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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44화 > 1544. 광명승천도 (1,324/2,000)

< 1544화 > 1544. 광명승천도

옷을 입고 칼을 쥘 때까지 놈들은 덮치지 않았다. 자신들의 승리를 자신하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침착하군. 우리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나?”

늙은 거지가 말했다. 냉정하고 침착한 목소리와 달리 그의 두 눈은 살의로 번들거린다.

“대놓고 날 죽이려는데 모를 수가.”

“왜 도망가지 않았지?”

“너희 같은 놈들이 뭐가 두려워서 도망가지.”

“멍청하긴. 지금 네 몸은 정상이 아니다. 산공독에 중독되어 앞으로 3시진은 내력 대부분을 쓰지 못할 거다. 내력을 모으려고 해도 흩어질 테니. 넌 오늘 이곳에서 죽는다. 곱게 죽일 생각은 없다. 네놈의 손에 죽은 개방의 형제들이 그걸 바라지 않을 테니!”

늙은 거지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가 자세를 잡으며 손바닥을 앞으로 내민다. 그의 내력이 용솟음치며 손바닥에 모이는 것이 느껴진다.

“우선 그 팔과 다리를 자른 뒤에 삶아 죽여주마! 후에 그 머리를 창대에 걸어 네놈에게 죽은 자들의 넋을 위로하겠다!”

“선배님.”

그때, 독고청하가 앞으로 나섰다.

양손에 검을 쥔 그녀는 차가운 기운을 줄기줄기 흘리고 있었다. 그 냉철한 기운을 느낀 늙은 거지는 투지를 잠시 억눌렀다.

“…소가주. 음. 내게 할 말이라도 있소?”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기회?”

“저 마두를 제압할 기회 말입니다. 놈을 죽이지 않겠습니다. 저는 놈을 상대로 독고세가의 일월패신검(日月覇神劍)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독고청하가 말했다.

늙은 거지는 그녀의 속셈을 알았다. 수백 년을 강호에서 살아온 그가 독고청하의 뻔한 속셈을 모를 수가 없었다. 독고청하는 나를 상대로 이김으로써 명성을 얻으려는 것이다.

“…좋소. 소가주에게 맡기겠소. 단, 섬전도를 죽여선 안 되오. 섬전도는 목숨은 개방의 것이오!”

“명심하겠습니다.”

독고청하가 앞으로 나서며 기수식을 취한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보자기로 보이는 모양이군. 네놈들 따위가 나를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허세 부리지 마라. 지금 네 상태는 누구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건방진 년. 넌 존나게 따먹어주마.”

“저질스럽구나!”

나는 독고청하를 향해 달려드는 척하다가 방향을 급격히 틀었다. 창문을 박살 내고 밖으로 나간다.

“이놈! 이제와서 도망이라니!”

놀란 독고청하가 따라오든 말든 일단 건물에서 벗어났다. 기루 내에서 싸우면 기녀들이 휘말려 죽을 수 있었다. 그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여기서 죽기엔 아까운 미녀들이었으니까.

쿵!

히어로 랜딩으로 바닥에 착지했다. 충격이 무릎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찌르르 올라온다. 나는 혀를 찼다. 산공독의 효과로 내력의 9할 이상을 사용할 수 없었다.

쿵!

마찬가지로 독고청하가 내 앞에 내려섰다. 그녀는 당당하게 내게 쌍검을 겨눈다.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이곳은 이미 우리 독고세가의 무인들이 포위했다! 섬전도 염구석! 네놈이 도망갈 길은 없다!”

그녀의 말대로 주위에 독고세가의 무인들로 가득했다. 이중 삼중으로 도망갈 길을 봉쇄한 것이다.

“도망간 게 아니다. 장소를 바꿨을 뿐이지.”

몸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 독고청하가 자세를 잡게 두지 않겠다는 듯 내게 달려들었다. 그 몸놀림은 가벼우면서도 재빨랐다. 또한 그녀의 쌍검은 폭풍처럼 날카로웠다.

챙! 채앵! 챙!

급히 칼을 들어 독고청하의 검격을 막아낸다. 나는 점점 뒤로 밀려났다. 1할의 내력만으로는 독고청하의 공격을 받아내기 어려웠다.

독고청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진 않겠지만, 정면에서 싸우고 있는 내겐 그 웃음이 보였다.

‘날 이기고 얻을 명성을 생각하며 웃는 것이겠지. 또 개방이 뭔가를 약속한 것 같고….’

그런데 어쩌나. 난 질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죽을 생각은 더더욱 없다. 독고세가든, 개방이든 날 노렸으니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우선은 독고청하부터 제압한다!’

독고청하의 검이 어깨를 노리고 찔러 들어온다. 그녀의 검이 훤히 보인다. 어디를 노릴지도 예상이 간다. 문제는 1할의 내력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천심.’

[천심(天心)을 발동합니다. 1분 동안 지속됩니다.]

신체 능력이 상승하고, 산공독에 의해 흩어졌던 내력이 차오른다.

나는 입을 크게 벌렸다. 어깨를 노리고 쇄도하는 독고청하의 검을 이빨로 물었다. 놀란 독고청하가 검에 내력을 집중했다. 소용없다. 그것보다 빠르게 내 이빨은 검을 부숴버렸으니까.

콰직!

부서진 유리처럼 검신이 깨졌다.

“내, 내력을 사용할 수 없을 터인데…! 어떻게?!”

“저런. 산공독이 불량품이었던 것 같군. 그러게 잘 좀 준비하지 그랬냐.”

“이, 이익!”

독고청하가 바닥을 박차고 뛰어 공중제비를 돌았다. 동시에 회전력을 검에 담아 휘두른다. 나는 빠르게 퇴보를 밟았다. 하얀 검기가 내 턱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발악하듯 연격을 이어 나간다.

그녀의 발은 땅을 밟자마자 뛰어올랐다. 땅에 있는 것보다 공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공중살법이 전문인가. 너무 변친적이라 까다롭다. 왜 제비라고 부르는지 알겠군.’

독고청하는 그야말로 한 마리의 제비였으니까.

하지만 완성되지 않았다. 그녀의 검술은 못 해도 오기 중단은 되어야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만큼 난이도가 높고 난해한 검술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지. 제비라도 어린 새끼에 불과하다. 허점이 너무 빤히 보이잖아.’

뇌천류의 근본은 영천류. 영천류는 어떤 환경에서도 전투를 이어갈 수 있다. 그게 영천류가 지향하는 바이다. 공중이라 해서 다를 것 없다. 영천류 또한 근본으로 둔 뇌천류 또한 마찬가지다.

지면을 박찬다. 독고청하처럼 공중으로 뛰어올라 무기를 맞댄다. 놀란 독고청하가 눈을 부릅떴다.

뇌천류(雷天流) 허도(虛道).

파지직. 발아래에 뇌기로 이루어진 발판이 일어났다. 나는 물결처럼 파동치는 뇌기를 밟으며 공중에서 공격을 이어갔다.

상황이 바뀌었다. 독고청하는 지상에서 내 공격을 막느라 급급했고, 나는 공중에서 공격을 이어갔다.

독고청하의 땀방울이 허공에 비산한다. 그녀는 숨을 헐떡였다. 내 공격을 막아내는 검에는 아까보다 기운이 빠져있었다.

“놀아주는 건 여기까지다.”

정수리를 노리며 칼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긋는다. 깜짝 놀란 독고청하가 검을 옆으로 세워 막아냈다.

‘이건 페이크지.’

진짜는 왼쪽 주먹이었다. 주먹이 그녀의 단단한 복근에 파고들었다. 내장이 파열되지 않도록 힘 조절은 했다.

“커어어억!”

입을 크게 벌린 독고청하의 몸이 뒤로 날아간다.

‘찰나.’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날아가는 독고청하보다 빠르게 움직여 그녀의 뒷머리를 잡아 바닥에 내려찍었다.

쾅!

독고청하의 얼굴이 바닥에 처박힌다. 나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렸다.

“크읏… 으으으….”

코에서 피가 나고 입술이 터졌다. 눈동자도 흔들리고 있다. 여기서 한 대 더 때리면 확실하게 기절시킬 수 있다.

‘일반인이라면 머리가 터졌겠지만… 출지의 무인답게 제법 버티는군.’

얼굴이 다소 엉망이 되었지만, 타고난 미모 덕분에 그마저도 아름다웠다. 지금 당장이라도 옷을 벗기고 엉덩이를 때리며 보지를 따먹고 싶다.

그러나.

“소가주님!!”

“이 자식! 소가주님을!!”

독고세가의 무인들이 일제히 달려든다.

‘그래. 이것들을 처리하고 따먹어도 늦지 않지.’

나는 독고청하를 한곳에 내던지고 정신을 집중했다. 미녀인 독고청하는 봐줬지만, 이 새끼들을 봐줄 이유는 없었다.

“물러서라!!”

위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독고세가의 가주인 독고한의 목소리다. 놈이 기루에서 뛰어내렸다. 쌍검의 끝을 아래로 향하며 벼락처럼 떨어진다. 나는 뇌음보를 밟으며 피했다.

“어딜!”

내가 피하는 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늙은 거지가 손바닥을 내밀며 떨어졌다. 손바닥에 담긴 내력이 범상치 않다. 이건 피하기도 뭣하다.

‘미친 늙은이. 내 손에 들린 칼이 안 보이나?’

손바닥보다 칼이 더 강한 건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는 칼을 내뻗었다. 칼날에는 강기가 맺혀 있었다.

떨어지는 늙은 거지의 몸이 기이하게 움직이더니 내 칼을 피했다. 나는 그게 개방의 무공인 팔선신법(八仙身法)이란 걸 알았다. 이어서 개방의 성명절기인 강룡팔장(降龍八掌)으로 이어진다.

피할 수 없었다. 놈의 손바닥에 내 왼쪽 어깨에 닿았다.

쾅!

왼쪽 어깨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놈의 내력이 침범하며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다행히 버틸 수는 있었다.

“독고가주! 방금 깨달았소! 놈은 실력을 숨기고 있었소! 산공독이 소용없어진 이상 우리가 동시에 놈을 공격해야 하오!”

“알겠습니다! 제가 놈을 정면에서 상대하겠습니다! 소옹개께선 놈의 빈틈을 노리십시오!”

독고학이 검풍을 날리며 다가오고, 늙은 거지를 눈치를 보며 뱀처럼 기회를 노린다.

‘뇌천류를 숨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참귀도법만으로는 이 상황에서 당할 수밖에 없다.

뇌천류(雷天流) 뇌섬(雷閃).

번개를 휘감은 검기를 사방에 날린다. 깜짝 놀란 독고한이 위로 뛰었다.

‘떨어져라.’

밤하늘이 번쩍인다. 푸른 벼락이 독고한에게 떨어진 것이다. 독고한은 공중에서 낙뢰를 피하지 못하고 감전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뇌천류에대해 몰라서 당한 거다! 독고한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죽여야 한다! 그래야 내가 이겨!’

쓰러진 독고한에게 달려갔다.

늙은 거지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는 양 손바닥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내 앞을 막아섰다.

“어딜 감히! 독고가주! 어서 일어나시오!”

“크으윽! 고, 고맙습니다. 설마 놈이 벼락을 떨어뜨릴 줄이야!”

“범상치 않은 뇌공의 고수요. 놈은 어디서 기연이라도 얻은 모양이오.”

늙은 거지가 딱 좋은 변명거리를 만들어줬다. 천마신교에서 내 무공에 추궁하면 기연을 얻었다고 하면 될 것이다.

“거지새끼. 역겨운 냄새가 나는군. 제발 부탁이니 죽어라!”

“이 삶에 미련은 없다! 네놈만 죽일 수 있다면 얼마든지 죽을 수 있다!”

거지가 양 손바닥을 내민다. 그 움직임은 흐르는 물처럼 유려하다.

‘그게 무엇이든 찢어버리면 그만이다.’

뇌천류(雷天流) 뇌강인(雷罡刃).

번개의 칼날이 놈의 목을 노린다. 거지의 양손이 잔상을 그리며 움직여 칼날을 붙잡으려 한다.

아니, 붙잡지 않았다.

놈의 왼손바닥은 칼날을 위에서 아래로 쳐낸다. 강기가 흐트러진다. 놈의 오른손바닥은 칼날의 옆을 후려쳤다. 강력한 충격에 칼자루가 내 손에서 벗어난다.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연히 칼 좀 쳐냈다고 지랄하지 마라, 거지새끼! 칼이 없어도 네놈 따윈 죽일 수 있다!”

놈이 오른손바닥을 뻗는다. 잘난 척한 주제에 놈의 왼손바닥은 너덜너덜했다.

나는 놈을 향해 왼손바닥을 뻗었다. 오른손 칼을 놓친 충격으로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콰앙!

두 명의 손바닥이 합장하듯 부딪쳤다.

충격은 버텨냈다.

이제부터 내력 싸움이다. 그리고 난 내력에 자신 있었다.

파지직!

“강룡팔장을 우습게… 헛! 이건 뭐냐?!”

놈의 내력이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며 내력을 움직였다. 여기서 밀리면 죽어야 한다.

“벼락, 별… 마룡?”

거지는 한순간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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