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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8화 > 1538. 광명승천도 (1,318/2,000)

< 1538화 > 1538. 광명승천도

백무한은 개과천선 시스템의 요구대로 선행을 착실히 쌓아가면서도 마을을 찾아온 이방인들을 감시했다.

이 작은 마을에 강호 고수만 3명이다. 저들이 무슨 짓을 할지 굉장히 신경 쓰였다.

저들 중 한 명이 미쳐서 날뛰기라도 하면 마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학살당할 수밖에 없다. 그 정도의 힘의 차이가 있었다.

‘특히 최강지곤이라 했나? 저 새끼! 왜 남의 할머니에게 추파를 던지는 거냐?!’

백무한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성지곤이었다.

그의 조모인 비월령은 젊었을 때 그 미모가 마을 제일이었다고 한다. 그래. 소싯적에는 상당한 미녀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마을 남자들을 설레게 했던 꽃은 이미 시들었다. 미모의 편린은 조금도 남지 않았다.

‘저놈이 할머니에게 추파를 던지는 게 아니라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라면?’

백무한이 머리를 굴렸다. 성지곤의 목적을 필사적으로 생각한다.

‘모르겠군. 저 정도 고수가 대체 뭘 원 하는 거지? 이딴 낡아빠진 객잔을 원하는 것도 아닐 테고.’

모르기에 더욱 경계하게 된다. 그는 성지곤을 계속 감시했다.

『타인을 감시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궁금한 게 있다면 차라리 대놓고 물으십시오.』

“이 멍청한 시스템 새끼! 대놓고 묻는다고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겠냐? 저놈은… 끄으으윽!”

백무한이 머리를 잡고 바닥에 찌그러졌다. 시스템이 끔찍한 고통을 그에게 선사한 것이다.

『바른 말 고운 말을 쓰십시오. 그리고 사랑은 시간과 나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저들이 순수하게 사랑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개소리!’

성지곤이 비월령처럼 노인이었다면 백무한도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지곤을 젊었다. 젊고 잘생긴 고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지곤이 비월령을 사랑할 이유가 없었다. 비월령은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니까.

‘분명 무언가 노리는 게 있다!’

그렇게 백무한의 감시는 계속 이어졌다.

성유진과 성지곤이 찾아오고 사흘이 지난 어느 날 저녁이었다. 우물에서 물을 떠 온 백무한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객잔 뒤에서 비월령과 성지곤이 입을 맞추고 있는 광경이었다.

‘이런 미친!’

이번엔 저번과 같은 사고가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의 몸을 꽉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있었으니까.

『사랑은 나이를 따지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개과천선 시스템이 백무한의 성질을 돋웠다. 스스로가 인격이 없다고 하는데, 이럴 때면 시스템이 인간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아니야! 저것도 수작일 거야! 전생의 천마신교에서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놈들이 있었지! 그 새끼들은 심지어 똥까지 먹는다고! 할망구와 입을 맞추는 것 정도는 누구라도….’

잡념을 계속 쏟아내던 백무한의 정신이 하얗게 변했다.

그들의 애정행각은 입맞춤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의 옷을 벗기고….

‘으아아아아아아!’

백무한은 한참을 지켜보다가 도망쳤다. 알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 조모의 행위를 본 그의 뇌는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미쳤다. 미쳤어!’

『조모의 아름다운 사랑을 응원하세요.』

“닥쳐, 씨발년아!”

『바른 말 고운 말.』

“끄으으으으으으윽…!”

백무한은 고통에 허우적거리며 밤을 보냈다.

아침 일찍 주방장에 들어선 백무한은 비월령과 마주쳤다. 비월령은 평소처럼 쭈글쭈글한 손으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깼느냐? 반죽 좀 준비해두거라.”

“할머니….”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백무한은 입을 꾹 다물었다. 행복하게 웃는 비월령을 보니 도저히 어제 일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그저 모르는 척하는 게 비월령을 위한 일이 아닐까 싶다.

‘…조만간 젊은 할아버지가 생길지도 모르겠군.’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군요. 축하합니다.』

‘닥쳐!’

백무한은 성지곤을 미행했다. 성지곤이 정확히 뭐 하는 놈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고수라도 내겐 천마신공이 있다.’

천마유령보(天魔幽靈步).

백무한은 기척을 완전히 지우고 유령처럼 스르륵 움직였다.

그리고 그는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미친! 저 할망구는 옆집의 할망구잖아!’

살짝 치매가 온 할망구였다. 가끔 자기가 부잣집 아가씨인 줄 안다. 성지곤은 그 옆집 할망구를 부잣집 아가씨처럼 대우해주었다. 그리고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가더니….

‘미친, 미친, 미친놈이다!’

백무한은 소름이 돋은 양팔을 쓰다듬었다. 그는 전생에서 온갖 미친놈들을 봐왔다. 천마신교는 미친놈들의 소굴이었고, 백무한 또한 미친놈들의 왕이란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저 정도로 미친놈은 처음 봤다.

‘대놓고 할망구의 그곳을… 으 씨발…!’

미행은 계속 이어졌다.

성지곤은 할망구란 할망구를 죄다 만났다.

‘저건 포목점을 운영하는 할망구! 저기 있는 건 나물 캐는 할망구! 약방의 할망구!’

아니, 만나는 건 할망구뿐만이 아니었다.

마을에서 요괴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도는 신무라 아줌마까지 만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항상 ‘너, 쌓여 있잖아.’라고 말하는 신무라 아줌마는 성지곤에게도 그 대사를 했다.

“너, 쌓여 있잖아.”

“굉장히 날카로우시군요.”

둘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백무한은 도망쳤다. 이 이상으로 깊은 심연을 볼 수 없었다. 객잔으로 돌아온 그는 어질어질한 광경을 또 목격했다.

비월령과 옆집 할망구과 서로의 회색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년이! 감히 우리 지곤이 한테 꼬리를 쳐?!”

“이이이이익! 객잔이나 운영하는 주제에!”

서로 사이좋기로 유명한 할망구들이 남자 하나 때문에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백무한은 마을이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인간관계는 정말이지 복잡하군요. 큰일 나기 전에 그녀들을 말리세요.』

할망구들을 말린 백무한은 객잔으로 돌아온 성지곤을 객잔 뒤로 불러냈다.

“대체… 대체 마을에서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그만하십시오! 이 이상 우리 마을을 가지고 놀지 마십시오! 할머니들과도 모두 헤어지십시오!”

“내가 왜? 나는 딱히 범죄를 저지른 적 없어.”

“…수많은 노파들과 관계를 가지는 걸 제가 봤습니다. 그게 범죄가 아니란 말입니까?”

“그녀들은 날 거부하지 않았지. 나는 그녀들을 사랑하고, 그녀들도 나를 사랑하고 있어.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사랑이라고…? 그딴 게?”

“늙었으니 사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그건 모두 편견이고 차별이야.”

“…….”

백무한은 할 말을 잃었다. 요즘 행복하게 웃던 조모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는 시스템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

나와 명월은 마을 순찰을 계속했다. 성지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할망구들을 연달아 만나며 아랫도리를 휘두르라 바빴다.

괴혈마의 흔적을 발견했다.

닭 3마리의 시체다.

“얼핏 보면 산짐승이 닭들을 죽인 걸로 볼 수 있소만, 좀 더 자세히 보면 몸에 구멍이 나 있는 걸 볼 수 있소. 괴혈마의 독문무공인 괴혈독수(怪穴毒手)의 흔적이오.”

“몸통에 구멍이 났는데 피가 없군.”

“닭의 피를 빨아 마신 거요. 괴혈마는 피를 마시면서 수련하는 마공이요. 닭들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소. 내 생각에는 저 산에 괴혈마가 숨어 있는 것 같소. 어떻게 생각하시오?”

“산을 뒤져보면 알겠지.”

우리는 산을 오르기로 했다.

“유진 소협. 괴혈마를 찾아 죽인 뒤에, 그 시체를 내게 주시오.”

“놈의 시체를 가져서 뭐 하려는 것이오?”

“태우려고 하오. 사왕련을 아시오?”

“설마 강호인인데 사왕련을 모르겠소. 이 일에 사왕련이 관련 있는 것이오?”

사왕련(四王聯).

산왕, 해왕, 권왕, 살왕이 이끄는 사파의 연합체다. 무림맹이나 천마신교보다 세력이 약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다.

“괴혈마는 사왕련 출신이오. 사왕련의 보물을 훔쳐 도망간 것으로 알고 있소. 괴혈마가 입은 상처도 사왕련의 추적대에 의한 것이지. 소인은 추적대와 괴혈마가 싸우는 것을 두 눈으로 봤소.”

“괴혈마의 시체를 사왕련에 넘기려는 거요?”

“아니오. 괴혈마의 시체는 직접 태울 생각이오. 추적대는 처음에 괴혈마를 생포하려 했소. 그러다 생포가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그 시체를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고 말하더이다.”

“결국 괴혈마에게 전멸당했고? 괴혈마의 몸에 뭔가 있는 거군.”

“그렇소. 소인은 괴혈마의 시체를 태우는 게 최선이라 판단하오.”

대화를 하며 산속을 걸어가던 우리는 멈춰 섰다.

떼죽음을 당한 새들의 시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새들은 모두 피를 토하며 죽었다.

“독기가 남아있군.”

당소소가 따먹을 때가 기억난다. 몸 안에 침범한 짜릿한 독기운은 지금도 그립다.

‘당소소의 독기처럼 유쾌하지 않다. 몸에 달라붙는 진흙 같아서 기분 나쁘군.’

나와 명월은 내력을 돌렸다. 독기는 침범하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졌다.

명월은 고개를 위로 올려 나무들을 바라봤다.

“나뭇가지가 부러져 있구려. 이 새들은 날다가 독기에 당해 지상으로 떨어진 것이오. 괴혈마는 아마도 자신의 힘을 시험한 것이겠지.”

“이제 곧 놈을 만날 것 같소.”

약 한 식경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괴혈마를 발견했다. 괴혈마는 죽어 있었다. 하반신은 온데간데없고, 상반신은 절반이 잘려있었다. 시체의 잘린 단면을 본다. 거칠다. 칼 같은 날붙이 무기로 단숨에 잘린 게 아니다.

“요괴의 짓이군.”

내가 말했다. 조금 당혹스러웠다. 원작에서는 명월이 괴혈마와 싸우다 부상을 입어 도망치게 된다. 그리고 백무한이 나서서 괴혈마를 처리하게 된다. 백무한이 사왕련과 엮이게 되는 계기였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오. 괴혈마는 부상을 입었다고는 하나 오기의 강자요. 그런 괴혈마를 죽일 정도의 요괴가 이 산에 있다는 거요. 일단 남아 있는 시체를 가져가서 태우는 게 좋겠소. 여기에서 시체를 태웠다가 그 요괴의 눈에 띌 수 있으니… 잠깐, 지금 뭐 하는 짓이오?”

나는 칼을 뽑아 명월을 겨누고 있었다. 칼날에서 스파크가 파지직 튀었다.

“무당파 일대제자 광검 명월. 너는 괴혈마와 싸우다 이곳에서 죽는다.”

“……나를 죽이기 위해 찾아온 자객이었소? 사왕련은 아닌 것 같은데… 마교요?”

“검이나 들어라. 무당파의 양의신공(兩儀神功)과 양의검(兩儀劍). 한 번 견식 해보고 싶었다.”

명월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그는 검을 손에 들며 내력을 움직였다. 검이 빛난다. 강기를 일으키는 것과 조금 달랐다. 검 자체가 빛나는 느낌이다. 말 그대로 광검(光劍).

“소인은 반쪽짜리요. 양의신공는 본래 양기와 음기를 동시에 다루어야 하나, 소인은 양기밖에 다루지 못하오. 소인의 극양지체라는 체질 때문이오. 광검(光劍). 듣기에는 좋은 별호이나, 소인에겐 치욕스러운 별호이오.”

“네가 무당의 일대제자 중 최고란 말은 들었다. 실망시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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