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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41화 > 1541. 광명승천도 (1,321/2,000)

< 1541화 > 1541. 광명승천도

분노로 각성한 성지곤을 본 나는 몸을 움찔 떨었다. 기감으로 느껴지는 성지곤의 존재감과 기운은 엄청났다. 지금의 성지곤과 싸우게 된다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딸랑.

방울 소리가 울렸다.

한곳에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은 움찔 떨었다. 그들에게 있어 방울 소리란 곧 강시들이 나타난다는 신호와 같았다. 이 사태가 잘 마무리된다고 하더라도 방울 소리가 들리면 치를 떨겠지.

“옵니다!”

백무한이 긴장한 말투로 말했다.

쿵쿵쿵!

사방에서 강시들이 나타났다. 정면에서 뛰어오는 강시는 양반이었다. 지붕을 타고 뛰어오는 놈들, 땅에서 두더지처럼 솟구치는 놈들,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놈들.

딸랑. 딸랑. 딸랑.

방울 소리가 울릴 때마다 강시가 계속 나타났다.

“용서할 수 없어…!”

성지곤이 움직였다. 강시들을 향해 황금색으로 빛나는 검을 휘두른다. 황금빛 강기가 반원을 그리며 강시들을 향해 날아갔다. 강시들은 제대로 된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무릎을 살짝 굽히더니 폭발적인 도약으로 강시를 향해 뛰어가 검을 휘두른다. 강시들은 황혼의 빛이 깃든 검을 막지 못했다. 강철보다 단단한 강시의 푸딩처럼 부드럽게 베인다.

나는 강시를 상대하면서도 성지곤을 주시했다. 성지곤이 진심을 다해 싸우는 걸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성지곤이 익힌 구월영검법(九月靈劍法)에 관한 호기심도 있었다.

‘수준 높은 검법인 건 확실해.’

날카로워야 할 때 날카롭고, 빨라야 할 때는 빠르며, 무거워야 할 땐 무겁다. 아무렇지 않게 휘두르는 검에 상승 무공의 묘리가 담겨 있었다. 내 눈에는 그게 보였다.

‘구월선자가 성지곤을 제대로 가르쳤군. 하지만 저건 그냥 휘두르는 것에 불과해. 구월영검법이 아니야.’

성지곤의 말에 따르면 구월영검법은 아홉 개의 식(式)으로 이루어진 검법이다. 식의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힘을 가졌다고 한다.

딸랑. 딸랑. 딸랑.

성지곤의 활약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강시술사들이 직접 움직였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방울 소리가 났다.

“으윽.”

백무한이 갑자기 앓는 소리를 냈다.

방울 소리 때문이다. 소리에 힘이 담겨 있었다. 술법의 일종인지 몰라도 방울 소리가 반고리관을 자극하고 뇌를 흔들려고 한다.

강시술사들이 성지곤을 포위했다. 그들이 손에 쥔 방울을 앞으로 내밀며 흔들었다. 입으로는 사악한 주문을 읊조린다.

성지곤이 있는 공간이 요동친다. 법칙이 뒤틀리며 다른 차원의 무언가가 나타나려고 한다.

“이 미친놈들!”

백무한이 소리쳤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나와 달리 그는 강시술사들의 짓거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당장 뛰쳐나가려는 백무한의 어깨를 잡았다.

“놈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명계입니다! 명계의 존재를 불러오려는 겁니다! 지금 당장 강시술사들을 쳐 죽여야 합니다!”

백무한이 다급하게 말했다. 아마 개과천선 시스템이 알려줬을 것이다. 개과천선 시스템은 명계와 관련 깊으니까.

“뭐야. 고작 그거였나.”

“고작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명계의 존재는 강력합니다! 명계의 나찰이라도 소환되는 순간… 중간계는 큰 혼란에 빠질 겁니다!”

“꼭 명계의 존재를 보고 온 것 같군.”

“그게….”

“넌 명계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 명계의 존재가 그렇게 대단했다면 이 세계는 이미 놈들이 지배했겠지. 그리고 넌 지곤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지곤이 명계의 존재가 소환될 때까지 가만히 있으리라 보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지곤이 검을 휘두른다. 그려진 황금빛 검기는 바로 사라지지 않았다. 성지곤의 주위를 머물며 춤을 추듯 돌아다닌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춤을 추는 검기는 계속 늘어났다.

황금빛 검기가 화려하게 춤을 춘다. 그의 주위에 있는 강시술사들이 검기에 베여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검기는 여전히 춤을 췄다.

“저건 대체….”

백무한이 경악한 눈으로 성지곤을 바라봤다. 기존에 알고 있던 무공과는 궤를 달리하는 무공을 목격하고 많이 놀란 모양이다.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구월영검법에 대해선 나도 잘 모른다. 설령 알고 있더라도 백무한에게 설명해줄 이유는 없다.

“아직 강시와 강시술사가 남아 있다. 움직여라.”

“…예!”

나와 백무한이 날 듯이 움직였다. 나는 강시를 담당했고, 백무한은 강시술사들을 집요하게 노렸다. 아직 분노가 풀리지 않은 성지곤은 미친 듯이 날뛰며 보이는 적이란 적은 모조리 죽였다.

전투가 끝났다.

강시는 토막 나 바닥에 떨어졌고, 강시술사는 3명만이 유일하게 살아 있었다. 백무한이 그들을 생포한 것이다.

성지곤은 쓰러졌다. 신체에 심각한 상처는 없었다. 단지 너무 무리한 것이 원인이다. 며칠 푹 쉬면 원상태로 돌아올 것이다.

“…….”

강시술사들은 침묵했다.

말을 걸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백무한에게 말했다.

“이놈들의 처우는 네게 넘기지. 죽여서 조모의 복수를 하든, 고문해서 정보를 알아내든 개의치 않겠다.”

“이놈들은 병사입니다. 이놈들에게 명령을 내린 자가 있습니다. 그 배후를 알고 싶습니다.”

“그래? 정보를 뜯어내기로 했나.”

“…저는 고문을 못 합니다. 대협. 이 자들을 고문해서 정보를 알아내 주십시오.”

백무한은 고통을 참듯 이를 악물고 있었다. 개과천선 시스템이 그에게 제재를 가하는 중일 것이다.

개과천선 시스템은 악인을 죽이는 걸 허락해도, 악인을 고문하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고문을 청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직접 고문하는 것보다 제재는 약하겠지만.

“도와주기로 했으니 끝까지 도와주지.”

“감사합니다, 대협!”

“공짜는 아니다. 이 빚도 갚아라.”

“반드시 갚겠습니다!”

구속된 강시술사를 바라봤다.

‘이놈들은 분근착골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점혈을 짚기 전에 품속에 손을 넣었다. 공간함에서 부적 하나를 꺼낸다. 미령이 써준 부적이 빛을 발하며 강시술사들을 쓸고 지나갔다. 강시술사들의 몸에서 시커먼 기운이 빠져나간다. 묵묵부답이던 강시술사들이 당황했다.

“이게 무슨…!”

“술법을 강제로 해제했다고?”

“고차원의 술법이다. 저런 놈이 어떻게 그런 부적을….”

강시술사들이 술렁인다.

“내가 네놈들의 생리를 모를 줄 알았나? 이런 뒤가 구린 짓을 하는 놈들은 일이 틀어졌을 때를 대비해서 자결을 준비하지. 살수들은 독단은 입안에 숨기는 건 유명하고. 술법사들은? 술법으로 자결을 준비하겠지.”

강시술사들의 표정이 거무죽죽하게 변한다. 아슬아슬할 때까지 벗어날 방법을 모색하고 있던 그들은 자결 수단을 잃었다. 그들은 제압당한 순간에 바로 술법을 발동해 자결해야 했다.

‘삶의 미련을 그렇게 쉽게 끊어내는 건 쉽지 않거든. 특히 가진 게 많을 놈들일수록 더욱더.’

이놈들은 못 해도 출지 이상의 술법사들이다. 온갖 고생을 하며 경지에 올랐을 텐데 쉽게 버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분근착골이다. 얼마나 버틸지 궁금하군.”

점혈을 짚는다.

근골이 뒤틀리는 고통이 강시술사들을 덮쳤다. 처음에는 버텼다. 잇몸이 터질 정도로 이를 악물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연함이 사라졌다.

먼저 입이 열렸다. 비명이라도 질러야 고통이 조금이라도 가라앉을 테니까.

“끄아아아아아아아악!”

강시술사들의 비명이 메아리친다.

놈들은 반 시진도 버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우리는 사왕련의 허우시사대다. 사왕련의 비공식 부대이며, 오직 련주님의 명령으로만 움직인다.”

“사왕련주가 네놈들을 우리 마을로 보냈다고? 대체 왜?”

백무한이 물었다.

“련주께서는 괴혈마의 비술을 원했다. 괴혈마의 몸에 그 비술이 새겨져 있었기에 우리는 괴혈마의 시체를 강시로 만들어서 가져갈 생각이었지….”

“시체를 찾았다면 가지고 갔으면 됐을 일일 텐데. 대체 왜 우리 마을을 습격한 거지?”

“련주께서는 이 일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마을 사람들은 괴혈마를 알고 있더군. 우리는 이 마을을 지우기로 했다.”

“이 자식들이!”

백무한이 소리치며 검을 들고 휘둘렀다. 강시술사들의 목이 떨어진다. 백무한은 강시술사들의 시체를 내려봤다.

“만족했나?”

“…복수는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 복수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놈들은 원수가 휘두르는 칼일 뿐입니다. 적의 칼을 부쉈다고 해서 적이 죽는 건 아닙니다. 새로운 칼을 마련하겠죠.”

“상대는 사왕련이다. 사왕련에게 복수하겠다고?”

“저는 원수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을 죽일 것입니다.”

“자살하겠다는 말로 들리는군.”

“물론, 지금 당장 멧돼지처럼 사왕련에 들이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습니다. 저는 사왕련을 피해 힘을 기를 생각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어쩔 셈이지? 사왕련이 다시 공격할 수도 있다.”

“명문 정파가 관리하는 도시로 데려갈 생각입니다. 사왕련이라고 해도 명문 정파가 자리 잡은 도시에서 함부로 소란을 피울 수는 없을 테니….”

사왕련이라고 해도 명문 정파를 건드리는 건 부담스럽다. 괜히 건드렸다가 무림맹의 칼날이 사왕련에게 향할 수 있었다.

사왕련과 천마신교가 손을 잡는 최악의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천마신교는 사왕련과 친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적대한다. 사파 무인과 마교인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저는 두 분이 걱정스럽습니다.”

“우리가 걱정된다고?”

“사왕련은 두 분을 뒤쫓을 것입니다. 두 분께서 고수이시긴 하나 사왕련은….”

“걱정 마라. 우리는 네 걱정을 받을 정도로 약하지 않다. 지곤은 군부에 속해 있다. 그것도 제법 주목받는 무관이지. 사왕련이 함부로 건들지 못한다. 우리보단 네 앞날을 걱정해야 할 거다. 계획은 있나?”

“낭인으로 떠돌며 힘을 쌓을 것입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백무한은 주인공이며 환생자다. 알아서 잘할 것이다.

‘백무한을 이용해 사왕련을 견제하고 없앤다. 원작대로라면 사왕련 뒤에 있을 세력도 이놈이 처리하겠지.’

백무한과 척만 지지 않으면 된다.

나중에 백무한은 깨달음을 얻어 천마신공을 버리게 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백무한에게 접근해서 천마신공을 얻는다. 그게 내 계획이었다.

다음날. 성지곤이 깨어났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백무한을 따라 도시로 떠났고, 성지곤은 공간 이동 주문서를 사용해 사천의 군부로 돌아갔다.

나 또한 섬전도 염구석이 되어 천마신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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