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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3화 > 1553. 성유니콘 (1,333/2,000)

< 1553화 > 1553. 성유니콘

“야, 이 미친 새끼야!!!”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오준혁이 내 멱살을 잡았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다 망했어! 다 망했다고!!”

오준혁이 내 몸을 흔든다. 나는 몇 번 당해주다가 그의 손을 쳐냈다.

“이거 좀 놔! 이 배은망덕한 놈아! 감사하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친구 멱살을 잡아?!”

“누가 구해달라고 했냐고!!”

“너도 알잖아. 그 길드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위험하지 않아. 지금까지 괜찮았다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고! 파이브 새드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대단한 길드야!”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단한데?”

“그건….”

오준혁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기밀이라서? 아니다.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고급 정보를 알 정도로 높은 위치에 있던 것도 아니었다.

“네가 파이브 새드 길드에 관해 알고 있는 게 뭐야? 별거 없잖아. 파이브 새드가 마약을 판다? 마약 사범으로 이용당하고 있으니 당연히 알겠지. 넌 파이브 새드에서 말단이야, 말단.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말단. 지금도 경험했잖아.”

방금 노지수는 오준혁을 망설임 없이 보내줬다. 파이브 새드 길드가 오준혁을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노지수여도 오준혁을 쓰다 버렸을 것이다. D급 헌터인데다가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도 아니니까.

“씨, 씨발…. 내, 내가 알고 있는 고객이 몇 명인 줄 알아? 30명이 넘어. 그 정보를 불어버리면 파이브 새드 길드라고 할지라도….”

“네가 말했잖아. 파이브 새드 길드는 훨씬 더 크고 대단한 길드라며. 그깟 정보가 정말 파이브 새드 길드에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 같아?”

“…….”

사람이 괜히 조직을 만드는 게 아니었다. 개인은 조직에 대항하기 힘들었다. 그 개인이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모를 일이지만, 오준혁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다.

“씨발…. 한 달에 3,000만 원씩 벌고 있었는데…. 꾸준히 던전 공략에 나서서 실적도 채우고 있었다고.”

“위험해지면 바로 버려지는 게 너야. 넌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원래라면 이렇게 쉽게 놔주지 않을 테니까.”

원래 이런 뒤가 구린 조직은 함부로 사람을 놔주지 않는다. 조직을 그만둔다고 하면 배신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많다.

오준혁은 무사히 조직을 나오게 됐으니 내게 감사해야 한다.

“하, 씨발…. 협회에 아는 누나 있다는 말 진짜지? 진짜 나 취직시켜 줄 수 있냐?”

“걱정 마. 그 누나 협회에서 알아주는 권력자니까. 넌 대학 졸업만 해. 뭐, 협회에서도 말단부터 시작하겠지만 마약 사범보다는 낫지. 특히 헌터인 너는 걸리면 가중 처벌까지 받잖아.”

“가중 처벌…. 후, 씨발. 갑자기 현타 씨게 오네. 내가 왜 그딴 짓을 했지?”

오준혁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에서 나온 거라곤 스마트폰과 지갑밖에 없었다. 그는 인상을 팍 쓰며 나를 바라봤다.

“약은… 당연히 없을 테고, 담배 있냐?”

“담배 안 핀다. 너도 안 폈잖아.”

“후우. 그랬지. 원래는 안 이랬지….”

“근데 진짜 마약했냐? 플래시가루 그거.”

“조금만 했어. 조금만. 팔다가 남는 게 있어서 호기심에 몇 번 한 게 다야.”

수척해진 얼굴을 보니 고작 몇 번이 아닌 듯하지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오준혁은 헌터다. 중독증상도 어느 정도 버틸 것이다. 그리고 플래시가루를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노지수가 오준혁에게 플래시가루를 팔 리 없으니까.

“후우. 이제 어쩌지?”

“오랜만에 만났는데 놀다 가야지. 홍대 쪽 클럽에 가자.”

“아니, 야. 방금 클럽에서 파이브 새드 길드랑 지랄했는데, 클럽으로 놀러 가자고? 성유진. 이 새끼. 심장이 아주 강심장이구만?”

“왜. 쫄리냐?”

“시발. 나 오준혁이야. 강철왕 오준혁. 내가 쫄리… 좀 쫄리네. 파이브 새드 길드는 보통이 아니거든. 보복하러 오면 어쩌지?”

“보복할 생각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했겠지. 아마 당분간 너나 나를 감시하려고 할걸?”

“설득력 있네. 여기서 뭔가 하려고 하면 진짜 보복하는 거지?”

“넌 당분간 헌터 일 하지 마라. 던전에 가면… 말하지 않아도 알지?”

오준혁이 굳은 표정으로 끄덕였다.

헌터는 던전 밖에서 잘 죽지 않는다. 병에 잘 걸리지도 않고, 교통사고를 당해도 차를 더 걱정한다. 그러나 던전에 들어간 순간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던전에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몬스터와 강도 짓을 하는 헌터까지. 위험률이 상승한다. 그리고 던전에서 죽으면 시체조차 찾기 힘들다.

“…암살자가 있다면 던전에서 오는 거겠지.”

“꼭 던전에 가야 한다면 협회 쪽이랑 같이 가. 요즘 협회에서 D급 이하 헌터들 키워준다고 이런저런 프로그램 한다더라.”

아무리 파이브 새드 길드가 뒷배가 든든한 블랙 길드라 할지라도 대놓고 협회를 건들지는 못한다.

“졸업까지 얼마 안 남았잖아. 협회 취업할 때까지만 버텨. 그동안 모은 돈으로 놀면서 지내면 되겠네.”

“…고맙다, 유진아. 생각해 보니 지금 파이브 새드 길드에서 나온 게 잘된 일인 것 같아. 몇 번 위험하다고 느끼긴 했거든.”

“이 새끼. 이제야 머리가 돌아가는구만. 자, 클럽이나 달려보자고. 대놓고 돈 좀 쓰면 여자들 꼬시기도 쉬울 거야. 오늘은 네가 쏴라.”

“오케이. 오늘은 내가 쏜다. 근데… 넌 괜찮은 거냐? 길드 마스터…. 노지수, 그년이 널 보는 눈이 심상치 않던데. 얼마나 살벌한지 진짜 쌀 뻔했다니까.”

“그게 A급 헌터의 살기라는 거다. D급인 네가 버티기엔 좀 힘들었을 거다.”

“이 새끼가….”

오준혁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다 돌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넌 어쩌려고 그러냐? 길드에 들어갔다고 하던데. 그 길드가 널 보호해줘?”

“세븐티어 길드? 나름 뛰어난 길드이긴 하지. 후원하는 길드도 꽤 있고. 아직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건 아니긴 한데…. 뭐, 내 걱정은 하지 마. 알아서 잘할 테니까.”

“협회의 도움을 받으려고?”

“아니. 평소처럼 지내야지. 그 새끼들이 해봤자 뭘 하겠어. 크크.”

나는 오준혁과 함께 홍대 클럽으로 향했다. 그날 밤은 신나게 몸을 흔들며 놀았다.

***

오준혁에게 말했던 것처럼 나는 평소처럼 지냈다.

평소처럼 아침 늦게 일어나고, 평소처럼 영화 한 편 보고, 평소처럼 한하린과 점심 먹고 놀다가 오후에는 던전으로 갔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실적이 목적이었다. 돈이라면 이미 평생 놀고먹을 정도로 벌었으니까. 유희 생활 어플이 존재하는데 돈이 뭐가 걱정일까.

자이언트 맨티스.

이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다.

이름 그래도 2m 크기의 거대 사마귀가 몬스터로 나온다. 느려터진 작은 사마귀를 생각해선 안 된다. 이놈들은 민첩하다. 공중까지 날아다니며 칼날처럼 날카롭고 길쭉한 앞다리로 검기까지 사용한다.

‘C급 몬스터 중에서도 강하고 성가신 놈이지.’

게다가 곤충형 몬스터였다. 혐오적인 그 모습에 대부분 헌터들은 곤충형 몬스터를 피한다.

‘덕분에 C급 개방형 던전을 여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거지.’

던전 환경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태양 빛이 쨍쨍하게 내리쬐는 정글이었다. 습하고 덥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서 불쾌했다.

스스스스스스스!

고개를 위로 올렸다. 하늘을 날고 있던 녹색의 자이언트 맨티스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칼과 같은 앞다리를 내밀며 빠른 속도로 강하한다. 놈의 칼날에 연두색의 검기가 실려있었다.

나는 허리춤에서 화련비도를 발도하는 동시에 검기를 날렸다. 시뻘건 뇌전을 휘감은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거대 사마귀의 몸을 노린다.

사마귀는 곡예비행을 하며 검기를 피했다. 그 움직임을 본 나는 감탄했다. [광명승천도] 세계에서 본 웬만한 무인들 보다 눈앞의 사마귀가 훨씬 낫다.

‘이 사마귀가 나보다 더 재능있는 것 같군.’

사마귀가 코앞까지 당도했다. 놈이 칼날 같은 앞다리를 휘두르기 직전, 화련비도가 더 빠르게 움직였다. 허공에 붉은 선이 그려지고 사마귀의 몸이 토막 난다.

아무리 사마귀가 C급 중에서 강하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C급이다. B급의 벽을 넘지 못한 몬스터다. 내게 위협이 될 순 없었다.

‘적당히 20마리만 더 잡고 나갈까.’

사마귀의 사체에서 다른 부산물은 버리고 마석만 챙긴다. 마석만 있으면 실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사마귀의 부산문은 딱히 돈이 되는 편도 아니었고.

‘몬스터와 싸우는 건 재밌는데, 몬스터를 찾고 마석을 빼내는 작업이 귀찮단 말이야. 자동진행을 사용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현실인지라 자동 진행을 사용할 수 없었다. 나는 속으로 연신 투덜거리며 불쾌한 정글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나는 긴장했다.

‘근처에 누군가가 있군. 바닥에 흔적이 있어. 5명 정도인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여긴 개방형 던전이니 자격을 갖춘 헌터라면 누구나가 들어올 수 있으니까. 그러니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젯밤에 파이브 새드랑 그 지랄을 했으니까. 노지수가 입막음을 하려고 보낸 건가?’

집중해서 기감을 퍼뜨린다. 5개의 기척이 걸렸다. 내 근처에 있었다. 퇴로를 막고 있다. 지금 당장 놈들이 날 습격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제 떠날 당시에 노지수는 입막음을 고민했다.

고민하다가 관둘거라고 생각했다. 내 기준으로 어제는 좋게 끝난 편이니까.

‘내가 알고 황하문을 알고 있는 게 불안했나? 대담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군.’

짜증이 났다.

내 안에서 파이브 새드의 일은 어제 끝냈다. 오준혁을 파이브 새드에서 데려왔으니 목적을 달성한 거다. 이제 서로에게 신경 끄고 서로 갈길 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굳이 제거하려 한다?

‘끝장을 보자는 거지? 좋아. 시발. 아주 끝장을 보자고.’

화련비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뒤로 돌아 외쳤다.

“너희들이 여기에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좋은 말 할 때 나와라.”

놈들은 한 박자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빠르게 놈들을 훑었다. 예상대로 5명이었다. 전원 검은색 옷을 입었고 손에는 무기를 들고 있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로 실력을 가늠한다.

‘A급 2명에 B급 3명인가?’

C급 인원이 있을 만한 파티 구성이 아니었다. 나를 죽이러 온 것이다.

‘난 대외적으로 B급이다. 과할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했군.’

그들 중심에서 한 남자가 나섰다. 건장한 몸에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였다. 군인 같은 분위기가 흐른다.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놈들이 틀림없었다.

“쓸데없이 도망치지 마라. 이미 이 주위는 우리가 통제하고 있다. 네가 도망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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