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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45화 > 1545. 광명승천도 (1,325/2,000)

< 1545화 > 1545. 광명승천도

“벼락, 별… 마룡?”

거지는 한순간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본 모양이다.

그러다 거지는 이를 꽉 물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력 싸움은 양날의 검이자, 벼랑 끝 전투였다. 물러나는 순간 끝이다. 최소 불구가 될 것이다.

나는 입도 열 수 없었다. 입을 여는 순간 기운이 입 밖으로 빠져나가며 거지의 내력이 내 몸을 터트릴 테니까.

파지직, 파직!

몸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최대한 거지의 내력을 막아내려곤 하나 쉽지 않았다.

‘내력의 양은 내가 우위에 있다! 하지만….’

경험과 무공의 특성이 거지 쪽이 압도적이다. 나는 이런 내력 싸움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개방의 강룡팔장을 비롯한 장법은 기본적으로 내가중수법의 묘리가 스며들어 있다.

‘크으으윽…. 기혈이 불타고는 것 같군.’

거지에게서 밀려오는 내력은 날카로웠다. 가시덩굴을 연상케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다른 놈들이 나를 공격하지 못한다는 거다.’

내력 싸움에서 누군가가 끼어들면 싸우고 있는 두 명 모두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마신공을 써야 되나?’

단전이 뜨겁다. 조금씩 내상이 쌓이고 있다.

천마신공은 쓰지 않는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뇌천결을 운용한다. 한 번 죽더라도 뇌천류로 거지를 이길 생각이었다.

늙은 거지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입꼬리를 말아 올랐다. 승리를 자신하는 얼굴이었다. 실제로 거지 놈의 내력이 내 심장을 옥죄기 직전이었다.

심장이 따끔따끔하다.

나는 저력을 숨기며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 놈이 내 심장을 터트리고, 승리를 확신한 순간 기회가 생길 것이다. 그때 완전 회복으로 역습한다.

‘크으으으윽! 온다!’

거지의 내력이 내 심장을 장악한다. 버티고는 있으나 그것도 한계다.

쿠릉.

천둥소리가 울렸다. 나는 그 소리가 내 안에서 울린 소리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력이 강해진다. 심장을 장악한 거지의 기운을 순식간에 떨쳐냈다.

파직.

내 몸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푸른색이 아닌 검은색의 스파크였다. 뇌전에 진한 마기가 스며들어 있다.

‘거지의 내력에 천마신공이 자극됐다!’

이건 무의식적인 반응에 가까웠다.

상황이 역전되었다. 검은 뇌전은 거지의 내력을 씹어 삼키며 역으로 놈의 몸속에 파고들었다. 늙은 거지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놈이 흘리는 식은땀이 상의를 축축하게 적셨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검은 뇌전은 상성에서 우위를 점했다. 어떤 원리인지 모르나 검은 뇌전은 너무도 쉽게 거지의 내력을 파괴한다.

합장하듯 맞닿은 손바닥을 시작으로 변화가 시작되었다. 거지의 혈관이 부풀어 오르더니 터져버린 것이다. 놈의 팔에서 피가 주르륵 떨어진다. 검은 뇌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내부를 휘저었다. 마치 살아있는 용처럼 움직였다.

용은 거지의 심장을 칭칭 감았다. 심장을 장악한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악!”

늙은 거지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깜짝 놀란 독고세가의 무인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소옹개! 이놈, 섬전도! 당장 떨어져라!”

독고한의 쌍검이 내 목을 노린다. 나는 거지에게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1초. 1초만 있었어도 거지를 죽일 수 있었는데 아쉽군.’

죽이지 못했으나 상황은 내게 유리했다. 늙은 거지는 목숨만 잃지 않았을 뿐이지 지독한 내상을 입었으니까.

더 아쉬운 건 검은 뇌전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다.

“우웨에에에엑!”

땅바닥에 주저앉은 늙은 거지가 피를 토한다.

“장로님!”

개방의 다른 거지들이 늙은 거지에게 달려갔다. 늙은 거지는 연신 피를 토하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필사적으로 정신을 붙잡는다. 그의 몸에서 불꽃이 타오르듯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장로님! 선천지기를 태우셨습니까?!”

“잘 들어라. 섬전도 염구석은 위험하다. 지금도 위험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위험해질 것이다. 저놈은 별의 기운을 타고났다. 뿐만이 아니라 번개를 품었으며 마룡을 기르고 있다. 마룡은 아직 어리다. 나는 마룡이 성장했을 때가 두렵구나! 마룡이 어릴 때 죽여야 한다!”

“저희도 장로님처럼 목숨을 걸겠습니다!”

개방의 거지들이 불나방처럼 내게 달려든다. 목숨을 건 돌격이다. 무리하고 있는 게 뻔히 보였다.

‘저 늙은 거지에게 목숨을 바쳐서 틈을 만들어주려는 건가.’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딱히 이해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독고의 무인들이여! 개방의 협객들을 도와라!”

“예! 가주님!”

독고세가의 무인들까지 달려든다.

개방의 거지들만큼 매섭지는 않다. 개방의 거지들처럼 목숨을 버릴 각오는 없는 것이다.

‘아무래도 좋다. 덤비면 죽이면 된다.’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푸른 번개의 빛이 번뜩이며 선을 그린다. 선은 적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개방 거지들과 독고세가의 무인들의 몸이 토막 난다. 높아진 혈압탓에 그들의 몸에서 피 분수가 솟구쳤다.

늙은 거지는 떨어지는 혈액 사이를 커튼 삼아 교묘하게 모습을 감추며 달려든다.

나는 다시 한번 최속의 참격을 휘두른다.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카앙!

막혔다.

독고한이 쌍검을 세워 뇌광을 막아낸 것이다. 그 대가로 독고한은 뒤로 물러났다. 아니, 비켜준 것이다. 늙은 거지가 내게 당도할 수 있도록.

늙은 거지의 오른손은 너덜너덜했다. 그런 오른손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용이었다. 정확하게는 용의 형상을 한 기운. 붉은 피가 뒤섞여 그 형태가 좀 더 확실하게 보였다.

‘강룡팔장의 오의같은 건가.’

직감이 말한다. 위험하다. 정면으로 당하면 죽는다.

‘아무리 완전 회복이 있다고 하더라도 간단히 죽어줄 생각은 없다.’

뇌천류(雷天流) 심즉검(心卽劍).

칼과 손바닥이 서로를 향해 질주한다. 누구도 멈추지 않고, 멈출 수 없다. 승부는 한순간에 났다. 칼은 거지의 손바닥과 함께 혈룡을 갈랐다. 거지는 심즉검에 반응했으나 멈추지 않았다. 멈추는 순간 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이놈은 여기서 반드시 죽여야… 컥!”

내 칼이 거지의 목을 꿰뚫었다. 나는 축 늘어진 거지의 몸을 발로 찼다.

“장로님!!”

“섬전도 염구석!!”

아직 살아 있는 개방의 거지들이 분노를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그 뒤로 굳은 표정의 독고한과 독고세가의 무인들이 덤벼든다. 나는 왼손으로 칼자루를 꽉 쥐었다. 심즉검을 사용한 대가로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가장 성가신 놈이 죽었으니 왼손으로 충분하다! 내겐 완전 회복도 남아 있다!’

독고세가의 독고한? 방심만 하지 않으면 이길 자신이 있었다.

뇌천류(雷天流) 만뢰개화(卍雷開花).

번개의 꽃봉오리가 회전하며 피어난다. 공간을 장악하고 뇌전을 흩뿌렸다. 뇌전에 닿은 무인들이 감전당해 바닥에 쓰러진다. 그들을 죽일 정도의 출력은 나오지 않았으나, 제압만으로 충분했다.

독고세가의 무인들과 검을 맞대며 느끼는 게 있었다. 이놈들의 사기가 이미 바닥을 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독고세가는 개방과 달리 나에 대한 원한이 딱히 없군.’

그렇다고 설렁설렁하는 건 아니었다. 독고세가도 나름 필사적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면 온갖 오명을 다 쓰게 될 테니.

전투 중에 일부러 빈틈을 보인다. 일종의 페인트다. 고수라면 의심부터 할 노골적인 빈틈이지만, 그 빈틈마저 기회라고 여기는 자들이 이곳에 많았다. 독고세가의 무인이 모기처럼 날아와 내 옆구리에 칼침을 박으려 한다.

나는 찰나를 이용해 더 빠르게 무인의 몸을 반으로 베어 갈랐다. 피와 내장이 쏟아진다. 그 장면이 섬뜩했는지 독고세가의 무인들이 주춤거렸다.

“공격을 멈추지 마라! 놈은 지쳤다! 여기서 죽여야 한다!”

독고한이 소리쳤다. 지친 건 맞았다. 하지만 칼을 휘두르지 못할 정도로 지치지 않았다. 독고한이 정면에서 온다. 양손에 쥔 검이 빛나며 현란하게 움직인다.

‘전부 보인다.’

보이면 대처할 수 있었다. 나는 독고한에게 반격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의 쌍검을 막기만 했다. 반격은 다른 무인들에게 했다.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개방의 거지들은 이미 몰살했고, 독고세가의 무인들도 한 명씩 죽어 나가고 있다.

그것은 독고한에게 커다란 압박감이 되었다. 독고세가의 가주로서 가문의 무인들을 잃는 것만큼 뼈아픈 일은 없을 테니까.

‘무인들 모두 재산이지. 출지의 무인을 기르기 위해선 최소 수십 년의 시간과 막대한 돈이 소모되니까.’

그 압박감은 독고한을 무리하게 만들었다. 심리전에서 내가 이긴 것이다.

‘왔다!’

틈을 비집어 벌리듯 무리하게 들어오는 두 개의 쌍검. 왼쪽은 페이크고, 오른쪽이 진짜다. 독고한이 도박수를 던졌다. 기다리고 있었던 공격이다. 카운터 치기 딱 좋았다.

뇌천류(雷天流) 허도(虛道).

계단을 밟듯이 허공으로 뛰어오른다. 독고한이 당황하며 검의 궤도를 비틀었다. 나는 다시 한번 허공을 밟으며 독고한에게 쇄도했다.

서걱!

독고한의 왼팔을 베었다.

“크윽!”

독고한이 뒤로 물러났다.

‘놓칠 수 없지.’

따라붙으며 칼을 휘둘러 놈의 목을 노리려고 했으나, 각이 나오지 않았다. 칼을 휘둘러봤자 막힐 것이다. 놈과 나 사이의 거리가 너무 좁은 것이 문제였다.

과감히 칼을 손에서 놓았다. 대신 주먹을 쥐고 독고한의 턱을 후려친다. 파지직! 주먹을 통해 뇌기가 독고한의 머리로 스며들었다. 독고한은 두 눈을 뒤집으며 기절했다.

‘이겼다!’

쓰러지는 독고한의 목을 붙잡는다.

“멈춰라. 너희 가주가 죽는 걸 보고 싶은 거냐.”

“이 비열한 놈이! 감주를 인질로 삼는가! 마교인 다운 더러운 행태로다!”

“비열한 건 네놈들이지. 기루를 포섭해서 음식과 술에 산공독을 타고, 날 죽이기 위해 단체로 몰려왔지. 독과 다구리가 정파의 정신이냐?”

“악을 죽이는 것이 곧 정의다!”

“죽여봐라. 대신, 내 손에 들려있는 이놈도 죽는다. 독고가주가 필요 없다면… 뭐, 덤벼도 되겠지.”

덤벼도 상관없었다. 내겐 완전 회복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놈들이 달려들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이 세계의 무인놈들은 틈만 나면 뒤통수를 쳐대는 놈들이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달려들지 않았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나와 대치했다.

독고세가의 장로급으로 보이는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네놈을 보내주마. 대신 지금 당장 가주를 내려놓아라.”

“나와 거래하자고? 나는 네놈들이 죽여야 하는 마두다만?”

“네놈 따위의 목숨보다 가주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

“크크크.”

나는 기분 좋게 웃었다. 이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건이 있다. 네놈은 자결해라. 그럼 이놈을 풀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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