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49화 > 1549. 광명승천도 (1,329/2,000)

< 1549화 > 1549. 광명승천도

“독고세가는 봉문한다.”

독고한이 가신들에게 말했다.

그의 앞에 모인 가신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독고한의 의견에 반박하는 가신은 없었다.

지난밤, 독고세가는 큰 피해를 입었다. 독고세가가 자랑하는 정예 무인이 죽었고, 명망 있던 가신 또한 죽었다. 가주인 독고한은 한쪽 팔을 잃었다. 날아오르려던 독고세가는 다시 휘청이게 됐다.

무엇보다 소가주인 독고청하가 독고세가를 위해 치욕을 당했다.

가신들은 불과 한 식경 전에 있었던 그 일을 감히 입에 담지 못했다.

“문을 닫아라. 지금부터 독고세가 밖으로 나가는 자들은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손님 또한 받지 않을 것이다.”

가신들은 독고한의 의도를 눈치챘다.

봉문.

스스로 가문의 문을 걸어 잠근 이유는 독고청하 때문이다. 치욕의 소문이 퍼져나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가신들은 찬성했다. 봉문을 한다는 건 독고시의 관리권한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으나, 지금은 움츠려야 했다. 소옹개가 죽으면서 개방과의 관계도 애매해졌고, 현 무림은 천마신교와 무림맹의 전쟁으로 떠들썩하다. 최악의 경우 이번 일처럼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수 있었다.

“봉문의 기한은 언제까지로 생각하십니까?”

“최소 30년이다. 허나 정해진 것은 아니다. 천하의 상황을 봐야겠지. 더 짧아질 수도 있고, 더 길어질 수도 있다. 봉문을 해제했을 때, 우리는 염구석을 찾아내 죽일 것이다.”

염구석. 그 이름 석 자가 나오자마자 그들의 두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봉문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봉문을 한다고 해서 모든 활동은 끊을 수는 없었다. 식량과 식수 등의 문제가 있었다. 사람은 먹지 않고 살 수 없는 법이니까.

“가주님. 소가주께서는….”

가신 중 한 명이 소가주를 입에 담았다. 회의를 진행하던 가신들이 굳어졌다.

소가주인 독고청하는 가문의 식솔들 앞에서 놈에게 범해졌다. 시간으로 따지면 한나절 이상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분노와 함께 성욕이 일었다. 어쩔 수 없었다. 소가주는 무척 아름다운 여자였으니까. 허나 그 티를 낼 순 없었다.

“소가주는 어떻습니까?”

“아직 잠들어 있다. 소가주가 깨어나면 내가 대화하겠다.”

가신들은 고개를 숙였다.

그중 젊은 가신들은 생각했다. 고고한 한 떨기의 꽃이 마두의 손에 꺾였다. 마두는 꽃을 가지고 놀다가 지겹다는 듯이 버리고 갔다. 농락당한 꽃은 너덜너덜했다. 그럼에도 꽃은 아름다웠다. 어쩌면 그 꽃을 자신이 주울 수 있지 않을까?

가신들은 염구석의 품에 안겨 허리를 흔들던 소가주를 잊을 수 없었다.

***

“…….”

독고청하는 저녁이 되어 일어났다. 그녀는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치욕의 기억이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자결이었다. 그 치욕을 안고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어도 변하는 건 없다.’

섬전도 염구석은 자신이 죽더라도 그 힘을 누리며 살 것이다. 죽더라도 원수는 갚아야 한다. 자결에 대한 생각은 싹 사라졌다.

독고청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몸이 움찔 떨렸다. 허리에서 통증이 느껴지고 음부가 쓰라렸다. 고통과 함께 염구석에 대한 증오와 분노도 커져 갔다. 그녀가 방문을 열었다.

“소가주님! 깨어나셨군요!”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녀가 놀란 표정과 함께 물어왔다.

“아버님. 아니, 가주님을 만나야겠어.”

“방에서 기다려주세요. 가주님께서 소가주님이 일어나면 알려달라고 말씀하셨거든요.”

“됐다. 내가 직접 아버지를 찾아갈 테니.”

“그, 그럼 제가 가주님께 안내하겠습니다.”

시녀가 앞장서서 걸었다. 독고청하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걸으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곧 그녀는 독고한을 만날 수 있었다. 시녀는 눈치를 보며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청하야! 몸은 괜찮으냐?!”

독고한이 벌떡 일어나 독고청하에게 다가갔다.

“저는 괜찮습니다. 가주님.”

“아버지라고 부르거나. 여긴 우리 둘밖에 없지않느냐.”

“네. 아버지.”

“가문은 봉문 하기로 했다. 봉문 기한은 최소 30년. 염구석을 죽일 수 있을 때까지 힘을 기르는 데 집중할 것이다.”

독고청하는 봉문에 대해선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30년 동안 봉문을 한다고 해서 염구석을 죽일 힘을 기를 수 있을까?

독고청하는 회의적으로 생각했다. 염구석도 30년 동안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 소가주의 자리를 내려놓겠습니다.”

“…청하아. 너는 가문을 위해 희생했다. 네가 희생하지 않았다면 가문은 봉문이 아니라 멸문했을 것이다. 네 덕분에 무공과 영약을 빼앗기지 않았다. 가신들도 너를 인정하고 있으며, 식솔 중 그 누구도 너를 비난하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그렇지요. 지금 당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는 아버지도 잘 알고 계시잖아요.”

“청하야. 가문을 믿거라. 우린 타인이 아니다. 독고의 피가 흐르는….”

독고한은 독고청하의 어깨에 손을 뻗다가 멈췄다. 독고청하가 과민 반응하듯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선 것이다. 독고한은 침묵하며 손을 내렸다.

“아, 아버지. 이건…. 그….”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일을 겪었으니 남자를 기피하고 혐오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아버지의 손을 피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해한대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다. 너는 강한 아이니까.”

독고한은 안타까운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봤다. 동시에 염구석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더 치솟는다.

독고청하는 마음을 다스린 뒤에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버지. 소가주의 자리를 내려놓겠습니다.”

“…꼭 그래야겠느냐?”

“저는 놈에게 더럽혀졌습니다. 그 장면을 식솔들도 보았습니다. 제가 소가주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으면 말이 나올 겁니다. 제가 가주 자리에 오르면 그게 더 심해지겠죠.”

“가문을. 일족을 믿어 줄 순 없겠느냐?”

“아버지. 이건 믿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명분의 문제입니다. 독고세가의 가주는 완벽해야 합니다. 저처럼 범해지고 더럽혀진 여자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

독고한은 반박할 수 없었다. 독고청하의 말대로였다. 독고가주는 완벽해야 한다.

“아버지. 전 이제 가주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받아들이마. 넌 이제 소가주가 아니다.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 테니 너는 회복에 전념하거라.”

“괜찮습니다. 딱히 불구가 된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 그렇게 보이는구나. 이젠 무엇을 할 것이냐? 최대한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 다소 무리한 일이라도 상관없다. 가문은 네게 큰 은혜를 입었으니. 나는 아버지로서, 그리고 가주로서 네게 보답해야한다.”

“가문의 일월신단과 대량의 벽곡단을 준비해주십시오.”

일월신단(日月神丹)은 독고세가의 최고 영약이다. 온갖 귀한 영약을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연단하여 만들어낸다. 그 방법이 매우 은밀하여 10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게 일월신단이었다. 일월신단은 가주만 아는 곳에 숨겨져 있었기에 염구석도 찾지 못했다.

“일월신단은 네게 줄 수 있다. 가신들도 모두 동의할 것이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네게 주마. 그런데 대량의 벽곡단? 설마 폐관 수련을 하려는 게냐?”

벽곡단은 한 알만 먹어도 한 끼 식사의 영양과 열량을 얻을 수 있는 환단이다. 보통 비상식량으로 이용된다. 그리고 폐관 수련에 들어갈 때 이 벽곡단을 가지고 들어간다. 벽곡단의 최대 단점은 맛이 없다는 점이다.

“폐관 수련을 끝낸 뒤에 가문을 떠나겠습니다. 세상에는 제가 자결하였다고 말해 주십시오.”

“진심이구나. 네가 그러지 않아도 가문은 염구석을 언젠간 기필코 죽일 것이다.”

“아버지. 부디 청을 들어주십시오. 염구석은 제가 죽이겠습니다. 아버지는 가문을 이끄셔야 합니다. 독고세가는 예전의 힘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 치욕을 당했는데 복수를 포기하란 말이냐?”

“복수를 포기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가주로서 가문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주십시오.”

“소가주의 직위를 내려놓은 너는 복수를 최우선으로 여기겠다는 것이구나.”

“부탁드립니다.”

독고청하가 무릎을 꿇었다. 독고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독고청하가 이렇게 나오니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알겠다. 전부 들어주마. 그러니 내게 그렇게 무릎 꿇지 말거라.”

“감사합니다, 아버지.”

“…가주가 아닌 아버지로서 말하마. 무리하지 말거라. 나는 복수보다 네가 살았으면 한다.”

“아버지. 살기 위해 복수에 매진하는 겁니다. 놈을 죽일 때까지 살아도 산 것이 아닐 테니까요.”

독고청하는 그날 바로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 독고청하가 자결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독고청하가 살아 있다는 걸 아는 건 가문 내에서도 극소수의 인원뿐이었다.

***

매화일미 당소소는 구파일방 중 하나인 아미파를 찾아갔다.

익힌 자하신공을 선보이며 화산파의 후계자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아미파와 거래했다.

화산에 나는 공청석유의 권리를 500년 동안 양도하는 대신에 검후의 제자가 된 것이다. 그녀는 매화검법뿐만이 아니라 아피마의 옥녀신검까지 익힐 기회를 손에 넣은 것이다.

그녀는 열심히 수행했다. 자신을 범한 염구석의 복수? 그것 또한 그녀의 목표 중 하나였다.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무림에 삼켜지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보냈다. 수면, 수련, 식사의 반복되는 일상. 아미파는 여자들만 모인 금남의 구역인지라 귀찮은 일도 없었다. 그녀는 온전히 수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딱 하나만 빼면.

염구석이 자신의 몸에 새긴 음몽의 저주. 그것이 그녀의 수면을 방해했다.

그녀는 잠에 들때마다 꿈속에서 염구석을 만난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몸을 섞는다. 꿈이란 걸 알지만 저항할 수도 없었다. 당소소가 할 수 있는 건 꿈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이게 꿈일 뿐이라는 것이다.

‘단지 꿈일 뿐인데….’

지나치게 생생한 꿈이다. 꿈에서 느껴질 리 없는 오감이 전부 느껴진다. 그 남자의 냄새, 그 남자의 맛, 그 남자의 목소리, 그 남자의 체온, 그 남자의 정자.

그 모든 게 생생했다.

‘요즘에는 잠에서 일어났을 때도 문제야.’

전에는 잠에서 깨어나면 아랫도리가 축축 젖는 것으로 끝났다. 속옷만 갈아입으면 됐으니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이상하게 잠에서 깨어나면 음부가 가려왔다. 무심코 손을 갖다 대면 참지 못하고 자위를 하게 됐다.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오늘 밤에도 꿈에서 그가 나올 것이다. 어젯밤에는 꿈속의 자신을 밧줄로 묶고 범했으니, 오늘은 어떻게 범하려나? 그녀는 아랫배가 욱신거리는 걸 무시하고 수련에 집중했다.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