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7화 > 1527. 광명승천도
거지 20마리를 분근착골로 심문했다. 분근착골의 위력은 뛰어났다. 대부분의 거지는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있는 정보, 없는 정보를 모두 털어놓았다. 정보를 내뱉은 거지는 목을 잘라 장대에 걸어두었다.
10초 이상 버티는 거지들이 있었다. 나름 무공을 익힌 거지들이었다. 즉, 개방의 거지들이었다. 그것들은 무공을 익혔음에도 허리에 매듭이 없었다.
‘여긴 천마신교의 영역. 일부러 정체를 드러낼 필요는 없을 테니 당연히 숨기겠지.’
내가 무차별적으로 거지를 잡아서 심문하고 죽이는 이유가 그것이다. 일반 거지와 개방 거지를 구별할 수 없다.
‘하려면 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너무 귀찮지.’
그러니 거지를 죽인다. 어차피 하등 도움 안 되는 것들이다. 죽여도 상관없다.
‘정보는 얻었다.’
이 도시에 숨어 있는 개방의 거지는 약 120명. 정확한 숫자는 아니다. 거지들이 지껄이는 말이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분근착골을 당하면서도 거짓을 말했거나, 처음부터 서로 다르게 알고 있거나.’
후자 쪽에 가까울 것이다.
‘가장 중요한 분타주에 대한 정보는….’
믿을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거지마다 정보가 다 달랐기 때문이다.
어느 거지는 남쪽 다리 아래에 있다고 하더니, 어느 거지는 북쪽 객잔의 점소이로 일하고 있다고 지껄인다. 작정하고 신분을 위장해 도시에 스며들었다.
‘일단 거지들을 전부 죽이고 난 뒤에 찾아야 하나? 그래도 못 찾으면…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할 일을 계속 시작했다. 거지를 심문하고 죽인다. 죽인 거지의 시체는 천마신교 소용시 지부 소속 마교인들이 처리했다. 머리는 잘라 장대에 걸고, 몸통은 한곳에 모아 불태웠다. 거리에서 대놓고 벌어지는 일이었다.
“거지! 거지를 잡아 왔습니다!”
“저도 잡았습니다!”
“여기 거지 한 놈 있습니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거지를 잡아 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돈 자루를 가리켰다. 거지를 잡아 온 자들이 미소를 지으며 은 50냥을 챙겨갔다.
화려한 도시만큼 거지도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거지는 가리지 않고 심문하고 죽였다. 노인이든, 어린아이든 차별을 두지 않았다.
돈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돈이야 적당한 부자 한 놈에게 반역자 프레임을 씌워 죽이고 빼앗으면 되니까.
죽은 거지가 70마리쯤 될 때였다. 시장은 피 냄새와 시체 타는 냄새로 끔찍하게 변했다. 일반인 대부분은 장대에 걸린 거지의 머리통을 보고 겁에 질려 집으로 돌아갔다. 몇 명이 남아서 구경하고 있긴 했는데, 그건 구경하는 쪽이 이상한 거다.
“아아아아악! 대인! 도, 도와주시오!”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거지를 밟아 죽이고 있던 나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봤다.
거리 한쪽, 일련의 무리가 걸어오고 있었다. 꾀죄죄한 몰골을 보니 전부 거지들이었다. 반사적으로 거지들의 허리를 살폈다. 매듭이 있었다. 개방의 거지들이다. 숫자는 대략 20명 내외.
나는 중심에 있는 거지를 바라봤다. 내게 처음으로 거지를 데려온 털보가 붙잡혀 있었다. 털보는 얻어 맞았는지 온몸이 타박상 투성이다. 거지의 허리에는 매듭 5개가 있었다.
오결개(五結丐). 즉, 개방의 분타주다.
“섬전도 염구석.”
오결개가 굳은 음성으로 나를 부르며 털보를 던졌다. 털보가 바닥에 떨어져 내 발치로 굴러왔다.
“크억! 크어어어억!?”
털보가 지렁이처럼 꿀틀 댔다. 입에서는 선혈을 토해낸다. 털보의 가슴팍에는 손바닥 자국이 있었다. 오결개가 털보를 던지기 전에 장법으로 털보의 내부를 부쉈다. 털보는 죽을 수밖에 없다.
부들대던 털보의 몸이 멈췄다.
“그 빌어먹을 놈처럼 너 또한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멍청한 거지새끼. 너희 따위가 떼로 몰려온다고 해서 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뭐, 숨지 않고 내 앞에 나타난 그 멍청함만큼은 인정해주마.”
발치에 있는 털보 시체를 발로 찼다. 털보의 몸이 붕 떠올라 거지들에게 떨어진다. 거지들이 재빨리 뒤로 물러나더니 흩어졌다. 파파팟. 거리를 내달리더니 나를 에워싸고 포위한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그들의 허리춤을 확인했다. 매듭 3개가 흔들리고 있다.
스르릉.
칼을 뽑았다. 날카로운 기세가 퍼져나간다. 나를 포위하고 있는 거지들이 몸을 떨었다. 그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몽둥이를 들거나 손바닥을 펼쳤다. 개방은 봉술과 장법으로 유명했다.
“우리는 개방이다.”
오결개가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가 싶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봤다.
“우리는 가진 게 없다. 집도 없다. 돈도 없다. 사람의 자비에 기대어 빌어먹고 살지. 그러나 우리는 가진 자들이 부럽지 않다. 저 하늘이 지붕이고, 이 땅이 우리의 집이다. 돈이 없어도 동료들이 있다. 이 가슴에는 협을 품고 있으니, 우리는 개방이다!”
“우리는 개방이다!”
거지들이 소리친다. 아주 대단한 연설이었다. 그 보답으로 칼을 휘둘렀다.
참귀도법(斬鬼刀法) 나찰회섬(羅刹回閃).
칼이 회전하며 검기가 날아간다. 거지 두 마리의 모가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저 마귀를 쳐 죽여라!”
거지들이 달려든다.
나는 조용히 호흡을 삼켰다. 단전에서부터 내력을 끌어올리고 찰나를 사용해 단숨에 달려드는 거지들을 썰어버린다. 그게 내 계획이었다.
‘…느려졌다.’
찰나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세계가 느려졌다. 이 자체만으로 신기한 건 아니다. 집중력이 올라가면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니까. 다만 찰나를 썼을 때보다 더 느리다.
‘아직 내 집중력이 거기까지 올라가지 않았을 텐데. 내가 성장한 건가?’
어쩌면 그냥 오늘 컨디션이 좋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내게 나쁜 건 아니었다.
참귀도법(斬鬼刀法) 귀살극(鬼殺劇).
칼과 함께 내 몸이 미끄러지듯이 움직인다. 귀신을 흉내 내어 만든 신법과 칼이 아우러진다. 가까운 거지에게 파고들어 목을 베단. 칼은 멈추지 않았다. 물이 흐르듯, 천이 바람에 나부끼듯이 움직이며 거지들을 벤다.
휘이이이잉.
바람 소리가 들렸다. 내가 멈췄을 때는 한 마리를 제외한 거지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다.
오결개. 이들의 리더라 할 수 있는 거지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놈의 양팔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네놈한테서 들어야 할 정보가 많으니 일부러 죽이지 않았다.”
“끄으으… 염구석…! 이건 정보와 다르군. 오기 초단의 경지라고 들었는데…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그냥 니들이 약한 거다. 정보를 뱉는데 입만 있으면 되니 다리를 필요 없겠지. 가만히 있어라.”
“너희 마교에게 말해줄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
거지는 혀를 깨물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다. 예상대로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찰나를 사용하고 손가락을 움직인다.
쿡쿡쿡.
점혈로 거지를 제압했다. 거지가 뚝 멈췄다. 놈이 움직일 수 있는 건 두 개의 눈동자뿐이다.
나는 칼로 거지의 다리를 잘랐다.
“편히 죽을 생각은 하지 마라. 넌 알고 있는 정보를 전부 내뱉기 전까지 죽을 수 없다.”
심문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천마신교에 스며들 정도의 실력자다. 다짜고짜 고문해봤자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이런 놈일수록 천천히 가야 한다. 우선은 이 도시에 있는 거지들을 모조리 이놈의 눈앞에서 처형한다. 삶아 죽이면 멘탈이 흔들리겠지.’
나는 바로 실행했다. 사지가 잘린 오결개를 특등성에 앉히고 거대한 솥을 가져와 거지들을 삶았다.
“염구석!! 네놈이 그러고도 인간이냐!! 나는 마교에 투신한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도덕이 있다고 믿었다! 허나 네놈에겐 인간의 도리가 없구나! 어찌 인두겁을 쓰고 이리 잔혹한 짓을 저지르는가! 네놈은 인간이냐, 요괴냐?!”
“시끄럽다. 다시 다물어라. 정보를 뱉을 줄 알고 잠깐 입을 열어줬는데 개소리만 짖어대는군. 이 거지들이 삶아 죽는 건 네놈 때문이다. 네놈이 순순히 신교에 협조하여 정보만 내뱉었어도 거지들은 편하게 죽었을 것이다.”
“으읍! 으으으읍!!”
입에 재갈이 물린 오결개는 발작하며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건방진 눈깔이군.”
놈의 얼굴을 한 손으로 잡았다.
파지직.
미약한 스파크가 튀었다. 전류가 튀는 듯하더니 그의 오른쪽 눈이 펑 터졌다. 전자파를 이용해 눈알을 터트린 것이다.
“눈알을 하나 남겨둔 건 네놈 때문에 죽어가는 거지새끼들을 잘 보라는 뜻이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이 더 공포를 주는 법이었다.
나는 그날 500마리가 넘는 거지들을 죽였다.
***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무역 상인이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사지가 잘린 그는 늑대에게 산 채로 잡아 먹혔다.
나는 품에서 명단이 적힌 종이를 꺼냈다.
‘무역 상인으로 위장한 공동파의 속가제자 복현세 사망.’
바닥에 있는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복현세의 이름에 가로로 줄을 그었다.
마교인들이 다음 인물을 데리고 처형장에 들어온다. 여자였다. 나는 여자를 빤히 쳐다봤다. 꽤 미인이었다.
명단을 확인한다.
‘이번 차례는… 구파일방 출신이 아니군.’
무림맹 소속은 구파일방만 있는 게 아니다. 구파일방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문파도 무림맹에 존재한다. 단지, 역사가 짧아 존재감이 없을 뿐이다. 그리고 구파일방이 똘똘 뭉쳐 그들을 견제하니 좀처럼 명성을 떨치지 못한다.
‘화영문(花影門). 500년 전 강호의 여걸들이 뭉쳐서 만든 문파.’
나는 여자를 보며 침을 삼켰다. 솔직히 좀 끌렸다.
‘죽여야 된다. 음식을 받지 않으려면 깔끔하게 죽여야 되는데….’
꼬추가 서버렸다.
“요요객잔의 주방장으로 위장한 화영문의 마소.”
그녀는 내 시선을 똑바로 받아냈다. 죽음이 가까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 기개는 굽힐 줄을 모른다.
“무림맹이 너와 마교를 멸할 것이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방금 말을 들으니 더 따먹고 싶어졌다. 설마 이것도 저 여자의 수작인가?
‘내가 여자에 약하다는 정보는 어디에서 얻은 거지? 심문해볼 필요가 있겠군.’
나는 옆에 기립해 있는 마교인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저 여자는 지하 감옥에 가둬라. 나중에 따로 심문하겠다.”
“네? 오늘 명단에 있는 자들은 예외 없이 처형하신다고….”
“감히 내 말에 토를 달아? 네가 대신 죽어라.”
손날을 휘둘렀다. 검기가 날아가 마교인을 반으로 가른다. 나는 딱딱하게 얼어 있는 여자를 보며 히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