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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9화 > 1539. 광명승천도 (1,319/2,000)

< 1539화 > 1539. 광명승천도

선수를 취한 건 나였다.

명월과의 거리를 좁히고 칼을 횡으로 휘두른다. 복싱으로 치자면 잽에 가까운 공격이다. 명월은 부드럽게 움직이며 내 공격을 피하며 반격한다. 급히 칼을 회수하며 명월의 공격을 막았다.

빛의 검과 맞닿은 부분의 칼날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오르며 녹기 시작한다. 나는 칼이 완전히 못 쓰게 되기 전에 뒤로 물러났다.

명월의 광검(光劍)은 단순히 빛나기만 한 검이 아니었다. 극양의 기운이 검에 집중되어 있다. 저 빛 자체가 강기이고, 열기였다.

‘태양이라고 하면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고, 용광로를 검에 압축시켰다는 말이 맞겠군.’

나는 칼에 강기를 둘렀다. 그래야 저 광검에 버틸 수 있을 테니까.

키이이잉!

검과 칼을 부딪친다.

아까처럼 어이없게 칼이 녹아 내리는 일은 없었다. 강기가 광검의 빛을 견뎌내고 있었다. 서로 갉아 먹는다고 보면 될 것이다.

“당신의 진짜 정체가 무엇이오?”

“그게 궁금한가?”

“검을 맞대보니 당신의 기량이 소인보다 더 높다는 걸 알아차렸소. 아마 소인은 이곳에서 죽을 확률이 높겠지. 죽을 때 죽더라도 상대의 이름 정도는 알아야 그나마 덜 억울하지 않겠소?”

“포기했나?”

“아니오. 소인은 끝까지 싸울 것이오. 실날같은 희망이 있는 한 소인은 포기하지 않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뭐, 좋다. 내 이름은 염구석이다.”

“섬전도 염구석! 화산파를 멸문시킨 천마신교의 적멸대가 나를 죽이려 찾아온 것이군! 아니, 나뿐만이 아닌 듯하군요. 적멸대는 구파일방의 고수들을 죽이고 있는 것이오?”

“나도 모른다. 내 임무는 널 죽이는 것뿐이니까.”

“천마신교와 무림맹…. 거기에 사왕련까지. 천하가 이렇게나 어지럽다니…. 이 이상 천하에 무슨 일어날지 두려울 지경이오.”

“신경 꺼라. 어차피 넌 여기 죽을 거다. 그리고 무림에서 문파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건 자연스러운 생리다. 그게 구파일방이든, 천마신교든 예외 없다.”

“이 또한 흘러갈 일이라는 것이오? 그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소. 허나 나는 무당파요. 무당파의 도인으로서 눈앞의 악적을 처단하겠소!”

명월의 도포가 나부낀다. 찔러 들어오는 검은 이전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날카롭다.

‘이건 방심하다가 당한다.’

달리 말해 방심만 하지 않으면 내가 이긴다는 뜻이다.

뇌천류(雷天流) 뇌사(雷蛇).

땅을 기는 뱀처럼 칼이 꼬불꼬불 움직였다. 노리는 것은 명월의 왼쪽 어깨다. 광검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내 칼을 쳐내고도 광검은 멈추지 않고 나를 노린다.

나는 반격하려다가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순간적으로 명월의 광검이 두 개로 분열되었기 때문이다. 빛으로 이루어진 검이 마치 그림자처럼 명월의 검을 따라붙은 것이다.

“두 개로 나뉘는 검. 양의검의 특성인가.”

“본래 양의검은 음기의 검과 양기의 검을 다루는 것이오. 경지에 이르면 두 개의 검을 동시에 다룰 수 있소. 허나 음기가 극단적으로 부족한 소인은 양기의 검밖에 다루지 못하오.”

“검 하나 늘어난 게 전부군.”

“소인이 부족하여 양의검의 진정한 묘체를 보여주지 못하여 안타까울 뿐이오. 소인도 나름 양의검을 해석하였으니… 지금 보여주겠소. 분광(分光).”

광검의 빛이 쪼개진다. 쪼개진 빛은 비수의 형태가 되어 나를 향해 쏘아졌다. 비수는 꺾이고 꺾여서 사방에서 파고든다.

‘빛의 비수에 의지가 실려있군. 이기어검? 아니, 단순히 방향을 조정했을 뿐인가.’

뇌천류(雷天流) 전자기막(電磁氣幕).

호신강기를 섞은 전자기막이 내 몸을 감싼다. 날아오는 빛의 비수를 막아냈다.

“이것도 막아보시오.”

명월의 광검이 치솟는다. 빛의 출력이 강해지더니 순식간에 3m가 넘게 길어진 것이다. 명월이 몸을 회전시키며 광검을 휘두른다. 참격이 다수의 나무를 베며 내게 다가온다.

뇌천류(雷天流) 뇌강인(雷罡刃).

파지직. 칼날에 뇌전이 흐른다. 강기와 뇌전이 뒤섞이며 하나의 칼날을 이루었다. 나는 번개의 칼날로 광검에 맞섰다. 명월의 광검이 흐트러진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명월에게 접근했다.

칼날이 허공을 가른다. 명월이 호흡을 삼키며 대응했다. 빛나는 검과 빛나는 칼이 허공에서 맞닥뜨렸다.

빛과 번개.

두 개의 극양의 기운이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안달 났다.

빛이 퍼지고 번개가 지면이 훑는다. 주변의 나무는 그 열기를 견디다 못해 타오르기 시작했다. 타오르는 불꽃에서 나와 명월은 계속해서 싸웠다.

“대단하오! 정말 대단하오! 소인의 극양지기에 이렇게 정면으로 싸우는 자는 그대가 처음이오!”

명월이 피를 토하면서 웃는다. 그는 지금 자신의 모든 것을 끄집어내어 내게 맞서고 있었다.

“넌 지금 죽어가고 있다. 대체 뭐가 그리 즐겁지?”

“소인은 무인이오!”

“그러냐.”

명월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새하얀 빛이 그의 몸을 감싼다. 빛의 인간이 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명월이 검을 쥐지 않은 왼손을 위로 올렸다. 그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검의 형상을 취했다.

명월의 마지막 일격이란 것을 직감했다.

뇌천류(雷天流) 만뢰개화(卍雷開花).

의지가 내력을 움직였다. 내력은 번개가 되어 허공에 머물렀고, 번개는 꽃봉오리가 되었다. 7개의 꽃봉오리가 회전하며 피어나 쏟아지는 빛의 검을 막아낸다.

콰콰콰콰콰콰콰쾅!

강렬한 빛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빛의 폭발 속에서 나와 명월은 멈추지 않고 무기를 휘둘렀다.

빛이 사라졌을 때 결판이 났다.

칼이 명월의 심장을 꿰뚫은 것이다.

놈의 가슴에서 칼을 빼내 들어 올렸다. 명월은 경지에 오른 무인이다. 심장을 꿰뚫었으나 안심할 수 없다. 제대로 죽여야 한다.

“부탁이 있소….”

“내가 네 부탁 따위를 들어줄 것 같나?”

“마지막 유언이오. 괴혈마를 죽인 요괴…. 그 요괴는 강노촌에 너무 위험하오. 그 요괴를 죽여주시오. 그리고… 그대를 실망시켜서 미안하오.”

“나름 재밌는 검술이었다.”

칼이 내려갔다. 명월의 목이 떨어졌다.

화르르륵.

주변 나무들이 불탄다. 나는 불이 더 번지기 전에 진각을 밟았다. 콰앙! 거대한 충격파가 일어나 화재를 단번에 진압했다.

‘임무 완료다. 마을로 내려가서 백무한에게 명월은 괴혈마와 싸우다 죽었다고 말하면… 음?’

나는 이상함을 눈치챘다. 떨어진 곳에 있어야 할 괴혈마의 시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불에 탔다고 해도 흔적은 남아 있어야 하는데 괴혈마의 시체가 있던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느슨해진 긴장감을 다시 꽉 조였다.

‘요괴 놈이 근처에 있었나? 내 기감을 속이고 시체를 가져갔다고?’

보통 놈이 아니다.

‘젠장. 요괴는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데… 그놈은 내가 명월을 죽이는 걸 봤을 가능성이 있어.’

요괴가 내 살행을 보고 떠벌리기라도 한다면? 그 소식이 백무한의 귀에 들어간다면?

백무한과 친해져서 이용해 먹겠다는 계획은 시작부터 틀어지는 것이다.

‘요괴 새끼를 찾아내 죽인다.’

산을 뒤지다 보면 나올 것이다. 괴혈마를 죽이고 내 감각을 속인 놈이니 나를 두려워 계속 숨어 있진 않겠지.

나는 산을 달리며 놈을 찾기 시작했다.

‘씨발. 어딨어?!’

한참을 내달릴 때였다. 마을 쪽에서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향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순히 화재가 났다고 하기에는 하늘로 올라가는 검은 연기가 10개가 넘는다. 마을에 변고가 생긴게 확실했다.

‘요괴다! 요괴 새끼가 마을을 습격했나?!’

나는 마을로 뛰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몰살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을에는 성지곤이 있으니까. 성지곤은 나보다 약하긴 해도 오기(五氣)에 이른 강자였다.

헐레벌떡 산에서 내려왔다. 건물들이 불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쿵쿵쿵!

마을 사람을 쫓아다니는 그것은 두 발을 딱 붙이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창백한 피부에 딱딱하게 굳은 몸.

“강시라고?”

강시가 마을 사람의 허리를 짓밟는다. 검은 손톱이 특징적인 창백한 양손으로 사람의 머리를 잡아 뜯는다. 그리고는 입에 가져가 와그작, 와그작 사람의 머리를 씹어 먹었다.

피투성이의 강시는 돌연 내 쪽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나를 다음 목표물로 정한 것이다.

쿵쿵쿵!

강시가 뛰어온다. 무표정한 얼굴과 시뻘건 눈이 괴기스럽다.

“강시 따위가 감히 나를…!”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강시에게 휘둘렀다.

카앙!

강시의 몸을 썰지 못하고 칼이 튕겨 나갔다. 강기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해도 내 검술 실력이라면 바위도 가볍게 썰 수 있다.

달려드는 강시를 가볍게 피했다.

‘최소 바위보다 더 단단하다는 거지. 아니, 벨 때의 감각만 따지고 보면 웬만한 강철 이상의 강도다.’

단전에서 내력을 움직인다. 내력은 칼에 모여 강기를 이루었다. 칼을 휘두른다.

서걱!

강시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강시의 시체를 본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강시의 몸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는데, 구멍마다 새빨간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구더기가 아니군. 기분 나쁘니 없애야겠다.’

파지지직!

뇌전이 일어나 구더기들을 휩쓸었다.

이후에 백무 객잔으로 뛰었다.

“끄으으으으윽! 빌어먹을 강시 놈들! 죽어라!!”

백무한이 악을 쓰며 강시 셋과 싸우고 있었다. 그는 검을 들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마기가 넙실거렸다.

‘순수하면서도 농도 짙은 마기다. 천마신공이군,’

강시 셋이 동시에 백무한에게 달려든다. 백무한은 지면을 박차고 뛰었다.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휘두른다. 검은색 검기가 강시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강기의 몸에서 붉은 구더기가 튀어나와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강기를 사용하지 못해서 고생하고 있군.’

전투 감각이 엄청나게 뛰어났다. 내 도움이 없어도 강시 셋 정도는 이길 것 같다.

‘그럴 순 없지. 은혜를 입혀야 하니 뛰어든다!’

강기가 실린 칼을 휘두르며 강시 셋을 단숨에 조졌다.

“점소이! 괜찮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협.”

백무한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그의 목소리에 분노가 담겨 있음을 알았다. 분노의 이유를 알아차리는 건 쉬웠다. 그의 등 뒤, 팔이 잘려 죽어 있는 비월령이 있었으니까. 백무한은 조모를 지키지 못했다.

“여주인이 돌아가셨군. 애도를 표하지.”

“감사합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애도가 아닙니다. 장례는 나중에 치를 것입니다. 대협, 명월 도사는 어디에 계십니까? 도사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명월 도사는 괴혈마에게 죽었다. 괴혈마는 내가 죽였으나, 갑자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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