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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9화 > 1529. 광명승천도 (1,309/2,000)

< 1529화 > 1529. 광명승천도

소용시에 천마신교가 보낸 새로운 관리자들이 나타났다. 나는 그들에게 관리 권한을 넘기고 천마신교로 귀환했다.

이후로도 바쁘게 움직였다. 오랜 평화 때문일까. 천마신교의 내부는 생각보다 많이 썩어 있었다. 도려낼 부분은 도려내고, 살려낼 부분은 살려내고. 천마신교는 바쁘게 움직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무림맹 또한 내부 정리에 힘쓰고 있다는 것이다. 무림맹의 내부는 천마신교보다 더 심각했다. 하나의 단체인 천마신교와 다르게 무림맹은 구파일방을 중심으로 한 정파의 연합체다. 내부 사정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천마신교와 무림맹 사이에 자잘한 전투가 몇 번 일어났다. 서로의 기량을 파악하기 위해 잽을 날리는 수준의 전투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자잘한 전투가 쌓이고 쌓여 서로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한계치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3년 전, 평화를 울부짖던 자들도 증오가 쌓이니 전쟁을 부르짖었다.

나는 적멸대 본부에 있었다. 적멸대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적멸대는 천마신교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전투부대다. 당연히 들려오는 정보도 많았다.

“개방. 그 빌어먹는 거지새끼들이 눈에 불을 켜고 신교의 첩자를 찾아낸다고 하더군. 찾아내면 개처럼 패서 죽인다더라.”

“귀철대가 곤륜파의 전투 부대 3개를 멸했다. 우리보다 못한 귀철대도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데… 우린 대체 언제 출격하는 거지?”

“자네들. 화산파 소식은 들었나? 그 건방진 꽃쟁이 새끼들이 공개적으로 우리를 비난했다네.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요괴? 세상을 좀 먹는 기생충? 내버려 둬선 안 될 강호의 악? 온갖 개소리를 읊었다던데.”

“그것뿐만이 아니지. 매화검수들이 신교의 지부를 습격해서 신교인들을 모조리 학살했다.”

“지금 상부가 빡쳐 있는 게 그 때문인가? 좀 이상한데. 겨우 그런 걸로 상부가 빡쳤으면 옛날 옛적에 빡쳐서 돌아버렸을 텐데.”

“학살당한 인물 중 마존사가(魔尊四家)의 일원이 있다고 하더군.”

마존사가(魔尊四家).

천마신교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4개의 가문. 마존사가는 초대 천마의 제자들로서, 초대천마를 경외하여 천마신교를 세웠다고 한다.

천마신교에서 마존사가의 일원은 귀족이라 할 수 있었다.

“고귀한 피가 무림맹 따위에 죽었나. 상부가 빡칠만 하군.”

“우리도 반격해야하지 않나? 그 뭐냐, 만조표국? 무림맹을 지원하는 거대 표국이라던데. 그놈들을 쳐서 물자를 약탈하면 무림맹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나?”

“무림맹이 개병신도 아니고 만조표국을 이 악물고 지키려 하겠지. 위험도가 너무 크다. 안전하게 무림맹에 속한 작은 문파들부터 차근차근 없애는 게 낫지.”

자기들끼리 무림맹을 어떻게 조질지 말하던 적멸대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막내는 어떻게 생각하냐? 무림맹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적멸대에 들어오고 몇 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막내였다. 인원이 충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멸대에 들어올 만한 인재가 없었다.

“벽력탄으로 무림맹 영역을 싹 쓸어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살아남은 일반인들은 흡성대법을 기를 빨아먹으면 됩니다. 요괴들에게 인간을 파는 것도 한 방법이겠군요.”

내 말을 들은 적멸대원들이 감탄했다.

“막내가 젊어서 그런지 머리가 깨어있군. 참신한 발상이야.”

“젊음의 패기인가…. 나 때도 그런 적이 있었지.”

“막내야. 의견은 좋지만, 현실성이 없구나. 대량의 벽력탄을 구하기 어렵고, 있어도 써서는 안 된다. 대량의 벽력탄을 쓴다면 황실이 나설 것이다. 일반인들을 요괴에게 파는 것도 마찬가지다. 황실이 나설 명분이 될 뿐이지.”

황실.

이 대륙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갖춘 세력이었다.

천마신교도 무림맹도 황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무림이고 나발이고 이 대륙의 패권을 가진 자는 누가 뭐라 해도 황제였다.

“황실이 있는 이상 무림맹을 이 세상에서 지우는 건 불가능하다. 아마 어느 한쪽이 멸문하기 전에 황실이 끼어들어 중재할 것이다. 우리 신교는 황실이 끼어들기 전에 무리맹에 최대한의 피해를 줘야 한다. 향후 수십 년… 아니, 몇백 년간 힘을 쌓지 못하도록.”

적멸대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황실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부터 그들의 분위기를 가라앉았다.

천마신교의 일원으로서 황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표출할 수 없었다. 황실은 지금 이 천하의 주인이었다.

“대장의 명령이다! 모두 연무장으로 집합!”

6조장 오봉이 나타나 외쳤다. 적멸대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에 적멸대가 집합했다.

전원이 모인 건 아니었다. 바쁜 시기다 보니 적멸대 3할 정도가 빠져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의 인원이 모인 건 거의 3년만이었다. 나를 포함한 적멸대원들은 보통 일이 아닐 것이라고 직감했다.

적멸대주가 천천히 걸어온다. 그는 평소처럼 근엄하고 진지했다.

“오랜만에 멸문 임무가 떨어졌다.”

적멸대원들은 몸에 힘을 주며 적멸대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멸문 임무. 문파 하나를 멸하는 임무였다. 이 정도의 인원을 모아놓고 멸문 임무가 떨어졌다? 멸문 대상이 평범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이곳에 있는 전원이 임무에 임한다. 멸문 대상은 화산파다.”

“오, 오오!”

“화산파! 그 쓰레기들을 멸할 때가 왔군요!”

적멸대원들이 흥분했다. 이곳에 두려움을 느끼는 자들은 없었다. 적멸대는 천마신교 내에서도 거칠고 잔혹하기로 유명한 자들이 모인 곳이었다.

“언제 화산파로 떠납니까?”

“오늘 밤에 떠난다. 물자는 최소한으로 챙겨라. 보급은 지나는 도시에서 해결한다. 천마신교 영역 밖에서는 약탈로 보급을 해결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임무는 당연히 기밀이다. 가족에게도 떠들지 마라.”

적멸대원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장난기가 담긴 농담을 내뱉는다.

“우리 중에 가족 있는 사람?”

적멸대원들이 킥킥 웃었다. 가족이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적멸대 대부분 가족이 없었다. 천마신교 내에서도 유독 미친놈 취급받는 자들이라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헛소리 말고 떠날 준비부터 해라. 조금이라도 늦는 놈들은 내 손에 박살 날 줄 알아라.”

적멸대주가 몸을 돌렸다. 적멸대원들도 흩어졌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었다.

사실 준비랄 것도 없었다. 적멸대원들은 모두 공간함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옷이나 식량 등을 쓸어 담으면 그만이었다.

마찬가지인 이유로 내게도 여유시간이 생겼다. 나는 4조를 바라봤다. 여성들이 모여 있는 4조의 중심에는 연예하가 서 있었다. 4조의 여성들 사이에서도 그 외모는 군계일학으로 빛나고 있었다.

“…….”

“…….”

시선이 마주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시선을 주는 적멸대원은 없다. 그 누구도 나와 연예하의 관계를 몰랐다. 동기지만 헛소문조차 퍼지지 않는다. 검마, 삼장로의 딸 연예하와 촌구석 출신의 칼잡이 염구석. 누가 보더라도 어울리지 않는 관계니까.

‘어제는 내가 따먹혔으니, 오늘은 내가 따먹을 차례인가?’

그러나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연예하는 계속 4조랑 함께 움직였고, 밤에는 적멸대원 전원이 천마신교를 떠난다. 둘이 있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시간을 버리기엔 아깝고… 천유운이나 만나봐야겠다.’

천유운과 몰래 접선했다. 염마대원인 그와 적멸대원인 내가 대놓고 만나면 좋지 않을 소문만 나돌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적멸대가 화산파를 친다고 들었다.”

“기밀인데 용케도 알고 있군. 염마대는 뭐든지 알고 있나?”

“아무리 그래도 구파일방 중 하나인 화산파를 공격하는 임무다. 염마대라도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알아냈다는 거군.”

나는 턱을 매만졌다.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천유운은 능력이 있는 놈이었다.

“묵지련의 일은 어떻게 되고 있지?”

천유운이 물었다. 그는 화산파보다 묵지련에 대해 더 신경 쓰고 있다.

“저번에 나찰녀가 나를 부드러군. 나찰녀와 대면했다. 머리카락이 노랗고 눈이 빨갛더군.”

“그 여자는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좋은 여자도 아니다. 역마신공은 알겠지? 인육을 먹은 인간을 요괴로 바꾸는 마공. 그 끔찍한 마공을 만들고 퍼뜨린게 나찰녀다.”

“역마신공 덕분에 묵지련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

“그렇지. 하지만 문제는 내가 묵지련을 완전히 제어할 수 없다는 거다. 나찰녀는 미쳤다. 자기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여자다.”

“나찰녀의 목적은 뭐지?”

“모른다. 다만, 그 목적이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닐 거라는 거지.”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나찰녀도 묵지련의 힘이 필요하다. 묵지련을 온전히 손에 넣기 위해 천유운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니까.

‘천유운의 죽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나찰녀에게 물어보면 대답해주려나?’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염구석. 나찰녀에게 어떤 지시를 받았지?”

기다렸던 질문이 왔다. 나는 너무 급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늦지도 않은 템포로 대답했다.

“천마신공. 나찰녀는 천마신공이 잠들어 있는 위치를 알고 싶어 한다.”

“천마릉(天魔陵) 말인가. 나찰녀가 왜 천마신공을 원하는 거지?”

“그건 나도 모른다. 역마신공을 만들면서 천마신공에도 흥미가 생긴 게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러나 나찰녀는 천마의 핏줄이 아니다. 천마릉에 들어가봤자 천마신공을 얻기는커녕 죽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천유운이 미간을 좁혔다. 뜻밖의 정보를 원하는 나찰녀 때문에 머리가 많이 복잡해진 모양이었다.

“어쩔 거지? 나찰녀가 천마릉에 들어가면 죽을 테니 좋은 거 아닌가?”

“직접 들어가면 그렇겠지. 나찰녀가 천마의 핏줄을 이용해 새로운 천마를 만들려는 꿍꿍이일지도 모른다. 그놈을 이용해서 나를 밀어내려는 거지. 일단 조용히 지켜보는 게 좋겠군.”

당장 말해라! 라고 재촉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물었다.

“천마신공. 듣기는 많이 들었는데 정확히 어떤 무공인지 모르겠군. 알려줄 수 있나?”

“알말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니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다.”

천유운이 오른손을 들었다. 시커먼 마기가 그의 손아귀에 모인다.

천마신공.

내가 가진 천마신공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만마를 굴복시키는 힘. 만마를 군림하는 힘. 하늘을 부수는 힘. 광오하고 절대적인 힘. 그것이 천마신공이다.”

“…….”

나는 천마신공에 압도당한 척 연기했다.

그의 천마신공을 보며 이 천마신공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힘.

그저 압도적인 힘을 추구하는 종류의 무공이다.

‘마음에 드는군.’

어서 빨리 이 천마신공을 갖고 싶었다.

“천마십검(天魔十劍)이라는 검술도 있다고 들었다.”

“있다. 하지만 여기서 보여줄 순 없다. 무엇보다 나도 천마십검을 전부 익히진 못했다.”

“아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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