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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9화 > 1519. 광명승천도 (1,299/2,000)

< 1519화 > 1519. 광명승천도

나와 미령은 도시 가장 위쪽에 있는 종남파로 향했다.

도시와 종남파 사이에는 3천 개의 계단이 존재했다. 심지어 돌계단은 울퉁불퉁해서 올라가기도 힘들었다.

솔직히 말해 계단을 보자마자 한숨부터 나올 정도의 수준이다. 내가 이럴진대 일반인들은 어떨까. 아마 절망을 마주한 기분일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불평 한마디 내뱉지 않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계단을 오른다.

“왜 이딴 식으로 계단을 깔아 놓은 거야? 이럴 수밖에 없었나?”

“하려고 한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겠죠. 뭐, 선민의식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요.”

“종남파는 도교 계열 아니었나? 이래도 되는 거야?”

“도교 계열이니 이러는 거예요. 의외로 도사들이 권위를 많이 챙겨요.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들을 계도 해야 한다거나….”

한숨을 내쉬며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종남파의 입구와 가까워지자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육체를 묘하게 압박하는 듯한 기운이다.

“으음?”

“기운의 농도가 짙네요. 이건 술법을 이용해 일부러 기의 농도를 높인 거예요.”

“왜?”

“신묘한 기운으로 가장하기 위해서죠.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세요. 표정부터가 딱딱하게 굳었잖아요. 일반인들에게 종남파는 특별하다는 각인을 주는 거죠.”

“간단히 말해서 사기 치고 있다는 거군.”

“이 정도는 별로 사기 측에도 안 들걸요? 다른 대문파도 하는 짓거리니까요.”

입구에는 종남파 무인이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키가 더 크고 얼굴도 잘생겼다. 일부러 잘생긴 무인을 입구에 세워둔 게 분명했다.

“여기 방명록을 작성해주시고 은 1냥을 종남파에 기금해 주십시오.”

그는 절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도 눈동자를 굴려 미령을 힐끔거린다. 저 대가리에 주먹을 휘두르고 싶은 욕구를 참으며 그에게 물었다.

“종남파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돈은 왜 받는 거요?”

“저희 종남파는 작게는 종남시의, 나아가서는 무림의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문파입니다. 지원금은 모두 무림의 평화를 위한 활동 자금으로 쓰입니다.”

아주 거창하게 말했다.

내가 볼 때는 그냥 최소한의 이득이라도 보려고 하는 발악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군. 대단하시오.”

미령의 몫까지 합쳐 은 2냥을 그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방명록은 제가 대신 써드리겠습니다. 원래는 본인이 쓰는 게 원칙입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조선제일검 대협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런 거라도 해드리고 싶군요.”

“나를 알고 있소?”

“어찌 모르겠습니까. 조선제일검 대협의 명성은 종남파 내에서도 자자합니다.”

“그렇군. 내가 종남의천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그러는데 뭘 해야 하오?”

“일단 붉은 줄이 처져 있는 곳이 있습니다. 외부인에겐 허락되지 않은 곳이니 최대한 피해주십시오. 그곳을 제외하고 얼마든지 돌아다니셔도 좋습니다. 서쪽 건물에는 종남파가 특별히 준비한 특산 요리들을 판매하고 있으니 꼭 들러보십시오. 제사는 중앙 대제단에서 두 시진에 한 번씩 진행됩니다. 그리고….”

그가 쏟아내듯이 말했다.

‘제사가 아니라 작은 행사 같은 느낌이군.’

방명록을 작성하고 종남파 안으로 들어간다. 미령도 본명이 아닌 가명을 썼다. 나와 그녀는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아, 뭐야. 생각보다 볼 게 없네요.”

“이 시대에서 뭘 기대한 거야?”

“고등학교 축제 수준은 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것도 아니네요.”

미령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볼에 바람을 집어넣었다. 일종의 애교였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싶지만, 미색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무슨 짓을 해도 귀엽게 느껴졌다.

“종남파의 구조는 파악했어?”

“아마 저기가 서고, 저쪽이 연단실 일 거예요. 연단실 근처에 창고가 있겠죠. 숨겨져 있어서 자세한 위치는 모르겠네요.”

“직접 움직이면서 찾아야 한다는 건가. 소란을 피우면 안 되겠지?”

“서방님 이상의 강자가 못해도 3명 이상은 있을 거예요.”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면 어떻게든 되겠지.”

슬쩍 주위를 둘러본다. 종남파인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짝 긴장한 첫날부터 정신없어 보이니 내일이나 모레가 되면 경계가 더 풀릴 것이다.

‘어려운 일이 아니야. 그냥 가서 술법서랑 영단들을 슬쩍해오면 돼. 법기 같은 것도 있으면 더 좋을 테고.’

미령이 어느 한 곳을 빤히 쳐다봤다. 나는 가만히 기다렸다. 그녀가 아무 이유 없이 어느 한 곳만 보고 있을 리 없었다.

한동안 그곳만을 쳐다보던 미령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뭔가 있어?”

“결계로 숨겨진 공간이 있어요.”

“보물 창고?”

“그런 느낌은 아니에요. 위험한 걸 봉인해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저쪽으로는 최대한 가지 않는 게 좋아요.”

“알았어. 기억해둘게.”

땡땡땡.

종소리가 났다. 종남파 무인이 커다란 종을 치며 주변에 소리치고 있었다.

“곧 종남의천제를 시작합니다! 제사에 참석하여 선업을 쌓으십시오!”

나는 피식 웃었다.

“제사에 참석하면 선업이 쌓이나 보네.”

“그랬으면 모든 사람들이 매일매일 제사했겠죠.”

“모처럼이니 구경이나 해볼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실망할 테니까요.”

미령의 말은 옳았다.

나는 제사라고 해서 꽤 거창한 걸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제사장으로 보이는 술법사가 제단 앞에서 도교 경전을 읽고 술법으로 불꽃을 일으키고는 끝이었다.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절을 하고 끝.

제사가 시작되고 끝나기까지 15분밖에 안 걸렸다.

하다못해 소나 돼지를 잡을 줄 알았는데 고작해야 불을 피우고 끝이라니.

“이래도 되는 거야?”

“상관없어요. 이런 의식은 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니까요.”

“도교의 의식은 좀 더 신성스러울거라고 생각했다만….”

“이 세상에는 신선이 존재해요. 선계에 있죠. 하지만 제사 좀 지낸다고 해서 신선이 답이 내려올 일은 없어요. 기본적으로 선계와 중간계는 서로 간섭하지 않으니까요. 종남파도 그걸 알고 있기에 대충 제사를 진행하는 거죠.”

“시시하군.”

“원래 이 세계는 시시해요. 자, 돌아가서 대책을 짜요. 결계는 깊게 분석하지 않아도 될 것 같으니 시간과 동선을 짜면….”

콰아아아아아아앙!

폭음이 울렸다.

나와 미령은 대화를 멈추고 폭음이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입구. 좀 더 정확하게는 종남시가 있는 곳이다. 하늘을 쳐다보니 도시 쪽에서 검은색 연기 6줄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와 미령은 서로를 쳐다봤다. 우리는 똑같이 직감했다.

‘변수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 변수 때문에 우리의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갑자기 도시에서 일어난 테러. 우연이라 보는 건 어렵겠죠?”

“종남파와 원수 진 곳이 있던가?”

“마교?”

“천마신교는 아니야. 일을 벌이더라도 이런 식으로 할 리 없지.”

“자세히는 몰라도 원수진 곳은 있겠죠. 수천 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문파니까요. 중요한 건 우리가 여기서 어떻게 하냐는 거죠.”

“계획대로 진행하면 안 되나?”

“종남파가 멍청이도 아니고 종남의천제를 그대로 진행하겠어요? 그리고 한 번 습격 받은 이상 종남파의 경계도는 더 올라가겠죠.”

“아예 포기하거나, 지금 바로 계획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군.”

“어쩔래요?”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포기할 수는 없지.”

“좋아요. 일단 종남파 밖으로 나가요.”

“나가자고? 기껏 들어와 있는데?”

“결계가 가동됐어요. 여기서 무언가를 했다간 바로 들킬 거예요. 차라리 밖에서 시작하는 편이 좋아요.”

“알았어.”

우린 밖으로 나갔다. 종남파 무인들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혼비백산하여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일단 그들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막기 시작했다.

“진정하십시오! 이곳은 종남파입니다!”

“침착하게 오른쪽 연무장으로 모여주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사건을 해결하겠습니다!”

소리 지르는 무인들을 피해 숲속으로 들어갔다. 불타는 도시가 보였다. 미령은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요괴들이 난동을 피우고 있어요. 제법 강한 요괴들이 섞여 있네요.”

“요괴들이 오늘 갑자기 종남시를 습격했다라… 우연은 절대 아니겠지.”

“시선을 끌기 위한 거겠죠. 종남파는 종남의천제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니 한쪽 발에 족쇄를 찬 꼴이죠. 종남파를 상대로 시선을 끌기에는 최적인 타이밍이에요.”

“진짜는 다른 걸 노리는 건가.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빨리하자.”

미령은 내게 부적을 건넸다. 모습과 기척을 숨기는 은신부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른 부적 2장을 만들어 내게 건넸다.

“이 부적을 가지고 있으면 종남파의 결계를 통과할 수 있고, 이 부적은 술법을 확인하는 부적이에요. 의심스러운 곳에 부족을 갖다 대면 술법을 감지하고 반응하죠. 더 필요한 부적 있으세요?”

“이거면 충분해. 넌 뭐 할 거야?”

미령이 조용히 웃는다. 차디찬 미소다. 평소에 보이는 푼수 같은 웃음이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악당 간부 같은 미소다.

“도시의 혼란을 부추길게요. 종남파가 좀 더 정신이 없도록. 종남파는 제가 아니라 요괴의 짓이라 생각하겠죠.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잘됐다고 할 수 있겠네요. 후후.”

“적당히 해. 적당히.”

“네에.”

미령의 미덥지 않은 대답을 뒤로하고 은신부를 사용하며 종남파에 침입했따.

***

우선 가까운 곳에 있는 연단실로 향했다.

우우웅.

미령이 준 부적이 빛났다. 나는 갈라진 결계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연단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나는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약초 특유의 씁쓸한 냄새가 났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영약들이 보였다.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군. 돈만 있으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영약들. 가지고 있으면 언젠간 도움이 되겠지. 돈으로 바꿀 수도 있을 테고.’

영약들을 모두 챙겨 공간함에 넣었다. 연단을 위한 솥이나 장비가 보였다. 그 옆에 연단술이 적혀 있는 책도 있었다.

‘이런 것도 돈이 되지. 챙기자.’

일단 챙긴다. 무조건 챙기는 게 이득이었다.

‘완성된 영단이나 희귀한 영약들은 어디에 있지? 구파일방으로 불리는 종남파이니 분명 엄청난 걸 가지고 있을 거야.’

창고를 찾아야 했다. 희귀한 영단과 영약을 보관하는 창고를.

연단실 내부를 돌아다녔다. 상당히 넓었는데 통로 끝에 있는 문을 발견했다. 바로 문을 향해 손을 뻗는다. 철컥철컥. 문은 잠겨 있었다. 문을 부수려다가 멈칫했다.

‘여긴 종남파다. 문에 무슨 짓을 해놓아도 이상하지 않아.’

술법을 걸어뒀을 수도 있었다.

미령이 준 부적을 꺼냈다. 술법을 감지하는 부적이다. 문에 갖다 댔는데도 어떤 반응도 없었다.

‘내가 너무 예민했나?’

문을 박살내려다가 멈칫했다.

‘철컥철컥 소리가 났지? 문고리가 있는 문이라고?’

문을 빤히 바라봤다. 강철 문은 현대의 문과 비슷했다. 이 시대의 문명 수준과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다.

‘기관진식(機關陣式)이군.’

무협 세계의 오버 테크놀로지다. 이런 건 함부로 대했다간 변을 당하게 분명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뇌기를 일으켰다.

파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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