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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2화 > 1522. 광명승천도 (1,302/2,000)

< 1522화 > 1522. 광명승천도

천마신공(天魔神功) 흑염마룡(黑炎魔龍).

화르륵!

검은 불꽃이 칼날에 맺혔다.

오영검 송직의 얼굴이 굳어졌다. 삼정의 경지에 오른 절대고수인 그가 긴장해야 할 정도로 흑염은 위협적이라는 뜻이다.

‘당연하지. 다른 무공도 아닌 천마신공이니까.’

순수 위력만 따지면 뇌천류보다 천마신공이 위다. 천마신공이라면 상대가 나보다 경지가 높더라도 감당할 수 있다.

송직에게 접근하며 검을 휘두른다. 화르륵. 흑염이 흔들리는 소리가 살벌했다.

“사악하다! 어찌 이렇게 사악한 불꽃이 존재할 수 있는가…! 그야말로 마로구나!”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흑탄(天魔黑彈).

손가락 끝에서 천마기가 총알처럼 쏘아졌다. 송직이 전신에 힘을 주었다. 그의 근육이 한 차례 꿈틀거리더니 호신강기가 발현된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단순한 호신강기가 아니었다.

‘주변에 압박했군. 호신강기를 방어만이 아니라 공격용으로도 사용한 건가.’

다시 앞으로 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호신강기에 흑염이 달라붙으며 타오른다. 송직은 검을 쥐지 않은 손의 중지와 검지를 세웠다. 검결지라고 부르는 수인이었다. 그가 검결지를 옆으로 눕혔다. 그 순간, 호신강기가 회전한다. 호신강기에 달라붙어 타오르던 흑염이 버티지 못하고 소멸했다.

“그 어떤 불꽃이라도 종남의 의개를 태우지 못 하리라!”

“개소리하고 자빠졌군.”

정말 흑염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구태여 호신강기를 회전시켜 흑염을 없애지 않았을 것이다. 흑염은 놈에게도 위험한 게 확실했다.

나는 활활 타오르는 칼을 연속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송직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방어한다.

합이 이어질수록 초조해지는 건 나였다. 시간이 오래 끌리면 내가 불리하다. 종남파의 증원군이 언제 올지 모른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검(天魔劍) 구중삼살(九中三殺).

천마군림보를 밟으며 기술을 연계한다. 세 개의 찌르기가 동시에 송직의 급소들을 노린다. 송직은 두 눈을 부릅뜨더니 검결지와 검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세 개의 찌르기가 튕겨 나간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송직을 노려봤다. 송직의 주위에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있다.

“…무형검?”

“보였는가. 기본은 되는군.”

“단순히 기로 만든 검일 뿐이군.”

“그렇다. 진짜 무형검과 심검의 경지에 이른 분들과 비교하면 부끄러울 지경이지. 허나, 이 검에도 종남의 무리가 들어있으니. 네놈 따위가 무시할 수 있는 검이 아니다.”

“무형검이든 뭐든 전부 부수고 네 목도 꺾어주마.”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찰나를 이용해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다. 송직의 눈동자가 약간 흔들렸으나, 곧바로 침착함을 되찾으며 대응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검(天魔劍) 마풍(魔風).

칼에서 검은 바람이 일어난다.

방어를 계속 고집하겠다면, 그 방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난잡하게 공격하면 된다.

카카카카카카카카!

공격이 막혔다. 보이지 않는 두 개의 검과 놈이 손에 쥔 검 한 자루에 검은 바람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밀려난다.

‘이게 끝이 아니다.’

검은 바람과 검은 불꽃이 일어난다. 검은 불꽃은 장벽이 되어 송직을 덮쳤다.

“종남의 검은 태산보다 무거우니, 하늘마저 감당하지 못한다.”

송직이 검을 휘두른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반격을 준비하기 위해 찰나를 사용했다.

느려진 세계에서 송직의 검이 또렷이 보였다. 검의 아래위로 희끄무레한 것이 보인다. 무형검이다. 무형검이 송직의 검과 합쳐지고 있었다. 합쳐진 검은 무거워지고 검신 주변의 공간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진다.

아주 미세한 공간의 일그러짐이다. 검에 닿아 일그러지는 흑염이 없었더라면 나도 파악하지 못했을 거다.

사라지는 흑염 속에서 송직의 얼굴이 보인다.

자신만만한 얼굴이다. 자기가 질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얼굴.

놈은 내가 자신보다 경지가 낮다는 것을 벌써 파악한 것이다.

‘마음에 안 드는군.’

나는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전진했다. 반격의 틈은 없었다. 죽음으로 향한 전진이었다.

‘한 번 정도는 죽어주지. 하지만 그 대가로 너도 죽어야 할 거다.’

칼을 내지른다. 송직의 검과 부딪혔다. 공간의 일그러짐은 내 칼에도 적용되었다.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쉽게 내 칼이 부서진다. 나는 부서진 칼의 자루를 꽉 쥐고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송직의 눈이 커진다. 내가 물러서지 않은 것에 놀란 모양이다. 그의 눈동자에 다급함이 서렸다.

송직의 검이 내 옆구리에 벤다. 피가 튀고 내장이 갈리는 느낌이다.

부러진 칼이 송직의 가슴팍에 닿았다.

캉.

살이 뚫는 소리가 아니라 철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허리가 반쯤 베인 나는 고통을 참다못해 얼굴을 구기며 송직을 노려봤다.

송직은 승리의 웃음을 지었다.

“정수신갑(靜守身鉀)이란 법기다. 한치도 되지 않는 두께이나 그 어떤 갑옷보다 단단한 법기이지. 그 수준은 보다시피 강기도 견딜 정도이니라. 마여, 네 동귀어진은 아무 의미 없었노라.”

갑옷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강기를 막거나 튕겨내는 게 아니라 흡수하고 있다. 단순히 막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강기를 흡수해 반격하는 기능도 있을 것 같았다.

“이깟 갑옷 따위….”

하반신이 잘리는 것을 느끼며 왼손으로 송직의 어깨를 잡았다. 송직은 날 밀쳐내지 않았다. 담담하게 내 하반신을 끊는 작업을 이어간다. 놈은 자신의 갑옷을 믿고 있었다.

후두두둑.

잘린 하반신에서 내장이 쏟아진다. 나는 송직의 어깨를 잡은 손만으로 상반신을 버티며, 오른손에 쥔 칼을 버리고 놈의 갑옷을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뇌천류(雷天流).

두 개의 무공을 동시에 사용했다. 원래 이럴 작정은 아니었다. 죽어가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천마신공을 사용하는 와중에 가장 익숙한 무공인 뇌천류도 사용했다.

파지지직.

뇌전이 튀었다.

검은색 번개였다.

검은색 뇌전은 송직의 갑옷에 스며들었다. 꿈틀대던 갑옷이 멈추더니 찢겨나간다. 나는 점점 빠져나가는 힘을 정신력으로 버티며 모든 마기를 손바닥에 집중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신장(天魔神掌).

“네이놈…! 무슨 짓을!”

송직이 나를 밀쳐내려고 했다. 그러나 늦었다. 천마신장은 놈의 심장을 타격했다.

콰아아앙!

송직이 입고 있던 갑옷이 불현듯 부풀어 오르더니 폭발했다. 나와 송직은 그 폭발에 휘말려 죽었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폭발의 여파가 사라지고 완전 회복을 사용했다.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잘린 내 하반신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내 시체를 보는 것도 이젠 아무렇지 않았군. 처음에는 그대로 찝찝했었는데.’

천병을 쥐고 숲속으로 몸을 던졌다.

추격자는 없었다.

***

묵지련 종남파 지부장을 처음 만난 낡은 객잔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반 시진 정도 지나자 묵지련주 나찰녀가 들어왔다. 나는 그녀의 왼팔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혜일진인은 어떻게 됐지?”

“보통이 아니더라. 좀 고생 했지만 내가 이겼어. 지금쯤 삼도천을 건너고 있겠지. 왼팔을 내줘야 했지만… 이 정도면 싼값이야. 팔이야 어차피 복구할 방법이 있으니까.”

나찰녀는 내 맞은편 의자를 빼더니 털썩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는 내 뒤에 있는 천병을 확인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천병을 무사히 손에 넣었네? 천병은 내가 가져갈게.”

“내겐 필요 없는 물건이니 상관없다만… 어디에 쓸 거지?”

“쓸곳은 많아. 가장 많이 사용될 곳은 역시 섭취겠지. 역마신공을 수련할 때 인육 따위를 섭취하는 것 보다 훨씬 효과가 좋을 거야.”

나는 그녀를 보다가 물었다.

“앞으로는 어쩔 거지?”

“원래 계획으로는 잠수할 생각이었어. 종남파 지부도 정리하고 몇 년 동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려고 했어.”

“계획이 바뀌었나?”

“지금 종남파는 난리도 아니야. 종남시를 수습하던 종남파 무인 600명이 죽었고, 장로의 절반 이상이 죽었어. 내 부하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유능했던 모양이야.”

그건 아마도 미령의 개입 때문일 것이다. 삼정에 이른 술법사가 혼란을 부추겼으니 종남파의 피해가 더 커지는 건 당연했다.

나찰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거기에 내가 태상문주인 혜일진인을 죽였지. 문제는 종남파의 장문인인 오영검 송직까지 죽었다는 거야. 네가 죽였지?”

나찰녀는 내가 장문인을 죽였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중요인물이 많이 죽었군. 종남파가 흔들리겠어.”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야. 지금 종남파와 종남시에서는 마교의 습격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어. 심지어 마기를 느낀 자들도 한둘이 아니야. 천마가 쳐들어왔다는 말도 있어. 상황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해. 그러니 솔직히 말해줘. 마공을 익혔어?”

나는 말없이 손을 들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수라(天魔修羅).

손에서 검은 강기가 불꽃처럼 일어난다.

나찰녀가 눈이 커졌다.

“…천마신공! 아, 아니. 자세히 보니 비슷하면서도 다르네. 왜 사람들이 천마가 왔다는 말을 내뱉는지 알겠어. 이 농도 짙은 마기라면 천마의 마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

나찰녀가 웃는다. 입술뿐만이 아니라 눈까지 파르르 떨린다. 지금 이 상황이 즐거워 미치겠다는 듯한 반응이다.

“정체를 감추기 위해 마공을 사용했다. 그게 문제가 되나?”

“네 정체가 들킬 일은 없겠지만, 무림맹에서 파견된 부대는 다르게 생각할걸. 마교가 습격했다는 걸 거의 확신할 거야. 그런데 종남파는 구파일방의 일원이네? 무림맹에 있는 종남파인들이 날뛸 테고… 무림맹은 가만히 있지 않겠지.”

무림맹은 우선 천마신교에 항의할 것이다. 그러나 천마신교는 발뺌할 것이다. 자기들이 저지른 짓이 아니니 당연했다. 무림맹이 그 말을 믿을 것 같지도 않다.

나는 나찰녀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있었다.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무림맹과 천마신교 간의 전쟁이.

황가는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무림의 대형 세력이 자기들끼리 싸워 힘을 빼려고 한다. 황가는 그저 지켜만 봐도 이득이다.

“…심각한 상황과 별개로 넌 즐거워 보이는군.”

“그야 당연하지. 그 새끼를 죽일 기회가 더 빨리 찾아온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너도 준비해둬. 그날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올 거야.”

나찰녀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벌써 일어나나?”

“해야 할 일이 있어. 일이 이렇게 됐으니 입단속을 해야지. 도시를 습격한 요괴들은 자세한 사정은 모르니 상관없지만… 이 일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는 놈이 있거든.”

“마호벌?”

나찰녀가 빙긋 웃었다.

“걘 똑똑하고 가진 무력도 제법 쓸만하지만, 가끔 주제를 잊고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으려는 게 마음에 안 들어. 이참에 정리해두려고.”

“내가 해도 되나? 그놈은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그 정도는 괜찮아.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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