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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3화 > 1523. 광명승천도 (1,303/2,000)

< 1523화 > 1523. 광명승천도

묵지련 종남산 지부는 종남시 아래에 있었다.

지하 땅굴을 파고 그곳을 지부로 이용한 것이다. 땅굴이란 점을 제외하면 꽤 쾌적했다. 술법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한 모양이다.

나는 땅굴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종남파 바로 아래에 땅굴을 팔 생각을 하다니… 간도 크군.”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잖아? 사람은 어중간히 멀리 있는 건 잘 보지만, 정작 자기 코앞에 있는 건 못 보는 경우가 많아. 종남 지부를 만든 지 3년이 넘어가는데 들키지도 않았어.”

“여긴 어떤 결계가 있는 거지? 결계 특유의 이질감이 없군.”

“결계? 없어.”

“뭐?”

믿지 못해 되물었다.

어느 정도 세력을 갖춘 곳은 결계가 필수였다. 결계를 설치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점으로는 방어가 수월해진다.

“종남파보다 뛰어난 결계를 설치할 게 아니면 차라리 결계가 없는 편이 좋아.”

반박할 수 없었다. 실제로 종남파는 이 땅굴의 존재를 모르고 있으니까.

땅굴 깊숙이 들어갔다.

사람과 요괴가 있었다. 아이러니한 장면이었다. 사람과 요괴는 기본적으로 서로를 적대하니까.

“너희는 누구냐?!”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온… 커억!”

나찰녀는 하나밖에 없는 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검풍이 일어나며 사람과 요괴를 휩쓴다. 핏물이 새까만 동굴 벽을 칠했다.

“묵지련 아니었나? 너를 모르는군.”

“묵지련에서도 내 모습을 알고 있는 놈은 적어. 지부장급을 포함해서 20명도 되지 않을걸?”

“이놈들을 죽이는 건 역시 입막음인가?”

“살인멸구만큼 확실한 건 없어.”

“원래 이럴 생각으로 계획을 짰나?”

“설마. 종남 지부에 투자한 게 얼마인데 그러겠어? 상황이 더 심각해졌으니 정리해두려는 거야. 우리가 깔끔하게 빠져줘야 무림맹과 천마신교가 거리낌 없이 치고받고 싸울 테니까.”

끝방에 도착했다.

마호벌이 있었다.

그도 정상이 아니었다. 종남시에서 날뛰었는지 몸에 자잘한 상처가 많았다. 그의 양다리는 벌레의 다리처럼 생겼으며, 두 눈은 곤충의 겹눈으로 변해 있었다.

“련주님… 왜 이러십니까? 제가 뭔가 잘못했습니까?”

마호벌은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싸울 수 있도록 몸을 긴장시키고 있다.

나찰녀는 그런 마호벌을 보다가 뒤로 물러났다. 마호벌에게 겁을 먹어서가 아니다. 도망칠 수 없도록 출입구를 막은 것이다.

“넌 잘해줬어. 가끔 짜증 나게 굴긴 했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지.”

“…그러면 왜 저를 숙청하려는 겁니까? 전 련주님에게 충성을 바쳐왔고, 앞으로 충성을 바칠 것입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그게 문제야. 넌 분명 능력도 있고 충성심도 있어. 하지만 이상하게도… 믿음이 안 간단 말이지.”

“그런 억지 같은 이유로 저를 버리십니까?!”

“억지? 난 논리보다 직감을 더 우선시 여겨. 이 직감이 나를 몇 번이나 위기에서 구해줬거든.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날 구해주겠지. 마호벌. 그동안 수고했어. 여기서 죽어줘.”

“이 빌어먹을 년이…! 충성의 대가가 고작 이따위 것이라니! 네년이 아니라 그를 따라야 했었다!”

“천유운. 그 놈이 널 믿었을까? 절대 안 믿는다에 내 손모가지를 걸 수 있어.”

마호벌의 등에서 날개가 튀어나왔다. 잠자리 날개와 닮은, 속이 비치는 비닐 같은 날개다. 마호벌은 무릎과 허리를 약간 굽히더니 그대로 앞으로 쏜살같이 뛰었다. 전투는 포기하고 이 동굴에서 벗어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나찰녀와 싸워 이길 자신이 없을 테니.

‘날 너무 무시하는군.’

찰나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놈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긴 힘들어도, 놈이 갈 방향은 정면밖에 없으니까.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용수(天魔龍手).

내 옆을 지나치려는 마호벌의 목을 움켜쥔다.

“케엑?!”

붙잡힌 마호벌이 날개를 퍼덕거렸다. 날개에서 미세한 가루 같은 게 흩날린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회천마룡(回天魔龍).

움켜쥔 손에서 회전력이 마호벌에게 전달된다. 마호벌의 회전하며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마호벌은 내력을 끌어올려 회전력에 대응했다.

하다 보니 오기가 생겼다. 나는 모든 마기를 쏟아 부어 회전력으로 밀어 넣었다.

까드드드득.

마호벌의 몸이 조금씩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곤충처럼 딱딱해진 피부에서 피가 튄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마호벌이 팔과 다리를 움직여 전력을 다해 나를 공격했다.

그러나 마호벌의 공격은 내 호신강기를 뚫지 못했다.

“생각보다 더 약해 빠졌군.”

“크으으으으.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너 따위는…!”

마호벌의 육체가 불끈거리기 시작했다. 그 크기가 갑작스레 커진다. 날벌레 같은 모습에서 쇠똥구리처럼 육중한 벌레의 형태로.

나는 놈이 완전히 변화를 끝내기 전에 놈의 대가리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놈이 뒤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힌다.

꾸드득, 꾸득!

놈의 육체가 빠르게 부풀어 오른다. 마호벌의 시선은 내가 아닌 천장으로 향했다.

‘싸울 생각이 없다. 이놈은 도망칠 생각만 가득하다. 뒤에 있는 나찰녀 때문이겠지.’

지루함을 느꼈다. 몇 시간 전에 상대했던 송직과의 전부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놈에게 다가가 손바닥으로 마호벌의 몸을 짚었다. 마호벌이 6개의 다리를 활짝 벌리며 내 몸을 붙잡으려고 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회천침정(回天浸精).

압축된 마기가 마호벌의 몸에 파고들었다. 파고든 천마기는 회전하며 놈의 내부를 완전히 박살 냈다. 마호벌은 아까처럼 내력으로 대응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마호벌은 자기 자신의 몸을 너무 믿었다.

“이대로…! 이대로 의미 없이 죽을 순 없다!”

마호벌의 오른쪽 눈알이 팍 튀어나왔다. 눈알의 뒤는 애벌레처럼 길쭉했다. 그것은 내 눈알을 노렸고, 나는 찰나를 사용해 눈알을 낚아챘다.

손아귀에 잡힌 그것은 기분 나쁘게 꿈틀거렸다.

“키에에엑! 키에엑!”

“설마 이게 본체였나? 징그럽군.”

손에 힘을 줬다. 벌레가 터지며 체액이 후두둑 떨어졌다. 나는 허공에 손을 털었다.

나찰녀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수고했어. 여기 있는 자료들 전부 치우고 도망가면 돼.”

“종남파에 붙잡힌 놈들도 있을 텐데. 그놈들은 어쩔 셈이지?”

“그놈들은 괜찮아. 영약을 미끼로 끌어들인 놈들이라 묵지련에 대해 전혀 모르거든.”

***

저 멀리서 흑마응이 날아온다. 매의 얼굴과 말의 몸통. 다시 봐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흑마응은 내 앞에 내려서서 목에 찬 주머니를 내게 던졌다. 나는 주머니를 열어 천마신교의 전서를 확인했다.

[종남파에 변고가 일어났다고 들었다. 종남파의 변고를 조사하고 귀환하라.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조사는 포기하고 귀환에 집중하라. 귀환하기 전 기장사 황소동을 포섭하여 함께 귀환해라. 포섭이 불가능하다면 처리하라.]

지금 천마신교는 미친 듯이 바쁠 것이다. 일주일 전에 무림맹이 천마신교에 공식적인 비난을 퍼부었고, 천마신교는 그런 무림맹을 비난했다는 소문이 강호 전역에 떠돌고 있었다. 전쟁이 촉박했다.

‘소문에는 묵지련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다. 이번 일은 마교가 요괴를 부려서 습격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지.’

정파는 마교에 대한 반발심이 엄청나다. 마교놈들이라면 요괴와 손을 잡아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선 그동안 미령과 함께 지냈던 집에 불을 질렀다. 시뻘건 화염이 집을 장작삼아 타오른다.

“…….”

커다란 모닥불을 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불꽃을 멍하니 쳐다보며 추억을 상기했다. 미령과 함께 지내며 섹스를 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섹스 말고는 별 기억도 없군.’

나와 미령은 이곳에 오래 지내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낙월산에 있는 위유의 집에서 지냈다. 그쪽이 더 익숙하고 편하기 때문이다.

‘미령은 술법 연구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나는 최대한 빨리 천마신교로 돌아가야 한다. 앞으로 바빠질 것이다.

황소동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황소동은 나를 보자마자 마른침을 삼켰다.

“오셨습니까. 그, 돌아가는 상황을 들었습니다.”

황소동을 빤히 쳐다봤다. 그의 주위로 보따리 여러 개가 보였다. 그 뒤에는 그의 식솔들이 긴장한 채로 서 있었다.

“짐을 싸고 있었나?”

“천마신교로 가겠습니다.”

“왜지?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길 떠나지 않는 거 아니었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천마신교가 지원이 있으면 좀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갈 수 있으리라 판단했습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말한다. 그는 머리가 좋았다. 상황이 바뀌며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나는 그를 보며 웃었다.

그를 마교로 데려가는 게 내 임무지만, 나는 그를 마교로 데려갈 생각이 없었다. 훗날에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이놈을 믿을 수 없어. 나찰녀가 자기 부하를 죽인 것처럼 깔끔히 정리한다.’

칼자루에 손이 갔다.

당황한 황소동과 식솔들이 도망치려고 한다.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푸른 섬광이 그들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2초.

지독한 침묵 끝에 그들의 몸이 무너지며 사방에 피가 튀었다. 나는 칼을 납도 하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챙길 건 챙긴 뒤에 불을 질러 시체도 전부 없애야겠군.’

***

나는 천마신교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자동 진행을 쓰면서 중간중간 낙월산에서 휴식을 취했다. 천강성 시스템의 기능 중 하나인 공간 전이 시스템이 있기에 공간 이동 주문서를 소비하지 않고도 편하게 낙월산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낙월산의 저택은 조용했다.

남궁린은 폐관 수련. 남궁설은 자기 관조에 빠져 폐관 수련이나 다를바 없는 상태였다.

위유는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남궁설을 보며 말했다.

“설이에겐 아주 중요한 수련이다. 심상을 만드는 수련이라 할 수 있지. 어떤 심상을 만드느냐에 따라 공령신공(空靈神功)의 바탕이 결정될 것이다.”

“심상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공령신공은 다른 무공보다 특히나 더 심상의 영향을 받는다.”

“스승님의 심상이 궁금하군요.”

“내 심상의 중심은 달이었다. 내가 낙월신녀라 불리는 이유도 달과 관련이 있다.”

“설이는 언제 깨어납니까?”

“심상이 완성되면 깨어나겠지. 아마 제법 걸릴 거다.”

잠들어 있는 남궁설을 조용히 내려다봤다. 그녀를 쓰다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괜히 남궁설의 몸을 만졌다가 수련을 방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와 위유는 방에서 나왔다.

“미령은요?”

“여우는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다. 술법 연구에 푹 빠진 거지. 여우에게 시킬 게 있느냐?”

“아뇨,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지금 이 저택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건 나와 위유뿐이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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