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4화 > 1524. 광명승천도
위유는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TV를 켰다. 20년은 지난 것 같은 옛날 드라마가 재생된다. 위유는 다리를 꼬고 손으로는 턱을 괸 채로 무심한 표정으로 드라마를 봤다.
나는 그녀의 옆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너도 수련에 집중해야 하지 않느냐? 폐관 수련이 답이 될 수는 없으나, 아무 생각 없이 수련에 집중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그러기엔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바빠질 것 같고요.”
“흥. 속세에 너무 빠져들지 말거라. 네게 닿은 인연이 족쇄가 될 수도 있다.”
“그 정도 족쇄는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짜악!
TV 화면 속의 여주인공이 악녀에게 싸대기를 맞았다. 여주인공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악녀를 쳐다봤다.
옛날 느낌이 물씬 났다. 요즘이었다면 마냥 당하지 않고 싸대기를 날렸겠지.
“이거 막장 드라마입니까?”
“굳이 따지자면 그렇지. 지금 싸대기를 날린 여자가 주인공이다. 저 가증스러운 계집에게 연인을 빼앗겼지.”
악녀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주인공이었던 모양이다.
“네가 가져온 무공들을 읽어 봤다. 대부분 쓰레기던데 몇 개는 쓸만하더구나.”
“종남파의 비급은 없었습니까?”
“없었다. 애초에 중요한 무공은 서고 같은 곳에 두지 않는다.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곳에 넣어두지.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네게는 맞지 않는다. 뇌천류. 그리고 천마신공. 너는 그것들을 익히는 데 집중하거라. 그 두 무공은 천재가 평생을 바쳐도 부족함이 없는 무공들이니.”
“딱히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서고를 턴 것은 술법서를 구하기 위해서다. 이제 와서 새로운 무공을 익혀봤자 잡스러워질 뿐이다.
“그래도 챙겨온 영약들은 쓸만하더구나. 그중에 지금 네게 가장 필요한 연정단(連頂丹)도 있더군.”
“당연히 있어야죠. 그 짓을 벌인 이유가 그것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연정단. 삼정의 경지에 오를 때 도움을 주는 영단이었다.
“언제 시도할 셈이냐?”
경지 상승.
시도라면 지금 당장에라도 할 수 있었다. 완전 회복이 있으니 실패 시에 주화입마는 전혀 두렵지 않다.
그러나 성공할 확신이 없었다. 영단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경지에 오르려면 깨달음의 실마리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 실마리가 없다.
“…뭔가.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스승님은 삼정의 경지에 오르실 때 어땠습니까?”
“그때의 나는… 내 부덕을 깨달았다. 심상이 흔들렸지. 자칫 잘못하면 주화입마가 찾아올 뻔했다.”
“그렇습니까?”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군. 깨달음은 사람마다 다른 법이다. 말해준다고 해서 깨달을 리도 없고, 내 깨달음이 네게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내 경험에는 신경 쓰지 말거라. 너는 지금도 잘하고 있으니. 설령 앞으로 50년 동안 벽을 넘지 못하더라도 너는 늦은 게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50년까지 걸릴까요?”
“후후. 그건 모르는 일이지.”
나는 위유의 옆에 앉았다. 지금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스승님은 낙월산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십니까?”
위유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만, 내가 낙워산을 벗어나서 뭘 하겠느냐.”
“하산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안 하시는 겁니까?”
“흐음. 굳이 말하자면 둘 다겠지.”
“저번에 하산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남궁세가에도 가시지 않았습니까?”
“가까운 곳은 빠르게 갔다 오면 된다. 시간이 걸릴수록 부담이 늘어나지만… 뭐, 심각한 건 아니다.”
“대체 뭐가 스승님을 속박하고 있는 겁니까?”
“…….”
위유는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무감정한 눈길로 드라마를 쳐다본다. 여기까지였다. 내가 뭐라고 해도 위유는 대답하지 않겠지.
“스승님. 저녁은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네가 준비해야지 않겠느냐?”
“전 요리 못합니다. 기껏해야 라면 몇 개 끓이는 수준입니다. 오랜만에 스승님이 해주신 요리를 먹고 싶습니다.”
위유는 요리를 제법 한다. 자취 경력만 천년이 넘으니 요리를 못할 수가 없다.
“귀찮다. 다른 세계에서 가져오거라. 저번에 가져온 도시락은 놀랍도록 맛있더구나.”
유리아가 만들어준 도시락을 말하는 모양이다.
***
저녁 식사 후, 나는 창문 밖의 하늘을 보며 고민에 잠겼다.
위유를 따먹고 싶다.
덮치는 건 불가능했다. 위유는 나보다 강하다.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일격에 나를 죽일 수 있다. 강간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고는 생각하지만….’
둘만 있어도 어색함은 없었다. 가족과 비슷한 관계다. 스승과 제자 사이다. 가족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철벽이야. 선을 넘어서 가까이 다가가려고 해도, 선을 넘으려고 하면 귀신같이 벽을 치니….’
더 가까워져야 한다.
그러려면 위유의 과거와 비밀을 알아야 했다.
‘위유는 과거 이야기를 하지 않아. 물어봐도 수련 이야기만 할 뿐이지. 인생의 9할 이상을 낙월산에서 보냈다는 말은 아마 사실일 거야.’
나머지 1할에 비밀이 있다. 그녀도 분명 낙월산을 벗어나 강호를 떠돌았던 시기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너무 오래돼서 그걸 알아볼 수 없다는 거지.’
나는 낙월산과 낙월신녀에 대해 이것저것 조사했다. 나오는 거라곤 낙월신녀가 달을 베고 떨어뜨린 전설뿐이다. 주작의 일족인 공비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다.
‘낙월신녀에 관한 정보는 몇백 년 전에 갑자기 사라졌다고 하던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지라 조사할 수도 없었다.
‘낙월산이라도 샅샅이 뒤져보면 단서 같은 게 나오려나? 위유의 눈치가 보여서 어려울 것 같은데.’
후우.
한숨을 내쉬며 다리를 움직였다. 아까 저녁 식사 때 위유와 맥주를 마셔서 그런지 오줌이 마려웠다. 화장실은 1층과 2층 두 곳이 있었다. 나는 1층으로 향했다. 그곳이 더 가까웠다.
화장실 문을 열었다. 선객이 변기 위에 앉아 있었다. 위유였다.
“…….”
“…….”
쪼르륵. 쪼르르륵.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렸다. 위유는 두 눈을 끔뻑이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반사적으로 위유의 하반신을 바라봤다. 사타구니 사이로 검은색의 음모가 보였다. 그 아래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쪼르르륵. 쪼르르륵.
물소리는 계속 났다.
“언제까지 보고 있을 거냐?”
위유가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흠칫 놀란 나는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목소리만큼이나 담담했다. 화난 기색은 전혀 없었다. 눈동자는 평소처럼 차분할 뿐이다.
“그, 스승님. 갑자기 쳐들어와서 이런 말 하기 뭐한데…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인간은 누구나가 대소변을 가린다. 당연한 생리현상이다.”
“그 당연한 생리현상을 남에게 보이는 건 창피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넌 내 제자다. 내가 왜 부끄러워해야 하느냐?”
“진짜 안 부끄럽습니까? 그럼 다리 한 번만 벌려주십시오. 구경만 하겠습니다. 제발!”
위유가 눈살을 찌푸렸다
“갈!!! 기어오르지 말거라!”
쪼르르륵. 쪼르륵. 그러면서도 그녀의 오줌발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제자 된 자로서 당장 화장실 밖으로 나가야 마땅하다. 그러나 내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토실토실한 허벅지가 너무나도 탐났다. 자지에 힘이 들어간다.
쪼르륵.
“…꽤 오래 싸시네요.”
“맥주를 2L가량 마셨으니 당연하지. 원래 마신 만큼 싸는 법이다. 나가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급하느냐?”
“예? 아, 예. 급합니다.”
“쯧. 2층을 이용하면 될 것을…. 잠시만 기다리거라. 다 끝났다.”
물소리가 사라졌다.
그녀는 변기 옆에 있는 비데 버튼을 눌렀다. 굉장히 익숙해 보였다. 물소리가 났다. 아까와는 조금 다른 물소리였다.
상상력이 발휘된다.
비데 노즐에서 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위유의 음부를 세척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보지를 상상하니 꽤 야하게 느껴졌다. 물소리가 줄어들었다. 그녀는 비데의 다른 버튼을 삑 눌렀다.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계속 변기에 앉아 있었다.
“끝난 거 아닙니까?”
“안 끝났다. 건조해야지. 네가 설치했는데도 모르느냐?”
“비데는 제가 아니라 미령이 했습니다. 전 비데를 자주 사용하는 편이 아니라서…. 근데 건조 기능을 오래 걸려서 잘 안 쓰지 않습니까?”
나는 비데 대신 [천상의 물티슈]를 애용하고 있다. 랜덤 뽑기에서 자주 나오는 물건인데 물티슈 주제에 비단 보다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비데의 감촉은 뭔가 좆같다.
“흐음, 그래? 나는 재밌어서 자주 사용하고 있다.”
볼일을 끝낸 위유가 변기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사타구니가 보였다. 무성한 보지털 때문에 보지 안쪽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허벅지에 걸쳐져 있는 팬티를 올리고는 비켜섰다.
“자, 사용하거라.”
나는 바로 바지와 팬티를 벗어 자지를 꺼냈다. 반쯤 발기한 자지를 본 위유가 미간을 좁혔다.
“…부끄럽지도 않느냐?”
“제 몸에서 부끄러운 부위는 없습니다. 모두 자랑스러울 뿐이죠. 그리고 스승님이 할 말은 아닌 듯합니다만.”
“됐다. 볼일이나 보거라.”
위유는 나를 지나쳐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한 손으로 자지를 변기에 조준하며 생각했다.
‘정말 나를 남자로 보지 않는 건가? 그게 아니면 성욕이 아예 없나?’
성욕을 초탈했다.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이 세계의 고수들은 강해질수록 성욕, 수면욕, 식욕 등에 초탈해진다. 그들이 가진 대표적인 욕구는 두 개다. 더 강해지고 싶은 욕구, 오래 살고 싶은 욕구.
‘강해질 수 있다면 가족도 제물로 바치는 놈들이 수두룩한 곳이니….’
그래도 그렇지 내 자지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다니.
‘좀 자존심 상하네. 홧김에 미약을 써버려?’
물론 생각만 할 뿐이다. 미약을 쓰고 난 뒤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
위유는 테라스에 나와 의자에 앉아 캔맥주를 홀짝이며 밤하늘을 쳐다봤다. 무수히 많은 별이 빛나고 있었다. 그 어느 시대보다 빛나는 별들이 많았다. 좀처럼 볼 수 없는 특별한 별들도 반짝이고 있다. 밤하늘을 보는 맛이 있었다.
“……음.”
위유는 돌연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아까 있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신의 음부를 노골적으로 빤히 바라보던 제자의 눈길과 제자의 굵직한 음경.
위유는 자신의 심장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주책이군. 이 나이에 성욕을 느끼는 건가.”
성숙을 넘어 초월한 정신도 젊은 육체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자신의 심장을 조절했다. 그녀쯤 되면 심장 박동을 조절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는 캔맥주를 마셨다.
방금 있었던 일은 어쩌다 있을 수 있는 일일 뿐이다.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다시 맥주를 마셨다.
알코올이 위유의 육체에 스며들었다. 그러나 알코올 따위가 그녀의 몸에 이변을 일으킬 순 없었다. 그녀의 육체는 만독을 마셔도 변하지 않는다. 고작 술 따위가 영향을 끼칠 리 없었다.
그래도 술이 식도를 넘어가는 그 찰나의 순간만큼은 취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잠깐의 몽롱한 순간. 그녀의 단단한 정신이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캔맥주를 연달아 마셨다. 1개. 2개. 3개. 정신을 차려보니 5개를 비운 상태였다.
그녀가 숨을 내쉬었다. 알코올 냄새가 났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오래 살다 보면 이것저것 익히게 된다. 그중의 하나가 별을 읽는 것이었다. 물론 그녀의 지식은 얕았다. 별을 읽는 것은 천기를 읽는 것이고, 진정으로 천기를 읽는 것은 소수의 특별한 자들만이 가능했다.
그녀가 읽는 건 고작해야 자기 자신의 별뿐이었다.
‘운명이 다가오고 있구나.’
그 운명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확실한 건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뿐이다.
그녀는 죽지 못해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