승이니 시키는 대로 해야지.’

느릿하게 칼을 휘두른다.

이게 우습게 보여도 직접 하면 상당히 힘들다. 조금만 실수해도 칼이 이리저리 튀어버리니까. 강하게 힘을 줘서 완벽하게 근육을 컨트롤해야 한다.

딱히 소득 없는 둔의 수련이 끝났다.

물론 수련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바닥에 털썩 앉았다. 인벤토리에서 영단을 꺼낸다. 저번에 흑호를 죽이고 얻은 공간함에서 나온 싸구려 영약들을 뭉쳐 만든 영단이었다.

‘이걸 먹는다고 해서 갑자기 경지가 상승하지는 않겠지.’

오기(五氣)의 경지를 넘는다. 단순히 영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가능했더라면 나는 이미 훨씬 전에 벽을 넘었을 것이다.

그래도 영약은 영약이다.

이 영역이 벽의 문턱을 조금이라도 낮출 것이라고 믿으며 복용한다.

꿀꺽.

강렬한 쓴맛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몸 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뜨거운 불길은 손끝, 발끝으로 퍼져나갔다.

뇌천결(雷天結)을 외우며 기운을 다스린다. 영약의 기운은 내 의지를 거스르지 못한다.

파직, 파지직.

전신에서 뇌기(雷氣)가 튀었다. 뇌기가 나를 중심을 회전한다. 그것은 순환이었다. 이미 완성되어버린 순환.

기의 순환은 완벽했다. 너무 완벽해서 문제였다. 경지를 넘기 위해서는 이 기의 순환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나는 일부러 순환을 건드렸다. 순환이 점점 빨라진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슈퍼카다. 일직선으로 된 도로를 달릴 때는 그 무엇보다 짜릿하지만, 코너가 생기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뇌기가 순환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순환의 형태가 일그러진다. 그 여파는 내상으로 이어졌다.

눈, 귀, 코, 입. 총 7개의 구멍에서 피가 철철 흐른다. 혈맥이 손상됐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다. 내 제어를 벗어난 뇌기를 뇌까지 잠식한다. 이러면 보통 죽거나 주화입마에 빠져 미칠 것이다.

‘절대정신이 있는 나는 미치지 않는다.’

펑!

머리가 터졌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후우.”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은 피와 뇌 조각으로 인해 질척거렸다.

‘이번에도 실패했네.’

완전 회복을 믿고 무리했다. 그러나 벽을 넘지 못했다. 벽을 넘을 실마리조차 얻지 못한 것이다.

‘몇 번 했지만, 이 방법은 답이 아니군.’

죽을 각오로 하면 성과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매번 이런 식으로 수련했다. 허나 몇 번을 죽어도 성과는 없었다.

천재의 시간을 사용해도 마찬가지다.

‘하긴 유리아도 경지를 획획 넘긴 건 아니지.’

유리아도 꾸준히 수련하고 경지에 막히기도 했다. 그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 때문에, 천재라는 말로 그녀의 노력을 폄훼하고 싶지 않다.

‘근데 유리아는 천재 맞잖아.’

일반인이 1의 노력으로 1의 성과를 얻는다면, 유리아는 1의 노력으로 10 이상의 성과를 얻는다.

‘유리아가 나였다면 벽을 뛰어넘는 데 몇 년 걸리지도 않겠지?’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수련 장소를 떠났다.

오늘 수련은 끝이었다. 수련할 맛이 나지 않았다.

***

정기 보고 시간이 왔다.

나는 배월시에서 떨어진 곳에 앉아 하늘을 쳐다봤다. 검은색 매 한 마리가 날아온다. 흑마응(黑馬鷹)이라는 하급 영물이다. 이름에 말 마(馬) 들어가는 이유는 그 몸통이 묘하게 말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흑마응은 몸을 투명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영물이었다. 지능도 높은 편이고, 귀소 본능도 있기에 천마신교는 흑마응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흑마응은 내 앞으로 날아와 바닥에 내려앉았다. 흑마응이 시니컬하게 목을 흔들었다. 목에 걸려 있던 주머니가 내게 날아왔다.

나는 의문을 느끼며 주머니를 받았다. 지금까지 6번 정도 흑마응과 만났지만, 따로 무언가를 가져온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주머니 안에는 접힌 종이가 나왔다. 종이를 펼쳐 확인한다.

[종남산 근처 삭풍귀검(朔風鬼劍) 정배가 숨어 있다. 놈을 찾아내 죽이고 머리를 주머니에 담아 보내라.]

천마신교로부터 온 임무였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삭풍귀검 정배가 누군지 전혀 모른다. 이름은커녕 별호도 들어본 적 없다.

‘별호를 보니 정파쪽 인물은 아니군.’

정파 무인의 별호에는 귀(鬼)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다.

‘사파. 혹은 신교인이다.’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파직.

작은 스파크가 일어나 종이를 태웠다. 땅바닥에 앉아 있는 흑마응은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따라와라. 당분간은 내 집에서 머물러라.”

흑마응은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

나는 묵지련의 종남산 지부장인 마호벌을 만났다.

마호벌은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어쩐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습니까? 련주께서는 아직 여유가 되지 않아 만나실 수 없습니다.”

“그거 때문이 아니다.”

“품위유지비가 더 필요하십니까?”

“그건 있었으면 좋겠군.”

“…….”

마호벌은 예상했다는 듯이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내 내게 건넸다. 돈주머니를 던졌다 잡기를 반복했다. 짤랑짤랑 울리는 소리가 듣기 좋다.

“볼일은 끝났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마호벌은 나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무표정한 얼굴로 예의를 차리고 있지만, 내 눈썰미를 속일 순 없다. 놈은 나를 확실히 싫어하고 있었다.

“잠깐. 오늘 볼일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다른 게 필요하십니까? 영약은 시간이 걸립니다.”

“신교로부터 임무가 내려왔다.”

마호벌의 기세가 바뀌었다. 다소 풀어져 있던 분위기가 차갑게 굳었다.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꼭 필요한 건 아니다. 나 혼자서도 충분하지.”

“그럼?”

“시험이다. 너희가 내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 만약, 너희가 나를 실망 시킨다면… 너희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말은 취소하겠다. 나는 무능한 것들과 함께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거든.”

노골적인 도발에도 마호벌의 반응은 없었다. 그저 담담하게 물었다.

“저희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신교에서 삭풍귀검(朔風鬼劍) 정배를 죽이라고 했다. 사흘 주지. 놈에 대한 정보를 가져와라. 놈이 어디에 있는지, 놈의 가족 관계, 놈이 익힌 무공까지.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내 칼은 너희에게 향할 거다.”

“묵지련은 정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못하겠다는 거냐?”

“하지만 그 정도 일은 손쉽게 해낼 수 있습니다. 이틀 내로 정보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마호벌은 자기가 한 말을 지켰다.

이틀만에 다시 나타나 삭풍귀검의 정배의 정보를 건넨 것이다.

놈이 현재 위치에서부터 가족 관계, 영풍검이라는 놈이 익힌 검술에 대한 정보까지.

나는 정보가 적힌 종이를 대충 훑어보고 마호벌에게 물었다.

“신교는 왜 삭풍귀검을 죽이려는 거지?”

“삭풍귀검은 강혈대의 대원이었습니다. 임무 중에 상급자를 죽이고 영단을 탈취해 도망쳤습니다.”

“얼마나 좋은 영단이었기에 하극상을 일으켰나?”

“소림의 소환단입니다.”

“그럴 만도 했군.”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영단 중 하나가 소림사의 소환단, 대환단이다. 대환단 1개 때문에 중소문파 10 곳이 멸문한 적도 있을 정도이니, 소환단으로 인해 하극상이 일어났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는 출지 8단의 무인이었으나, 소환단을 복용했을 테니 오기의 경지에 올랐을 것입니다.”

“그래봤자 오기 초입이겠지. 내 상대는 아니다.”

“삭풍귀검은 소환단을 얻기 전에도 오기 5단의 무인을 죽인 적 있습니다. 너무 만만히 여기지 마십시오.”

“놈의 무공은 대충 알겠다.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놈이 숨어 있는 장소를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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